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1일 (토)
(백) 부활 제6주간 토요일 아버지께서는 너희를 사랑하신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고 또 믿었기 때문이다.

영성ㅣ기도ㅣ신앙

[기도] 기도의 길 - 기도의 순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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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03-17 ㅣ No.645

[영성의 샘] 기도(祈禱)의 길 - 기도의 巡禮(순례)



1. 기도와 그리스도인, 그리고 그리스도

묵상가 하일러(Fr. Heiler, 1892-1967)는 말했습니다. “기도는 모든 종교의 중심현상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지요? ‘기도는 모든 종교뿐만이 아니라, 우리 모든 인간 삶의 중심입니다.’ 기도 없는 종교/ 우리 인간 삶이 존재할 수 있을까요? 기도(祈禱)는 우리 인간 삶의 혼(魂)인데, 우리보다 먼저 기도의 삶을 살았던 모든 성인성녀들은 기도하는 영혼들이었습니다. 그/ 그녀가 누구이든 기도의 삶을 살고자 했던 이들은 성인성녀들처럼 기도의 삶을 살고 사랑했던 분들이었습니다.

우리는 이제 기도의 길 - 기도의 순례를 함께 걸으면서, 먼저 이 말을 명제(命題)로 두고 싶습니다. ‘기도는 그리스도인의 중심인데, 그리스도인은 곧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기도하지 않는 그리스도인/ 성인은 있을 수도/ 존재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누구로부터 기도의 원형과 모범을 찾을 수 있을까요? 말할 것도 없이 그분은 우리의 길 진리 생명이신 스승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은 우리 모든 인간을 위한 기도의 스승이십니다. ‘그분은 공생활을 시작하시기 전에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셨습니다.(루카 3,21) 그분은 거룩한 변모 때에도 기도하셨습니다.(루카 9,29) 그분은 열 두 제자를 뽑으시기 전에도 기도하셨습니다.(루카 6,12) 그분의 제자들은 그분께 기도를 가르쳐 달라고 청합니다.’(루카 11,1) 예수님의 기도는 항상 아버지 하느님과의 친교에 그 중심과 바탕을 두셨다는 것이지요!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이 땅에서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 청하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마태 18,19-20) 그분은 유혹 앞에서 기도하라고 하시지요?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여라. 마음은 간절하나 몸이 말을 듣지 않는구나.’(마태 26,41)

예수님은 기도를 통하여 아버지 하느님의 일을 수행하셨습니다. ‘아버지, 때가 왔습니다. 아들이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하도록 아버지의 아들을 영광스럽게 해 주십시오.’(요한 17,1) 그분은 간절하고 절실하게 기도하셨습니다.

알렉산드리아의 치릴로(Cyrillus, 380-444)는 말했습니다. ‘그리스도는 하느님으로서는 본성적으로 지니고 계셨지만, 인간으로서는 성부께 청하여 받아야 합니다.’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를 드리는 최종적인 이유는 하느님 자비하심에 대한 대화상대로서, 그리고 하느님 협력자로서의 품위로 하느님 아버지 뜻을 따르는데 있습니다.’

그분은 대사제로서 단 한번으로 영원히 당신의 몸을 바치시고 구원을 이루셨는데, 겟세마니의 기도는 자신을 바치고자 하시는 당신의 고통스러운 기도입니다. 그분의 ‘사제적 기도’(요한 17장)는 인간구원의 완성을 자신 안에서, 그리고 교회와 세상 안에서 이루어주시기를 청하는 기도입니다. 특별히 히브리서의 기도(히브 7,25)는 세상 구원자로서의 사제직의 임무를 언제나 아버지 하느님 곁에서 수행하심을 의미합니다. [2015년 2월 1일 연중 제4주일 전주주보 숲정이 3면, 윤 클레멘트 신부]

 

 

