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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부활 제6주간 목요일 너희가 근심하겠지만, 그러나 너희의 근심은 기쁨으로 바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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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복시성] 윤지충 바오로와 123위 동료 순교자 시복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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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4-08-23 ㅣ No.1352

[124위 시복식] 사학 죄인 ‘단죄’의 현장에서 ‘복되다’ 환호 메아리


서울 광화문광장서 윤지충 바오로와 123위 동료 순교자 시복식 열려



프란치스코 교황이 16일 서울 광화문광장 시복미사에서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123위 순교자의 시복을 선언하자 무대 양 옆 전광판에 124위 복자화가 공개되고 신자들이 손을 흔들며 환호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사학(邪學) 죄인’이라고 단죄하던 역사의 현장에 그 죄인들을 복되다고 칭송하는 찬미와 환호가 울려퍼졌다.
 
“본인의 사도 권위로, 공경하올 하느님의 종들 윤지충 바오로와 123위 동료 순교자들을 앞으로 복자라 부르고, 법으로 정한 장소와 방식에 따라 해마다 5월 29일에 그분의 축일을 거행할 수 있도록 허락합니다.”

8월 16일 서울 광화문광장. 윤지충 바오로와 123위 동료 순교자를 복자 반열에 올리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선포가 울려 퍼졌다. 자랑스러운 한국교회 초기 순교자들이 복자가 되는 순간, 124위 복자화가 펼쳐지고 성가대가 부르는 환희의 찬가가 광화문 일대에 메아리쳤다.

이로써 한국교회는 124위 복자들의 뜨거운 신앙을 본받아 21세기 새로운 복음화에 박차를 가하고, 아시아 복음화의 주역으로 우뚝 서는 계기를 마련하게 됐다. 124위 시복은 파리외방전교회가 중심이 된 103위 시복시성과 달리 한국교회가 주체가 되고, 103위보다 먼저 시복됐어야 할 124위를 뒤늦게나마 시복함으로써 후손으로 해야 할 도리를 다하게 됐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지닌다. 교황이 시복식을 직접 주례하는 것도 매우 예외적인 일로, 한국교회의 큰 영광이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신자 수십만 명이 광화문광장과 인근 도로를 가득 메운 가운데 봉헌된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시복미사’는 교황이 라틴어로 주례하고 신자들은 한국어로 응답하는 형식으로 2시간 동안 소박하면서도 장중하게 거행됐다.

교황은 미사 강론을 통해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안에서 이뤄진 승리를 경축한다”며 “그분들의 이름은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이름 옆에 나란히 놓이게 됐다”고 말했다.

교황은 또 “한국교회는 순교자들의 희생으로 성장했다”면서 “선조들에게 물려받은 신앙과 애덕의 유산을 보화로 잘 간직하여 지켜나가기를 촉구했다. 이어 우리의 신앙이 세상에 의해 도전받고 있는 현실을 언급하며 “순교자들의 모범을 따르면서 주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여 믿는다면 순교자들이 죽음에 이르도록 간직했던 숭고한 자유와 기쁨이 무엇인지 마침내 깨닫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은 미사 끝에 인사말을 통해 “오늘 시복식은 가톨릭 교우들뿐 아니라 우리나라 모든 국민, 나아가 아시아의 많은 형제들과 더불어 순교자들이 보여준 보편적 형제애를 나눌 수 있는 화해와 일치의 장이 되리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염 추기경은 이어 “순교자들의 피가 헛되지 않도록 우리가 더 복음화돼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을 위해 더욱 봉사하며 그들과 복음의 기쁨을 나누는 교회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교황은 미사에 앞서 한국교회 최대 순교지인 서소문순교성지를 찾아 헌화하고 순교자들을 위해 기도했다. 덕수궁 대한문 앞으로 이동한 교황은 그곳에서 오픈카로 갈아타고 광화문광장을 한 바퀴 도는 퍼레이드를 하며 참석자들과 뜨거운 만남의 시간을 가졌다. [평화신문, 2014년 8월 24일, 남정률 기자]

 

 

교황, 순교자 상징 빨간 제의 입고 미사 집전



프란치스코 교황이 16일 광화문 광장에서 시복미사를 집전하기 위해 입장하고 있다.


