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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 12월의 순교자들: 모진 추위와 고문에도 하느님 자비에 확연히 응답한 순교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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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1-12-27 ㅣ No.2045

[성탄 특집 - 12월의 순교자들] 모진 추위와 고문에도 하느님 자비에 확연히 응답한 순교자들

 

 

조선 왕조 치하의 박해 시기 천주교인들은 서소문 밖 네거리 등 전국 곳곳에서 한겨울에도 참수형을 받고 순교했다. 사진은 2014년 8월 한국 교회를 사목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서소문 밖 네거리 성지를 순례하고 있는 모습. 가톨릭평화신문 DB.

 

 

주님 성탄 대축일이다. 하느님께서 인간을 죄로부터 구원하시기 위해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서 사람으로 태어나셨다. 이 놀라운 성탄은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자비를 확연히 드러내는 사건이다. 하느님께서는 왜 굳이 사람이 되셨을까? 자비로우신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홀로 버려두지 않으시고 우리와 함께 계시기로 작정하셨기 때문이다.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심으로써 인간은 누구나 하느님의 자비를 입을 자격을 얻게 됐고, 구원받는 인간으로 품위를 회복했다.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심으로써 인간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듯이, 자비를 입은 인간은 사람이 되신 참 하느님, 곧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고 따름으로써 구원에 화답한다. 성탄이 하느님 자비의 확연한 증거라면, ‘순교’는 하느님 자비에 대한 인간의 확연한 응답이다.

 

주님 성탄 대축일을 맞아 조선 왕조 치하 12월(양력, 음력) 순교자들의 옥살이와 순교 과정을 소개한다.

 

 

네가 천주학쟁이냐

 

“tu quis es(뚜 퀴스 에스)?”

 

유다인들이 사람이 되신 하느님이신 예수님께 “당신이 누구요?”(요한 8,25)라고 묻고, 또 빌라도 총독이 재판정에 선 주님께 “당신은 어디서 왔소?”(요한 19,9)라고 물었듯이 박해자들은 주님의 제자들에게 항상 “네가 천주학쟁이냐?”라고 신원을 확인한다.

 

체포된 순교자들은 누구 할 것 없이 맨 먼저 관장 앞으로 끌려가 이 질문을 받았다. 순교자들은 박해자들의 이 질문에 누구 할 것 없이 당당하게 “그렇소. 나는 천주학쟁이오”라고 고백했다. 그러면서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인이 된 후 희망과 기쁨으로 하느님을 만나고, 하느님과 함께하는 삶을 설명했다. 주님의 제자가 된 이후 교회 안에서 천대와 차별 없이 존중받고 사랑받아 이 세상의 삶이 천국이요, 죽은 뒤 하늘나라에서 하느님과의 영원한 삶의 마련돼 있어 기꺼이 죽기를 바란다고 증언했다.

 

관장의 1차 문초가 끝나면 순교자들은 옥으로 끌려간다. 사람이 되신 하느님께서 동굴 마구간에서 가난하게 태어나셨듯이, 순교를 기다리던 주님의 제자들은 지옥 같은 옥살이를 하면서 천상 탄일을 고대했다. 특히 한겨울 혹한의 옥살이는 더욱 혹독했다. 순교자들은 추위와 배고픔, 포졸들의 희롱과 고문, 옴과 피부병 등 각종 질병에 시달렸다.

 

 

추위와 굶주림

 

순교자들은 관솔불 하나 없는 겨울 옥에서 거적을 뒤집어쓰고 추위를 피하던 여느 죄수들보다 못한 취급을 받았다. 모든 것을 포졸들과 박해자들을 이끌고 자신들을 체포하러 온 배교자들에게 빼앗긴 순교자들은 겨울에도 여름처럼 알몸으로 지내야만 했다. 그나마 조금 남아 있는 옷을 걸치고 있던 이들도 빨아 입을 수 없었다. 순교자들은 벼룩과 이, 옴 때문에 늘 고통스러워했다.

 

굶주림은 매질 만큼 참혹했다. 아무리 건장한 사람이라도 옥에 갇혀 보름을 굶으면 뼈와 가죽만 남은 산송장이나 다름없게 된다. 옥에서 굶어 죽거나 병들어 죽으면 포졸들이 시신을 들어다가 성곽 밖에 있는 숲 속에 내다 버렸다. 그 대표적인 곳이 지금 순례지로 조성된 서울 ‘광희문 성지’이다.