2. 그리스도인의 기도, 교부들의 기도

성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1224/25년~1274)는 말했습니다. ‘기도에 뿌리를 두지 않는 모든 그리스도인의 신뢰는 어울리지 않는다. 하느님은 은총을 받을 만한 아무 권리도 없는 우리 인간에게 기도하면 은총을 주시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의 기도는 은총으로 살아가는 우리 인간자신의 존재와 부르심에 대한 영적인 동의이고, 하느님의 우리 인간 구원계획에 대한 영적(靈的)인 동의(同意)를 뜻합니다. 영적인 동의란 하느님께로 향하는 우리 인간자신의 흠숭/ 찬미/ 감사/ 사랑/ 청원/ 하느님께 집중함 등을 말합니다. 은총으로 산다는 것은 하느님 자녀로서의 존재성을 말하는데, 우리 그리스도인은 기도를 통하여, 그리고 기도가 깊어질수록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三位一體) 하느님과의 인격적인 관계성이 풍부해짐을 체험하게 됩니다.

삼위일체 하느님과 풍부한 인격적인 만남은 우리 그리스도인의 희망이기도 한데, 그 희망은 믿음 소망 사랑의 향주삼덕(鄕主三德)을 통하여 더욱 향상됩니다. 우리의 믿음은 진리이신 하느님께/ 소망은 도움이신 하느님께/ 그리고 사랑은 사랑자체이신 하느님께로 향하는 것인데, 우리는 사랑을 통하여 하느님과의 친교에 들어가게 됩니다.(요한 14,20-26 참조) 성서는 말하지요! “우리가 하느님에 대하여 가지는 확신은 이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이든지 그분의 뜻을 따라 청하면 그분께서 우리의 청을 들어주신다는 것입니다.”(1요한 5,14)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의 기도는 하느님께로 향하는 흠숭/ 경배/ 찬미/ 관상/ 묵상/ 사랑/ 감사/ 속죄/ 보속/ 제물/ 봉헌/ 중재/ 청원 등으로 말할 수 있습니다.

성 요한 다마스꼬(John Damascenus, 676?-749)는 말했습니다. ‘기도는 하느님께 마음을 들어 올리는 것인데, 합당한 것을 청하는 것이다. 성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 354~430)는 말했습니다. ‘기도는 하느님을 향한 마음의 정감어린 지향이다.’ 니싸의 그레고리오(Gregorius Nyssenus, 335~394)는 말했습니다. ‘기도란 친밀한 하느님과의 대화이다.’

우리는 위 교부들의 말을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습니다. ‘기도는 하느님께 우리의 의무를 다하고, 그분의 영광을 위해 보다 의화(義化)하는데 필요한 은총들을 구하기 위하여, 우리의 영혼을 하느님께로 들어 올리는 것입니다.’ 하느님께 우리의 마음을 들어 올린다는 것은 우리의 생각을 하느님께 고정시키기 위하여, 피조물과 우리 자신에게서 떠난다는 것을 의미하지요. 하느님은 언제나 우리 주위를 감싸고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 영혼 안에 깊이 내재(內在)하십니다. 우리는 삶의 쓸데없는 것들에 우리의 능력을 소모할 것이 아니라, 삶의 헛되고 유혹적인 것들로부터 우리의 능력을 모아 하느님께로 집중하는 노력을 ‘영혼의 들어 올림’이라고 말합니다.

기도는 어떠한 형태, 시간의 길고 짧음을 넘어서서, 하느님과의 대화를 전제로 합니다. 하느님과의 대화에서 먼저 필요한 일은 하느님께 우리의 신앙의 의무를 다해야 합니다. 많은 경우에, 우리가 기도할 때에 이 신앙의 의무를 잃어버리는 까닭에 기도가 잘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지요.

더욱이 우리의 성화와 구원의 은총을 청하는 목적이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것일진대, 우리는 기도를 통하여 ‘하느님께 영광을 드려야’ 합니다. [2015년 3월 15일 사순 제4주일 전주주보 숲정이 3면, 윤 클레멘트 신부]

 

 