"장하다 순교자 주님의 용사여~."

가톨릭 성가 283번 ‘순교자 찬가’가 광화문 광장 일대에 웅장하게 울려 퍼졌다. 오픈카를 타고 모습을 드러낸 교황에게 환호를 보내던 신자들은 이내 벅찬 감동을 가라앉히고 순교자 찬가를 부르며 마음을 다잡았다.

한국 교회사에 길이 남을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시복미사가 드디어 시작됐다. 교황은 이날 순교를 상징하는 빨간 제의를 입고 라틴어로 미사를 주례했고 신자들은 한국어로 미사에 참례했다.

◎…고백기도와 자비송을 바친 후에 이어진 시복식에서 주교회의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 위원장 안명옥 주교는 교황 앞으로 나아가 “가경자 하느님의 종들, 윤지충 바오로와 123위 동료 순교자들을 복자 반열에 올려 주시기를 겸손되이 청원한다”고 말하며 시복을 청원했다. 시복청원인 김종수 신부는 시복 대상 순교자들의 약전을 낭독했다.

이에 교황은 “하느님의 종들 윤지충 바오로와 123위 동료 순교자들을 앞으로 복자라 부르고, 법으로 정한 장소와 방식에 따라 해마다 5월 29일에 그분의 축일을 거행할 수 있도록 허락한다”면서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시복을 선언했다.

124위 복자가 탄생하는 그 순간, 환희의 찬가가 울려 퍼지며 124위 복자화 ‘새벽 빛을 여는 사람들’이 공개됐다. 시복을 청원한 안 주교는 한국의 124위 순교자를 복자로 선포한 교황에게 감사 인사를 한 후 교황과 평화의 인사를 나눴다. 신자들은 환호와 박수로 화답하며 복자 탄생의 기쁨을 나타냈다.

◎…이날 보편지향기도에서 유은희(한국순교복자수도회) 수녀는 복자 윤지충과 순교자들의 모범을 통한 복음화를 위해 기도하며 “목숨을 바쳐 신앙을 지킨 순교자들을 본받아 한마음 한뜻으로 이 민족과 인류 복음화를 위해 헌신하게 하소서”라고 하느님께 간절히 청했다.

중국인 이홍근(마리아수도회) 신부는 중국어로 박해받는 교회를 위해 기도를 바쳐 눈길을 끌었다. 이 신부는 “고통받는 교회를 돌보시어 희망을 잃지 않게 하게 해달라”면서 주변 교회의 협력을 통해 박해받는 교회가 어려움을 이겨내고 자생력을 키울 수 있게 되기를 기도했다.

이 밖에도 신학생 이훈(아우구스티노)씨가 영어로 프란치스코 교황과 사제, 수도자들을 위해 기도했고 계성여고 2학년 이지영(가브리엘라)양은 세계 평화를, 교리교사 이지영(가타리나)씨는 우리나라를 위한 기도를 바쳤다.

◎…성찬의 전례가 시작될 땐 강지형(요셉)ㆍ김향신(마리아) 부부와 부부의 셋째딸(예은 완숙골롬바)과 막내딸(세은 마리에따)이 교황께 예물을 봉헌했다. 소박한 예식을 지향하는 교황 뜻을 따라 성합과 성작, 주수병 이외의 다른 예물은 봉헌하지 않았다.

◎…영성체 후 기도가 끝난 뒤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은 교황께 사목방문과 시복미사 집전에 대한 감사인사를 드렸다.

