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5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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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교리

교리문답 해설 (11): 인간의 죽음과 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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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1999-05-06 ㅣ No.23

제 9 장  인간의 죽음과 후세

 

 

  사람은 오래 살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죽지 않으려고 노력 많이 합니다. 우스운 소리로 세상 3대 거짓말 가운데 한 가지로 ’노인이 이제는 죽어야지!’한다는 말을 꼽겠습니까?  여러분에게 제가 설명하는 교리의 내용은 의학적인 지식이나, 철학적인 판단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신앙에 대한 요소를 간략히 이야기하는 것뿐입니다.     

 

제 1 절  죽음

358-97. 사람의 죽음이란 도대체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 <답> 사람의 죽음이란 영혼과 육신이 서로 갈림을 말합니다.

358-98. 사람이 죽으면 영혼도 죽습니까? : <답> 사람이 죽어도 그 영혼은 죽지 않고, 그 행실대로 상이나 벌을 받습니다.

358-99. 죽음에 대해서 우리는 가끔 무엇을 생각해야 합니까? : <답> 죽음에 대해서 우리가 가끔 생각해야 할 것은 곧 죽음은 죄의 벌이고, 영원한 복락과 징벌이 죽는 순간에서부터 시작되고, 죽을 때가 일정하지 아니하여 항상 준비하고 있어야 할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358-100. 죽은 후 그 상이나 벌을 누가 결정합니까? : <답> 죽은 후 그 상이나 벌을 천주께서 심판으로 결정하십니다.

 

  죽음이란, 육체와 영혼이 분리되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육체를 다스리는 것을 가리켜 정신이라고 한다면, 그 정신이 떠나는 것을 죽음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 자체가 사람이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생물학적으로 말하면, 난자와 정자가 합쳐지는 것이라고 하는데, 그 어느 곳에 정신이 위치하는지 우리가 알 수 있는 재간은 없습니다. 다만, 그 생명체가 이 세상에 나온 다음에 행동을 보면서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뿐입니다.

 

  육체의 활동이 정지되면, 육체는 소멸의 길로 갑니다. 그러나 그 육체에서 분리된 영혼은 죽지 않는다는 것이 교회의 가르침입니다.  그 죽음에 대한 교회의 전통적 가르침이 99항의 내용입니다. 죽음을 벌이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은 것이 우리의 기본 감정이기는 하지만, 다른 설명이 충분한 것은 아닙니다. 다르게 굳이 말하고 싶다면, 죽음이 삶의 완성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 완성의 모습이 무엇을 이루는지 우리가 알지는 못합니다.

 

   죽음 이후에 다룰 내용은 심판에 대한 내용입니다.

 

제 2 절 사심판

358-101. 심판은 몇 가지가 있습니까? : <답> 심판은 두 가지가 있으니 사심판과 공심판입니다.

358-102. 사심판은 무엇입니까? : <답> 사심판은 사람이 죽은 후, 육신을 떠난 영혼이 천주대전에서 혼자 자기 일생에 대하여 받는 것입니다.

358-103. 사심판의 판결은 어떠합니까? : <답> 사심판의 판결은 사람에 따라 다를 것입니다.  은총의 상태에서 있어서 아무런 보속할 것이 없는 이는 바로 천당에 오르고, 대죄 중에 있는 자는 바로 지옥에 내려가고, 소죄나 혹은 보속할 죄벌이 남아있는 자는 연옥으로 갈 것입니다.

 

  심판을 좋아할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필요합니다. 이 심판은 영혼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육체와 영혼이 분리되고, 죽지 않는 영혼은 하느님께로 올라가 육체를 제대로 다스렸는지, 육체와 더불어 좋은 결과를 맺으려고 노력했는지 그 결과에 따라 상이나 벌을 받는다는 것이 교회의 신앙입니다.  간단하게 성구로 표현하면, 상선(上善)벌악(罰惡)이라고 합니다.

 

  상선벌악을 자세히 설명할 때 등장하는 것이 사람이 체험하지 못한 천당(=천국)과 지옥 그리고 연옥이라는 개념입니다.  어느 영혼에게 천국에 갈 수 있는지, 지옥으로 가야하는지 연옥으로 갈 수밖에 없는지 하는 것은 살아있는 우리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습니다.  다만 인간세상에서 흔히 통하는 생각대로 선악을 판단할 수 있고 그 선악이 영혼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이고, 그 영향에 따라서 우리가 체험하지 못한 천당과 지옥과 연옥으로 가야 할 길이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천당과 지옥과 연옥은 사람이 체험할 수 있는 수준을 넘는 교회에서 정한 개념입니다. 먼저 교회에서 정한 개념을 함께 읽겠습니다.