3. 기도의 목적과 형태

무엇이 기도의 목적일까요? 기도의 목적은 단순하게 하느님과의 사랑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데, 사랑이 하느님과 우리 인간을 친밀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흠숭, 찬미, 감사, 청원하는 기도의 목적은 하느님과 우리 영혼 사이의 만남, 친밀함, 사랑, 관계성입니다. 하느님은 언제나 우리 인간을 사랑하십니다. 우리 인간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느님께 다양한 기도의 형태를 통하여 나아갑니다. 우리 인간은 기도를 통하여 하느님께 나아가고, 하느님은 우리의 기도를 통하여 우리 인간 안에 내면화 하십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또 다른 목적은 분명한데, ‘우리를 영원한 생명으로 이끌어주시는 하느님의 초자연적 은총을 청하는 것’입니다. 성서는 말합니다.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하느님께서 의롭게 여기시는 것을 구하여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마태 6,33)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1567-1622)는 말했습니다. ‘우리는 먼저 하느님이 원하시는 구원을 추구해야 한다. 그 다음 하느님께서 주신 은총을 포용하기를 원해야 한다. 기도는 하느님의 뜻에 우리의 뜻을 일치시켜 주기 때문이다.’

성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1224/1225?~1274)는 기도의 필요성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우리가 하느님께 기도할 필요성이 있는 것은 우리의 소망이나 필요를 알리려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도우심이 필요하다는 것을 우리 자신에게 확신하게 하려는 것이다.(신학대전, 2-2부 83문, 2항 1) ‘하느님이 우리 기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어떤 것을 주기를 바라신다면 그것은 우리의 유익을 위해서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하느님은 우리가 하느님께 신뢰를 두고 하느님이 모든 선의 창시자이심을 인정하는 법을 배우게 하려는 것이다.’(신학대전, 2-2부 83문, 2항 3)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1515-1582)는 ‘기도생활의 강도(强度)가 하느님께 대한 사랑의 강도’라고 보았는데, 그녀는 기도의 형태와 단계를 다음과 같이 아홉 가지로 매우 분명하고 훌륭하게 분류했습니다.

(1) 구송기도(Vocal prayer) - 말마디로 표현하는 기도
(2) 묵상(Meditation) - 이해, 지적, 추리, 의식적, 의지적으로 드리는 기도
(3) 정감의 기도(Affective prayer) - 사랑의 의지작용으로 드리는 기도
(4) 단순함의 기도(Prayer of simplicity) - 단순하게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도
(5) 주부적 관상(Infused contemplation) - 성령은사로 하느님께서 은총을 주시는 기도
(6) 정적의 기도(Prayer of quiety) - 하느님의 현존인식으로 영육 함께 감사와 기쁨으로 충만한 신비의 기도
(7) 일치의 기도(Prayer of union) - 분심이 없고 영혼이 하느님과 친밀해지는 기도
(8) 순응일치의 기도(Prayer of conforming union) - 영혼이 그리스도와 일치되는 신비 기도
(9) 변형일치의 기도(Prayer of transforming union) - 영혼이 하느님과 일치하는 최고의 기도. 영혼이 하느님께로 변형. 지복직관의 서막.

혹여, 아빌라의 대 데레사 성녀의 기도의 아홉 가지에 대하여 더 보시기를 바라시면, <조던 오먼, 영성신학, 이홍근 역 (분도출판사, 1994), 366-411>을 참조하시면 더 도움이 될 것입니다. [2015년 4월 26일 부활 제4주일(성소 주일, 이민의 날) 전주주보 숲정이 3면, 윤 클레멘트 신부]

 

 

4. 흠숭 / 찬미 / 경배 / 사랑 / 감사 / 청원 기도

우리의 영혼을 하느님께 들어 높일 때 제일 먼저 일어나는 느낌은 흠숭인데, 보쉬에(1627~1704)는 말했습니다. ‘흠숭은 하느님의 최고지배권과 우리의 절대적인 종속관계(從屬關係)에 대한 인식(認識)입니다.’ 우리는 흠숭 / 찬미 / 경배 / 감사를 통하여 하느님을 묵상하고 드높입니다. 하느님을 드높이는 흠숭 / 찬미 / 경배 / 감사는 가장 풍부한 형태의 기도 / 종교행동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하늘의 천사들과 성인들 함께 하느님을 흠숭 / 찬미 / 경배 / 감사하며 노래를 부릅니다.

