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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마테오 리치와 다산 정약용 철학의 거리: 다산의 지적 배경을 통해서 본 천주실의의 쟁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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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11 ㅣ No.834

마테오 리치와 다산 정약용 철학의 거리 : 다산의 지적 배경을 통해서 본 《천주실의》의 쟁점들

 

백민정(성균관대학교 동아시아학술원 연구교수)

 

1. 마테오 리치와 다산 철학에 관한 연구

 

茶山 丁若鏞(1762~1836) 철학의 의미를 다시 성찰하는 데 있어 西學과의 문제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서학이란 서양 선교사를 통해 유입된 서양 중세사유의 총화를 의미하지만, 단순히 학문적 · 사상적 유통에 머무르지 않는다. 이것은 16세기 후반 이후 거대한 西勢東漸의 조류를 이루며 동양의 유교사회 저변에까지 영향을 미친 가장 중대한 역사적 사건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어떤 공동체나 조직도 외부와의 접촉 혹은 마찰 없이는 새로운 자기극복과 변신의 역사를 만들 수 없을 것이다. 이 점에서 서학을 위시로 한 외국사유와 문화의 충격은 중국과 조선의 유교 지식인에게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중요한 성찰의 계기를 제공했다. 어떤 사상이나 철학도 순정한 자기만의 영역을 유지할 수 없고 또한 그래서도 안 되듯이 조선 유학도 서학의 유입과 그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했으며 그 결과 심각한 지적 충격과 혼동에 휩싸이기도 했다. 수백 년 이상, 길게 보면 이천 년이 넘는 유학의 오랜 역사도 이러한 외부의 충격과 지속적인 내적 반성 없이는 존립할 수 없었을 것이다.

 

17세기 淸과의 전쟁 이후 사회를 재정비하던 과정에서 주자학은 실질적인 지배이념으로서 조선사회 저변에 확대되었다. 《성리대전》(性理大全) · 《주자대전》(朱子大全)과 같은 주자학의 기본 경전[正典], 그리고 《소학》(小學) · 《주자가례》(朱子家禮) 등이 지방 사회에 유포된 것도 이 무렵의 일이다. 주자학에 근거한 유교 사회로의 전반적 전환은 왕조 건립 후에도 수백 년 이상의 시간을 더 필요로 했다. 잘 알려져 있듯이 주자학을 통해 왕조 중흥을 도모한 송시열은 17세기 중후반 주희(朱熹) 저작을 중심으로 사상적 · 정치적 통합을 모색하며 주자학에 비판적인 모든 사유 경향을 사문난적(斯文亂敵)으로 규정하기 시작했다. 송시열은 《朱子大全箚疑》 및 《朱子語類小分》 등을 작성함으로써 자신의 대사회적인 통합의지를 학술적으로 표출했다. 그의 제자집단에서 나온 韓元震의 《朱子言論同異考》, 金昌協의 《朱子大全箚疑問目》, 18세기 말 19세기 초 金邁淳의 《朱子大全箚疑問目標補》 등도 모두 유사한 기획에 따라 송시열 사후에 작성 보완되었다. 또 英祖 시대의 문인 李宜喆도 18세기 중후반에 《朱子語類》의 오류를 고증하고 분석해서 난해한 부분에 주석을 달아 《朱子語類考文解義》를 만들었다.

 

