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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ㅣ 봉헌생활

봉헌, 완전한 사랑: 봉헌생활의 방벽이자 어머니인 청빈 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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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03-18 ㅣ No.511

[봉헌 - 완전한 사랑] 봉헌생활의 ‘방벽’이자 ‘어머니’인 청빈 서원



물질문명이 찬란히 꽃핀 오늘을 살아가는 수도자들에게 가난하게 산다는 것은 상당한 시대적인 도전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 물질문명의 바탕인 돈이 최고인 시대에 그 가치를 거슬러 이 지상의 보화가 아닌 천상보화를 증거하며 사는 삶, 그렇게 세상의 흐름을 거슬러 살아야 하기에, 현실적으로는 많은 불편을 감내해야 하는 서원이 다름 아닌 ‘청빈 서원’입니다.

도대체 가난하게 사는 삶이 가치롭다니, 그리고 가난함을 삶의 신조로 받아들여 정진해야 한다니, 정상적인 상식으로는 이해될 수 없는 ‘역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성경에서 본 복음적 청빈

복음 삼덕 가운데 하나인 청빈은 말 그대로 주님께서 권고하신 대표적인 복음적 권고 가운데 하나입니다. 실천해도 좋고 안 해도 상관없지만 실천하면 더욱더 복음의 정신을 잘 구현할 수 있고 주님을 따르는데 아주 적합하게 준비시켜 주는 덕이 바로 청빈입니다.

사실, 성경에서 가난은 대체로 부정적인 것으로 드러납니다. 그래서 구약의 여러 곳에서는 하느님께서 직접 가난한 이들을 보살피시며 그들의 편이 되어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신약에서도 가난은 기본적으로 부정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루카 4,18에서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선포하시며 공생활을 시작하셨습니다. 또한 주님은 이 지상에 보화를 쌓아두지 말라고 당부하셨습니다. 그렇게 되면 하느님을 신뢰하는 대신, 사라져버릴 헛된 재물만을 믿기 쉽다고 하셨습니다.

그런 인간의 심리를 잘 간파하신 주님은 마르 10,23에서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기보다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기가 더 쉽다고까지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친히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셨고 공생활 중에는 머리둘 곳조차 없다고 하실 정도로 모든 면에서 가난을 감수하시며 사셨습니다.


청빈과 하늘나라 사이의 긴밀한 관계

그러나 동시에 주님은 당신을 따르고자 나선 이들에게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라는 ‘이탈’과 ‘포기’의 자세를 몇 번이고 강조하셨습니다. 주님의 제자가 되고자 한다면 현재 자신이 가진 모든 것, 자신이 사랑하는 모든 사람 그리고 미래의 모든 재화와 사람까지 놓고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하느님 나라의 도래를 위해 예수님과 운명을 함께하는 것이 긴급했기 때문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는 마태오 복음 5장에서 행복 선언을 하시며 첫 번째 자리에 영이 가난한 사람들을 두셨습니다. “행복하여라, 영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그럼으로써 예수님께서는 ‘하늘나라’를 얻고자 하는 기본적인 전제조건으로 영의 ‘가난’을 제시하셨습니다.


초기 수도생활에서 청빈의 의미

초대교회 당시 신자들은 경제적으로 상당히 어려운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런 열악한 환경은 그리스도의 재림을 고대하며 살아가던 당시 교회 신자들에게 오히려 세상 재화에 집착하지 않고 종말론적인 희망을 키워가는 데 도움을 주었으며 신자들 사이에 더욱더 형제적인 애덕을 실천하게 해주었습니다.

더 나아가 세상의 것을 포기하고 무소유로 사는 것은 초기 수도승들에게 완덕으로 나아가게 해주는 중요한 수단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특히 초기 수도승 생활을 주도했던 성 안토니오, 성 파코미오, 성 바실리오, 성 마르틴, 성 카시아노, 성 베네딕토 등은 청빈과 관련된 주님의 복음적 권고를 깊이 받아들여 자신들 수도생활의 기본 바탕으로 삼으며 동시대를 비롯해 그 후 여러 세기에 걸쳐 커다란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 과정에서 청빈은 자연스레 수도생활의 본질적인 한 부분으로 자리 잡았고 수도자들은 이를 공적으로 서원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들은 가진 것을 모두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거나 수도 공동체에 봉헌함으로써 초대교회 공동체의 이상을 살고자 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수도 공동체는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자신의 재화를 나눴으며 공동체에 속한 수도자들은 손수 노동을 하며 스스로 생계를 책임지는 건강한 삶을 이어갔습니다.