우리 교회 안에서 하느님 사랑의 신비를 깊이 묵상 / 기도했던 신비가(神秘家)들은 피조물 안에 감추어져 있는 하느님의 전능, 존엄, 아름다움, 작용, 풍요로움 등을 흠숭하면서 큰 기쁨을 느끼고 가졌던 분들입니다. 어느 신비가는 이렇게 하느님을 흠숭하였습니다. “나의 하느님, 당신의 모든 피조물 안에서 당신을 흠숭합니다. 당신이 안 계시면 아무것도 없고, 당신을 떠나서는 아무것도 존재할 수 없습니다…”

흠숭기도 뒤에는 항상 감사가 뒤따릅니다. 우리가 자연적으로나 초자연적으로 갖고 있는 모든 것은 모두 하느님께로부터 왔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인간 영혼에게서 영원히 감사를 받으실 분이십니다. 특별히, 우리 교회는 미사 중의 감사송 경문에서 하느님의 은총을 요약합니다. ‘우리 주 하느님께 감사합시다…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의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감사송에서는 또한 다음 말씀을 노래합니다. ‘주님, 영광 크시오니 감사하나이다…’ 사도 바오로는 말했습니다. ‘어떤 처지에서든지 감사하십시오. 그것이 하느님의 뜻입니다.’

기도를 통하여 우리 인간 영혼은 하느님 선의 원천(源泉)으로까지 드높여집니다. 하느님께 드리는 흠숭 / 찬미 / 경배 / 감사를 통하여, 우리 인간 영혼은 하느님을 관조(觀照)하고 즐기며, 하느님의 영광은 가득해집니다.

하느님께 드리는 합당한 청원기도는 그 자체로 하느님의 권능(權能), 선성(善性), 은총(恩寵)의 효과에 대한 찬양을 드리는 것이고, 하느님을 공경하는 신뢰의 행동입니다. 청원기도는 하느님 편에서는 당신의 피조물과 자녀들에 대한 사랑이고, 우리 편에서는 하느님의 도우심을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온갖 선의 마르지 않는 샘이신 하느님은, 우리 영혼들에게 당신의 사랑 / 생명 / 선익이 널리 퍼지기를 갈망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구하라, 받을 것이다. 찾아라,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열릴 것이다.’(마태 7,7) 우리는 하느님께 말씀드림으로써 그분을 기쁘게 해드릴 수 있는데,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무엇이 필요하고 또 무엇이 유익한가를 잘 알고 계십니다. 성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1224-1274)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청하지 않더라도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데, 우리가 당신께 의탁하고 당신을 모든 은혜의 원천으로 인정하기 위함이다. 그래서 우리는 확실한 믿음으로 하느님께 호소하고, 그분이 모든 선의 창조주이심을 재인식해야 한다.(신학대전 II의 II, q 83, a. 2 ad 3 참조) [2015년 6월 7일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전주주보 숲정이 3면, 윤 클레멘트 신부]

 

 

5. 관상기도, 묵상기도

관상(觀想)은 하느님을 사랑하고 관조(觀照)하는 즐거움이 따르는 기도입니다. 관상기도는 마음 기도라고도 부르는데, 하느님의 말씀으로 혹은 우리의 마음과 영혼을 통하여 하느님과 하느님 나라를 더 깊이 숙고하고 만나며 바라보는 것입니다. 관상기도를 통한 하느님 만남은 하느님의 말씀, 우리 인간의 마음과 영혼, 그리고 세상 안에서도 가능합니다. 사실 하느님의 나라는 이미 우리에게 와 있으며, 하느님은 우리 인간과 세상 안에서 현존하십니다. 관상기도는 초자연적(超自然的) 행동인 까닭에 현실성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하느님의 도우심이 내리는 조력은총(助力恩寵)이 필요한 기도입니다.

