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9일 (일)
(홍) 성령 강림 대축일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성령을 받아라.

강론자료

5월 25일(화)-부활 7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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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04-05-25 ㅣ No.657

부활 7 주간 화요일

 

        사도행전 20,17-27        요한 17,1-11ㄱ

    2004. 5. 25. 퇴계원

주제 : 미래를 보는 서글픔 (1)

 

사람들은 미래의 내 삶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흔히는 길흉화복을 알아본다는 핑계로 적당한 복채를 주며 미래에 대한 점을 칩니다.  그리고 점쟁이가 좋은 소리를 해주면 ‘휴~~’하고 한숨을 내쉴 것이고, 복채를 냈는데도 기대했던 소리를 듣지 못한다면 낙심천만할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미래는 현재와 분리되어 따로 떨어져있는 것은 아닙니다.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입니다만, 미래는 현재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내가 오늘 동쪽을 향하여 길을 떠났는데, 내일 아침에 옛날의 장소에서 서쪽에 도달해 있을 수는 없는 일입니다.  현재 만들어낸 일이 미래에도 그대로 영향을 끼치는 법입니다.  가끔씩 나오는 공상과학 영화에서 현재에서 미래를 바꾸려고 하거나, 미래에서 타임머신을 타고 현재로 들어와 그 모습을 바꾸려는 모습을 봅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가능하지 않은 꿈입니다.

 

꿈을 꾸는 것은 자유이지만, 그 꿈을 멋있게 꾼다면 그에 해당하는 일을 올바로 할 수 있어야 할 일입니다.  꿈은 멋있게 가졌지만 현실은 그 꿈을 이루기에 합당하게 살지 않는다면 우리는 원하는 것을 얻을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런 이유 때문에 점쟁이에게 돈을 쓰는 일은 허황되다고 말을 합니다만, 약한 인간은 그 유혹에 쉽사리 빠집니다.

 

오늘 독서와 복음은 미래를 바라보는 서글픔을 이야기합니다.  바오로사도는 예루살렘을 거치면서 겪게 될 미래를 말합니다.  기쁘지 않은 소식입니다.  복음을 전하느라고 돌아다니며 세웠던 교회의 원로들에게 교회를 맡기면서 서글픔을 이야기하는 바오로의 심정은 착잡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현실이라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이 사람이 가는 길입니다.  복음에 나오는 내용도 그 사정은 비슷합니다.  

 

요한복음 17장에 나오는 대사제의 기도를 통해서 미래에 제자들과 연결될 새로운 공동체를 위한 기도이기는 합니다만, 내용상 기쁜 표현은 보이지 않습니다.  아마도 이렇게 기도하시는 예수님의 입장이 수난을 앞둔 시기라서 그럴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다가올 미래가 어떤 것인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그 미래가 현실의 내 모습과 연결되어 있음을 안다면 미래를 서둘러 걱정할 것이 아니라 현실의 삶을 올바로 하는 일에 더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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