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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신앙: 과학기술의 발전도 하느님의 섭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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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01-23 ㅣ No.270

[과학과 신앙] 과학기술의 발전도 하느님의 섭리



생명 유지에 없어서는 안 되는 물은 산소 1분자와 수소 2분자로 만들어집니다. 곧 H2O입니다. 이 정도는 최소한의 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상식에 해당합니다.

하지만 설탕이 사탕수수나 사탕무에서 얻은 원당을 정제공장에 투입하여 만든 천연 감미료라고 설명하면 쉽게 이해되지만, 설탕이 보통 글루코스(포도당)나 프럭토스 또는 과일당을 의미하며, 탄소 6개와 수소 12개와 산소 6개 또는 탄소 11개와 수소 22개와 산소 11개로 구성된 분자라고 설명하면 머리가 지끈거립니다. 일반인뿐만 아니라 과학을 전공하지 않은 고등학생이나 대학생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나마 화학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도 철이니 산소니 수소니 하는 원소가 있다거나, 이들 원소가 각기 다른 무게(원자량)를 갖고 있다는 정도는 상식으로 알고 있습니다.


베르질리우스의 실험실

오늘날 우리가 상식으로 알고 있는 원자량, 가령 수소는 1이고 산소는 8이라는 이 원자량을 처음으로 측정한 사람은 18세기 화학자이던 베르질리우스(JonsJakob Berzelius, 1779-1848년)입니다.

스웨덴 태생의 화학자이던 그는 값비싼 연구 장비를 구할 수 있는 오늘날의 화학자들과 달리, 정말 형편없는 실험장비로 실험하였으면서도 당대 최고의 실험화학자로 이름을 날린 분입니다. 그와 함께 시간여행을 떠나봅시다.

베르질리우스의 실험실은 전기로도 없고 후드도 없으며, 물도 가스도 없는 조촐한 보통 방 두 칸입니다. 벽에 붙어 있는 찬장에는 몇 개의 화학약품이 얹혀있고, 그 중간엔 수은을 담은 구유와 송풍용 램프 받침대가 놓여있습니다. 그 옆에는 개수대로 사용하는, 밑에 구멍이 있고 마개가 있는 돌 절구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밑에는 항아리가 세워져 있습니다. 부엌 옆에는 조그만 난로가 놓여있습니다.

그 난로를 가열장치로 대신하면서 2천 번 이상의 실험을 거듭하여, 그때까지 알려진 50종의 원자량을 결정하였습니다. 20-21세기의 최신 과학기술을 이용하여 결정된 원자량과 그가 결정한 원자량을 비교해 보면, 베르질리우스의 실험기술이 얼마나 정교했고 또 인내심이 강했는지 증명됩니다.

“좋은 노력의 결과는 영광스럽고, 예지의 뿌리는 소멸되지 않는다.”(지혜 3,15)는 성경 말씀대로 그가 이룬 업적은 근대화학의 기초를 튼튼하게 해준 것으로 널리 인정되고 있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영국에서 활동한 화학자 가운데 돌턴(John Dalton, 1766-1844년)이란 분이 있습니다. 그는 가난한 집안에서 자라났습니다. 딱 부러지게 논리정연한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실험기술이 정교한 실험가도 아니었으며, 화학자에게는 치명적이라 할 색맹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가난과 신체상의 약점을 이겨내고 원자가설이라고 하는 위대한 이론을 세워 현대화학의 기초를 확립하였습니다.


그들은 가난하고 불우했지만

우리는 베르질리우스와 돌턴의 삶에서, 성장 배경이 어려워도 우리의 노력 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역사에 남을 업적을 남길 수 있다는 소중한 교훈을 배웁니다. “가난한 이들은 땅을 차지하고, 큰 평화로 즐거움을 누리리라”(시편 37,11). 또는, “가난한 자 같이 보이지만 실은 많은 사람을 부유하게 합니다.”(2코린 6,10)라는 성경 말씀대로 가난하고 불우했던 그들의 삶은 오늘 우리의 삶을 부유하게 하고 즐거움을 누리게 합니다.

한편, 현대화학에서 원자구조나 소립자, 방사선 동위원소 등을 공부할 때 빠지지 않고 듣게 되는 이름은 바로 뉴질랜드 태생의 러더퍼드(Ernerst Rutherford, 1871-1937년)입니다. 핵의 발견은 물론이고, 수소 핵에 양성자란 이름을 붙였으며, 알파, 베타, 감마 입자의 이름도 붙였습니다. 또한, 방사선 동위원소에 반감기의 개념을 도입한 화학자입니다.

그가 고등학교 3학년일 때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의 장학생 선발 시험이 있었습니다. 1등을 한 학생 한 사람에게만 유학의 기회가 주어졌기 때문에 경쟁이 치열했습니다. 그런데 러더퍼드는 안타깝게 이 시험에서 2등으로 선발되어 처음엔 선정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행운의 여신이 러더퍼드와 함께했던가 봅니다.

이 시험에서 1등으로 선발된 사람이 결혼 문제로 국내에 남기로 하고 유학을 포기한 덕분에 러더퍼드는 케임브리지대학교 유학의 행운을 잡게 되었습니다. 만일 러더퍼드가 케임브리지대학교 장학생 선발의 행운을 잡지 못했다면 과연 그가 핵 발견과 같은 위대한 업적을 남길 수 있었을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홀과 에루의 알루미늄

요즈음이야 알루미늄은 콜라 캔이나, 포일, 냄비 등 우리 주위에서 너무나 쉽게 볼 수 있지만, 나폴레옹 시절에는 알루미늄이 금보다 더 귀중한 보석이었다면 믿을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실제로 나폴레옹 3세(CharlesLouis Napoleon Bonaparte, 1808-1873년)는 보통 때는 금이나 은으로 된 식기를 사용했지만, 아주 귀한 손님이 방문하면 알루미늄으로 된 포크나 숟가락으로 대접하였다고 합니다. 19세기 중엽에는 알루미늄이 귀하고 값비싼 금속이었다는 말인데, 순수 알루미늄을 얻기가 그만큼 힘들었던 것입니다.