358-104. 천당은 무엇입니까? : <답> 천당은 천사와 성인 성녀들이 천주를 모시고 완전한 복락을 무한히 누리는 곳입니다.

358-105. 지옥은 무엇입니까? : <답> 지옥은 마귀와 악인들이 혹독한 형벌을 끝없이 당하는 곳입니다.

358-106. 연옥은 무엇입니까?:<답> 연옥은 세상에서 보속을 다하지 못하고 떠난 이들이 천당에 들어가기까지 단련을 받는 곳입니다.

 

  먼저 여러분이 보실 수 비디오 한편을 소개하겠습니다.  연작(連作)으로 된 3개중의 한 가지인 what dreams may come (천국보다 아름다운)입니다. 거기에서 명확하게 천당과 지옥, 연옥이라는 명확한 개념이 나오지는 않지만 우리가 느껴볼 수는 있습니다.  내가 지상에 살면서 상상하던 좋고 아름다운 후세의 모습을 바로 천당으로 그립니다.  지옥과 연옥이라는 곳을 개인에게 주어진 공간도 좁고, 주변의 모든 색이 회색이나 검은색 일변도입니다. 이것이 체험하지 못한 곳을 표현한 한 가지 모습일 것입니다.  

 

  천국은 이 지상에서 영혼이 지냈던 결과에 따라 하느님과 함께 살 수 있는 곳입니다. 신앙인으로 바랄 수 있는 최고의 장소가 바로 그곳입니다. 반면 지옥은 신앙인으로 살았다고 하더라도 하느님과 함께 할 가능성이 전혀 없는 곳이 바로 지옥입니다.  남은 한 가지 연옥은 지금의 모습은 하느님과 함께 할 수 없는 곳이라서 지옥과 비슷하지만, 남아있던 보속을 다 치루고 난다면 천당으로 옮겨갈 수 있는 장소입니다.  우리가 사도신경에서 함께 기도하는 ’저승(=옛-고성소)’과 개념이 다릅니다.  저승은 죽은 자들이 모여있던 곳, 예수님의 부활을 간절하게 기다리던 선한 영혼들이 모여 있던 곳으로 부를 수 있습니다.

 

  성서에 나오는 천당의 몇 가지 모습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성서에는 ’천당’이라는 용어가 나오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천당 또는 천국을 상징하는 묘사는 몇 가지 있습니다.  그 첫 번째가 하느님께서 처음으로 창조하신 낙원입니다. 범죄로 인하여 초창기의 인류가 그것을 잃어버린 후에, 실낙원(失樂園)이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세상의 모든 동물과 식물이 얽혀있어도 아무런 위협과 해악이 되지 않았던 세상이 바로 낙원이요, 천당입니다.  

 

  두 번째로 말씀드릴 수 있는 천국의 모습은 이사야 예언서 11장의 말씀입니다. 그 부분의 제목은 ’장차 올 평화스런 왕국’ 또는 ’메시아 왕국’으로 구별합니다. 이 부분은 신분에 따라 대우가 달라지지 않고, 잔인한 기운은 사라지고, 늑대와 새끼양, 표범과 수염소, 새끼사자와 송아지, 암소와 곰, 젖먹이와 살모사가 서로 해가 되지 않고 어울리는 평화의 세상을 전해줍니다.  이것이 성서에 나오는 하느님의 나라이고, 이것이 우리가 만들어야 할 하느님의 나라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참조로 한 가지 더 말씀드리면, 성서에는 지옥의 모습도 나옵니다. 물론 지옥이라는 용어가 나오지는 않습니다. 루가 복음서 16장의 비유이야기입니다. 제목은 ’부자와 라자로’ 이야기로 되어 있습니다.  지상에서 부귀영화를 다 누리며 다른 사람의 아픔은 아랑곳하지 않았던 부자가 하는 소리 "아브라함 할아버지, 저를 불쌍히 보시고 라자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으로 물을 찍어 제 혀를 축이게 해 주십시오. 저는 이 불꽃 속에서 심한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그 다음의 한 가지 더 참조할 것은 지옥과 천국 사이에 통교가 있을 수 없다는 소리입니다. 아브라함 할아버지의 말씀입니다. "너희와 우리 사이에는 큰 구렁텅이가 가로놓여 있어서 여기에서 너희에게 건너가려해도 건너가지 못하고 거기에서 우리에게 건너오지도 못한다"는 것입니다.