 

“한 여교우가 내가 이 감옥에 들어오기 이틀 전에 역병으로 옥사했다. 세례명이 가타리나였던 그녀는 서울의 전교회장으로 1866년 병인박해 때 순교한 마르코라는 노인의 처였다. 그녀는 자기 손으로 키운 조카이자 배신자 피 바오로의 밀고로 우리와 같은 시기에 체포됐다. 형졸들은 내가 감옥에 들어오고 5~6일이 지나서야 깜빡 잊고 내버려두었던 시신을 치우러 와서는 들것에 실어 내갔다. 옥졸은 우리에게 와서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시신이라고 뼈밖에 안 남았더군. 쥐와 족제비들이 와서 다 뜯어 먹었더라고.’ 그러자 다른 이들이 덧붙였다. ‘족제비들이 그 못된 천주학쟁이들을 뜯어먹었다니, 기가 막힌 일이면서도 참으로 지당한 일일세.’ 그때 신자들은 불쌍한 고인을 위해 기도를 바치면서 저마다 자기도 곧 똑같은 길을 가게 될 것으로 생각했을 것이다.”(리델 주교, 「나의 서울 감옥 생활 1878」 중에서)

 

 

무자비한 고문과 교수형

 

낮엔 순교자들에게 고문이 기다리고 있었다. 다른 신자들을 밀고하고 배교하도록 고문이 자행됐다. 순교자들은 팔다리가 비틀리고, 공중에 매달리기도 하고, 곤장을 맞고, 달군 인두로 화상을 입기도 했다. 1800년 1월 9일 해미에서 순교한 복자 인언민(마르티노)는 혹독한 매질을 당한 데 이어 포졸들이 내리친 큰 돌에 턱이 떨어져 나가고 갈비뼈가 부서져 순교했다.

 

문초를 받고 옥으로 돌아온 신자들은 또다시 옥리들에게 심한 매질을 당했다. 이들은 몽둥이 끝에 바늘 모양의 뾰족한 쇠침을 박아 신자들을 찌르거나 매질을 했다. “한번은 한 신자가 고열에 시달리다가 물을 좀 달라고 청한 적이 있었다. 그러자 그들은 ‘그래, 우리가 물을 주지’ 하며 쇠침을 박은 몽둥이로 그의 가슴을 죽도록 팼다. 결국, 이 불쌍한 신자는 두 시간 후에 숨을 거두고 말았다.”(리델 주교, 「나의 서울 감옥 생활 1878」 중에서)

 

옥에서 가장 빈번히 자행된 처형은 바로 ‘교살’, 곧 ‘교수형’이었다. 옥리들은 관장의 명령이 떨어지면 무자비하게 옥에 갇힌 천주교인들의 목에 밧줄을 매달았다. 그들은 감옥이 신자들로 가득 차면 빈자리를 만들기 위해 매일 많은 이들을 교살했다. 리델 주교를 비롯한 옥에 갇혔던 많은 신자의 증언으로는 옥리들은 웃으면서 형을 집행했다. 신자들의 가죽을 벗겨내고, 팔다리를 부러뜨리면서, 고통스러워하는 이들의 비명을 희롱하고, 상스러운 농담을 퍼부으면서 잔인하게 목을 매달았다.

 

 

얼어 죽다

 

복자 원시장(베드로)은 12월의 순교자 중에 가장 잔혹한 방법으로 처형된 이다. 충청도 홍주 출신인 그는 ‘호랑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성격이 사나웠다. 그런 그가 50대 중반인 1788년께 천주교에 입교했다. 1년여간 집을 떠나 천주교 교리를 공부한 그는 비록 세례를 받지 못했지만, 기도생활에 전념하면서 자신의 재산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눠주고, 전교에 힘썼다. 이 때문에 그의 이름이 홍주 관장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1791년 신유박해가 일어나자 원시장은 곧바로 체포됐다.

 

원시장은 치도곤을 70대나 맞고도 배교하지 않고 신앙을 증거했다. 그는 여러 달을 옥에 갇혀 있는 동안 관장에게 자주 끌려가 배교를 강요당하고, 형벌을 받았다. 그는 그 와중에도 포졸과 옥리들에게 전교하기를 그치지 않았다. 이러한 일이 옥 밖으로까지 알려지자 어느 날 한 교우가 그를 만나러 옥으로 찾아와 원시장에게 ‘베드로’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주었다.

 

사형 판결이 나자 관장은 원시장이 죽을 때까지 매질하도록 했다. 뼈가 드러날 정도로 치도곤을 맞아도 원시장의 숨이 쉽게 끊기지 않자 관장은 밤에 밖에 내놓아 물을 퍼부어 얼려 죽이라고 명령했다. 겨우 숨만 붙어 있던 원시장은 밧줄로 묶인 채 한겨울 밤중에 온몸에 물을 뒤집어썼다. 물은 이내 얼음으로 변했다. 기록으로 얼어서 순교한 이는 원시장이 유일하다. 하지만 해미에서도 천주교인에게 얼려 죽이는 처형 방법을 사용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참수

 

한겨울에도 서울 서소문 밖 네거리와 당고개, 전주 숲정이, 대구 관덕정 등 전국에서 천주교인들이 참수형으로 순교했다. 이들 중 대표적인 인물이 이순이ㆍ유중성 동정부부와 최양업 신부의 어머니 이성례, 대구대교구 제2 수호성인인 이윤일이다. 얼어붙은 땅을 녹인 뜨거운 순교자들의 피는 이 땅 그리스도인의 씨앗이 되기에 충분했다.

 

[가톨릭평화신문, 2021년 12월 25일, 리길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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