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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문헌ㅣ메시지

현대 문헌 읽기: 모든 형제들, 프란치스코 교황 회칙(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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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3-12-05 ㅣ No.1208

[현대 문헌 읽기] 「모든 형제들」, 프란치스코 교황 회칙, 2020

 

 

우리는 ‘사랑의 실천’이라는 주제로 올 한 해를 살아왔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누구를 사랑하셨는지요? ‘누구’를 사랑했는지는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사실 사랑을 하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다만 자기 자신만을 사랑하는 사람을 우리는 이기적이라고 합니다. 나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만을 사랑하는 사람을 계산적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사랑은 참된 사랑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도 이런 부분을 지적하십니다. “사실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상을 받겠느냐? 그것은 세리들도 하지 않느냐? 그리고 너희가 자기 형제들에게만 인사한다면, 너희가 남보다 잘하는 것이 무엇이겠느냐? 그런 것은 다른 민족 사람들도 하지 않느냐?”(마태 5,46-47). 이 말씀 앞에서는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리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라고도 하십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랑이 우리가 완전해지는 방법이라고 말씀하십니다(마태 5,43-48 참조).

 

오늘 소개할 문헌은 「모든 형제들」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있습니다. 교황님께서는 이 문헌의 부제를 ‘형제애와 사회적 우애에 관한 회칙’이라고 하시면서도, 앞으로 나올 내용은 형제애에 관한 교리를 요약하는 것이 아니라, 그 보편적 차원과 모든 이에 대한 개방성을 다룹니다. … 저는 이 성찰이 선의의 모든 이와 나누든 대화를 위한 초대가 되게 하고자 하였습니다(6항)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형제애란 ‘모든’이라는 말로만 완성되는 까닭입니다.

 

꽃향기가 멀리 퍼져가듯이, 사랑은 점점 커져가야만 참다운 사랑입니다. 그렇게 볼 때 우리 사랑의 실천은 “모든 형제들”이라는 말로 나아가야만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사랑이 어디로 나아가고 있는지, 아니면 어디에 멈춰서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모든 이를 향한 사랑과는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이 문헌이 나올 때는 코로나19로 온 세상이 힘들어할 때였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죽음의 두려움 앞에 서 있을 시간에, 교황님은 그 순간을 이렇게 이해하십니다. 우리는 그 누구도 혼자 구원받을 수 없고 오로지 함께라야 구원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32항). 그러나 사람들은 이 죽음 앞에서 모두가 함께라는 가르침이 아니라 벽을 세우고 자기 국가만이 살아남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삶의 스승’인 역사의 교훈을 빠르게 망각합니다. 보건 위기가 지난 뒤에 최악의 반응은 열광적 소비주의와 새로운 형태의 이기적 자기 보호에 더욱더 빠져드는 것입니다. 부디 더 이상 ‘다른 이들’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우리’만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35항).

 

따라서 이 문헌을 읽으며 우리의 사랑이 정녕 우리가 잊고 있던 내 이웃들을 향하기를 바랍니다. 사실 우리는 사랑을 실천하기를 바라면서도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라고 모르는 척 묻는 율법 교사와 같습니다(루카 10,25-37 참조). 그들은 문제를 회피하고 싶어 할뿐, 자신의 잘못으로 사람이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은 대수롭지 않게 여깁니다. … 더욱이 우리 모두는 우리의 필요에만 매우 사로잡혀 있기에 고통받는 사람을 보면 불편하고 번거롭게 여깁니다(65항).

 

이러한 율법 교사의 모습에서 착한 사마리아인의 모습으로 변화되는 것이 우리의 소명입니다. 이 비유는 저마다 조국과 전 세계의 시민이자 새로운 유대를 건설하는 사람으로서 소명을 되살리라고 우리를 초대합니다(66항). 사랑은 우리를 보편적 친교로 향하게 합니다. 사랑은 그 역동성 때문에 … 점점 더 마음을 열고 다른 이들을 환대하는 더 큰 능력을 요구합니다(95항).

 

사도 바오로의 가르침과 같이 “사랑은 언제까지나 스러지지 않습니다”(1코린 13,8). 사랑은 언제까지나 모두를 향하여 계속 나아갑니다. 사랑은 미움을 넘어 용서라는 이름으로, 전쟁을 넘어 평화라는 이름으로, 다름을 넘어 일치라는 이름으로, 모든 이를 향해 나아가야만 합니다. 그래야 우리는 그것을 사랑으로 부를 수 있습니다.

 

이기적인 욕심은 그 사랑을 유혹합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두고도 자기들을 떠나지 말아 주십사고 붙듭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나는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다른 고을에도 전해야 한다.”(루카 4,42-43 참조)

 

‘사랑의 실천’이라는 주제를 살아온 신자들에게 묻습니다. 그 사랑은 누구를 향한 사랑이었습니까? 그리고 이제 또 다른 이들에게로 나아가고 있습니까? 우리의 좁은 마음은 자신만을 위한 공간에 멈추도록 유혹합니다. 마치 주님의 거룩한 변모를 목격한 베드로처럼, 초막 셋을 지어 그 자리에 머무르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모든 이를 위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 놓으십니다. 이것이 우리가 따라야 할 그리스도의 사랑입니다.

 

이제 새롭게 나아갑시다. ‘사랑의 실천’은 멈추지 않습니다. ‘모든’이라는 말이 이루어지도록, 예수님과 함께 다른 고을을 향해 다시 출발하도록 합시다.

 

[2023년 12월 3일(나해) 대림 제1주일 전주주보 숲정이 3면, 박찬희 다니엘 신부(천호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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