이날 미사에 참례한 신자들은 124위 복자 탄생을 감격해 하며 목숨 바쳐 신앙을 지킨 순교자들이 복자가 된 의미를 되새겼다. 또 103위 순교성인과 124위 순교복자의 신앙 후손으로서 아시아 복음화에도 앞장서기를 다짐했다. [평화신문, 2014년 8월 24일, 박수정 기자]

 

 

[124위 시복식 현장] 새벽부터 장사진 … 교황 모습 보이자 “비바 파파” 연호


교황 집전 시복식 이례적 … 기쁨과 감사의 축제



프란치스코 교황이 16일 광화문광장에서 거행된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시복미사’ 집전에 앞에 앞서 오픈카를 타고 신자들을 만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124위 시복 미사가 거행된 16일, 서울 광화문 일대는 자원봉사자들과 미사 참례자들로 꼭두새벽부터 들썩였다.

미사 입장은 새벽 4시부터였지만 밤을 새워가며 전국 각지에서 버스와 기차를 타고 온 신자들은 1시간 전부터 광화문 광장에 도착해 수백 미터씩 줄을 지어 입장을 기다렸다. 그래도 피곤하거나 지친 기색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독일에서 성악을 전공하고 있는 유학생 배보람(루치아, 27)씨는 “교황님께서 한국에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일부러 귀국해 새벽 2시부터 기다리고 있었다”면서 “교황님을 한국에서 직접 뵐 수 있다는 사실에 기쁘고 설렌다”고 말했다.

광주대교구 운남동성당에서 온 기범석(엘레우데리우스, 55)씨는 “미사에 배정된 자리가 제대에서 가장 먼 곳이라 아쉽지만 교황님과 같은 공간에서 숨 쉬는 것만으로도 좋다”며 미사에 대한 기대감을 나타냈다.

◎…동이 트지 않아 어두운 가운데서도 신자들의 광화문 광장 입장은 순조롭게 이뤄졌다. 신분 확인과 보안 검색을 거쳐 광장에 입장한 신자들은 지정된 구역에 앉아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거나 기도를 바치며 시복미사를 기다렸다. 광장 주변은 사전에 미사 참례를 신청하지 못한 신자들로 속속 들어찼다.

5시 30분쯤 동이 트면서 어둑했던 광화문 일대가 밝아왔다. 광화문을 배경으로 설치된 제대에는 8m 높이의 좌대 위에 4.6m 높이의 십자가가 우뚝 서 사람들 눈길을 사로잡았다. 제대 왼쪽에는 한복을 입은 ‘한국 사도의 모후상’이 놓여 있었다. 넓은 장소에 비해 높이가 낮은 제단과 제대는 신자들과 눈을 맞추며 미사를 봉헌하고 싶다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요청에 따른 것이다.

신자들 입장은 7시쯤 마무리됐다. 날씨는 비가 내릴지도 모른다는 예보와 달리 해가 비치고 가끔 구름이 끼는 정도였다. 선선한 새벽바람을 맞으며 미사를 기다린 신자들은 “날씨가 시복식을 도와주고 있다. 역시 프란치스코 교황님이다” 하며 비에 대한 걱정을 말끔히 털어냈다. 교황이 도착하기만을 손꼽아 기다린 신자들은 8시 30분쯤 피아니스트 백건우(요셉마리)씨의 연주를 듣고 난 뒤 한목소리로 묵주기도를 바쳤다.

◎…이날 교황은 시복미사 집전에 앞서 하느님의 종 124위 시복자 가운데 가장 많은 27위가 탄생한 서소문순교성지를 찾아 기도를 바쳤다.

성지에는 어린이와 청소년 60여 명을 포함해 1000여 명이 기도를 바치며 교황을 기다렸다. 이들은 서소문성지를 관할하는 서울 중림동약현본당이 초청한 이들로 본당 신자와 지역 주민, 순교자 후손 등이다.

8시 50분쯤 성지에 도착한 교황은 순교자현양탑 앞에서 깊이 고개를 숙여 1분간 기도했다. 이어 성지에 모인 이들에게 강복을 줬다.

