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8일 (일)
(백) 부활 제5주일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교회문헌ㅣ메시지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첫 회칙: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9-07-26 ㅣ No.342

[경향 돋보기]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첫 회칙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이란 무엇인가? ‘사랑’이란 단어만큼 흔하게 사용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의미조차 알 수 없게 되어버린 현 시대에서 진정한 ‘사랑’의 정의와 의미를 되새기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은 물론 현대인들에게도 가장 시급한 정신적 과제일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오늘날 ‘사랑’이란 말은 너무 흔하게 쓰이고 있어 그 말을 담기조차 두렵지만 본질을 드러내기 위해 다시 한 번 숙고해야 하며 사랑이 우리 삶을 비추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첫 회칙 주제로 ‘사랑’을 선택했다.”고 말씀하셨다.

 

회칙은 제1부에서는 사랑의 신학적이며 철학적인 이해를, 제2부에서는 사랑의 구체적인 실천으로서 이웃사랑과 자선을 다룬다. 이 회칙의 중요한 부분을 살펴보자.

 

 

에로스 + 아가페 = 완전한 사랑

 

우리는 사랑의 다양한 차원을 뜻하는 ‘에로스(eros)’와 ‘필리아(philia)’, 그리고 ‘아가페(agape)’라는 용어가 있음을 잘 알고 있다. 이 가운데 우리는 ‘에로스’를 인간적인 남녀 간의 사랑 또는 육체적인 사랑으로서, 헌신적이며 신적인 사랑인 ‘아가페’에 반대되는 개념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교황님께서는 바로 이러한 편협한 사고부터 바로잡으신다.

 

역사적으로 그리스도교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그리스도교가 육체적인 것을 포함한 인간적인 사랑을 경시하고 신적인 사랑만을 강조하고 있는 것처럼 말해왔다.

 

교황님은 이러한 생각이 절대적으로 잘못되었음을 강조하신다. 만일 교회가 신적인 사랑인 ‘아가페’만을 강조하고 ‘에로스’를 무시한다면, 이는 하느님께서 인간을 영혼과 육신으로 만들어주신 의미를 왜곡시키는 것이요,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올바른 사랑의 관계를 훼손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곧 인간적이며 신적인 사랑 모두를 그리스도교는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무엇보다도 인간이 육체와 영혼으로 이루어진 존재라는 사실에서 기인합니다. 인간은 육체와 영혼이 긴밀히 결합될 때에 진정 그 자신이 됩니다. 이러한 결합이 이루어질 때에 에로스의 도전은 진정으로 극복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이 순전히 영적인 존재가 되기만을 갈망하고 육체를 단지 인간의 동물적 본성에 속하는 것으로 여겨 거부하려 한다면, 영혼과 육체 모두 그 존엄을 잃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반대로, 인간이 영혼을 거부하고 물질, 곧 육체를 유일한 실재로 여긴다면, 마찬가지로 인간은 인간의 위대함을 잃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 사랑하는 것은 영혼만도 육체만도 아닙니다. 사랑하는 것은 바로 육체와 영혼으로 이루어진 단일한 피조물, 곧 인격체인 인간인 것입니다. 육체와 영혼의 양 차원이 진정으로 일치될 때에 비로소 인간은 온전한 상태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만이 사랑 곧, 에로스는 성숙할 수 있고 그 참된 위대함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한편 교황님은 ‘에로스’에 대한 이러한 긍정적인 지위부여는 단순히 육체에 대한 표면적인 찬양이나 맹목적인 긍정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에로스’가 스스로 성취해야 하는 ‘상승’과 ‘정화’의 필요성을 또한 강조하는 것임을 역설하신다.

 

곧 이러한 ‘에로스’의 위대함은 자신을 초월하여 하느님께로 나아가는 ‘포기’와 ‘희생’이 함께 고려될 때에야 의미를 얻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말은 또한 우리를 절망시킨다. 평범한 우리가 인간적인 사랑을 어떻게 ‘포기’와 ‘희생‘으로 승화시키고 정화시킬 수 있을까?