이처럼 전쟁 이후 조선사회에는 17세기 중반부터 19세기 초까지 수많은 주자학 관련 주석서들이 우후죽순처럼 등장했다. 이런 지적 경향은 표면적으로 보면 주자학 일변도의 강고한 조선후기 사회, 즉 양난 이후 더욱 공고해진 주자학 이념의 획일성을 보여주는 사례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달리 보면 이것은 지배이념으로서의 주자학을 어떻게라도 정당화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시대상황의 복잡성을 반증하는 일이기도 하다. 이미 17세기 중반부터 주자학 외에 명말청초 陽明學, 청대 考證學, 일본 古學 등 매우 다양한 이질적 사유들이 조선에 유입되었고, 이 가운데 청을 통해 들어온 서학은 종교와 과학, 철학 등 모든 방면에서 가장 치명적인 지적 파동을 불러일으켰다. 이로 인해 주자학에 대한 사상적 거리두기는 어쩔 수 없는 불가피한 시대적 요청이 되었다. 18세기 국왕 正祖와 학자관료[士大夫]들이 장기간에 걸쳐 열띤 사상논쟁을 개진했던 점[經史講義], 다시 말해 국왕에서부터 모든 당파 지식인이 지배이념으로서의 주자학이 함축한 다양한 쟁점에 대해 심도 깊은 철학 토론을 전개했던 점 자체가 이미 시대의 변화를 징후적으로 보여준다. 몇 세기를 지나면서 유교 지식인 사이에 내면화된 주자학이 그와 동시에 이미 비평의 대상으로 변모된 상황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주자학을 비판하는 새로운 사상경향을 이단으로 지목하면서도 동시에 이질적 사유를 해석하려는 집요한 사상적 움직임도 활발히 전개되었다. 18세기를 전후한 조선의 사상계를 이단과 해석의 시대로 평가할 수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당대 동아시아 유학사상의 집대성자로 불릴 만한 다산의 철학이 가능했던 것도 이러한 사상적 질풍노도의 시대를 배경으로 했기 때문이다. 유학과 주자학을 표면에 내세운 강고한 조선사회 이면에 들끓는 사상적 논쟁과 충돌, 경합의 역사가 있었던 점에 주목하면 다산의 방대한 성과가 어떤 시대적 상황에서 가능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다산에게 영향을 미친 새로운 지적 사유 중 마테오 리치(Matteo Ricci, 1552~1610)를 중핵으로 한 서양 선교사의 저작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특히 리치의 한역서학서 《天主實義》는 다산뿐만 아니라 조선후기 수많은 지식인에게 마찬가지의 파급 효과를 가졌다.1) 자연과 인간의 동형론적 세계관을 해체하고 心性 문제를 새로운 각도에서 이해하도록 추동한 《천주실의》의 세계관은 다산이 자신의 사유를 새롭게 구성하는 중요한 버팀목이 되었다. 리치의 저작과 다산 작품 속에 나타나는 사유의 논리적 근친성에 많은 연구자들이 주목한 것은 나름의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학과 경세학을 잇는 다산 철학의 전체 구도에서 보면, 서학과 다산 철학의 관계는 그의 사유체계를 구성하는 여러 기둥 가운데 하나라고 볼 수 있다. 그것도 자기전통과 역사의 요구로부터 다산이 보기를 원했던 것, 즉 자신이 취하고자 했던 바를 서학서 독해를 통해 얻어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리치의 작품에서 다산이 영향 받은 다양한 사유의 편린을 살펴보는 작업은 일대일의 축자적 혹은 개념적 대응관계가 아니라, 다산 철학 전체 그리고 그가 몸담은 조선후기의 시대적 배경과 역사적 과제라는 시선에서 달리 평가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

 

 

2. 다산이 《천주실의》를 통해 보고 싶었던 것

 

다산이 23세 때 친척이자 초기 천주교 신자였던 李蘗과 만나 《天主實義》 · 《七極》 등에 대해 소개받고 놀랐다고 회상한 기록이 몇몇 묘지명에 잘 드러나 있다. 이 점에서 볼 때 서학서 중 특히 《천주실의》와 관련해 다산 철학을 분석한 여러 선행연구가 있었던 것은 자연스런 일이다.2) 다산의 학문선배라고 할 수 있는 星湖學派 문인 중 愼後聃이 《靈言?勺》 등을 논평한 바 있기에 《천주실의》 · 《영언여작》을 상호 비교하면서 다산의 세계관과 인성론을 분석하는가 하면, 근래에는 다산이 입수해 읽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그 내용과 표현의 유사성으로 볼 때 탐독했을 것이라고 추측되는 선교사 알레니의 《성학추술》도 다산 심성론의 유래를 밝히기 위한 중요 텍스트로 다루어졌다.3) 3장에서 후술하겠지만 알레니의 《성학추술》에서 강조된 靈明 및 嗜欲 개념은 다산 심성론에서 靈明之體로서의 마음과 嗜好로서의 본성 개념을 해명하는 데 상당히 설득력 있는 논거를 제공해준다.4) 그러나 본고의 주제는 리치와 다산 철학에 초점을 맞춘 것이므로 우선 《천주실의》에 주목할 계획이다.