관상기도는 하느님이 우리 안에서 행하시는 것인데, 하느님이 우리에게로 들어오십니다. 이 기도는 ‘하느님만이 가르쳐 주실 수 있는 기도’(토머스 머튼, T homas Merton, 1915-1968)이고, 하느님의 계시를 더 잘 알기 위해 상상력을 사용합니다. 이 기도는 침묵 중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경청하며, 신앙의 눈길을 예수님께 고정시키는 초월적인 기도입니다. 이 기도는 하느님과 친밀한 만남으로 들어가는 것인데, 하느님의 현존 속에 나를 내어 맡기는 것입니다. 관상기도는 하느님의 신비를 단순하게 나타내는 기도인데, 예수님께 우리의 믿음을 고정시키고 하느님의 말씀을 경청하며 침묵 속에서 우리의 사랑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관상기도와 묵상기도는 어떻게 다를까요? 두 기도 사이의 차이점은 무엇일까요? 관상기도는 보다 숙고 / 사색적 / 정감적 / 바라봄이고, 묵상기도는 보다 이해 / 지적 / 추리적 / 의식적 / 의지적입니다. 묵상기도는 우리가 행하는 하느님 탐색인데, ‘하느님의 신비를 이성의 논리적 사고를 통해 깨닫는 것’(성 이냐시오 로욜라, Ignatius de Loyola, 1491~1556)입니다. 이 기도는 하느님의 계시를 더 잘 알기 위해 추리력과 이해력을 사용하는 기도인데, 하느님의 말씀과 하느님의 뜻을 자신의 삶에 비추어서 침묵 가운데 마음으로 바치는 기도입니다.

묵상기도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지성(知性)이 제시하는 초자연적(超自然的) 진리에 대한 사랑의 의지적 행위입니다. 아빌라의 데레사(1515-1582)는 말합니다. ‘묵상은 많이 생각하는데 있지 않고 많이 사랑하는데 있다.’(≪영혼의 성≫ 제4궁방, 제1장 7)

묵상기도는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기도인데, 사고력, 상상력, 감정, 의욕을 동원하는 탐색적인 기도입니다. 이 기도는 우리의 삶의 현실에 비추어 고찰(考察)한 주제를 신앙을 통해 우리의 것으로 만드는 기도입니다. 그러면 묵상기도의 유익함은 어떠한 것들일까요? 다음은 묵상기도의 유익함들입니다.

묵상기도는 우리를 세상의 헛된 욕망과 집착으로부터 떼어놓습니다. 세상의 덧없음 / 걱정 / 세상부패 / 위험에서 보호하고, 우리를 하느님의 행복으로 이끕니다. 이 기도는 우리 인간 영혼을 강하게 하고 신념을 갖게 하며, 게으름과 나태에서 벗어나게 합니다. 이 기도는 우리가 덕행을 실천하게 하고 현명 / 절제하게 합니다. 묵상기도는 우리를 하느님과 일치하게 하고, 하느님과의 대화를 친밀 / 정감적이게 하며 깊어지게 합니다. 우리 영혼은 이 묵상기도를 통하여 하느님께로 흠뻑 젖어들고 흡수 됩니다. [2015년 7월 12일 연중 제15주일 전주주보 숲정이 3면, 윤 클레멘트 신부]

 

 

6. 전례기도, 향주삼덕 기도

우리 교회는 믿음, 소망, 사랑의 공동체이고 그리스도의 신비체이기에, 교회 안에서 이루어지는 공적인 기도활동을 우리는 전례기도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전례기도는 교회 공동체 안의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바치는 기도의 총합(總合)이며, 그리스도께서 바치는 기도의 연장입니다. 우리 주 그리스도는 하느님 아버지와 우리 인간 사이의 중재자이시고 사제이시며, 언제 어디서나 우리 안에서 / 우리와 함께 / 우리 가운데 현존(現存)하시고 살아계십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 354~430)는 말했습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사제이시니, 우리를 위해 기도하신다. 우리의 머리이시니, 우리 안에서 기도하신다. 우리의 하느님이시니, 우리는 그분께 기도한다.’(In Psalmos, Sal 85,1)