이준성(중림동약현본당 주임) 신부는 “교황님과 함께한 기도는 이곳 서소문에서 순교한 분들의 마음이 오롯이 드러나는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16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 모인 수십 만 명의 신자들이 프란치스코 교황이 집전하는 124위 시복미사에 참례하고 있다.


◎…성지를 떠난 교황은 서울시청 광장에서 오픈카로 갈아타고 30분간 광화문 광장을 두 바퀴 돌며 신자들과 만났다. 교황은 특유의 환한 미소를 띠고 신자들을 향해 십자성호를 그으며 축복했다. 경호원을 통해 갓난아기를 받아 안수기도도 해줬다. 광장 바닥에 앉아 4~5시간씩 교황을 기다린 신자들은 일제히 일어나 ‘비바 파파’ ‘프란치스코’를 외치며 교황을 뜨겁게 환영했다.

교황이 탄 차가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이 모여있는 곳을 지나자 교황은 차를 멈추게 하고 손수 문을 열고 차에서 내렸다. 유가족을 축복하며 위로를 건넨 교황은 세월호 사건으로 딸을 잃은 김영오씨가 건네는 편지를 직접 받아 주머니에 넣기도 했다. 교황 수단에 달린 노란 리본 배지가 비뚤어진 것을 본 김씨는 배지를 바로 잡아주며 “다시는 대한민국에서 이런 참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기도해달라”고 교황에게 호소했다.

◎…시복미사가 끝나자 신자들은 역사의 현장에 교황과 함께했다는 기쁨과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안복덕(데레사, 55, 서울 도봉동본당)씨는 “신앙을 지키다 목숨을 잃은 순교자들이 시복되는 것을 보니 정말 감격스럽다”며 눈물을 훔쳤고, 서울대교구 가톨릭경제인회 유영희(프란치스코) 회장은 “신앙은 불가사의한 것을 가능케 하는 힘이라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이날 미사에서 복음을 노래로 선포한 임재엽(서울 대신학교) 부제는 “이 자리를 있게 한 순교자들을 본받아야 하겠다는 생각이 미사 내내 들었다”면서 “처음의 걱정과 달리 편안한 마음으로 복음을 선포할 수 있어 기뻤다”고 소감을 밝혔다.

보편지향기도를 한 유은희(한국순교복자수녀회) 수녀는 “감격과 감사라는 말밖에 할 말이 없다”면서 “교황님을 가까이서 뵈니 정말 기쁘고 행복하고 가슴이 벅차오른다”고 감격해 했다.

6살 아들, 3살 딸과 함께 온 차반디(비비안나, 명동본당)씨는 “가정의 평화를 위해 기도했는데, 교황님께서 우리나라를 위해 기도하시는 것을 보고 평소 생각지 않았던 우리나라에 대해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고 했다.
 
◎…미사 후 광장에 모인 수십만 명이 동시에 해산했지만 큰 소란은 없었다. 신자들은 구역별로 퇴장 순서를 알려주는 안내방송에 따라 질서정연하게 움직여 1시간여 만에 모두 해산했다. 덕분에 오후 5시까지 예정됐던 교통 통제도 2시간 정도 일찍 풀렸다.

신자들은 또 입장할 때 전례 예식서 등 자료와 함께 받은 쓰레기봉투에 쓰레기를 담아 주변을 깨끗이 정리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날 오후 광화문 광장에 나온 시민들은 “수십만 명이 있다 간 자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주변이 깨끗해 놀랐다”고 입을 모았다.

◎…이날 미사의 숨은 주역은 5000여 명에 이르는 자원봉사자들이다. 수십만 명의 신자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일 수 있었던 것도 광화문광장 일대는 물론 을지로와 종로, 시청, 명동에까지 신자들의 입퇴장 안내를 도왔던 봉사자들이 있기에 가능했다. 이들은 새벽 2시부터 나와 신자들을 맞았다.