 

사실 지금까지 상당수의 리치 및 다산 관련 연구는 양자 간의 결정적인 논리적 유사성을 분석하면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다산 사유의 기본 바탕이 리치의 《천주실의》를 통해 형성되었다는 점을 강조해왔다. 이런 논점에 맞서 《천주실의》를 통해서는 해명하기 어려운 유학자로서의 다산의 발상과 사유를 다산 이전 시대 조선의 지적 전통으로부터 찾으려는 시도도 있었다. 필자 역시 학위논문5)을 통해 후자의 입장에서 다산과 《천주실의》 문제를 다룬 바 있다. 그러나 이런 입장도 사상적 영향 관계에 있어 수용이냐 배제냐를 따지는 이분법적 평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지적 영향을 강조하거나 거리를 두려는 어떤 경우도 연구자의 특수한 시선이 반영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필자는 《천주실의》와 다산 사유의 유사성 문제를 다산이 이미 얻고자 했던것, 즉 다산 본인이 지적으로 찾기를 갈망했던 것만을 《천주실의》라는 외부의 필터를 통해 건져 올렸다고 생각한다. 여기에는 유교 지식인으로서 다산이 가졌던 시대의 조건, 즉 구체적인 역사적 개인으로서 그가 가진 사유 · 감성 · 생활의 전통이 전제되어 있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천주실의》 등 서학서에 대한 다산의 지적 수용과 영향을 인정하더라도 결국 그러한 연관성조차 다산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이루어진 서학에 대한 지적 반응 혹은 사상적 대응의 한 결과물로 해석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천주실의》 독해를 통해 얻어낸 다산 사유의 핵심 쟁점을 먼저 살펴보고, 이 문제에 대한 필자의 입장을 후술하겠다.

 

1) 天主 그리고 인격적 上帝

 

다산이 《천주실의》를 통해 읽어내려고 했던 가장 중요한 쟁점은 다음 두 가지 주제로 요약될 수 있다. 하나는 기존의 太極을 중핵으로 한 理氣論的 세계관에 대한 비판, 그리고 理氣 개념에 근거해서 파생된 인간의 심성론과 수양론의 추상성에 대한 거부가 그것이다. 그는 공허하고 관념적인 태극과 理 개념은 세계를 능동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철학적 도구가 되지 못한다고 보았고, 인간 마음에 내재된 仁義禮智의 본성 역시 도덕적 실천과 인격 변화에 도움을 주지 못한다고 판단했다. 이러한 다산의 지적 불만감은 특별히 예외적인 것도 아니었으니, 이미 양난 이후 상당수 지식인들이 전통 사유에 대한 현실적 불만감과 비판의식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조선후기 지식인으로서 다산이 품은 이러한 문제의식은 뜻하지 않게 리치의 대중국 포교전략에 따른 보유론적 주장들과 서로 맞아 떨어지면서, 다산으로 하여금 자신에게 필요한 지적 자양분의 일부를 자발적으로 간취하도록 만들었다.

