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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ㅣ기도ㅣ신앙

[영성] 가톨릭 영성 산책43: 신비체험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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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03-16 ㅣ No.778

[전영준 신부의 가톨릭 영성 산책] (43) 신비체험가들


하느님 은총 전하는 걸어다니는 복음서?

 

 

가톨릭 교회가 공식적으로 발표한 성인 축일표를 살펴보면, 신비가 즉 신비체험가로 분류되는 성인을 무려 스무 분이 넘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다만, 축일표에 나와 있는 신비체험가들은 주로 12~19세기 인물입니다. 아마도 고대와 중세 초기 신비체험가는 순교자, 은수자 및 동정녀 등과 달리 훗날 그들의 삶을 채록하여 객관적으로 증명하기 어려워 등재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조금만 시야를 넓힌다면 모든 시대에 걸쳐 신비체험가들이 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고대 로마제국이 그리스도교를 박해할 때, 목숨까지 바쳐 가며 하느님께 대한 신앙을 증언했던 순교자가 첫 번째 신비체험가일 것입니다. 아무나 쉽게 걸어갈 수 없는 순교의 길은 하느님 은총이 함께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길입니다. 따라서 박해를 받으며 순교의 형벌을 기다리던 순교자들은 이미 지상에서 하느님 품에 있을 뿐 아니라 죽어서도 바로 천국에 들어갈 것이라고 교회가 보증했습니다.

 

로마 황제의 칙령에 따라 박해가 끝나고 자유롭게 그리스도교를 믿게 되자 몇몇 그리스도인이 개별적으로 사막으로 들어가서 하느님을 찾고자 수도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단시간에 부쩍 수가 늘어난 은수자들은 성경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기도하면서 하느님과 하나 되는 관상생활을 했습니다. 고대 수도자 폰투스의 에바그리우스와 요한 카시아누스는 저서를 통해 수도생활을 통한 신비체험의 가능성을 제시했습니다.

 

중세에는 많은 여성 신비체험가들이 있었습니다. 빙엔의 힐데가르트, 헬프타의 메히틸다, 헬프타의 제르트루다, 시에나의 가타리나 등이 여성 수도자임에도 자신의 생애를 통해 교회를 보존하고 신앙을 수호하는 데 최선을 다할 수 있었던 것은 하느님과 깊이 일치했기에 가능했을 것입니다. 또한 노르위치의 율리안나, 제노바의 가타리나 등이 평신도로서 자신의 삶을 통해 끊임없이 애덕을 강조하며 실천한 것도 하느님과 깊이 일치했다는 증거입니다. 남성 수도자로는 오상을 받고 많은 기적 사건을 체험한 아시시의 프란치스코를 하느님과 깊은 일치 안에 살아간 신비체험가라 할 수 있습니다.

 

근세 들어 대표적인 신비체험가가 출현했습니다. 수도 생활 중에 자주 신비체험을 했던 아빌라의 데레사는 저서를 통해 인간 내면 안에 현존해 계시는 하느님을 만나는 영적 여정의 단계를 상세하게 설명했습니다. 개혁을 반대하던 수도자들에게 잠시 억류되어 있는 동안에 신비체험을 했던 십자가의 요한은 저서를 통해 앞선 신비신학자들의 이론을 종합하면서 내적 성찰을 통한 정화를 강조하는 영적 여정의 단계를 제시했습니다. 특히, 이 두 신비체험가들의 고백은 오늘날까지도 각자 자신의 신비체험을 객관적으로 가늠해 보는 시금석같이 여겨집니다.

 

현대에는 비슷한 삶을 살았던 두 신비체험가가 주목받았습니다. 리지외의 데레사와 삼위일체의 엘리사벳은 10대라는 어린 나이에 이미 자주 하느님과 합일하는 체험을 했을 뿐 아니라, 일찍이 수도 생활을 시작하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신비체험을 통해 얻은 하느님 은총을 나눠 주었습니다.

 

한편, 아주 최근의 인물이라 아직도 평가 중에 있지만 충분히 신비체험가로 여길 수 있는 인물도 있습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 독일 나치의 유다인 학살 때 수용소에서 순교한 에디트 슈타인, 침묵의 관상생활을 현대인들에게 재해석해 보여주며 열심히 기도했던 토마스 머튼, 가난한 이들을 돌보는 데 평생을 봉헌하였던 콜카타의 복녀 마더 데레사 등도 분명 하느님과 깊은 일치 속에서 자신의 영적 여정을 묵묵히 걸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신비체험가들의 영적 여정은 일정한 형태로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들의 고백도 체계적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애덕 실천을 통해 그들이 보여준 당당한 신앙의 모습은 주변 사람들마저 덩달아 하느님 은총을 느낄 수 있게 하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신비체험을 굳이 이론화해 소개한다면 ‘실천-신비사상’이라고 일컫고 싶습니다.

 

[평화신문, 2016년 3월 13일, 전영준 신부(가톨릭대 신학대학 영성신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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