전례기도의 첫 번째 일은, 우리 인간의 구세주이고 하느님 아버지와 인간 사이의 중재자이시며 주님이신 그리스도를 부르면서, 그분께 대한 신앙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전례기도의 두 번째의 일은, 교회의 구성원들인 보편교회의 모든 이들이 구원을 얻도록 어머니다운 정성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우리 그리스도인의 마음과 영혼(靈魂), 모든 그리스도인을 위한 실존(實存)의 일이며, 동시에 하느님께 이르는 내적이고 영적인 활동입니다. 우리의 기도생활은 그대로 은총생활로 이어지게 합니다. 따라서 은총(恩寵)은 기도(祈禱) 생활의 원천일 뿐만 아니라, 우리는 기도생활과 향주삼덕(鄕主三德)을 따로 분리할 수 없습니다. 은총은 믿음, 소망, 사랑의 향주삼덕(向主三德)을 낳고, 이 향주삼덕은 영적인 작용으로 기도하는 마음과 영혼들을 하느님께로 이르게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믿음과 사랑은 신앙(信仰)으로 지지(支持) 되는데, 곧 기도생활의 객관적 조건을 의식하게 하는 것은 우리의 신앙입니다. 기도하는 그리스도인의 믿음과 사랑은 하느님의 계획이 우리 안에서 실현되도록 우리 삶의 구체적인 상황 / 환경 / 여건 / 장소 / 자리 등에 빛을 줍니다.

소망은 생생하게 드리는 우리의 기도생활과 연관이 있는데, 소망은 신앙과 결합되어 신뢰 / 안정 / 평화 / 기쁨을 가져옵니다. 영적인 활동을 가져오는 우리의 기도는 소망하는 움직임과 긴밀하게 결합됩니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드리는 기도는 하느님을 향한 / 하느님과의 인격적인 관계이기에 사랑의 영역에 속합니다. 우리 죄 많은 인간들에게 있어서 기도는 불완전한 형태이지만, 성인들에게는 기도가 하느님의 영원한 빛으로 비추입니다. 기도(祈禱)는 애덕(愛德)으로부터 성령의 충동과 같은 영적인 힘을 계속 받게 합니다. 우리는 모든 기도의 목적을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사랑이 하느님과 우리 인간의 친교 / 친밀 / 사랑을 낳기 때문입니다. ‘믿음 희망 사랑 이 세 가지는 계속됩니다. 그중에서도 으뜸은 사랑입니다.’(1코린 13,13에서) [2015년 8월 23일 연중 제21주일 전주주보 숲정이 3면, 윤 클레멘트 신부]

 

 

7. 기도하는 사람의 마음과 행동 : 겸손/ 신뢰

우리는 기도할 때에 기도의 효과를 확신하고 드높이기 위하여, 무엇보다도 겸손 / 신뢰의 마음과 행동이 중요하고 필요합니다.

겸손은 기도의 본성인데, 겸손한 마음으로부터 기도가 흘러나옵니다. 하느님의 은총은 무상(無償)이고 우리는 그 은총을 얻을 아무런 자격이 없기 때문입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 354~430)는 말했습니다. ‘우리가 정당하게는 받을 수 없는 하느님의 은총을 하느님의 자비에 의탁하는 까닭에, 우리는 하느님께 비는 걸인(乞人)이다.’

하느님께서는 세리의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오, 하느님! 죄 많은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루카 18,13)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사람은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높아진다.”(루카 14,11) 겸손한 사람은 모든 것을 하느님께 내어 맡기며 그분께 솔직히 청하며 고백합니다. 하느님께서는 겸손한 사람의 기도를 꼭 들어주십니다.

참된 겸손은 신뢰심을 낳습니다. 신앙은 우리에게 하느님의 자비를 가르쳐 주는데, 마음이 가난한 기도자는 기도 중에 하느님의 자비에 의탁합니다. 신뢰와 함께 드리는 탄원기도는 하느님을 공경하게 하고, 하느님은 모든 선의 원천이심을 선포하게 합니다. 성서는 하느님께 희망을 두는 사람은 구원을 받는다고 말해줍니다. ‘나는 내게 숨어드는 자를 구하여 주고, 내가 부르짖을 때 나는 그의 소리를 들어 주리라.’(시편 91,14-15)

