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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 이스라엘11: 예수님의 변모와 타보르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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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2-11-28 ㅣ No.1073

[이스라엘 성지 길라잡이] 예수님의 변모와 타보르 산


카이사리아 필리피에서 베드로는 예수님을 메시아로 고백하고 교회의 수위권을 받았다(10월호 참조). 그러나 그 이후 베드로는 예상치 못한 예수님의 수난 예고를 듣고 메시아에게는 절대로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없다고 반박했다(마태 16,21-23).

 

당시 유다인들은 이스라엘을 로마로부터 해방시켜 줄 위대한 왕이신 메시아를 꿈꾸었고(루카 24,21), 메시아가 고통스러운 수난을 겪고 죽는다는 것은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당신의 소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베드로를 깨우치시고 그의 분심을 쫓아내셨다(마태 16,21-23).


그리고 이어지는 사건이 마태오 복음 17장 1-9절에 기록된 예수님의 변모로서, 예수님은 베드로, 야고보, 요한만 따로 데리고 높은 산에 오르시어 신성한 당신의 참모습을 보여주셨다. 그때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 그분과 대화를 나누었고, 예수님의 옷은 어떤 마전장이도 그토록 하얗게 할 수 없을 만큼 새하얗게 빛났다고 한다(마르 9,3).


◆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변모 산으로 추정되는 갈릴래아 지방의 타보르, 해발 580미터 정도의 산이 푸른 평야 위에 우뚝 솟아있는 모습이 아름답고 인상적이다.

올라가면 다 보이기 때문에 ‘다 볼 산’이라는 농담 섞인 뜻풀이가 있을 정도로 전망이 좋아서, 넓게 펼쳐진 이즈르엘 평야를 마주하면 세상을 다 가진 듯한 풍부함을 선사한다. 기원전 12세기에 판관 드보라는 이곳에서 가나안 장군 시스라에 맞서 승리를 거둔 바 있다(판관 4-5장).

사실 신약성경에서는 예수님께서 어느 산에서 변모하셨는지 밝히지 않았다. 그저 “높은 산”이라고만 기록되었을 뿐이다(마르 9,2; 마태 17,1). 그러나 비잔틴 로마 시대 이전부터 타보르 산을 변모 산으로 생각해 왔고, 이미 4-6세기부터 산 정상에 성당을 봉헌하였다. 그러다가 전쟁을 겪으면서 변모 성당은 폐허와 재건을 반복했고, 1924년에 안토니오 바를루치가 현재의 모습으로 봉헌했다고 한다(위사진).


◆ 그러나 신약성경에 정확한 이름이 언급되지 않은 만큼 어떤 학자들은 헤르몬을 변모 산으로 지목하기도 한다. 변모 사건을 기록한 마태오 복음 17장 바로 앞 16장에서 예수님이 카이사리아 필리피 지역에 계셨기 때문이다. 카이사리아 필리피는 골란 고원 아래쪽에 있고, 헤르몬 산(아래사진)과 지리적으로 매우 가깝다.

그러나 타보르이건 헤르몬이건, 그 정확한 위치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성경에서 그 위치를 정확하게 기록하지 않은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타보르와 헤르몬은 모두 하느님의 장엄함을 드러내는 두 개의 최고봉이었기 때문에 그 자체만으로도 매우 상징적이다(시편 89,13: “북녘과 남녘을 당신께서 만드시니 타보르와 헤르몬이 당신 이름에 환호합니다.”).


◆ 평생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신성의 발현을 예수님의 변모를 통해 눈으로 확인한 베드로는 초막 셋을 짓고 하나는 예수님께, 하나는 모세께, 또 하나는 엘리야께 드리고 영원히 살고 싶다는 신앙고백을 했다.

 

예수님의 변모에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난 것은 매우 상징적인 의미를 띠는데, 예로부터 지금까지 유다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예언자는 모세와 엘리야이기 때문이다. 모세는 이스라엘 최초의 예언자이자 첫 번째 정치적 지도자였고, 타보르 산 변모 성전 왼쪽으로 들어가면 모세를 기념하는 경당이 있다(위 사진). 모세는 이집트 탈출 이후 시나이 산에 올라 하느님의 십계명을 받았던 만큼 율법을 상징한다.


