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0일 (금)
(백) 부활 제6주간 금요일 그 기쁨을 아무도 너희에게서 빼앗지 못할 것이다.

성인ㅣ순교자ㅣ성지

[성지] 이스라엘7: 베들레헴의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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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2-07-22 ㅣ No.1041

[이스라엘 성지 길라잡이] 베들레헴의


- 베들레헴의 예수 성탄 성당 내부 14각 예수님 탄생 별.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14대, 다윗부터 바빌론 유배까지 14대, 그리고 예수님 시대까지 14대를 상징한다.


12월 24일, 이스라엘의 비 내리는 추운 겨울밤이 되면, 마구간에 누운 초라한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오신 구세주를 묵상해 보게 된다.

필자도 성탄 전야를 베들레헴 야외에서 보낸 적이 있었다. 그날 밤을 새며 뼛속까지 느꼈던 차가움의 기억은 지금도 가시지 않는 짜릿한 아픔으로 남아있다.

내 한 몸을 가누기도 힘겨웠던 차디찬 베들레헴, 여관을 돌며 산모가 묵을 방을 애원했던 요셉의 안타까움은, 따스함이 지독히도 그리웠던 베들레헴의 차가운 추억을 상기시킨다.

팔레스타인 자치 지구에 위치한 베들레헴의 예수 성탄 성당은 세상에서 가장 유구한 역사를 가진 성당 가운데 하나로 1,500여 년의 세월을 견디어냈다. 헬레나 성녀가 제일 먼저 지었다가 무너지고 난 뒤, 현재의 모습으로 재건된 것은 서기 6세기 유스티니아누스 황제 시대였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예수 성탄 성당에는 전 세계 신자들의 순례 행렬이 끊이지 않는다. 고대 성당의 모습에서 바뀐 것이 있다면, 아랍 무슬림들이 거룩한 장소에 말을 타고 들어오는 것을 막으려고 문을 조그맣게 줄였다는 것이다.

들어가는 사람마다 입구에서 모두 몸을 숙여야 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 문을 ‘겸손의 문’이라 부른다.

예수님이 태어나신 베들레헴은 히브리어로 ??? ???(Beit Lechem), ‘빵 집’, ‘빵의 동네’를 뜻하고, 고대 히브리어와 아랍어에 기초하여 재해석하면 ‘고기의 동네’이다. Beit는 ‘동네’ 또는 ‘고기’를 뜻하기 때문이다.

요한 복음 6장 22절 “생명의 빵”이신 예수님의 탄생지가 ‘빵의 동네’라는 것과, ‘고기의 고장’이라 불릴 정도로 가축을 많이 키웠던 베들레헴에서 착하신 목자 예수님이 탄생하셨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베들레헴은 워낙 유목이 흔한 곳이었기 때문에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제일 먼저 접한 사람들도 목동들이다. 그들은 한밤중까지 양들을 돌보다가 천사의 계시를 받고 베들레헴으로 달려가 주님을 경배했다고 한다(루카 2,8-20).

목동들이 계시를 받았던 장소를 ‘목동들의 들판’이라 부르고, 현재 프란치스코수도회에서 관리하고 있다. 현지 지명으로 벳자후르(Beit Sahour)라 부르는 이 성당은 베들레헴에서 동쪽으로 약 2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곳이다(117쪽 사진).

그러나 베들레헴에서는 목축뿐 아니라 농경도 어느 정도는 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베들레헴을 배경으로 쓴 룻기를 보면 모압 여자 룻이 보아즈의 밭에서 이삭을 줍다가 그의 아내가 되었고, 나중에 다윗 왕의 계보를 형성하는 영광을 안았다.

그리고 다윗이 그곳에서 태어나 왕 위에 오르기 전까지 목동 일을 했었던 만큼, 베들레헴은 ‘다윗 고을’이라 불린다(루카 2,11).

반면, 마태오 복음 2장 1절에는 동방박사들의 방문과 경배에 대한 내용이 있다. 성경에서 ‘동방’은 이스라엘에서 동쪽을 뜻하기 때문에 메소포타미아 지방, 현재 이라크 방향이다. 동방박사는 영어로 magi라 하고 magic이라는 단어와도 관련이 있다. 동방박사들은 보통 페르시아 사람들로 추정하는데, 별의 움직임을 읽고 예언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고 한다.

흔히 세 명의 동방박사라고 알고 있지만, 마태오 복음은 몇 명인지 기록하지 않았다. 전승마다 달라서 열두 명이라 보기도 하고 다양하지만, 보통 세 명이라 생각해 온 것은 동방박사들이 아기 예수님께 바친 선물이 몰약, 황금, 유향 세 가지였기 때문이다.

이 동방박사들은 베들레헴의 별을 보면서 따라와 구유에 계신 아기 예수님께 경배했고, 그래서 예수 성탄 성당 안에는 탄생 제단과 더불어 구유 제단이 함께 있다. 이 구유는 한밤중까지 양을 치던 목동들이 달려와 경배를 드렸던 곳이기도 하다.

동방박사들은 ‘동방에서 온 왕’이라고도 불렸는데, 왕들이 와서 메시아를 경배한다고 기록된 이사야서 60장 3절, “민족들이 너의 빛을 향하여, 임금들이 떠오르는 너의 광명을 향하여 오리라.”와 시편 72편 10절, “타르시스와 섬나라 임금들이 예물을 가져오고, 세바와 스바의 임금들이 조공을 바치게 하소서.”라는 말씀에 따라 동방박사를 재해석한 결과이다. 초기 신자들은 마태오 복음을 이해할 때 구약성경을 기준으로 삼았기 때문에 동방박사들을 왕으로 높였다고 한다.

2000년이 훨씬 지난 지금도, 별을 보고 따라 온 고대의 동방박사들과 같이, 저마다 가슴에 새겨진 베들레헴의 별을 따라 이곳까지 방문하는 순례객들은 복잡한 인파에 치이고 밀리면서 14각 탄생 별 제단에 엎드려 경배한다.



그리고 짧은 시간이나마 나의 몸을 낮추고 제단 앞에 무릎을 꿇을 때, 가장 겸손한 모습으로 세상에 오시어 가장 낮은 모습으로 당신을 내어 놓으신 구세주의 모습을 그려본다. 초라한 마구간에서 소박한 모습으로 태어나 전 세계를 비춘 스텔라, 베들레헴의 별.

- 베들레헴의 예수 성탄 성당 내부 구유 제단.


지금은 유다인과 아랍인들의 오랜 갈등 끝에 베들레헴과 예루살렘을 나누어 가두는 분리장벽이 세워졌고 베들레헴은 새장 안의 새처럼 홀로 갇혀버렸지만, 악을 악으로 갚지 않고 얼어붙은 인간의 마음을 빛으로 녹이며 세상에 오신 아기 예수님의 탄생은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화려함이나 권력이 아닌 소박한 아름다움을 별처럼 선사하신 그리스도 탄생의 의미 속에, 스스로를 겸허히 낮추고 서로가 서로를 받아들일 때 진정 하늘이 열리는 거룩한 빛의 탄생을 다시 한번 볼 수 있으리라 묵상해 본다.

* 김명숙 소피아 - 부산교구 우정본당 신자로 이스라엘에서 성지순례 안내자로 일하며 예루살렘 히브리대학교 구약학 석사를 마치고, 박사학위 취득을 앞두고 있다.

[경향잡지, 2012년 7월호, 글 · 사진 김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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