우리는 겸손과 신뢰로 끈기 있게 기도하고, 또한 세심한 주의와 노력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기도하다가 분심(分心)을 만나면, 물리치려는 노력이 중요하고 필요합니다. 우리의 영혼은 기도 중에 분심하지 않으려는 그 노력에 힘입어 하느님의 현존 안에 머물 수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기도 중에 분심을 쫓아버리려고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하느님께 대한 흠숭 / 찬미 / 사랑의 부족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기도는 하느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허락하시는 알현(謁見)이요, 하느님과 우리 사이의 만남 / 미팅 / 데이트입니다. 기도는 우리의 청원 / 소망에 귀를 기울여 주시고, 우리의 말을 들어주시는 하느님과의 대화입니다. “하느님, 제 말씀 귀여겨들어 주소서. .. 저의 흐느끼는 이 소리를 굽어들으소서.”(시편 5,2-3)

우리는 기도 중에 일어나는 애착 / 근심 / 공상 / 산만 등 분심의 원인이 되는 것들로부터 싸우고 노력해서 분심의 횟수를 줄여가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도 중에 만나고 / 대면하는 분심은 하나의 영적인 시련(試鍊) / 싸움이지 잘못은 아닙니다. 우리는 기도를 드리는 중에 다음의 세 가지에 더욱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면 더 좋은 기도를 드릴 수 있습니다.

(1) 기도의 말을 올바르게 발음해야 합니다. 기도의 언어표현은 중요합니다.
(2) 기도의 말뜻만이 아니라, 문자의 뜻과 정신에도 마음을 기울여야 합니다.
(3) 나아가, 문자의 뜻보다 더 중요한 내 영혼이 하느님을 찬미 / 경배 /  일치하기 위해, 그리고 신비적 기도 / 묵상에 이르기 위해 마음 /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2015년 9월 27일 한가위 전주주보 숲정이 3면, 윤 클레멘트 신부]

 

 

8. 기도 생활의 여건과 효과

기도 생활은 발전하고 성장합니다. 기도 생활을 잘하기 위해서는 내적 / 외적인 준비와 훈련이 필요합니다. 저절로 / 공짜로 기도생활이 잘 되는 것은 아닙니다. 기도 생활을 위한 여건들이 필요하고, 여건과 실천에 따라서 그 효과들에도 영향을 줍니다.

침묵 / 고독

기도 생활에 있어서 가장 먼저 요구되는 여건은 내적인 침묵과 고독입니다. 우리는 기도 생활을 잘할 수 있기 위하여 우리에게 다가오는 침묵과 고독을 수용하고 받아들이며 머물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현대인은 침묵하고 고독하기를 두려워하지요? 그런데, 일반적으로 외로움과 고독은 다르지요?

외로움은 누군가 함께 있지 않으면 우리가 힘들어하는 것이지만, 고독은 누군가 곁에 없어도 의미 / 내적 / 평화의 시간을 가질 수 있지요? 외로움은 외적 / 일반적 의미이고, 고독은 영적 / 종교적 의미로 승화할 수 있는 것이지요?

우리는 살아가면서 좀처럼 침묵 / 고독 / 침잠 / 묵상의 기도시간을 가지기가 어렵습니다. 우리가 내적이고 영적인 고독을 살고 사랑할 수 있을 때에, 우리는 하느님 안에서 마음과 영혼이 더 풍요로워집니다. 우리는 진정한 침묵 / 고독을 통하여 하느님 안에서 머물고 사랑할 수 있게 됩니다.

내적인 극기

내적인 극기의 실천을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내적인 극기란 눈에 보이는 외적인 극기와는 달리,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속에서 인내하고 참아내며 기다리는 것 등을 말합니다. 우리는 믿음 / 영성 생활을 위하여 내적인 극기의 실천이 요청됩니다. 더구나 우리는 감각적인 맛들임에서 신앙의 빛으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내적인 극기는 더욱 요구됩니다. 때때로 우리는 믿음 / 영성 생활을 해가는 동안에 죽음과도 같은 내적 포기의 단계를 거쳐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기도 생활을 하면서 즉각 기도의 효과를 보고 싶어 하기 때문에, 내적인 포기를 하기가 더 어렵습니다. 그래서 기도 생활의 초심자(初心者)는 종종 기도 생활 초기에 실망을 하기도 합니다.

