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9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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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 프랑스 순례: 천 년의 순례길, 콩크에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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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3-05-17 ㅣ No.1099

[영원을 향하여 시간을 걷다 - 프랑스 순례] 천 년의 순례길, 콩크에 가다


- 콩크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가는 ‘르퓌의 길’ 가운데 깊은 산중에 자리잡은 중세의 작은 마을이다. 천 년 전 지어진 성녀 푸아 성당이 보인다.


예로부터 그리스도인들이 꿈꾸던 성지는 예수님이 태어나고 자라고 돌아가셨던 팔레스티나였다. 예수님이 거기서 숨 쉬었고, 그곳을 걸었고, 그곳 사람들과 함께 살았다.

마치 그곳에 가면 ‘사람 예수’를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설렘과 그리움으로 순례는 이어졌다. 그러다 이슬람 세력에 의해 성지가 정복당하고 팔레스티나 순례가 조금씩 위험해졌을 때 이베리아 반도의 ‘별이 빛나는 들판’에서 야고보 사도의 무덤이 발견되었다.

이제 유럽의 곳곳에서 사도의 무덤이 있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향하는 길이 열리고, 수백 년 동안 사람들은 각각의 이유로 길을 나서곤 했다. 프랑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프랑스의 시골 마을 콩크(Conques) 역시 순례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던 중세의 작은 마을이었다.

굽이굽이 산길을 돌고 돌아 접어든 봄날의 오후, 콩크는 장미꽃이 흐드러지고 태양이 감미롭게 발길을 감싸는 고요 그 자체였다. 고요가, 벽을 타고 오르는 넝쿨장미 꽃잎 사이에서 숨을 쉬는 마을 한복판에 오래오래 전 순례지로 향하던 이들이 찾아든 성당이 있었다. 1054년 전형적인 ‘순례길 성당’으로 지어진 이곳은 1120년경에 현재의 모습으로 완공되었다고 한다.

담백한 돌들의 단단한 침묵이 천 년의 시간을 되새김하는 듯했다. 화려한 장식이라고는 찾을 수 없는 성당 안에는 로마 박해시기에 순교했다고 전해지는 푸아 성녀(Sainte-Foy 또는 Sainte-Fides, 축일 10월 6일)의 순교사화를 그린 프레스코화만이 본래의 빛깔이 바랜 채 아늑했다.

중세 때 만들어진 유리창은 다 없어지고 1930년대에 새로 끼운 104개의 유리창은 각각 다른 문양과 두께로 만들어져, 그리로 들어오는 빛도 각각의 빛깔, 각각의 굴절을 가지고 있었다.

사실 이 성당은 어마어마한 보물로도 유명한 곳이었다. 바로 푸아 성녀의 유물함인데, 나무에 은과 금을 입힌 이 함에는 온갖 보석들이 알알이 박혀있었다. 이 유물함만 해도 놀라울 정도였는데, 그 방에는 샤를 마뉴가 기증했다는 유물함을 비롯해 1000년경 피핀(프랑크 왕국 카롤링거 왕조의 임금)의 성물부터 15세기에 쓰인 행렬용 십자가까지 어디서도 직접 보기 어려운 보물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하나같이 금은과 보석들로 장식해 그 호사스러움을 말로 다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러나 무엇보다 흥미로웠던 건 바로 그 성당 정문 팀파눔(상인방 위의 아치 안에 있는 삼각형 또는 반원형 부분)에 새겨진 지옥의 모습이었다.

어디든 성당에 그려지거나 새겨지는 그림은 그리스도교 신앙을 돕기 위한 것이었지만 콩크의 그림들은 좀 더 세밀했다. 물론 21세기에 그 그림에 놀라 착하게 살아야겠다고 작심하는 사람은 흔치 않겠지만, 중세에는 자신들의 양심을 들여다보는 거울이 되었음직한 훌륭한 교과서 같은 부조였다.

이 팀파눔에는 총 124명의 인물이 새겨져 있는데 머리가 없어진 상이 하나도 없이 잘 보존되어 왔다고 한다. 콩크가 너무 첩첩산중이어서 공격자들의 마수로부터(?) 피할 수 있었다고 하는데 정말인지는 잘 모르겠다.

 

‘최후의 심판’을 묘사한 팀파눔의 부조는 “사람의 아들이 영광에 싸여 모든 천사와 함께 오면, 자기의 영광스러운 옥좌에 앉을 것이다. 그리고 모든 민족들이 사람의 아들 앞으로 모일 터인데, 그는 목자가 양과 염소를 가르듯이 그들을 가를 것이다.”(마태 25,31-32)라는 성경 말씀을 형상화해 놓았다.





- 성당 옆 수도원 터의 기둥머리 장식. 이곳에 들어서면 푸아 성녀의 유물함을 보관한 방이 있다.


중앙의 예수님 좌우로 지옥과 천국의 모습이 표현되어 있는데, 천상 예루살렘을 밝혀주는 기름램프와 천국과 지옥문의 자물쇠와 열쇠, 푸아 성녀가 풀어주는 죄인들의 수갑, 악마가 휘두르는 무기들은 모두 당시에 사용되던 것이어서 그때의 생활상을 엿보는 데도 도움이 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지옥에 가는 걸까? 기사로 표현되는 오만, 발가벗겨진 여자가 의미하는 음욕, 수전노와 거짓말쟁이와 탐욕과 게으름…. 설명을 듣다 보니 아마도 칠죄종을 모두 묘사한 것 같았다. 2008년에는 교황청 내사원에서 ‘세계화 시대의 신(新) 칠죄종’을 발표하기도 했는데, 오랜 옛날 에바그리우스로부터 언급되어 그레고리오 1세 교황이 정리한 칠죄종은 오랫동안 죄를 성찰하는 지침이 되어왔다.

지금은 원래의 색을 거의 잃었지만 제대로 채색을 했던 당시에는 좀 더 구체적으로 다가왔을 ‘이 무시무시한 경고’ 아래 서있자니 문득 옛사람들의 신앙생활이 무척 가깝게 느껴졌다.

그런데 부조 자체는, “이런 죄에 빠지면 지옥에 가요~!”라고 한껏 엄숙하게 경계하고 있지만, 워낙 부드럽고 익살스럽게 표현되어서인지 솔직히 무섭다기보다는 웃음이 나기도 했다. 심지어 지옥의 터줏대감들인 악마들조차 장난을 치고 있었는데, 사람들을 지옥으로 끌고 갈 속셈으로, 영혼의 무게를 다는 저울을 슬쩍 누르고 있었다. 옛사람들의 해학과 풍자를 엿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 로마네스크 양식 성당의 돌기둥과 벽 가운데 20세기에 새로 끼운 유리창은 가장 단순하고 소박하지만, 가장 극적인 조화를 이루고 있다. 백 개가 넘는 유리창은 문양과 두께가 각각 달라서 창을 통해 들어오는 햇빛도 빛깔과 굴절이 다 다르다.

 


성당 앞쪽으로 난 골목의 호젓한 작은 카페에는, 하루치의 순례를 마친 순례자들이 아늑한 오후의 해그림자 아래 샌들을 벗어둔 채, 한 잔의 와인을 앞에 두고 가벼운 순간을 만끽하고 있었다.

* 이선미 로사 - 서울대교구 혜화동본당 신자. 가톨릭교리신학원 성서영성학과를 수료했다. 여러 차례 해외 성지를 순례하다 보니 가까운 성지와 우리 전통에도 눈이 뜨여 조금씩 관심을 기울이는 중이다.

[경향잡지, 2013년 5월호, 글 · 사진 이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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