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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 인천교구, 제물진두 순교기념 경당 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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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4-05-24 ㅣ No.1268

인천교구, 제물진두 순교기념 경당 축복



인천교구는 인천시 중구 항동1가 1-13에서 교구장 최기산 주교와 정신철 보좌주교 등 사제단 공동집전으로 ‘제물진두 순교기념 경당’ 축복 미사를 봉헌했다.

경당이 세워진 곳은 병인박해(1866년) 때 손 넙적이(베드로)를 비롯한 이승훈 성현 증손자 이연구ㆍ이균구 등 천주교 신자 10명이 처형된 제물포 제물진두 순교터다. 많은 순교자가 공개 처형된 곳임에도 그간 잘 알려지지 않았는데, 2010년 교구 성지개발위원회 부위원장이었던 고 김진용(마티아, 2012년 선종)씨가 위치를 규명해 이듬해 성역화 작업에 돌입해 경당을 세운 것이다.

10개월 만에 완공된 경당은 대지면적 109.1㎡(33평), 건축면적 43.3㎡(13평) 규모 지상 1층 구조로, 인천 차이나타운 입구 한중문화관 바로 우측에 15m 높이로 건립됐다.

경당 외관은 하늘을 향해 피어오르는 꽃 모양이자 하느님께서 순교자들을 감싸는 두 손 모양을 형상화했다. 벽면에 적힌 순교자 10위의 명패를 따라 좁고 긴 입구로 들어가면 작지만 아담한 경당이 모습을 드러낸다. 벽면 높이 십자가 모양의 유리화 사이로 내려오는 빛은 마치 순교자들을 은총으로 감싸 안는 하느님의 빛처럼 여겨진다. 또 한편에 걸린 그림 속에는 1845년 제물포를 통해 중국으로 사제품을 받으러 갔던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와 1888년 이곳을 통해 조선에 온 샬트르 성바오로 수녀회 수녀들의 모습이 순교자들과 함께 담겨 있다.

최 주교는 강론에서 “작지만 장대한 의미를 지닌 아름다운 경당에서 전 세계 신자들이 신앙의 의미를 깊이 깨닫고 갈 수 있는 보석 같은 신앙의 장소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교구 성지개발후원회(회장 신혜선, 담당 제정원 신부)는 인천시 남동구 장수동에 건립 추진 중인 ‘이승훈 역사문화 기념관’ 건립 사업도 2016년 완성할 예정이며, 이 같은 성역화 사업이 하나씩 매듭을 지으면 강화 갑곶순교성지를 비롯한 인천 지역 모든 성지를 잇는 성지순례길을 조성할 계획이다. 교구는 이를 위해 현재 매달 마지막 주 토요일 인천 답동성당에서 제물진두까지 걷는 ‘제물진두 순교자 현양 도보순례’를 해오고 있다. 성지개발 후원 문의 : 032-765-6961, 인천교구 사무처 [평화신문, 2014년 5월 25일, 이정훈 기자]

 

 

인천 제물진두 순교기념경당 축복


병인박해 10위 순교터



인천교구는 5월 15일 제물진두 순교기념경당 축복식 미사를 교구장 최기산 주교 주례로 봉헌했다.


인천교구는 성지개발위원회(위원장 제정원 신부) 주관으로 5월 15일 오전 10시30분 인천시 중구 항동 1가 1-13 현지에서 교구장 최기산 주교 주례, 총대리 정신철 주교와 교구 사제단 공동집전으로 ‘제물진두 순교기념경당’ 축복식 미사를 봉헌했다.

제물진두는 병인박해(1866년) 이후 손 베드로 넙적이(박순집의 이모부), 이연구·균구(이승훈 성현의 증손) 등 10위가 순교한 인천지역 최대 순교터다. 축복식 미사에는 순교자 후손으로 이승훈(베드로) 성현의 직계 7대손 이상균(베드로·67·서울 사당동본당)씨와 7대 외손 신혜선(헤드비제스·서울 청담동본당)씨 등과 교구 성지개발후원회 회원 등 신자 200여 명이 참례했다.

최기산 주교는 강론에서 “신앙을 증거하기 위해 10분이 순교한 제물진두에 세워진 순교기념경당은 규모는 작지만 그 안에 담긴 의미는 장대하다”며 “많은 신자들이 찾아와 순교자들과 함께 천국 여정을 같이 하자”고 전했다.

지난해 7월 11일 착공식 후 10개월 만에 문을 연 제물진두 순교기념경당은 대지면적 109.1㎡, 건축면적 43.3㎡에 지상 1층 구조로 하늘을 향해 솟아오르는 15m 높이의 뾰족한 건물 형태는 순교영성을 상징한다. 건물은 전체적으로 하느님의 두 손을 형상화했으며 경당 안에는 순교자 10위의 위패와 순교의 표상이 설치된 벽과 바닥, 박해시대 제물진두 교회사를 표현한 유화작품 등으로 장식했다. [가톨릭신문, 2014년 6월 1일, 박지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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