광화문 근처에서 안내 봉사를 한 박병용(베드로, 56, 서울 창5동본당)씨는 “교황님을 실제로 뵐 수 있는 날이 또 오리라고 생각지 않기에 잠을 못 자고, 더운 데 서 있는 그런 고생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면서 “오히려 이렇게 봉사할 수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

회현역 입구에서 신자들 안내를 도운 임하영(클라라, 24, 서울 삼성동본당)씨는 “교황님이 주례하는 시복미사에 봉사자로 참여해 뿌듯하다”며 “가톨릭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평화신문, 2014년 8월 24일, 남정률ㆍ박수정ㆍ이정훈ㆍ김유리 기자]

 

 

124위 복자 탄생 - 103위 시성 30년만에 한국교회 또한번 영광



한국교회가 103위 성인에 이어 124위의 새 복자(福者)를 품에 안았다.

지난 1984년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에 의해 103위 순교자가 성인 반열에 오른 지 꼭 30년만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해 교황좌에 오른 후 처음으로 찾은 한국에서 순교자 124위를 복자 반열에 올림으로써 아시아 대륙에 새로운 희망의 불씨를 선사했다.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시복 미사’가 열린 16일 오전, 종교와 이념, 국가를 뛰어넘어 전 세계의 눈은 서울 광화문 광장에 쏠렸다.

“하느님의 종들 윤지충 바오로와 123위 동료 순교자들을 ‘복자’라 부르고, 5월 29일에 그분들의 축일을 거행하도록 허락합니다.”

광화문 일대를 가득 메운 100만 명의 눈길이 따르는 가운데 제단에 오른 프란치스코 교황은 새로운 복자 탄생을 선언하고 한국교회에 새로운 희망의 여정을 요청했다.

이날 시복식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과 교황청 국무원장 피에트로 파롤린 추기경 등 주교단과 제단에 오름으로써 역사적인 막이 올랐다.

참회 예식과 자비송에 이어 교황 앞에 선 주교회의 시복시성 주교특별위원회 위원장 안명옥 주교(마산교구장)가 시복을 청원하고 124위 순교자 시복 건의 로마 주재 청원인 김종수 신부(로마 한인 신학원장)가 124위 약전(略傳)을 낭독한 뒤 교황이 시복문을 펼쳐들고 시복을 선언함으로써 대단원에 이르렀다.

절정의 순간, 천상에 가닿을 듯 성가대의 찬가와 신자들의 환호성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새벽 빛을 여는 사람들’로 명명된 가로 3미터, 세로 2미터 크기의 124위 복자화가 최초로 모습을 드러냈다.

일제 강점기인 1925년(79위)과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직후인 1968년(24위) 로마에서 열린 시복식에 이어 한국 천주교회 역사상 세 번째로, 한국 땅에서 열린 시복식을 통해 믿는 이들은 한국 교회의 뿌리를 재확인하고 하느님 나라를 향한 새로운 여정에 나섰다.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이 지고 갈 십자가에 힘을 실어줄 새 복자 124위는 1791년 신해박해 3위, 1795년 을묘박해 3위, 1797년 정사박해 8위, 1801년 신유박해 53위, 1814년 박해 1위, 1815년 을해박해 12위, 1819년 박해 2위, 1827년 정해박해 4위, 1839년 기해박해 18위, 1866년과 1868년 병인ㆍ무진박해 19위, 1888년 박해 1위로, 죽음에서 영원한 생명으로 건너간 영광의 화인을 교회사에 아로새기게 됐다. [가톨릭신문, 2014년 8월 24일, 서상덕 기자]



124위 시복식 이모저모 - 환한 미소에… 시복 기쁨과 사회의 아픔 녹여내며 “비바 파파”



시복식 앞서 서소문 성지 참배

◎…프란치스코 교황은 124위 시복식에 앞서 서소문밖순교성지(이하 서소문 성지)에서 참배, 한국 순교자 시복의 의미에 힘을 실었다.