실제로 홀(Charles Martin. Hall)과 에루(헤럴트라고도 함; Paul Heroult)가 혁명적인 기술을 개발하기 전에 기술이 부족했던 1850년대 이전까진 알루미늄 가격이 엄청나게 비쌌습니다. 1854년 나트륨을 사용하여 금속 알루미늄을 얻는 방법이 발견되긴 했지만, 당시 알루미늄 가격은 1파운드당 십만 달러, 곧 우리 돈으로 약 400g에 1천2백만 원이니 1g에 3백만 원 정도입니다. 요즈음 금값과 비교하면 얼마나 귀한 금속이었는지 쉽게 이해가 될 것입니다.

두 사람이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면서 1파운드당 12만 원 수준으로 가격을 떨어뜨리고, 1890년엔 1파운드당 2,400원, 1895년엔 600원 하다가 요즈음은 다시 1,600원 수준이 되었습니다. 가격 추이를 보면 이 두 사람의 공헌이 얼마나 큰 지를 쉽게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미국 태생의 홀과 프랑스 태생의 에루, 이 두 사람은 지구의 거의 정반대에서 태어나 자라고 죽은,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사이였습니다. 하지만 믿거나 말거나, 같은 해(1863년)에 태어나서, 같은 해(1914년)에 죽고, 같은 해(1886년) 거의 같은 시기에 순수 알루미늄을 얻는 똑같은 방법을 발명하였습니다. 이 무슨 장난 같은 운명일까요?


하느님의 자비와 은총으로

우리는 성경 속에서 이렇게 가난하고 불행했던 환경을 딛고 믿음으로 주님의 축복을 받은 많은 신앙 선조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희한한 인연 또는 우연으로 하느님의 은총을 받거나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져 간 사람들의 모습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이런저런 우연이나 인연에 대해 보통사람들은 어쩌다 일어나는 행운 또는 불운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 신앙인의 마음가짐은 달라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소문으로 듣던 그분을 먼발치에서라도 뵙고자 돌무화과나무 위에 올라감으로써 예수님을 받아들이게 된 세관장 자캐오가 생각납니다.

과연 키 작은 자캐오가 그 나무에 올라가지 않았더라면 예수님을 뵐 수 있었을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우연일 수도 있겠지만, 분명히 예수님은 그를 구원하시려고 그 자리에 계셨을 것이라는 게 신앙인의 생각일 것입니다. 가난했던 어부 시몬이 예수님의 첫 번째 제자가 되고 우리 교회의 반석이 되는 과정도 얼마나 역동적입니까? 우연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모든 것이 주님의 섭리대로 이루어진 것이라 믿고 받아들이는 우리입니다.


세상을 비추는 희망의 빛

우리 교회에서 역할도 다르고 부르심을 받은 때와 장소도 너무나 다른 베드로와 바오로! 동시대에 살다 천국에 들어 오늘도 우리를 지켜주고 계시는 두 위대한 사도의 삶을 생각할 때마다, 더욱 우리 교회의 신비가 절실히 가슴에 와 닿습니다. 하느님 하시는 일엔 결코 우연이 없으리라는 것이 신앙인으로서뿐만 아니라 40년 동안 고분자공학을 전공해 온 과학자로서 제가 체득한 교훈입니다.

러더퍼드나 돌턴의 경우도 그렇고, 홀과 에루의 경우도 그렇습니다. 그런 위대한 과학자들의 전기를 읽을 때마다 더욱 그런 생각이 듭니다. 과학기술의 발전마저 모두 하느님의 자비와 은총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누구보다 더 확실하게 깨닫게 됩니다. 그분들의 삶과 업적을 보면서 과학자의 한 사람으로서 저는 언제나 다음 말씀을 가슴에 새기며 연구활동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그러나 소금이 제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다시 짜게 할 수 있겠느냐? 아무 쓸모가 없으니 밖에 버려져 사람들에게 짓밟힐 따름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산 위에 자리 잡은 고을은 감추어질 수 없다. 등불은 켜서 함지 속이 아니라 등경 위에 놓는다. 그렇게 하여 집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을 비춘다. 이와 같이 너희의 빛이 사람들 앞을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마태 5,13-16).

앞에서 언급한 위대한 화학자들만큼 능력은 안 되지만, 그래도 이런 희망은 늘 간직하고 있습니다. ‘가난한 제 연구실에서 우연히 이루어진 어떤 성과가 세상 사람들을 비추는 희망의 빛이 되고, 사람들에게 세상 살 맛을 느끼게 해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끊임없이 노력하다 보면 언젠가는 저의 연구활동으로 하느님께 더 큰 영광(Ad Majorem Dei Gloriam!)을 드리는 날이 올 수도 있을 것이라 꿈꾸며 오늘 밤에도 연구실에 불을 밝힙니다, 아멘!

* 하창식 프란치스코 - 부산대학교고 분자공학과 교수. 천주교부산교구 평신도사도직협의회 회장이면서 부산가톨릭문인협회 회장을 맡고 있다.

[경향잡지, 2016년 1월호, 하창식 프란치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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