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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부활 제5주일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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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해성사] 고해성사의 모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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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8-08-21 ㅣ No.123

고해성사의 모든 것


“참회의 눈물은 흘러 주님의 품으로”

 

 

■ 고해성사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교회헌장 제11항에서 고해성사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고해성사를 보는 신자들은 하느님께 끼친 모욕에 대하여 그분의 자비로 용서를 받으며, 또한 동시에 범죄로 상처를 입혔던 교회, 사랑과 모범과 기도로써 죄인들의 회개를 위하여 노력하는 교회와 화해를 한다.’

 

일곱 가지 성사 중 세례와 견진, 성체성사가 그리스도교 입문 성사라면 고해성사는 병자성사와 더불어 치유의 성사다. 가톨릭교회교리서(1421항)는 ‘영혼과 육체의 의사이시며 중풍병자의 죄를 용서해 주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교회가 성령의 힘으로 그 치유와 구원활동을, 당신의 지체까지도 대상으로 하여 계속해 주기를 바라셨다’며 고해성사의 목적을 밝히고 있다.

 

고해성사는 죄 때문에 떠나 있던 아버지께 돌아옴을 성사적으로 실현하므로 ‘회개의 성사’로, 죄인인 그리스도인의 회개와 참회와 보속이라는 개인적이며 교회적인 과정을 하느님께 바치는 것이므로 ‘참회의 성사’로 불린다. 또 사제 앞에서 죄를 자인하고 고백하는 것이 이 성사의 핵심요소이기 때문에 ‘고백성사’로 부르며, 사제의 성사적 사죄를 통해 참회하는 사람에게 하느님께서 용서와 평화를 주시므로 ‘용서의 성사’이고. 화해시키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죄인에게 베풀어 주기 때문에 ‘화해 성사’로도 불린다.(가톨릭교회교리서 1423항, 1424항)

 

 

■ 고해성사의 역사

 

고해성사의 시작은 그리스도다. 부활한 그리스도는 ‘성령을 받아라. 누구의 죄든지 너희가 용서해 주면 그들의 죄는 용서받을 것이고, 용서해 주지 않으면 용서받지 못한 채 남아 있을 것이다(요한 20, 23)’라고 제자들에게 이야기한다. 그리고 2천여년이 넘는 동안 사도들의 후계자인 주교와 주교들의 협력자인 사제들은 교회법을 통해 고해성사의 직무를 수행하고 있다.

 

고해성사는 1세기부터 현재까지 다양한 형태로 지속돼 왔다. 1세기 무렵 참회 실천은 법적이고 공개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중죄의 경우는 일생에 단 한번만 성사적 용서가 이뤄졌다. 6세기에 이르러 사적 고백과 용서가 수도자들에게서 시작됐고 고백을 무한정 반복할 수 있게 됐다. 공개참회는 13세기까지만 존속되었고 제4차 라테라노공의회(1215년)는 교서를 반포해 신자들은 적어도 일 년에 한번 고해성사와 영성체를 한다는 의무를 부과했다.

 

트리엔트공의회(1545년∼1563년)는 고해성사는 그리스도에 의해 설정되었다는 것과 다른 성사들처럼 질료와 형상으로 이루어진 감각적 표지라고 선언했다. 하지만 참회자의 행위와 교회의 태도에 관계된 문제에 관한 완전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았으므로 이후의 신학자들은 많은 논의를 하게 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는 고해성사의 중요성을 인정하면서도 그 예절과 기도문 개정의 필요성이 요청됐다. 1972년 6월 16일 공동 사죄에 관한 사목 규범이 반포되었고, 1974년 2월 7일 새 고해성사 예식서가 공포됐다. 이 예식서에서 강조된 점은 죄는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조화, 우정, 순종, 사랑의 관계를 깨뜨리고 화해는 이러한 상호 인격적인 이해로부터 얻게 된다는 것이다.

 

 

■ 고해성사의 효과

 

가톨릭교회교리서(1468항)는 ‘로마 교리서’를 인용 ‘고해성사의 완전한 효능은 하느님의 은총을 회복시켜 주고 지고한 우정으로 하느님과 결합하게 해 주는 것이다’며 따라서 고해성사의 목적과 효과는 ‘하느님과 이루는 화해’라고 설명한다. 또 루카복음(15, 32)을 참조해 ‘실로 하느님과 화해하는 고해성사는 참된 영적 부활과 하느님 자녀로서 지니는 품위와 삶의 선익을 회복시켜 준다’고 전하고 있다.

 

고해성사는 개인과 하느님의 화해 뿐 아니라 개인과 교회의 화해도 돕는다. 가톨릭교회교리서 1469항은 ‘고해성사는 교회와 친교를 회복하는 그 사람만을 치유하는 것이 아니라 그 지체가 지은 죄 때문에 손상을 입은 교회의 생명을 되살리는 효과도 있다’고 설명한다.

 

 

■ 고해성사가 필요한 이유

 

세례가 ‘때가 다 되어 하느님의 나라가 다가왔다. 회개하고 이 복음을 믿어라(마르 1, 15)’라는 예수님의 호소를 받아들이는 첫 ‘회개’라면, 고해성사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면서도 끊지 못하던 사욕을 없애고 그리스도께로 다시 다가가기 위한 ‘제2의 회개’다. 이 제2의 회개는 교회헌장 8항이 언급하듯 ‘자기 품에 죄인들을 안고 있어 거룩하면서도 언제나 정화되어야 하므로 끊임없이 참회와 쇄신을 추구하는’ 온 교회의 부단한 임무라고 할 수 있다. 암브로시오 성인은 두 가지 회개에 대하여 이렇게 말한다.

