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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교리

교회 안 상징 읽기: 바다 생물 샌드달러에서 읽는 상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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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3-09-05 ㅣ No.4295

[교회 안 상징 읽기] 바다 생물 ‘샌드달러’에서 읽는 상징성

 

 

파도에 휩쓸려 백사장으로 밀려온 예쁜 조가비 하나에 문득 눈길이 갈 때가 있다. 그리고 그러한 조가비처럼, 비록 조가비는 아니더라도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바다 생물 하나가 있다. 그 주인공은 ‘샌드달러(sand dollar)’인데, 적지 않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생물의 잔해를 보면서 의미 심오한 몇 가지 상징성들을 읽어냈고,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한 시인은 이 상징성을 시 한 편으로 소개했다. ‘샌드달러의 전설’이란 시다.

 

살아있는 샌드달러의 모습

 

 

어느 무명 시인의 시

 

이 보잘것없는 껍데기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죽음에 대해

들려주고 싶은 아주 작은 이야기를

나는 찾아낼 수 있지.

 

이 껍데기를 자세히 들여다보노라면

거기에서 못에 뚫린 구멍 네 개와

로마 병사의 창이 만든 다섯 번째 구멍을

너도 찾아낼 수 있다는 걸 알게 될 거야.

 

껍데기 한쪽에는 주님 부활을 상징하는 백합이 있지

그리고 그 한복판엔 주님 성탄의 별도 있는데

그건 목동들에게 나타나

멀리서부터 그들을 안내한 별이란다.

 

다른 쪽에 새겨져 있는 건

성탄절의 꽃 포인세티아

아기 예수님의 탄일을, 즐거운 성탄 시기를 떠올리게 한단다.

 

이제 그 껍데기를 깨뜨려 열어 보렴

그리고 거기에 대기하고 있던

하얀 비둘기들을 날려 보내

선의와 평화를 전파하게 하렴.

 

이 작고도 단순한 상징물은

세상 끝날까지 기쁜 소식을 전하도록

그리스도께서 도움을 주시려고

너와 내게 남기신 것이란다.

 

시에서 소개하는 이 바다 생물 샌드달러는 극피동물이다. 극피동물이란 석회질의 작은 판들로 이루어진 몸체에 가시처럼 생긴 돌기들이 돋아있는 종류의 바다 생물들을 말하는데, 불가사리, 성게, 해삼 따위가 이에 속한다.

 

샌드달러는 태평양, 대서양, 카리브해 일대의 깊지 않으며 모래 또는 진흙이 많은 연안에서 해저에 서식하는 성게의 일종이다. 샌드달러의 몸체는 살아 있을 때는 색이 적갈색에서 짙은 보라색으로 수시로 바뀌고, 거기에 돋아있는 작은 돌기들은 유연하다. 그런데 정작 사람들은 이 생물을 살아있는 모습보다 죽은 뒤에 마르면서 하얗게 탈색되고 석회화해서 단단해진 잔해의 모습으로 떠올린다. 둥글고 납작한, 지름 7~10cm 정도 크기의 원판처럼 생긴 잔해가 오히려 친근하면서도 신기하게 다가오기 때문일 것이다.

 

샌드달러라는 이름은 그 잔해의 생김새 때문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죽어서 흰색으로 탈색되며 단단해진 잔해가 예전에 미국과 스페인에서 사용되던 주화들과 비슷하게 생겼기 때문이란다. 그런가 하면 둥글납작한 모양이 어찌 보면 비스킷처럼 생겼기에 지역에 따라서는 케이크 성게, 바다 비스킷, 똑딱이단추 비스킷, 바다 쿠키, 팬지 조개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참고삼아 말하자면, 샌드달러와 비슷한 외관과 특징을 지닌 바다 생물이 우리말로는 ‘연잎성게’라고 불리는데, 이 또한 그 생김새에서 연상되는 이름을 붙인 것일 터다. 사실, 일반적인 연의 크고 널찍한 잎이 아니라 수련의 작고 앙증맞은 잎을 연상하면 사뭇 그럴싸한 이름이라 여겨진다.

 

 

샌드달러가 보여주는 상징성

 

백합 모양의 무늬 – 주님 부활: 샌드달러의 몸체의 윗면에는 백합 모양의 무늬가 있다. 이 무늬가 드러나 보이는 곳은 원판 모양의 몸체에 돌기처럼 돋아있는 관족(管足, 몸 표면에 돌출해 있는 가느다란 대롱 모양의 기관)들이 모여서 도열해 있는 부위다. 이 부위를 보대(步帶)라고 한다. 샌드달러는 보대의 관족들을 이용해서 해저에서 이동하고, 먹이를 먹고, 숨을 쉰다. 샌드달러가 죽으면 몸체는 바닷가로 떠밀려 나와서 마르고 석회화하는데, 이때 다른 부위는 희미해지거나 없어지지만, 꽃무늬만큼은 선명하게 남는다. 이 무늬를 보고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은 주 그리스도의 부활을 상징하는 백합을 떠올렸다.

 

별 모양의 무늬 – 주님 성탄: 백합 모양 무늬의 중앙부에는 또한 별 모양의 무늬가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무늬를 보며 베들레헴의 별, 곧 저 옛날 아기 예수님이 태어나시던 때 베들레헴의 마구간을 찾아가던 목동들과 동방박사들을 안내한 별을 생각했다.

 

다섯 개의 구멍 – 주님 수난: 한편, 백합 무늬의 가장자리로는 기름한 구멍들 다섯 개가 뚫려 있다. 네 개는 좌우 대칭을 이루고, 한 개는 그 가운데에 있다. 이 구멍들은 루뉼(lunule)이라고 하는데, 샌드달러는 루뉼을 공기와 영양소들이 녹아 있는 바닷물을 몸체 안으로 들여오고 밖으로 내보내는 통로로 이용한다. 루뉼은 영양소들이나 퇴적물을 걸러내는 체와 같은 역할도 한다. 루뉼이 이런 역할들을 하기에 샌드달러는 해저에서 살아갈 수 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은 이 구멍들을 보면서 그리스도의 수난 장면을 연상했다. 말하자면 구멍 네 개는 주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 그분의 손과 발에 생긴 거룩한 상처들을 나타내고, 나머지 한 개는 로마 병사의 창에 찔려 생긴 옆구리(성심)의 상처를 나타낸다는 것이다.

 

포인세티아 – 주님 성탄: 샌드달러의 몸체를 뒤집어서 아랫면을 보면, 거기에는 주님의 성탄을 상징하는 꽃인 포인세티아의 윤곽이 보인다.

 

비둘기 다섯 마리 – 기쁜 소식을 전할 사명: 샌드달러의 마른 잔해를 흔들면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 듯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샌드달러의 몸체가 마르고 석회화하면서 그 안에 있던 다른 장기들은 없어지는데 먹이를 섭취하는 기능을 하던 일종의 턱뼈 조직들은 고스란히 남는다. 그래서 마른 샌드달러의 몸체를 부서뜨리면 그 안에 남아 있던 턱뼈 잔해 다섯 개가 나타난다. 이것들은 마치 하얀 나비 또는 하얀 비둘기처럼 보이는데, 그리스도인들은 이것들이 성자 하느님께서 인간으로 태어나시면서 가져오신 기쁜 소식을, 곧 하느님의 선의와 평화를 전달하기 위해 그 안에서 대기하고 있던 비둘기들이라고 보았다. 그러니 이제 우리는 이 비둘기들을 세상 곳곳으로 날려 보내 기쁜 소식을 널리 전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3년 9월호, 이석규 베드로(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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