기도생활의 효과

기도는 우리의 영혼과 삶을 성화(聖化)시키고 완덕(完德)으로 나아가게 합니다. 성인들은 말했습니다. ‘열심히 기도하는 사람은 또한 잘 살아가는 사람이다.’ 우리는 기도생활의 효과를, 피조물에서의 자유 선물, 하느님과의 일치, 하느님을 닮아감 등의 세 가지로 말할 수 있는데, 그 구체적인 이야기는 다음 회에서 만나기로 합니다. [2015년 11월 8일 연중 제32주일 전주주보 숲정이 3면, 윤 클레멘트 신부]

 

 

9. 기도생활의 효과

다음은 기도 생활의 세 가지 효과입니다. 함께 보기로 합니다.

(1) 피조물에서의 자유를 선물

기도는 우리의 마음과 영혼이 하느님과 일치하게 하고, 아울러 피조물에서의 자유를 선물해 줍니다. 우리는 하느님께 마음 / 영혼을 들어 높이기 위하여, 먼저 피조물에서 자유를 살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 여러 유혹 / 욕망 / 교만 / 이기 / 집착 등의 지배를 받고 살아가는 까닭에, 우리의 마음 / 영혼은 자유로울 수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더욱 기도/ 묵상생활을 통하여 마음 / 영혼을 하느님께로 들어 높이고, 하느님의 영광을 생각하며, 하느님을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할 수 있다면, 자주 / 종종 우리 자신 / 자아로부터 떠나 기도의 시간 / 공간을 마련할 수 있어야 합니다.

기도를 통하여 우리의 영혼은 하느님과 친밀한 대화를 나누며 그분과 일치하게 됩니다. 우리는 기도 안에서 그분의 무한한 완전성, 자상함, 천국을 생각하고 피조물에 대한 집착에서 점점 자유로움을 체험해 갑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하여 우리들 인간 본성 안의 무질서한 죄 / 욕망 / 어둠 / 그늘의 악한 성향을 이기고 극복해 갑니다.

(2) 하느님과 일치하게 해줌

기도는 우리를 하느님과 일치하게 해주며 완성시켜 주고, 더욱 온전하고 완전하게 해 줍니다. 기도는 우리 영혼의 탁월한 능력인 지성을 받아들이고, 하느님의 일들에 몰두하게 만들며, 우리 인간 의지로 하여금 하느님의 영광과 우리 인간 영혼의 유익(有益)을 지향하게 합니다. 기도는 우리의 영혼이 감성적(感性的) 능력인 상상, 기억, 정서, 열정, 하느님께의 집중 등을 갖게 해 줍니다. 기도는 우리의 육신을 절제하게 하고 마음과 몸가짐을 단정하게 해 줍니다. 기도는 우리가 완전(完全)하도록 돕는데, 믿음을 갖고 희망과 사랑을 키워 줍니다. 기도는 하느님을 향한 가장 큰 덕(德)일 뿐 아니라, 겸손 / 순명 / 용기 / 항구함 등을 갖게 하는 덕행입니다.

(3) 하느님을 닮아가게 해줌

기도는 우리와 하느님 사이의 공감(共感)을 갖게 하는데, 우리는 겸손한 기도를 통하여 하느님은 우리를 바라보시고 우리에게 은총을 주십니다. 기도를 통하여 우리의 영혼이 하느님을 생각하고 바라보면서 열망하기만 하여도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에게로 옵니다. 우리의 영혼이 하느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기도할 때에 우리는 단순성(單純性), 선성(善性), 성성(聖性), 평온함 등을 갖게 됩니다.

하느님은 당신 빛으로 우리를 비추시고, 인간적인 일들이 헛되고 허무한 것임을 보여주십니다. 성 프란치스꼬 살레시오(Franciscus Salesius, 1567-1622)는 말했다. ‘기도를 통하여 우리는 하느님께 말씀드리고, 하느님께서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하여 하느님을 열망하며, 하느님은 우리 안에 영감을 불어넣어 주시고 우리를 숨 쉬게 하십니다.’ [2015년 12월 13일 대림 제3주일(자선 주일) 전주주보 숲정이 3면, 윤 클레멘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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