 

그 대표적 사례 중 하나가 바로 태극 개념과 理氣論을 비판하고 인격적 상제의 존재를 강조하게 된 점이다. 이기론 비판과 상제론의 강조는 서로 맞물려 있다고 볼 수 있다. 리치는 유학의 ‘上帝’를 고심 끝에 ‘天主’라는 용어로 선택하여 설명하면서 천주야말로 만물의 근원이며 만물을 창조[造化]하는 창조주라는 점을 책의 서두에서 강조했다.6) 다산 역시 상제란 단순히 물리적인 창공의 有形한 하늘이 아니라 천지와 귀신, 인간과 만물을 만들고 주제하고 길러주는 자라는 점을 강조한다[造化天地 · 神人 · 萬物之類, 而宰制 · 安養之者].7) 또한 다산이 들고 있는 상제의 중요한 특징은 바로 靈[靈明/靈識/靈知]과 知覺을 가진 존재라는 점이다.

 

저 푸르고 푸른 유형한 하늘(蒼蒼有形之天)은 … 靈을 가진 존재인가 아니면 知覺이 없는 존재인가? (그것은) 멍하니 텅 비어 있으면서 생각하지도 따지지도 못하는가? 무릇 온 세상에서 영이 없는 존재는 (만물을) 주재할 수 없다. 따라서 한 집안의 가장이 아둔하고 어리석고 똑똑하지 못하면 집안의 만사가 다스려지지 않고, 한 고을의 수장이 아둔하고 어리석고 똑똑하지 못하면 고을 안의 만사가 다스려지지 않는다. 하물며 멍하니 텅 비어있는 저 太虛라는 하나의 도리를 천지만물을 주재하는 근본으로 생각하여 천지간의 일을 따져본다면 어찌 그것이 이루어질 수 있겠는가?8)

 

위에 있는 푸른 하늘과 밑에 있는 누런 땅은 모두 의식이 없는 사물이다. 그것은 해와 달과 산과 강과 같이 기질로 이루어진 것으로 영명한 앎[靈識]의 작용이 없는 것이다. 성인이 이치를 밝힘이 어찌 그것을 아비로 섬기고 어미로 섬기는 이치가 있겠는가? 오직 위대한 上帝만이 모양도 바탕도 없으면서 나날이 여기에 임하고, 하늘과 땅을 다스리고 만물의 할아비이자 뭇귀신의 우두머리로 우뚝하고 환하게 저 높이 임해 있다. 이에 성인은 세심한 마음으로 상제를 밝게 섬겼으니 이것이 곧 하늘제사[郊祭]가 생겨난 유래이다.9)

 

다산의 여러 경학 작품 가운데는 상제의 강림과 감시, 그리고 이에 대한 인간의 戒愼恐懼와 愼獨 공부가 여러 차례 강조되고 있다. 형체도 바탕도 없는 상제는 귀신과 같은 존재지만 이는 단순한 조화의 자취나 음양 이기의 공용이 아니며 인간이 진실한 마음으로 섬겨야 하는 존재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10) 이처럼 상제에 대한 섬김과 공경을 말하면서도 다산이 이 대목에서 부각시킨 점은 태극 및 理 개념과 달리, 인격적 존재로서의 상제가 영명성과 知覺을 지닌 존재라는 점, 이어 영명 · 지각의 능력과 힘을 통해 인간과 直通相感하는 존재라는 점, 그리고 바로 이것으로써 인간의 도덕적 삶을 감시하고 규율하는 존재라는 점이다. 이것은 이기론 비판과도 연계되지만 인간 마음, 즉 영명지체의 존재 성격과도 직결되는 문제다.

 

2) 太極 개념과 理氣論 비판

 

