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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 이스라엘: 복음의 길을 가다 (중) 예수의 가르침, 인간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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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2-08-19 ㅣ No.1048

[복음의 길을 가다] (중) 예수의 가르침, 인간의 길

밀밭과 들꽃 가득한 길 따라 예수 가르침 되살아나



- 광활하게 펼쳐져 있는 밀밭과 멀리 그 뒤로 보이는 히틴의 뿔.
 

1. 텔 고벨을 지난 '복음의 길'은 야트막한 등성을 타고 북쪽으로 이어진다. 텔 고벨에서 6km 남짓한 지점에 이르니 예수께서 혼인잔치에서 첫 기적을 행하셨다는 카나로 향하는 가지길이 왼쪽으로 나 있다. 안내 표석을 따라 카나로 발걸음을 옮기고 싶지만 갈 길이 먼 탓에 마음만 카나로 향한다.

 

잠시 후 시야가 탁 트이고 드넓은 계곡이 눈앞에 펼쳐진다. 맞은 편 산 앞자락에 있는 마을 이름을 딴 '투란' 계곡이다. 동서로 길게 뻗은 계곡을 따라 77번 국도가 달린다. 지중해 연안 카이사리아에서 갈릴래아 호숫가 도시 티베리아스로 이어지는 도로다. 사실 투란 계곡은 고대부터 서쪽으로는 멀리 이집트로 연결되고 동쪽으로는 갈릴래아 호수 북단을 타고 시리아와 메소포타미아로 이어지는 비아 마리스(Via maris, 바닷길)의 일부였다.
 
비아 마리스는 동서 무역의 통로였지만 또한 침략자들의 길이기도 했다. 이 길을 통해 숱한 정복자들이 이스라엘을 짓밟았다. 앗시리아(B.C. 8세기), 바빌로니아(B.C. 6세기), 페르시아(B.C. 6~4세기), 알렉산더 대왕(B.C. 4세기), 그리고 로마 제국(B.C. 1세기)까지…. 예수 시대에 이스라엘은 여전히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아르벨 산 절벽 꼭대기에서 내려다 본 갈릴래아 호수 부근.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쓰라린 과거를 되새기는 민족, 역사의 교훈을 잊지 않는 민족이다. 그렇다면 예수께서도 이 길을 다니실 때 피비린내 나는 전쟁의 역사, 그 역사의 비극을 떠올리셨을 것이다. 예수께서는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갑자기 저 계곡 아래에서 수많은 병거와 말발굽 소리가 귀청을 따갑게 울리는 듯하다.

 

2. 복음의 길은 투란 골짜기로 내려와 77번 국도와 나란히 동쪽으로 계속 이어지다가 국도 아래를 통과해 북쪽으로 꺾어진다. 한 시간 가량 걸으니 광활한 밀밭이 펼쳐지고 그 뒤 멀리에 양쪽 모서리 끝이 뿔처럼 솟아 있는 사다리꼴 모양의 지형이 솟아 있다. '히틴의 뿔'이라는 휴화산이다.
 
히틴의 뿔은 십자군 전쟁 당시 1173년 십자군이 살라딘(1137~1193)이 이끄는 이슬람 세력에 대패한 곳으로 유명하다. 히브리어로는 '카르네이 히틴'이라고 하는데 카르네이는 뿔을, 히틴은 밀을 뜻하는 '히타'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우리말로 '뿔이 있는 밀밭'이라고나 할까. 


이스라엘의 독립 항쟁과 관련된 아픈 역사의 자취를 안고 있는 아르벨 산 절벽에 있는 동굴들.

