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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 성지순례의 참 의미, 한국교회 성지순례의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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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3-09-16 ㅣ No.1159

[커버스토리] 순례하지 않는 순례자 - 성지순례의 참 의미


순례는 더 가까이 그리스도 따르는 깊은 신앙의 표현



한국교회의 대표적 성지 중 하나인 서울대교구 절두산순교성지에는 해마다 50만 명 이상의 순례객들이 오간다. 전주교구 치명자산, 수원교구 미리내성지, 원주교구 배론성지 등에도 한 해 수십만 명의 순례 발걸음이 이어진다. 특히 9월 순교자 성월이면 각 성지들은 쉴 틈 없이 밀려드는 순례객들을 맞이하느라 분주하다. 한국교회 대부분의 성지가 순교성지인 덕분이다.

성지순례. 한국교회 신자들에게는 매우 익숙한 신심행위의 하나로 꼽힌다. 한국교회 신자들의 영적 성장을 이끈 대표적 신심행위라는 수식어도 늘 붙어 다닌다.

하지만 한국교회 성지순례 실태를 되짚어보면 쇄신, 보완해야할 과제들이 산재해 있다. 국내 순교성지를 순례하는 여정은 한국교회 고유의 순교영성을 매개로 하느님께 더욱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기회가 된다. 하지만 여전히 연례행사처럼 이어지는 ‘성지관광’식의 순례를 비롯해 무엇보다 한국교회 고유의 순교영성을 체득하는 노력도 부족하다는 지적의 목소리가 높다.

모든 종교인들은 ‘순례’라는 이름으로 성스러운 종교여행을 한다. 순례는 모든 종교에서 발견되는 본질적인 현상들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지순례는 단순히 진리를 추구하고, 정신적 풍요를 체험하고자 나서는 여정이 아니다.

성지순례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깊은 신앙의 표현이다. 이러한 참뜻을 올바로 알고 실천할 때, 한국교회의 가장 오래되고 이상적인 영성인 순교영성을 바탕으로 하느님께 더욱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성지순례의 기원

지구촌 곳곳에서 성지순례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하지만 정확히 언제부터 ‘성지순례’라는 표현으로 시작됐는지 그 기원이 뚜렷하게 증명되진 않는다. 일반적으로는 유다교인들이 해마다 유월절, 오순절, 초막절 등에 예루살렘 성전을 찾아가 수확한 곡식을 바치던 행위에서 비롯됐다고 알려진다.

신약 시대에 들어서서는 순교자들의 피로 물들여진 로마 순례가 보편화됐다. 또 8세기 즈음에는 성지순례가 신자들의 의무로 인식될 만큼 관습화돼 순례단이 조직되기도 했다.

성서학자들은 교회 안에서 순례는 매우 오랜 역사를 지닐 뿐 아니라, 동시에 성경의 여러 이야기들을 통해 영감을 받아 진행된 것이 많다고 설명한다. 또한 성지순례는 가톨릭신자들의 신앙생활의 쇄신과 내적 변화를 제공하는 기회로써 꾸준히 발전돼 왔다.
 

왜 순례를 하는가

구약시대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 자체가 예루살렘을 향한 순례의 여정이었다. 특히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떤 문제가 생기면 하느님과 상의하기 위해, 축복받기 위해 순례를 이어갔다. 신약에 들어서 신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사건들에 동참하기 위해 그 사건들이 일어났던 근원적인 장소들을 찾아가고자 했다.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 이후로는 속죄 차원에서 진행하는 순례가 일종의 신심 형태로도 자리 잡기 시작했다.

아울러 그리스도교에서는 하느님께 대한 흠숭과 회개의 행위, 성인에 대한 존경, 영적 은총을 받기 위한 실천 방법 등으로 성지순례의 폭을 넓혀왔다. 이러한 순례 역사는 그리스도교 영성 발전에도 풍요로운 기운을 불어넣어왔다.

특히 그리스도교의 경우 전통적으로 순례는 ‘회심의 여정’이라고 강조한다. 대부분의 순례는 깊은 영적 변화를 갈망하면서 자신의 내적 불완전함을 돌아보고, 죄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열망으로 출발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교의 대표적인 성지로는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나 생활하다 십자가형을 받고 부활한 땅, 즉 예루살렘을 포함한 팔레스티나 지역을 꼽을 수 있다. 사진은 예루살렘에서 십자가의 길 순례를 하고 있는 한국 순례단.
 

어디를 순례하는가

순례는 기본적으로 거룩한 장소를 향한 회귀라는 의미를 품고 있다.

거룩한 땅을 의미하는 ‘성지’라는 표현은 교부들의 문헌에서도 종종 발견할 수 있다. 본격적으로 성지라는 말이 사용된 것은 중세시대로 알려져 있다.

그리스도교의 대표적인 성지로는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나 생활하다 십자가형을 받고 부활한 땅, 즉 예루살렘을 포함한 팔레스티나 지역을 꼽을 수 있다. 성경 속 주요사건의 배경이 되는 곳은 물론 성모발현지와 순교지, 이름난 성인의 탄생지나 활동지 등도 성지로 불린다. 모두 복음화의 중심이 될 수 있는 곳이다.