《周易》에서 음양오행의 근거로 설정된 태극 개념은 음양 미분 상태의 渾淪한 元氣를 가리키는 경우가 많았지만 주자학에서 理와 동급의 존재론적 원리로 간주되면서 세계를 설명하는 최상위의 원리가 되었다. 그러나 다산은 태극이란 결국 음양이 나누어지기 이전의 태초의 氣를 가리키며 사물의 바탕이 되지만 만물의 주재자는 될 수 없다고 보았다.11) 앞서 강조했듯이 태극은 靈이 없는 것으로서 지각도 없으며 威能도 없기에 이런 존재는 만물을 주재할 수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다.12) 같은 방식으로 다산은 주자학자들이 命 · 性 · 道 · 敎 등 여러 개념을 모두 一理에 귀속시켜 이해하지만 理 역시 지각도 위능도 없는 것이기에 인간의 윤리적 행동을 추동할 수 없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사람이 두려워하고 삼갈 만한 대상이 아니라고 본 것이다.13) 다산의 이와 같은 비판적 논점은 《천주실의》 중 리치의 태극 및 理 개념 비판의 논지를 거의 그대로 차용한 듯한 인상을 준다. 리치는 태극과 理 개념에 과연 靈이 있는가, 覺이 있는가를 재차 반문하며 자신이 靈覺을 갖지 못한 존재가 이 세상의 수많은 영각을 지닌 존재를 어떻게 만들 수 있겠냐며 회의를 표명했다.14) 만약 理가 영각의 기능을 갖고 있고 만물을 조화 · 생성할 수 있다고 한다면 그것을 왜 굳이 理나 태극으로 부르겠냐며 그런 능력을 갖춘 것은 오직 천주뿐임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 이로부터 理라는 것은 스스로 존재하는 구체적 사물들의 이차적인 속성[제2 실체]에 불과하다는 다음의 논의가 등장했고, 24세 때 《中庸講義》 초고를 작성할 당시의 다산도 이에 영향을 받아 氣가 자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고 理는 기에 의존하여 존재하는 부차적인 것[依附之品]임을 변형된 형태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사물의 범주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스스로 존재하는 것[자립자(自立者)]’이 있고 ‘다른 것에 의지하는 것[의뢰자(依賴者)]’이 있습니다. 다른 개체에 의뢰하지 않는 사물로서 자립적 개체로 존립할 수 있는 것, 가령 하늘과 땅, 귀신, 사람, 새와 짐승, 초목, 쇠와 돌, 四行 등이 이것입니다. 이런 것은 자립자의 범주에 속하는 것입니다. 스스로는 설 수 없는 사물로 다른 물체에 의탁하여 존립하는 것, 가령 五常, 五色, 五音, 五味, 七情 등이 이것입니다. 이런 것은 의뢰자의 범주에 속하는 것입니다. 이제 흰 말을 살펴보면, 흼(白)이라 하고 말(馬)이라고도 합니다. 말은 자립자요, 흼은 의뢰자입니다. 비록 그 흼이 없을지라도 말은 그대로 존재합니다. 만약 그 말이 없으면 필연적으로 흰색은 존립할 수 없기 때문에 (흰색이) 의뢰자가 됩니다. 두 가지 사물의 범주를 존재 형식에서 비교하면, 자립자가 의뢰자보다 앞서 있어 더 귀중하고 의뢰자는 자립자가 있고 난 뒤의 것이라서 천한 것입니다.15)

 

氣는 스스로 존재하는 사물이고 이치[理]는 다른 것에 의지하여 붙은 품목이니, 다른 것에 의지하여 붙는 것은 반드시 스스로 존재하는 것에 의지해야만 합니다. 그러므로 氣發이 있어야 곧 이런 이치[理]가 있게 됩니다. 그렇다면 氣가 發하여 이치[理]가 乘한다는 것은 괜찮지만, 이치[理]가 發하여 氣가 隨한다는 것은 不可합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이치[理]는 스스로 성립할 수 없는 것이어서 먼저 發할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未發 전에 비록 이치[理]가 먼저 있다고 해도, 發할 때는 반드시 氣가 먼저 그것[理]에 우선해야만 합니다.16)

 