서소문 성지는 순교자들의 처형이 집행된 곳으로, 교황은 이날 순교자들이 사형선고를 받고 죽어간 여정을 거슬러 올라 그들이 스러져간 장소에서부터 보다 높은 인간의 길을 깨달은 ‘복된 이들’로 선포하는 여정을 이어갔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16일 남녀노소 신자들은 물론 지역주민들과, 성지 인근으로 출퇴근하는 직장인들, 수험생, 성지 개발 관계자 등 500여명이 함께 한 자리에서 헌화와 기도, 교황 강복 등을 이어갔다. 특히 이 자리에는 서소문 성지 복자 27위 후손들도 초대돼 의미를 더했다. 교황이 헌화한 꽃바구니는 성경말씀을 ‘무엇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갈라놓을 수 있겠습니까’(중략, 로마 8,35~36)을 바탕으로 순교자들의 사랑과, 영광, 영원한 생명, 통회와 보속 등의 의미와 색을 담아 꾸몄다.

중림동약현본당 주임 이준성 신부는 “교황님과 함께한 기도의 시간은 이곳 서소문에서 순교하신 분들의 마음이 오롯이 드러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순교정신은 자유와 평등, 사랑 등 모든 이들이 공유할 수 있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라고 강조했다.


전국서 심야버스 타고 새벽 4시부터 입장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시복 미사가 거행된 16일, 서울 광화문 일대는 자원봉사자들과 행사 참가자들로 꼭두새벽부터 들썩였다.

시복 행사가 열린 광화문 광장 입장은 새벽 4시부터였지만 밤을 새워가며 전국 각지에서 버스와 기차 등을 이용해 행사장을 찾은 신자들은 입장 시작 훨씬 전부터 광화문 광장에 도착해 수백 미터씩 줄을 지어 입장을 기다렸다. 비표 확인, 금속감지기 통과 등 다소 입장 과정이 번거롭게 느껴질 법도 했지만 교황을 만난다는 기대감에 신자들 얼굴에서는 미소가 사라지지 않았다.

행사 전날 밤 11시에 출발해 일찌감치 행사장에 들어선 부산교구 농아선교회 수화봉사자 한영아(마리아·38·부산 범일본당)씨는 “교황님을 가까이서 직접 뵐 수 있다는 사실에 기쁘고 설렌다”면서 “가톨릭 신앙인 모두가 교황님이 바라시는 바를 함께 지향하며 힘을 모아나간다면 하느님께서 보시기 기뻐하실 세상을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성가대 단원으로 봉사하며 고(故)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을 세 차례 뵌 적이 있다는 차희란(율리안나·51·춘천교구 철원 김화본당)씨는 “우리나라가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우리를 택해 오시는 교황님은 우리에게 큰 축복”이라며 “우리에게 희망을 주시는 교황님의 메시지를 따라 세상에 빛과 소금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새로운 마음을 먹게 된다”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백건우씨 연주 후 함께 묵주기도

◎…동이 트지 않아 어두운 가운데서도 신자들의 광화문 광장 입장은 순조롭게 이뤄졌다. 신분 확인과 보안 검색을 거쳐 행사장에 입장한 신자들은 지정된 구역에 앉아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거나 기도를 바치며 행사가 시작되길 기다렸다. 광장 주변도 사전에 행사 참가를 신청하지 못한 신자들과 교황 방한에 관심을 가진 이들로 속속 들어찼다.

5시30분쯤 여명이 밝아오면서 광화문 광장에 드리우고 있던 어둠이 벗겨졌다. 광화문을 배경으로 설치된 제대에는 높이 4.6m의 십자가가 8m 높이의 단 위에 우뚝 서 눈길을 사로잡았다. 제대 왼쪽에는 한복을 입은 한국사도의 모후상이 놓였다. 장소에 비해 높이가 낮은 제단과 제대는 신자들과 눈을 맞추며 미사를 봉헌하고 싶다는 교황의 요청에 따른 것이다.