 

 

  다음은 한번 죽었던 육신의 부활과 공심판에 관한 것입니다. 육신의 부활에 관한 내용은 사도신경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먼저 읽겠습니다.   

 

제 6 절 육신의 부활

358-107. 죽은 모든 사람들이 다시 살아나게 됩니까? : <답> 죽은 모든 사람들이 다시 살아나는데, 천지가 마칠 때에 천주의 전능으로 본 영혼과 육신이 다시 결합하여 부활한 후 공심판을 받습니다.

358-108. 부활한 육신은 어떠할 것입니까? : <답> 부활한 육신은 모두 다시는 죽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이지만, 간선(揀選-간택하여 뽑음)자의 육신은 그리스도의 육신을 닮아 네 가지 특은을 입어 빛나고 아름다울 것이고, 악인들의 육신은 추악하고 흉칙할 것입니다.

358-109. 영화로이 부활한 육신의 네 가지 특은은 무엇입니까? : <답> 영화로이 부활한 육신의 네 가지 특은은 상(傷)을 받지 않음과 빛남과 빠름과 무엇이나 관통하는 사무침입니다.

 

  심판에는 두 가지의 내용이 있음을 위에서 말했습니다.  각각의 생명이 다했을 때, 개인에게 주어지는 심판으로 사심판, 그 사심판의 내용을 천사들과 만인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선포하시는 내용이 바로 공심판입니다.  다시 부활하여 영광스럽게 된 영혼들에게 주어지는 특권으로 언급하는 네 가지 사항, ’상처받지 않음. 빛남, 빠름, 사무침’은 앞서 말씀드린 영화 ’천국보다 아름다운’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다음은 공심판에 대한 교회의 선언입니다.  두 가지 항을 읽어보겠습니다.

 

제 7 절 공심판

358-110. 공심판은 무엇입니까? : <답> 공심판은 세상이 마친 후, 모든 육신이 부활한 다음에 예수께서 내려오시어 천사들과 만민 앞에서 각 사람의 사심판의 판결을 공포하시는 것입니다.

358-111. 공심판의 판결은 어떠할 것입니까? : <답> 공심판의 판결은, 예수께서 의인에게 "내 아버지의 축복을 받은 자들아,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한 나라를 차지하라"하시고, 악인들에게는 "저주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악신을 위하여 예비한 영원한 불로 가라"하실 것입니다.

 

  신약성서 마태오 복음 25장에는 이 공심판을 연상시키는 내용이 나옵니다. 얼마전의 교리에서도 제가 언급했습니다만, 인류의 구원을 이루신 사람의 아들이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천사들을 거느리고 와서 민족들을 모아놓고 양과 염소를 가르듯이 심판하시는 내용입니다.  ’양은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갈라놓듯이 선과 악을 행했던 사람들을 모아놓고 당신의 최후 판결을 거행하는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축복받는 사람들로 머물 수 있게 될지, 아니면 그렇지 못하게 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까지 살았고, 앞으로 우리가 살아갈 모습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생각할 수는 있습니다.  세상일에 원인없는 결과는 없습니다. 하느님을 가리켜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이 세상의 구원을 바라시는 분이라고 생각하더라도 우리가 삶의 모습에 대하여 적당한 책임의식을 갖지 않는다면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에 만족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제까지 가톨릭 교회의 믿음에 대한 사항을 111가지의 항목으로 자세하게 나누어서 살폈습니다.  이런 내용들이 가톨릭 교회의 믿음을 구성하는 요소입니다.  다음시간부터 하게 될 ’지킬 계명과 은총을 얻는 방법’은 우리가 ’믿을 교리’를 이 세상에서 어떻게 실천했으면 좋겠는지 그 적용방법을 설명합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내용으로 뭔가 허전하고 뭔가 부족하게 느끼신다면, ’천주교의 교리를 자세히 설명하는 교리서와 성서’를 가까이 두고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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