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9일 (일)
(홍) 성령 강림 대축일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성령을 받아라.

강론자료

2003년 12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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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03-12-23 ㅣ No.555

12월 23일 : 성탄 전 9 일 기간 - <7일째>

 

        말라기 3,1-4. 23-24         루가 1,57-66

    2003. 12. 23.

주제 : 하느님의 일

 

세상에 사는 사람들은 하느님의 일을 알지 못합니다.  알고 싶고 그분의 뜻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알고 싶다고 말을 해도 우리가 마음을 바꾸어 하느님의 시각을 갖지 않는다면 그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사람이 생각하는 하느님의 움직임 방식과 실제로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모습은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 대표적인 이야기의 하나가 오늘 복음에 나오는 세례자 요한과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하느님은 즈가리야를 선택하여 당신의 뜻을 실현하려고 했지만, 즈가리야는 순수한 마음으로 하느님께 다가서지 않고 인간적인 조건을 먼저 들어서 하느님의 뜻이 실현되기 어렵지 않느냐고 물었었습니다.  그랬던 결과가 오늘 들은 말씀처럼 아기이름을 하느님의 뜻대로 정할 때까지 벙어리로 살아야했던 일을 만들고 만 것입니다.  

 

인간은 자기 생각을 드러내고 그것을 큰소리로 주장하면 스스로가 높아지는 것으로 착각하고 삽니다.  인간의 세상에서라면 그것이 옳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뜻은 인간이 그렇게 주장하는 대로 실현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엊그제 예비신자와의 대화에서 이런 소리가 있었습니다.  노아의 홍수 이야기를 들어서 하느님은 살인자이니 그 하느님이 구원을 이야기하는 것은 모순이 아니냐고 말입니다.  인간적인 조건을 들어서 말하면 그 소리가 옳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인간은 세상의 한 부분만을 보고 마치도 자기가 보는 것이 전체인 것처럼 착각합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뜻을 이야기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입니다.  하느님의 뜻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전체를 볼 줄 모르면서도 마치도 전체를 보는 것처럼 생각하고 말합니다.  바로 그것이 인간의 한계(限界)인데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많은 경우 인간은 자기 행동으로 복을 불러들이기도 하고, 그 행동으로 재앙을 불러들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하는 행동이 옳은 길로 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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