행사장 입장은 행사 3시간 전인 오전 7시쯤 마무리됐다. 선선한 새벽바람을 맞으며 미사를 기다린 신자들은 “날씨가 시복식을 도와주고 있다. 역시 프란치스코 교황님”이라며 날씨에 대한 걱정을 말끔히 털어냈다. 교황이 도착하기만을 손꼽아 기다린 신자들은 8시30분경 피아니스트 백건우(요셉 마리)씨의 연주를 듣고 난 뒤 한마음으로 묵주기도를 바쳤다.


세월호 유가족 보며 차에서 내려 위로

◎…서소문성지 현양탑 앞에 선 교황은 꽃을 바친 뒤 깊이 고개를 숙여 1분간 기도했다. 이후 신자들을 축복하고 일일이 손을 잡아준 뒤 시복식장으로 향했다.

서울시청 광장에서 오픈카로 갈아탄 교황은 30분간 광화문 광장을 두 바퀴 돌며 신자들과 만났다. 교황은 카퍼레이드 내내 특유의 환한 미소를 띠고 신자들을 향해 십자성호를 그으며 축복했다. 경호원을 통해 갓난아기를 받아 안수기도도 해줬다. 뜨겁게 달아오르는 광장에서 대여섯 시간씩 교황을 기다린 신자들은 일제히 일어나 ‘비바 일 파파(교황 만세)’, ‘프란치스코’를 외치며 교황을 뜨겁게 환영했다.

교황이 탄 차가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이 모여 있는 천막 앞을 지나자 교황은 차를 멈추게 하고 차에서 내렸다. 유가족을 축복하며 위로를 건넨 교황은 세월호 사건으로 딸을 잃은 김영오씨가 건네는 편지를 직접 받아 주머니에 넣기도 했다. 교황 수단에 달린 노란 리본 배지가 비뚤어진 것을 본 김씨는 배지를 바로 잡아주며 “다시는 대한민국에서 이런 참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기도해달라”고 교황에게 호소했다.

16일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123위 시복 미사에 앞서, 교황은 서울시청에서부터 광화문 앞 제단까지 카퍼레이드를 하며 신자들과 인사를 나눴다. (사진 공동취재단)

 


스마트폰 중계 보며 시복미사 함께

◎…시복식이 열린 광화문 행사장 일대에는 총 24개의 대형 LED 전광판이 설치됐다. 제대와 멀리 떨어져 교황을 보기 힘든 이들을 배려해서였다. 넓은 장내에서 전광판이 보이지 않는 신자들은 스마트폰으로 생중계로 이뤄지는 시복식 방송을 시청하면서 미사에 참례했다.

문은미(크리스피나)씨는 “비록 가까이서 교황님을 뵙지 못했지만, 같은 공간에서 교황님과 미사를 봉헌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격스럽다”고 전했다.



124위 복자화 공개되자 환호성 터져

◎… 교황의 시복 선언에 이어 김형주(이멜다) 화백의 124위 복자화 ‘새벽 빛을 여는 사람들’이 공개되는 순간 신자들의 환호성이 터져 나오면서 분위기는 절정에 달했다.

대구에서 새벽길을 달려온 배효운(율리안나·대구대교구 하양본당)씨는 “124위 순교자들의 모습을 하나의 화폭에 담아내니, 정말 많은 선조들이 신앙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쳤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됐고 선조들의 신앙을 다시 한 번 되새기는 기회가 됐다”고 밝혔다. [가톨릭신문, 2014년 8월 24일, 특별취재팀(사진 공동취재단)]



1997~2014년, 124위 시복되기까지 노력들


20년 가까운 시복 여정, 한국교회 한마음 한뜻으로 마쳐



124위 한국 초기 순교자 시복까지는 20년에 가까운 각고의 노력이 있었다. 103위 성인의 탄생 이후 한국 교회는 성인들에 앞서 한국교회의 초석을 놓은 순교자들에 송구한 마음으로 제2의 시복 절차를 시작했고, 많은 이들의 노력을 통해 교황이 직접 주례하는 시복식을 박해의 현장에서 거행하게 된 것이다. 그간의 여정에 함께했던 이들의 노력과 보람을 들어본다.

