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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칸에서 평화를 찾다6: 40차례 폐허 위에 세워진 흰색의 도시 베오그라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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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06-26 ㅣ No.377

[발칸에서 평화를 찾다] ⑥ 40차례 폐허 위에 세워진 ‘흰색의 도시’ 베오그라드


파괴된 건물은 그대로… 화해·평화의 복구부터

 

 

- 1999년 3월부터 78일간 이뤄진 나토 공습 당시 파괴된 세르비아공화국 경찰청사.

 

 

보스니아 국경을 넘어 에어 세르비아 ATR 72-200편으로 베오그라드에 들어섰다. 지난 200년 동안 무려 40차례나 폐허가 됐는데도 다시 건설됐다는 ‘흰색의 도시’ 베오그라드의 첫인상은 그리 희지만은 않다. 오히려 회색에 가까운 우중충한 시가지다. 그런데 사바 강을 건너면서 그 생각이 바뀌었다. 멀리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흘러온 다뉴브 강과 사바 강이 합류하는 낮은 평지에 건설된 요새 때문이었다. 때마침 노을에 비친 칼레메그단(Kalemegdan) 요새는 흰색의 보석과도 같이 빛났다. 탄성이 절로 나오는 아름다움에 잠시 말을 잊을 정도였다. 

 

하지만 다리를 건너 도심에 들어서자 그 아름다움은 종적을 감춘다. 퇴근길 교통 체증에다 시내 곳곳엔 여전히 파괴된 건물과 가옥이 그대로 남아 전쟁의 아픈 기억과 상처를 되살린다.

 

- 베오그라드대교구 그리스도 왕 주교좌성당에서 한반도의 평화를 기원하는 미사가 봉헌되고 있다.

 

 

세르비아 사람들의 정신적 표상이라는 성 사바성당이 보인다. 세르비아 정교회의 초석을 놓은 사바(Sabas, 1174∼1237) 성인을 기려 세웠다는 사바성당은 동서로 92m, 남북으로 82m에 중앙 돔 높이가 82m, 가장 낮은 종탑도 40m에 이르는 발칸에서 가장 큰 정교회 성당이다. 신자들의 봉헌만으로 지어지기에 언제 다 지어질지 그 완공 시점을 기약하기 어려운 성당이기도 하다.

 

이 성당 역시 아픈 기억이 남아 있다. 1237년 예루살렘 성지 순례 중 불가리아의 티르노보에서 숨을 거둔 사바 성인의 유해는 현지 수도원에 묻혔다가 세르비아의 밀레셰바 수도원으로 옮겨졌는데, 350여 년 뒤 1594년 세르비아를 점령한 오스만튀르크에 의해 파헤쳐지고 불태워졌다. 이슬람을 전하고자 세르비아 정교회의 정신적 원천을 완전히 제거하려 한 것이다. 세르비아인들은 그 수모를 잊지 않고자 1935년 그의 유해가 불탄 자리에 이스탄불의 성 소피아성당을 모델로 성인을 기리는 성당을 세웠다. 그 역사는 1995년 7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스르프스카공화국 스레브레니차, 1999년 1월 코소보 라차크 등지에서의 무슬림 집단 학살로 이어졌다. 그러고 보면 베오그라드의 피의 역사는 피해자와 가해자의 두 얼굴이 교차한다. 

 

코소보 내전 당시 베오그라드로 피란을 온 이반 바노비치(30)씨는 “당시 늘 용서와 화해를 말씀하셨던 어머니 덕분에 가톨릭 신앙을 지킬 수 있었다”며 “요즘은 비교적 안정됐지만, 가톨릭에 대한 선전 선동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는 게 현실이고, 또 그만큼 세르비아 정교회와 무슬림, 가톨릭 신자들 간 상처가 크다”고 말한다. 