 

교황님은 여기에 해법을 제시하신다. 이것은 ‘에로스’ 스스로가 아니라 ‘아가페’와 통합을 해야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인간이 육체로만 완성될 수 없고 정신으로만 인식될 수 없는 것처럼 인간적인 ‘에로스’도 신적인 ‘아가페’와 일치해야만 온전한 사랑으로 승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논리는 그대로 ‘아가페’에도 적용된다. 신적인 사랑도 절대 인간적인 사랑의 도움 없이는 완성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이다.

 

이로써 교황님은 하느님과 인간, 그리고 인간들 사이의 사랑의 형태에서도 ‘아가페’와 ‘에로스’, 주는 사랑과 받는 사랑, 올라가는 사랑과 내려오는 사랑은 구별되기는 하나 절대 구분되어서는 사랑의 온전함을 깨달을 수 없는 존재 그 자체임을 역설하신다.

 


에로스 + 아가페 = 예수 그리스도

 

교황님은 이러한 ‘에로스’와 ‘아가페’ 통합의 전형적인 본보기로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하신다. 이 말씀은 곧 우리의 ‘에로스’를 하느님의 ‘아가페’ 안에 통합시키는 방법이 바로 그리스도와 일치하는 성찬례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스스로의 힘으로 ‘에로스’를 승화시키고 정화시킬 수 없다. 이러한 정화는 ‘아가페’ 자체이신 그리스도와 일치하여 ‘에로스’와 ‘아가페’가 통합되어야만 가능하다. 이것이야말로 하느님 사랑과 이웃사랑이 일치하는 바로 그 순간이라고 교황님은 말씀하신다.

 

“영성체는 내가 자신에게서 벗어나 그분을 지향하도록, 그리하여 모든 그리스도인과 일치를 지향하도록 해줍니다. 우리는 한 존재 안에 완전히 결합된 ‘한 몸’이 됩니다.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이제 진정으로 하나가 됩니다. 강생하신 하느님께서 우리를 당신께로 이끄십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또한 어떻게 아가페가 성찬례를 가리키는 말이 되었는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성찬례에서 하느님 자신의 아가페가 몸으로 우리에게 오시어 우리 안에서 우리를 통하여 당신의 일을 계속하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그리스도론적이고 성사적인 토대를 명심할 때에만 우리는 사랑에 관한 예수님의 가르침을 올바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선포 + 예배 + 봉사 = 교회의 필수요건

 

교황님은 이와 같이 제1부에서 그리스도교 사랑의 본질에 대해 말씀하신 뒤 제2부에서 구체적인 사랑의 실천을 강조하신다. 특히 사랑은 개인의 의무이기도 하지만 교회의 의무임을 강하게 역설하시며 구체적인 자선활동을 위한 조직화에 힘을 쏟으라고 말씀하신다. 교황님은 초대교회에서 자선활동이 이루어져온 역사를 소개하시며 자선활동이야말로 교회를 이루는 세 가지 필수요건 가운데 하나라고 말씀하신다.

 

“교회의 가장 깊은 본성은 하느님 말씀의 선포(선포 증언), 성사 거행(예배), 그리고 사랑의 직무의 실천(봉사)이라는 교회의 삼중 임무로 표현됩니다. 이러한 임무들은 서로를 전제로 하며 서로 불가분의 관계에 있습니다. 교회에 자선은 다른 이들에게 맡겨도 되는 일종의 복지활동이 아니라, 교회의 본질을 구성하는 한 부분이며, 교회의 존재 자체를 드러내는 데에 없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회칙은 이 모든 자선활동이 단순한 외적 활동으로 인식되지 않으려면 기도와 성모님의 이끄심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결론을 맺고 있다.

 

종합하면, 이 회칙은 인간적인 사랑과 신적인 사랑의 통합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일치하는 교회가, 구체적으로 자선활동에 대한 의무를 기도와 함께 충실히 수행하며, 하느님의 사랑을 이웃사랑 안에서 완성시켜야 한다는 개인적이며 공동체적인 사랑의 의무를 다시금 강조하는 말씀이라고 할수 있다.

 

* 박현민 베드로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홍보국장 신부, 경향잡지 주간.

 

[경향잡지, 2006년 3월호, 박현민 베드로]



1,624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