16일 124위 시복은 한국교회 전체가 협심, 하느님의 은총으로 거둔 결과이다. 한국교회의 모든 구성원들이, 교황청에 주재하는 한국인 사제들은 물론 평신도들까지 한국 초기교회 순교자들의 신앙을 기리고 본받기 위해서 제2의 시복시성에 헌신했다. 본격적으로 전국 모든 교구가 합심해서 시복을 추진한 것이 1997년. 주교회의 추계 정기총회에서 124위 복자의 시복을 통합 추진하기로 결정했다.

이후 설치된 주교회의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 총무이자 124위 시복 청원인인 류한영 신부는 “124위 시복을 위해 헌신한 분들이 많지만 박정일 주교(전 마산교구장)님이 시복의 기틀 마련과 모든 중요 과정을 총괄하셨다”고 말했다. 박정일 주교는 2001년 10월 시복시성특위가 구성되면서 초대 위원장을 맡아 2012년 3월까지 역임한 124위 시복의 주역 중 주역이다.

박정일 주교의 뒤를 이어 시복시성특위 제2대 위원장을 맡은 안명옥 주교(마산교구장)는 124위 복자의 포지시오 작성과 제출, 교황청 시성성 심사를 마무리했다. 포지시오는 교황청 시성성 통상 회의에서 시복 안건의 최종 결정을 위해 보고관이 작성하는 심사자료를 뜻하며 시복절차 중 핵심을 이룬다.

16일 시복식 당일 124위 약전을 낭독한 김종수 신부(로마 한인신학원장)는 시복 추진이 성공적으로 이뤄진데 대해서, 이는 어느 누구 몇몇의 공적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김 신부는 “한국교회의 역량이 커셔서 신학자, 역사학자, 교회법학자 등의 연구와 서로간의 협조가 잘 이뤄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 신부는 나아가 시복 추진 과정 전체 안에서 “한국교회 신자들의 적극적인 순교자 현양과 기도에 힘입은 바 크다”고 강조했다.

교황 방한을 앞두고 마무리 준비가 한창이던 8월 11일 오전 7일 개막된 ‘서소문, 동소문 별곡’ 전시회를 찾은 4명의 신부들은 모두 시복 과정을 선두에서 이끌어온 시복 추진의 주역들이다. 류한영 신부는 복자 124위 시복 청원인, 이찬우 신부는 시복 재판관 대리, 폴란드 출신 키야스 신부는 시복 안건 보고관, 정시몬 신부(그리스도의 레지오수도회)는 포지시오 로마 공동연구가로 상호 긴밀한 협력 속에서 헌신적으로 시복 과정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이날 류한영·이찬우·키야스·정시몬 신부는 ‘서소문, 동소문 별곡’ 관람에 이어 서소문 순교성지와 당고개 순교성지를 거쳐 새남터와 절두산 순교성지를 순례했다. 이들 시복 추진 사제단은 12일 서울시내 성지순례에 이어 13일에는 124위 복자 중 대표순교자인 윤지충이 순교한 전동성당을 찾아 미사를 봉헌했다. 이들 시복 추진의 주역들은 한결같이 입을 모아 말한다. 복자 탄생은 교회의 모든 구성원들이 한 마음으로 뜻을 모아 노력한 결과라는 점이다. 한국 천주교회의 모든 구성원들이 이 시복의 여정에 함께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는 이야기이다. 물론 각 교구 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 및 순교자현양회, 본당을 중심으로 한 기도와 성지순례 운동, 한국교회사연구소와 각 교구 교회사연구 기관의 순교자들에 대한 사료 발굴과 연구들도 그 한 몫이다. [가톨릭신문, 2014년 8월 24일, 박지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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