 

성 사바성당에서 공화국 광장을 따라 큰길을 걸어가면 정부청사가 즐비하다. 이 중 국방부청사와 경찰청사가 눈에 들어온다. 1999년 3월부터 78일간에 걸쳐 이뤄진 나토 공습 당시 무너진 건물이다. 그로부터 17년이 지났는데도, 복구하지 않고 대형 천으로만 가려놓은 채 보존하고 있다. 물론 복구 중인 건물도 보였다. 

 

베오그라드대교구 그리스도 왕 주교좌성당으로 향했다. 취재진을 위해 남북한의 화해를 기원하는 특별 미사가 봉헌된다는 소식 때문이었다. 이른 아침인데도 평화를 기원하는 교구 기도 단체인 ‘카리타스기도회’ 회원 20여 명이 미사에 참여, 한민족에게 평화의 빛이 비치기를 지향하며 한결같은 마음으로 기도를 바쳤다. 거리로 나서니 출근길 베오그라드 시민들의 얼굴이 생각보다 밝고 환하다. ‘흰색의 도시’답다.

 

 

베오그라드대교구장 스타니슬라브 호체바르 대주교

 

 

“두려워하지 맙시다. 서로 존중하고 대화하며 함께 살아갑시다. 하느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기도하며 공동의 삶을 향한 새로운 비전을 만들어 갑시다. 그러면 어느새 평화가 우리에게 다가올 것입니다.”

 

베오그라드대교구장 스타니슬라브 호체바르 대주교는 1990년 살레시오회 슬로베니아 관구장으로 있으면서 ‘발칸인에게 평화를’이라는 평화 캠페인을 시작했다. 자신이 베오그라드대교구장에 임명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도 못하던 때였다. 

 

자신의 고국 슬로베니아에서 전쟁이 벌어지는(10일 전쟁이긴 했지만) 상황을 목격하며 평화를 위한 기도 운동을 기획해 펼쳐나갔다. 아울러 ‘성녀 안나 기금’을 조성해 다자녀 가구를 도우면서 생명 운동에도 힘을 쏟았다. 그러던 중 2000년 3월 세르비아 베오그라드대교구 보좌 주교로 임명됐고, 이듬해 프란치 페르코 대주교의 교구장직을 이어받았다. 

 

“우리 안에 평화가 실현될 수 있다는 확신을 하게 해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평화를 향한 여정은 아주 길지만, 반걸음씩만이라도 나아간다면 평화는 이뤄질 수 있습니다. 물론 화해와 일치를 원하지 않는 사람도 있었고, 때론 협박 편지도 받았지만, 하느님 안에서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갈 수 있었습니다. 모두가 하느님 은총의 여정이었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발칸인에게 평화를’ 캠페인은 이제 세르비아 정치가들에게도 퍼져가고 있고, 인종차별주의자나 적대자를 가리지 않고 이뤄지는 자선과 기도 운동은 세르비아에 평화를 정착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되고 있다. 

 

호체바르 대주교는 특히 “저도 2차 세계대전 당시 아버지가 공산당원들에게 피살됐는데, 어머니께선 늘 화해를 강조하시며 우리를 죽이려는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하라고 말씀하셨다”고 개인적 체험을 전한 뒤 “부활하신 예수님을 통한 평화는 실현 가능하다는 것, 이것이 제가 가진 확신”이라고 강조했다.

 

- 전쟁이 끝난 지 이제 17년째를 맞는 베오그라드의 출근길은 활기에 넘친다.

 

 

그래서 호체바르 대주교는 ‘발칸인에게 평화를’이라는 기도문을 쓰고 세르비아어와 알바니아어(무슬림계)로 번역해 배포하며 카리타스 기도회, 종교 간 대화위원회와 함께 평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호체바르 대주교는 “함께 살아가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일치시킨다는 것을 희망하는 것”이라며 “임신한 어머니가 내 아이를 언제 볼 수 있을까 희망을 품듯이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화해의 희망을 품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평화신문, 2016년 6월 26일, 오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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