중세교회 개혁의 기폭제가 된 청빈

그러나 교회가 로마 제국으로 편입되고 서로마 제국의 멸망 후 몇 세기 동안 혼란의 와중에서 유럽의 패권을 장악한 프랑크 왕국이 로마의 정신적 계승자인 로마 교황청과 밀월 관계에 들어감으로써 다시 한번 교회는 새로운 왕국의 보호 아래 안착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교회는 프랑크 왕국의 전폭적인 지원을 바탕으로 크게 번성했으며 각 지역에 퍼져 수도생활을 이어가던 수도 공동체들 역시 지역 귀족들로부터 상당한 희사와 특혜를 받으며 많은 땅과 재산을 얻어 그야말로 지역의 유지로 득세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고자 12-13세기에 일어난 새로운 영성의 흐름이 이른바 ‘탁발 수도회 운동’으로 도미니코회, 프란치스코회, 가르멜회가 이때 탄생해서 이 운동을 주도하게 됩니다. 이들은 개인적으로나 공동체적으로 가난한 삶을 살면서 기도하고 공부한 것을 자신의 것으로 남겨두지 않고 도시와 마을을 돌아다니며 나눴습니다. 그리고 구걸해서 얻은 음식이나 희사로 생계를 이어갔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쇄신 역시 세월의 흐름 속에서 잊혀서 16세기 트리엔트 공의회를 전후로 각 수도회는 새로운 쇄신에 접어들게 됩니다. 이때 수도회마다 쇄신과 개혁을 외치며 주로 했던 작업은 창립의 본래 정신으로 돌아가는 것과 철저한 가난을 사는 것이었습니다.


현대교회의 가르침에서 본 청빈의 가치

이렇듯 역사적으로 볼 때, 청빈은 수도생활의 쇄신과 깊이 맞닿아 있으며 수도회들이 현세에 안주하는 가운데 초심을 잃어갈 때마다 그 초심을 되살려주고 깨어 기도하며 완덕을 지향하는 수도자 본연의 모습을 되찾도록 힘이 되어준 영적 기폭제 역할을 톡톡히 했습니다. 이러한 청빈의 복음적 가치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며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수도생활과 관련된 다양한 문헌들은 이 점을 자주 언급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공의회 교령인 「완전한 사랑」 13항은 청빈의 가치를 다음과 같이 강조합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려고 스스로 가난하게 사는 청빈은 특히 현대에 높이 평가되는 표지이다. 수도자는 열심히 청빈생활을 하며, 필요하다면 청빈을 새로운 형태로도 표현하여야 한다. 이를 통하여, 부유하셨지만 우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시고 가난해지심으로써 우리를 부유하게 하신 그리스도의 가난에 참여하는 것이다.”

또한 요한 바오로 2세의 교황 권고 「봉헌생활」 90항은 이렇게 가르칩니다. “복음적 청빈은 그것 자체가 하나의 가치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가난한 그리스도를 본받음으로써 참행복의 첫째 정신을 상기시키기 때문입니다. 사실 복음적 청빈의 근본적인 의미는 인간의 진정한 부요는 바로 하느님이심을 증언하는 것입니다.”


나눔을 통한 복음적 청빈의 완성

무엇보다 복음적 청빈은 가난한 사람들과 실제로 나누고 그들과 함께할 때 완성됩니다. 나누지 않는 청빈, 이웃 사랑으로 드러나지 않는 청빈은 불완전한 청빈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끊임없이 이 점을 반복해서 가르칩니다.

“봉헌된 사람들은 검소와 친절을 바탕으로 한 형제생활 속에 새롭고 힘차게 극기와 절제를 복음적으로 증언하고, 자기 이웃의 필요에 무관심한 사람들에게 모범을 보여야 합니다. 물론 이 증거는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 사랑을 수반하며, 특히 가장 소외된 사람들의 생활조건에 동참하는 데서 드러날 것입니다”(「봉헌생활」, 90항).

그러므로 각 수도회는 공동체적으로 부유해지려는 유혹에 맞서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과 끊임없이 가진 것을 나누고 여러 가지 형태로 이를 사회에 환원하는 가운데 진정한 청빈의 가치를 구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난해 8월 한국을 방문하셨던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수도자들과의 만남을 통해 “봉헌생활에서 청빈은 ‘방벽’이자 ‘어머니’라고 분명히 가르치셨습니다.”

청빈은 봉헌생활을 지켜주기에 ‘방벽’이고 그 생활이 성장하도록 돕고 올바른 길로 이끌어주기에 ‘어머니’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수도자들은 개인적으로나 공동체적으로 실제적인 삶 속에서 구체적인 청빈의 모습을 구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비로소 그들은 주님께서 선포하신 하늘나라를 유산으로 물려받게 될 복된 가난한 이들이 될 것입니다.

* 윤주현 베네딕토 - 가르멜수도회 수도사제. 로마 테레시아눔에서 신학적 인간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스페인의 아빌라 신비신학대학원 교수를 지냈다. 현재 가르멜수도회 대구수도원 원장, 대전가톨릭대학교 교의신학 교수로 활동하며 다양한 저서와 역서를 펴내고 있다.

[경향잡지, 2015년 3월호, 윤주현 베네딕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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