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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가르멜 성인들의 생애와 영성72: 삼위일체의 성녀 엘리사벳의 영성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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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11-12 ㅣ No.851

[가르멜 성인들의 생애와 영성] (72) 삼위일체의 성녀 엘리사벳의 영성 ⑤


남다른 성자 사랑으로 영적 성숙 도모

 

 

- 엘그레코 작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그리스도’, 프라도 미술관.

 

 

성녀 엘리사벳의 영성에서 중심적으로 드러나는 주제로 삼위일체 가운데 제2위격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깊은 사랑을 들 수 있습니다. 성녀는 세 위격 가운데 예수님에 대한 사랑이 남달랐습니다. 성녀는 특히 사도 바오로의 서간들을 통해서 예수님의 다양한 모습들을 접했으며, 그래서 메시아이자 성자이신 예수님, 인류를 위해 자신을 온전히 내어주시는 성자, 그분의 수난과 죽음에 대한 신앙을 심화시키며 영적인 성숙을 도모할 수 있었습니다.

 

 

속죄주, 구세주이신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

 

성녀 엘리사벳의 작품 곳곳에는 예수님에 대한 표현이 ‘나의 그리스도’, ‘나의 예수님’처럼 거의 대부분 ‘나의’라는 소유 형용사와 함께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는 예수님을 자신의 소유물처럼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그분과 동일시하고 그분과 더불어 긴밀한 친교를 나누고 있음을 드러내는 친밀감의 표현입니다. 성녀는 일생을 통해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언제나 그분의 말씀을 귀 기울여 들으며 그분과 운명을 함께 나누고 그분을 흠숭하며 그분과 아주 친밀하고도 내밀한 친교를 나누는 가운데 일생을 보내고자 했습니다. 

 

성녀에게 있어 예수 그리스도는 무엇보다 성부 하느님과 깊은 사랑의 친교를 나누며 성부와 동일한 신성(神性)을 충만히 간직하고 계신 분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성녀는 그런 성자 그리스도를 인류를 위해 이 땅에 내려오셔서 수난 받고 돌아가심으로써 인류의 구원을 이루신 ‘속죄주’이자 ‘구세주’로 고백했습니다. 그래서 성녀가 사춘기 때부터 가졌던 영혼 구원에 대한 열망은 사실상 자신이 사랑하는 예수님의 인류 구원을 향한 열망을 나눠 가진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유일무이한 자신의 정배로 받아들였던 엘리사벳은 자신이 사랑하는 그분이 염원했고 목숨을 걸고 이루려 했던 영혼 구원에 대한 열망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일거수일투족, 자신의 모든 기도와 희생이 영혼들의 회개와 구원을 위해 쓰이기를 염원했습니다. 성녀는 「일기」를 비롯해 지인들에게 보낸 여러 편지에서 예수님을 기쁘게 해드리기 위해 많은 영혼들을 그분께 데려가는 게 소원이라고 늘 후렴구처럼 되뇌곤 했습니다. 세상 구원에 대한 열망, 사람들의 회개와 성화에 대한 열망은 그리스도를 향한 사랑의 또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삼위일체와 인간의 신비를 열어젖히는 그리스도

 

우리 영혼 안에서 삼위일체의 하느님의 내주(內住)에 대한 언급은 성녀 엘리사벳에게서 드러나는 특징적인 체험이지만, 무엇보다도 성녀는 요한 사도(요한 15,4-5)과 바오로 사도(로마 8,1-2)의 말을 빌려 우리 영혼 안에서의 그리스도의 내주와 그리스도 안에서의 우리들의 삶에 대해 자주 언급했습니다. 같은 선상에서 성녀는 우리 영혼과 성령 간의 상호 내주에 대해서도 말했습니다. 또한 성녀에 따르면, 그리스도께서는 끊임없이 우리를 당신과의 내밀한 친교로 초대하고 인도하시며 이를 위해 당신 사랑으로 우리를 매료시켜서 당신께로 끌어들이십니다. 그럼으로써 당신을 통해 삼위일체 세 위격 간의 생명과 사랑의 영원한 친교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이런 면에서 보면, 성녀는 그리스도를 성부를 계시하는 그분의 완벽하고 무한한 모상이자 그분께로 안내하는 길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성녀는 강생하신 그리스도를 통해 삼위일체 하느님께서 이 땅을 밟으셨으며 영원으로부터 숨겨져 있던 삼위일체의 신비가 드러났다고 보았습니다.

 

그런데 성녀에 따르면, 그리스도는 삼위일체의 신비뿐만 아니라 인간의 신비를 열어젖히는 핵심적인 열쇠이기도 합니다. 성녀는 「믿음 안에서 천국」 22번에서 사도 바오로의 에페소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1장 4절의 말씀을 인용하는 가운데, 성부께서 우리를 위해 영원으로부터 준비하신 당신의 계획은 성자 그리스도 안에서 준비되었으며 이를 실현하기 위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미리 선택하셨다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중세 영성가인 뤼스브뤽의 말을 빌려 “성삼께서는 세상 창조 이전에 우리에 대해 당신 품 안에 지니셨던 영원한 모형에 따라 우리를 당신 모상으로 창조하셨습니다”라고 하며 인간을 향한 성부의 계획이 성자의 모습에 따라 그를 창조하심으로써 구체적으로 실현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습니다. 한마디로, 성녀는 인간을 향한 성부의 계획은 그리스도 안에서 준비되고 시작되며 완성된다고 보았습니다.

 

[평화신문, 2016년 11월 13일, 윤주현 신부(대구가르멜수도원장, 대전가톨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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