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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 125위 약전, 자료집 집필한 차기진 소장에게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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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1-07-24 ㅣ No.944

125위 약전, 자료집 집필한 차기진 소장(청주교구 양업교회사연구소)에게 듣는다


하느님의 종 125위는 한국교회 주추, 영성의 광맥

 

 

하느님의 종 125위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습니까?

 

너나할 것 없이 대답이 궁색하다. 한국교회가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그리고 증거자 최양업 신부를 합해 모두 125위 시복시성을 추진하고 있으나, 그들의 삶과 순교행적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는 현실이다.

 

그렇다고 무관심을 탓할 수만도 없다. 신자 대중이 접할 수 있는 자료라고 해봐야 주교회의에서 편찬한 125위 약전(略傳) 1권과 전기자료집 5권이 사실상 전부다. 하지만 교황청 시성성에 제출하기 위해 엮은 약전과 자료집이라 여간한 결심 없이는 독파하기가 힘들다.

 

청주교구 양업교회사연구소 차기진(루카, 사진) 소장을 만났다. 차 소장은 약전과 전기자료집 6권을 홀로 집필했다. 자료수집과 연구, 집필에 5년 세월이 걸렸다. 지금으로선 차 소장만큼 125위 생애와 행적을 훤히 꿰뚫고 있는 사람이 없다.

 

그는 "교회가 강조하는 신앙의 용기, 성모신심(묵주기도), 냉담교우 회두, 성가정, 평신도 영성, 사제 영성 등이 모두 125위 생애에 담겨 있다"며 "따라서 125위에 대한 관심과 현양운동이야말로 한국교회의 힘을 키울 수 있는 지름길"이라고 강조했다.

 

 

- 125위 명단<아래 표 참조>을 훑어봐도 몇몇을 빼고는 이름조차 생소한 순교자가 많다. 125위에 대한 개괄(槪括)을 부탁한다.

 

"대부분 1801년 신유박해 전후의 초기 교회 신자들로, 한국교회 주추를 놓은 분들이다. 그들의 신앙 후손이 103위 성인들이다. 예를 들어 순교자 김진후(명단 68번)는 성 김대건 신부의 증조부다. 한양 서소문 밖에서 순교한 현계흠(55번)은 현석문 성인의 부친이다.

 

이처럼 할아버지보다 아버지와 아들이 먼저 성인 반열에 오른 이유는 파리외방전교회가 조선 진출 이후에 일어난 기해박해(1839년)~병인박해(1866년) 순교자들에 대한 시복시성을 우선적으로 추진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누락된 초기 순교자들의 시복시성 추진 논의는 1984년 103위 시성식 때부터 계속 이어져 왔다.

 

특히 125위 중에는 103위 성인의 가족이 많다. 성녀 유조이의 남편이자 성 정하상ㆍ정혜 남매의 부친 정약종(18번)과 그의 장남 정철상(30번)이 대표적이다. 신앙적으로 그 아버지에 그 자식들이요, 그 지아비에 그 지어미라고 말할 수 있다. 성 최경환의 아내 이성례(104번)와 장남 최양업 신부(125번)도 마찬가지다.

 

일가족 대부분이 하느님의 종에 선정된 성가정도 있다. 유항검 회장(51번)을 중심으로 장남 중철(53번)과 차남 문석(54번), 유중철과 동정부부로 지낸 며느리 이순이(66번), 조카 유중성(67번) 등 5명의 순교자가 나왔다. 125위는 중국인 주문모 신부(2번)와 증거자 최양업 신부를 제외하면 모두 평신도다. 한국교회 특징인 '순교자의 교회'와 '평신도의 교회' 모습을 그들에게서 볼 수 있다."

 

 

- 125위 순교 행적에서 어떤 신심과 영성을 추출해 낼 수 있는가.

 

"신앙생활에도 용기가 필요하다. 명도회장을 맡아 전교에 힘쓰다 체포된 정약종(다산 정약용의 형)은 배교 강요에 마음이 흔들리기는커녕 참수 당시 '땅을 보면서 죽는 것보다 하늘을 보면서 죽는 것이 더 낫다'며 하늘을 우러르는 자세로 고개를 들고 칼을 받았다. 재판관이 '그는 목석처럼 단단하다'고 혀를 내둘렀을 정도다. 김광옥(44번)은 참수 직전 '묵주기도가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요청했다.

 

1784년 이벽과 함께 천주학을 받아들은 최창현(17번)은 마지막 포도청 심문 당시 한순간 나약함을 보였다. 그러나 즉시 형조에서 배교 의사를 철회하고 순교의 칼을 받았다. 요즘 냉담교우 모셔오기 운동이 활발한데, 최창현의 갈등과 순교를 냉담교우들에게 설파하면 어떨까 생각한다.

 

그리고 유중철ㆍ이순이 동정부부와 순교자 일가(一家)에서 성가정의 모범을 찾을 수 있다. 사제들은 '땀의 순교자' 최양업 신부의 초인적 사목활동에서 참 목자상을 발견할 수 있다. 그들의 순교신심과 영성을 찾아내서 우리 삶에 내면화하는 게 순교자 현양이고, 시복시성 목적이다."

 

 

- 103위 성인도 제대로 현양하지 못하는 현실에서 125위 시복시성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하는 시각도 있는데.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얘기다. 가족계보에서 보듯 103위 성인과 125위는 고리처럼 연결돼 있다. 정약종의 「주교요지」만 하더라도 성 정하상의 「상재상서」, 최양업 신부의 「천주가사」, 그리고 안중근 의사의 「옥중수기」와 내용적으로 긴밀히 연결돼 있다. 125위 시복시성은 103위 성인에 대한 관심을 자연스레 불러 일으킬 것이다."

 

 

- 시복시성을 위한 한국교회 차원의 법적ㆍ행정적 절차는 끝났다. 어떻게 하면 기도와 현양운동에 불을 지필 수 있을까.

 

"교구장들이 전대사 은총을 받을 수 있는 지정 순례지를 선포하면 좋을 것이다. 서울 서소문 성지, 대전 삽교 용머리, 전주 치명자산, 수원 어농성지, 청주 배티성지 등 125위와 관련된 성지(유적지)가 대상이 될 수 있다. 또한 125위 약전과 자료집에 기초한 전기집이 나와야 한다. 순교자들 생애는 참으로 감동적이고, 그들의 신앙고백은 콧등을 찡하게 한다. 전기집에 그런 감동과 눈물을 담아야 한다. 그래야 신자들이 순교자들의 삶을 배울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순교영성의 현대화다. 그들의 순교행적 뒤안길에 묻혀있는 영성을 캐내 현대 신앙인들에게 어떻게 전하고, 접목시킬까 고민해야 한다. 순교 사실만 강조하면 효과가 없다. 지금은 피의 박해시대가 아니지 않는가."

 

차 소장은 "약전과 전기자료집 6권은 25년에 걸친 순교역사 연구 결과물"이라며 "교구(청주교구) 연구과제를 미뤄놓고 125위 연구와 집필에 전념할 수 있게 배려해준 교구장 장봉훈 주교에게 감사한다"고 말했다.

 

차 소장은 공주사범대와 서울대 대학원(문학박사)을 나와 교회사 연구분야에서 한우물을 파고 있다. 양업교회사연구소는 충북 진천 배티성지에 있다.

 

 

[평화신문, 2011년 7월 17일, 김원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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