 

“(교회 안에는) 물과 눈물이 있으니 세례의 물과 참회의 눈물이다”

 

1925년 시성된 장 마리 비안네 신부(1786~1859년)의 이야기는 고해성사를 통해 기꺼이 화해하시고 은총을 주시는 하느님을 극명히 드러낸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신다. 고백한 후에 다시 죄를 지을 것이라는 것도 미리 알고 계시지만 그분은 우리를 용서하신다. 우리를 사랑하셔서 기꺼이 앞날의 일까지도 잊으시는 우리 하느님의 사랑은 얼마나 큰가!’하느님의 크신 사랑을 깨달으며 제2의 회개를 이어나가야 할 의무가 우리에게는 있다.

 

 

■ 고해성사와 관련된 성인

 

장 마리 비안네 신부 (1786~1859)

 

‘고해성사를 받으려면 세 가지가 필요하다. 사제 안에 현존하는 하느님을 발견할 수 있는 ‘믿음’,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용서의 은총을 주시리라는 ‘희망’, 그리고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하도록 인도해주며 우리가 그분에게 잘못한 것에 대한 후회를 우리 마음속에 심어주는 ‘사랑’, 이렇게 세 가지다’ (마크 주렝, ‘장 마리 비안네의 짧은 생애’ 중에서)

 

1786년 5월 8일 프랑스 리옹 근교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장 마리 비안네는 1815년 사제서품을 받은 후, 1818년 프랑스의 작은 마을 아르스의 본당신부로 부임했다.

 

그는 이곳에서 42년 동안 사목하면서 마을 주민들에게 열렬한 신심을 불어넣었고, 그 결과 설교자와 고해신부로 대단한 명성을 얻게 됐다. 매년 2만여 명의 신자들이 비안네 신부를 찾아왔기 때문에, 그는 성무일도와 식사, 상담 시간을 제외하고는 매일 새벽부터 저녁때까지 약 18시간 정도 고해성사를 줘야 했다.

 

비안네 신부는 7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고해신부로서의 삶을 충실히 살았으며, 교황 비오 11세는 1925년 월 31일 그를 성인품에 올렸다.

 

암브로시오 주교 (339~397)

 

‘매번 죄를 고백하러 사람들이 암브로시오 주교를 찾아 올 때마다 그는 항상 같이 울곤 했습니다. 자신도 함께 죄를 지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죄의 고백을 들은 그는 주님만을 신뢰하며 기도했습니다.’(바울리노, ‘암브로시오의 생애’ 중에서).

 

암브로시오는 339년 독일 남서부 트리어에서 갈리아(Gallia) 지방에서 태어났다. 그는 로마에서 인문 교육을 받았으며 수사학과 법학, 그리스어에 능통했고, 35세 때 이탈리아 밀라노의 주교품에 오른 그는 정통 그리스도교를 평생 옹호했다.

 

암브로시오 주교는 성경의 가르침을 따라 기뻐하는 사람과 함께 기뻐하고, 슬퍼하는 사람과는 함께 울었다고 전해진다. 그는 특히 죄인들에게 늘 동정심을 가지고 대했으며, 죄인들이 용서받는 것에 대해 절대로 질투하지 말라고 신자들에게 당부하곤 했다.

 

그는 또한 “라자로가 주님의 말씀 한마디로 다시 부활했듯이, 죄 속에 묻혀 죽어 있던 사람도 하느님께 죄를 고백하고 용서받으면 다시 살아날 수 있다”는 예를 들며, 어떠한 죄도 하느님의 용서를 받을 수 있음을 강조했다.

 

요한 보스코 신부 (1815~1888)

 

‘올바른 고해성사야말로 올바른 길을 걷게 하는 방법입니다. 보통 이 점을 소홀히 하죠. 기도서대로, 또는 십계명을 순서대로 살펴 늘 성찰해야 하며, 모든 고백을 하고 싶으면 종이에 죄를 써서 고해신부님께 읽어드려도 좋습니다’ (파디 라민, ‘돈 보스코 이야기’ 중에서)

 

요한 보스코는 1815년 8월 16일 북 이탈리아의 작은 마을 베치에서 가난한 농부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1841년 사제로 서품된 그는 ‘살레시오 수도회’를 창설했고, 한 평생 청소년 사목을 위해 많은 힘을 쏟았다. 특히 그의 ‘예방교육’ 이론은 오늘날까지도 많은 이들에게 큰 가르침을 주고 있다.

 

‘예방교육’은 신체적 처벌을 지양하고, 잘못될 상황을 배제함으로써 그들의 행동을 선도하는 조치를 말한다. 그는 ‘예방교육’과 함께 고해성사와 영성체의 중요성을 강조했으며, 청소년들에게 ‘솔직한 고해성사’를 해야 함을 당부했다.

 

청소년들을 위해서 생애를 헌신한 그는 1934년 4월 1일 교황 비오 11세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가톨릭신문, 2008년 8월 17일, 이승환 · 곽승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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