교회법은 ‘순례지는 신자들이 교구 직권자의 승인 아래, 특별한 신심 때문에 빈번히 순례하는 성당이나 그밖에 거룩한 장소를 뜻한다’고 설명한다. 이 특별한 신심은 예수 그리스도를 따랐던 성인들이나 순교자들을 공경하는 신심이다.

유럽 혹은 남미교회에는 성모 관련 성지가 많은 것과 달리, 한국교회의 성지는 대부분 순교성지이다. 성역화한 순교지와 성인 및 순교자들의 무덤, 관련 성당 등이 이러한 순교성지에 해당된다. 또 순례와 기도를 통해 전대사를 받을 수 있는 지정순례지들도 많아, 한층 풍요로운 영적 여정을 제공한다.
 

순례의 목표

성지순례는 하느님과의 만남을 위해 나선 여정이다. 그리고 이 여정은 하느님의 사랑을 일상 한가운데로 끌어 당겨 실천하는 모습으로 어이질 때 마무리된다.

특히 순례의 정신을 올바로 실현하기 위해서는 먼저 회심이 전제돼야 한다. 따라서 성지순례 여정에서는 고해성사를 통한 회개와 능동적인 기도, 전례 참여 등이 권고된다. 또 순례를 통해 얻게 된 구원체험을 삶 안에서 증거하고 하느님 사랑을 실천하고자 노력해야 한다.

성지 및 성지순례 관련 전문가들은 “올바른 성지순례가 진행되기 위해서는 각 성지마다 고유한 전례 프로그램을 마련하는데 힘을 기울이고, 상설고해소와 신앙상담소 운영 등에도 적극 힘써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탈리아와 독일 등 외국교회 내 유서 깊은 교구들은 대부분 ‘순례국’ 등을 별도로 두고 성지순례사목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전임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지난 2010년 세계 순례와 순례지 사목대회에 앞서 발표한 서한을 통해 “순례자는 최종 목적지가 없는 방랑자와는 달리, 때로는 명확하게 인식하지 못하더라도 언제나 그리스도를 통해 하느님을 만날 목적을 갖고 있다”며 “순례지는 주님을 찾는 기회를 갖게 해준다”고 밝힌 바 있다.

순례의 정신은 바로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며, 성지는 그러한 복음화의 구심점이 된다.

 

 

한국교회 성지순례의 배경


새남터 현양탑 세우며 본격 물꼬, 103위 성인 탄생이 정점 이뤄



한국교회는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박해와 순교의 역사를 거쳤지만, 또한 전통문화와 공존하고 조화를 이루며 성장해왔다. 국내 성지들은 이 과정에서 다수 생겨났다.

한국교회 고유의 순교영성은 170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 찾아볼 수 있다.

1791년 윤지충과 권상연이 순교한 직후부터, 신자들은 순교자들의 유품과 유해를 적극 보존하며 그들의 뜻을 기렸고, 이후로도 성인전 등을 통해 신앙의 모범을 지속적으로 알려갔다.

한국교회 차원에서 공식적인 순교자 현양 활동의 불을 지핀 것은 순교자 79위 시복식이었다. 1918년 순교자 79위 시복식을 앞두고 한국 신자들은 자발적인 순교자 현양운동에 돌입했다. 이어 1925년 79위 복자가 탄생하자 한국교회는 각 본당별 현양운동도 권고하기 시작했다.

한국교회 고유의 성월인 ‘순교자성월’의 전신이 제정된 것도 바로 이 시복식이 계기가 됐다. 한국교회는 시복식이 끝난 이듬해부터 복자들이 가장 많이 순교한 9월 26일을 ‘한국 치명 복자 79위 첨례’로 정한 바 있다. 이어 1939년 기해박해 순교 100주년을 앞두고도 전 교회 차원의 현양운동을 전개했고, 1940년에는 9월을 ‘복자성월’로 정해 공식적인 순교자 현양에 힘을 실었다.

성지순례는 1946년 발족한 한국천주교순교자현양회가 순교지 새남터를 매입, 현양탑을 세우면서 본격적인 물꼬를 텄다. 연이어 절두산과 치명자산 성지 등 주요 성지들이 개발되기 시작했고, 각 교구별로 다양한 순교신심 행사를 마련하면서 순례에 대한 관심 또한 성장해왔다.

1984년 103위 순교성인의 탄생은 신자들의 자발적인 현양운동을 정점으로 끌어올렸다. 특히 시성식을 계기로 전국 곳곳에서 대대적인 성지개발을 통한 현양운동이 꾸준히 이어졌다.

현재 국내에는 주교회의 국내이주사목위원회 성지순례사목소위원회(위원장 옥현진 주교)가 성지순례를 책자를 통해 소개한 성지 111개를 비롯해 총200여개의 크고 작은 성지들이 개발됐거나 개발 진행 중에 있다. 현재 시복시성을 추진 중인 순교자들과 관련해서도 성지 조성이 이루어지면, 각 순교자의 삶을 기리며 기도할 수 있는 공간은 더욱 풍성해질 것으로 기대된다.

[가톨릭신문, 2013년 9월 15일,
주정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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