사실 복음서에 나타나는 예수님은 모세의 모습을 많이 상기시키고, 그 유사성은 마태오 복음 1-5장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헤로데가 유다의 왕이 탄생할 것을 두려워하여 아기들을 학살한 사건(마태 2,16-18)은 히브리인들의 번성을 두려워하여 사내아이들을 죽였던 파라오의 모습(탈출 1,22)과 겹친다. 헤로데의 학살을 피해 아기 예수님이 살아나신 것은 파라오의 핍박 속에서 기적적으로 목숨을 부지했던 어린 모세의 모습을 떠올린다(탈출 2,1-10).

게다가 마태오 복음 5장의 예수님께서 산 위에 오르시어 군중들을 가르치신 참행복의 산상 수훈은 시나이산에 올라 십계명을 받고 백성을 가르쳤던 모세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곧, 이 모든 공통분모들 속에서 바라본 예수님의 가르침에는 유다인들이 가장 존경했던 예언자 모세의 모습이 그대로 투영되어 있었다.


◆ 반면, 엘리야는 기원전 9세기 북 이스라엘 아합 왕이 시돈의 공주 이제벨과 정략결혼하면서 종교적으로 타락해 가던 시대에 활동했고, 바알과 아세라의 유혹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백성들을 위해 카르멜 산에서 불의 제단 내기를 걸었다.

열왕기 상권 18장이 전하는 것처럼, 엘리야는 카르멜 산에 모인 450명이나 되는 거짓 예언자들에 맞서 하느님을 증명하고 이스라엘 예언자의 표상이 된다. 그래서 타보르 산 변모 성전 오른쪽에는 엘리야 경당이 있고, 카르멜 산에서 일어난 엘리야의 대결을 상징한 성화를 봉헌했다(아래 사진).

곧, 예수님의 변모 때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난 것은 율법(모세)에서 시작하여 예언서(엘리야)를 거쳐 예수님의 구원사업을 잇는다는 상징적인 라인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이 유다인들의 열렬한 존경을 받았던 두 예언자의 이미지를 뛰어넘는 신성한 성자이심을 보여주고자 했다.

주님께서 당신의 참모습을 드러내신 거룩함에 압도된 베드로는 엉겁결에 초막을 짓고 이곳에 살고 싶다고 했지만, 정말 그런 사건을 목격하면 압도되는 느낌을 넘어 경외적인 두려움을 느낄 것 같다. 이집트 탈출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느님의 목소리를 직접 듣는 것을 두려워했던 것처럼(신명 5,24-26). 어찌 보면 예수님의 변모에는 한낱 불완전한 인간이 완전하신 하느님을 만나는 경외적인 순간이 극적으로 표현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은 예수님의 변모가 주님의 기적 가운데 가장 위대하면서도 하늘나라의 완벽한 삶을 보여주신 사건이라 칭송했었고, 변모는 예수님의 세례, 십자가에 못 박힘, 부활, 그리고 승천과 함께 주님 공생애의 가장 중요한 다섯 가지 사건이 되었다.



◆ 예루살렘 입성과 십자가의 수난이 닥치기 전에 예수님께서 당신의 신성을 보여주신 사건은 중요한 의미를 전달한다. 나중에 아무리 예상치 못한 끔찍한 사태가 발생하더라도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놓지 않도록 약한 인간에게 미리 보여주신 하나의 끈과 같은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도 살아가는 동안 하느님을 경험한 감동적인 순간들, 잊을 수 없는 기억들이 있고, 사실 그런 체험들이 있기 때문에 유혹 많은 세상을 살면서도 믿음의 끈을 놓지 않는 것일 게다. 어쩌면 예수님의 변모도 베드로에게 잊을 수 없는 체험의 순간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비록 베드로가 인간적인 약점이 너무 커서 배신하기도 했지만, 예수님의 신성을 기억했던 그는 다시 일어나 주님께 돌아갈 수 있었다.

베드로가 교회의 수위권을 받았던 것은 아마 완벽해서가 아니라, 넘어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잠재력과 성숙해 가는 믿음 때문이었을 것 같다. 그리고 같은 신앙을 품고 있는 우리도, 역경 속에 넘어진다 하더라도 베드로 사도처럼 다시 일어나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는 끈기와 인내를 기도해본다.

* 김명숙 소피아 - 한님성서연구소 연구원. 이스라엘에서 성지순례 안내자로 일하며 예루살렘 히브리대학교에서 구약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경향잡지, 2012년 11월호, 글 · 사진 김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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