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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ㅣ순교자ㅣ성지

[순교자] 김대건과 최양업: 그 존재의 역사적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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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1-08-31 ㅣ No.2013

[신앙선조들의 발자취] ‘김대건과 최양업 : 그 존재의 역사적 의미’

 

 

김대건 신부와 최양업 신부가 활동했던 19세기의 천주교 신앙공동체는 사회운동 단체가 아닌 종교적 공동체였다. 당시 천주교인들은 천국을 갈망하며, 그곳에 들기 위해서는 신분을 떠나 인간 평등의 가치 안에서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고 믿었다. 사랑이라는 새로운 가치의 실천을 통해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천주교인들의 천국이었던 것이다.

 

당시 천주교 신자들은 이성과 정의의 길을 따르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이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 죽음 너머에 천국이라는 세상이 있고,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이웃사랑을 비롯한 신자의 의무를 성실히 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이웃사랑을 직접 실천함으로써 조선 후기 사회의 발전을 위한 자신들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김대건 신부와 최양업 신부는 이러한 신앙공동체의 지도자였다. 그들은 신자들을 결속시키고 이끌어가면서 천주교의 가르침을 조선 사회에 선포하고자 했다. 두 신부를 중심으로 한 조선 천주교회가 실현했던 ‘평등’과 ‘사랑’의 가치는 실제로 당시 사회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신앙 활동은 일상생활과 구별될 수 없고, 이 둘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19세기 중엽에 살았던 천주교 신자들의 신앙과 삶도 그러했다. 그들은 신앙을 가지고 삶의 기준으로 천주(하느님)를 내세우며 ‘평등’과 ‘사랑’을 자신들 삶 안에서 실현시켜 나갔다.

 

김대건 신부와 최양업 신부는 새로운 개념이던 평등한 인간관을 가지고 이를 현실 생활에서 실현시키고자 하였다. 신자들은 교우촌을 형성하여 평등한 삶을 실천해 나갔다. 이는 조선 후기에 널리 퍼져있던 이상향 추구 운동이 천주교인들에 의해 먼저 구현되었음을 의미한다. 천주교 신앙공동체가 성공적으로 실현한 사회 현상은 조선 사회의 사상적 발전을 나타낸 결과인 동시에 이를 견인하는 요소로 작용했다. 김대건 신부와 최양업 신부는 이러한 요소를 이끌어내고 강화하는 데 있어 중심역할을 수행하였다.

 

김대건 신부와 최양업 신부는 그들이 살았던 조선 후기 사회를 평등한 인류사회로 발전시킨, 역사적으로 중요한 인물이었다.

 

참조

조광, 「김대건과 최양업 : 그 존재의 역사적 의미」, 성 김대건 안드레아 탄생 200주년 희년살이 심포지엄, 2021.

 

[2021년 8월 29일 연중 제22주일 의정부주보 3면, 의정부교구 교회사 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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