 

 

눈앞에 펼쳐진 밀밭은 17세기에 프란치스코회 수도자들이 들어와서 조성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밀밭의 뿔'(카르네이 히틴)이라는 이 일대는 예수 시대 때부터 밀밭이 있던 지역이었다. 광활한 밀밭 사잇길을 걷는다. 제자들이 안식일에 밀 이삭을 뜯었다는 복음 말씀(마르 2,23-28)이 떠오른다. 제자들을 비난하는 바리사이들에게 예수께서는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은 아니다" 하고 응대하신다. '사람이 우선'이라는 말씀이다. 나는 사람을 우선으로 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

 

밀밭을 가까이 들여다보니 밀만 있는 게 아니었다. 밀보다 더 큰 가라지들도 섞여 있다. 밀과 가라지의 비유(마태 13,24-30)가 생각난다. 서두르지 말라는, 성급하게 굴지 말고 참고 기다리라는 말씀으로 이해된다. 돌이켜보니 기다림의 미덕을 가꾸지 못해 낭패를 본 적이 어디 한두 번이었을까.
 

3. 밀밭이 끝나자 복음의 길은 구불구불 아래로 이어진다. 아르벨 계곡으로 향하는 길이다. 멀리 정면 오른쪽에 아르벨 산 절벽이 보이고 절벽 사이로 갈릴래아 호수가 모습을 어렴풋이 드러낸다. 길가에는 야생화들이 만발해 있다. 나리, 개양귀비, 그리고 이름 모를 꽃들…. 그 중에서도 이 길에는 군락을 이뤄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야생 겨자가 압권이다. 푸른 풀밭이 노란 꽃방석으로 덮인 느낌이다.

아르벨 계곡 기슭의 아르벨 샘 부근 복음의 길.

 

 

"들에 핀 나리꽃들이 어떻게 자라는지 지켜보아라.…"(마태 6,28). "하느님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마르 4,31). 꽃과 관련된 예수님 말씀들이 다시 떠오른다. 모든 걱정 근심을 털어버리고 하느님 나라와 하느님 아버지의 의로움을 먼저 찾으라는 말씀이다. 하느님 뜻을 이루고자 지금 하는 일이 비록 작고 보잘 것 없어 보이겠지만 마침내는 그 수고한 결실을 거두리라는 말씀이다. 하느님께서 섭리하신다. 그분께 맡기고 먼저 그분이 바라시는 것을 행하여라.
 
예수께서는 이렇게 이 꽃들을 보고, 공중의 새들을 보고 비유를 들어 사람들을 가르치셨다. 복음의 길을 따라 걷다 보니, 예수의 가르침은 길에 있었다. 그 가르침은 인간의 길, 인간이 걸어야 할 길이었다. 복음의 길을 따라 걷는 가운데 2000년 전 그분의 가르침이 이렇게 새록새록 살아나는구나.


4. 아르벨 계곡을 따라 7km 남짓 계속 걸어 내려오면 '엔 아르벨'이라는 작은 샘이 있다. 계곡을 따라 흐르는 건천(와디)에서 솟은 샘인 듯하다. 샘이 있고 숲이 우거져 있어 흐르는 땀을 식히고 잠시 휴식을 취하기에 적격이다.
 
오른쪽 바로 위는 깎아지른 듯한 아르벨 절벽이다. 절벽에는 군데군데 동굴들이 보인다. 슬픈 역사를 간직한 비극의 현장이다. B.C. 2세기 중엽 시리아 셀레우코스 왕조에 맞서 독립 항쟁을 벌이다 최후를 맞은 유다인들의 거점이 이곳 아르벨이었다(1마카 9,1-22 참조). 이후 로마 제국 시대 때인 기원전 40년 쯤 헤로데는 아르벨 절벽 동굴에 숨어 지내며 독립 항쟁을 하던 유다인들을 몰살시켜 버렸다. 지형이 험난해 접근이 쉽지 않자 헤로데는 동굴에 불을 질렀고, 불길을 피하기 위해 유다인들은 절벽에서 뛰어내려 장렬한 최후를 맞았다.

예수께서는 멀리서, 가까이서 이 아르벨 절벽을 보실 때마다 그 비극의 역사를 떠올리셨을 것이다. 그때 그분은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발길은 막달라 여자 마리아가 살았다는 마을 막달라로 향하지만 머릿속에서는 상념이 떠나지 않는다.
 
[평화신문, 2012년 8월 19일, 이창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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