사실 리치는 제1 실체로서의 구체 사물들[物]과 제2 실체인 추상적 理 개념을 비교했을 뿐 理氣 개념을 아리스토텔레스적인 경험주의적 실체론에 적용해서 비판한 것은 아니었는데, 다산은 자신이 보기를 원하는 방식대로 리치의 논거를 전통적인 주자학자들의 理氣 논쟁에 적용해서 위와 같이 正祖 앞에서 입장을 개진했다. 다산은 태극의 원래 자리를 《주역》의 태극 · 양의 · 사상에서 보이는 시초점에 관한 내용과 卦象의 문제로 한정하고,17) 理 개념도 玉石의 결[脈理], 治理 및 獄官을 理官이라 한 데서 연유한 法理 등의 뜻을 빌어 만든 글자일 뿐 古經에 본성으로 쓰인 용례는 없었다는 점을 강조했다.18) 이런 논점을 통해 다산이 강조하려고 한 것은 결국 우리가 두려워하고 삼가며 받들 대상은 인격적 상제이며 상제를 공경함으로써 仁을 행할 수 있지만 헛되이 靈과 知覺, 威能을 갖지 못한 태극과 理를 섬기면 인을 행할 수 없게 된다는 점이었다.19) 인간 마음과 직통하는 상제의 영명 · 지각을 통해 보다 실천적이고 윤리적인 인격 함양과 수양이 가능하다고 본 것을 알 수 있다.

 

3) 자연과 도덕의 분리, 인간과 동식물의 존재론적 차이

 

다산의 상제관은 추상적 理法이나 원리 대신 인격적 절대자를 상정한 것이라는 점에서 독특하지만, 한편 태극과 이기 개념을 통한 주자학의 도덕형이상학을 논파한 점에서도 사상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자연과 인간의 문제를 일원화하여 형이상학적인 도덕원리로 세계를 설명하던 기존의 사유 관행에서 벗어나 자연과 인간의 존재 원리를 상호 이질적인 것으로 이해하게 된 것이다.20) 다산이 초목과 금수, 인간의 본성을 단계적으로 엄격히 구분하면서 오직 인간만이 靈과 善을 선천적으로 갖고 태어난다고 주장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21)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그는 인간이 일월성신과 초목금수의 주인이며 상제가 세상을 감독하듯이 靈을 지닌 인간이야말로 동식물을 주관하는 특별한 존재라는 점을 상기시켰다.22) 그런데 이처럼 하늘이 인간과 동식물의 존재를 차등적으로 만들어 놓은 근거를 다산은 바로 영명성이라는 인간 마음의 선천적 능력에서 찾았다.23) 인간의 마음은 상제와도 소통할 수 있는 신묘한 능력을 갖고 있는데, 그 대표적인 능력은 바로 만물의 이치를 미루어 깨달을 수 있고 덕을 좋아하고 악을 미워할 수 있는 선천적 경향성이라고 설명한다. 다산은 이러한 인간의 도덕적 경향성을 性靈이라고 부르며 形氣와 대비해서 설명하기도 했다.

 

무릇 이 세상에서 生死를 지닌 만물 가운데는 단지 세 가지 등급이 있을 뿐이다. 草木에게는 생명이 있으나 知覺이 없고, 禽獸에게는 知覺은 있으나 영명함이 없다. 인간의 大體[心]는 생명과 지각을 가지고 있고 靈明하고 신묘한 작용[神妙之用]도 지니고 있기에, 만물을 포함하여 빠뜨림이 없고 온갖 이치를 미루어 모두 깨달을 수 있으며, 덕을 좋아하고 악을 부끄러워함이 良知에서 나오니, 이것이 바로 금수와 크게 구별되는 것이다.24)

 

성리가들은 매번 性을 理라고 여긴다. 그래서 《集注》에서 ‘人物이 생겨날 때 천지의 理를 똑같이 얻어서 性으로 삼았다’라고 말하니, 이것이 이른바 本然之性이다. 본연지성은 대소존비의 차등이 없고 다만 품수받은 형질에 따라서 淸濁偏正만이 있다. 그러므로 理가 氣에 붙어 기를 따라 같지 않게 된다. 《집주》에서 ‘인간은 그 사이에서 홀로 形氣의 바름을 얻어 약간 다르다’고 한 것도 이런 설이다. 분명 이와 같다면 인간이 금수와 다른 것이 형기에 있지 性靈에 있는 것이 아니다. 庶民은 형기를 버리고 군자만이 형기를 보존한다는 것이 어찌 맹자의 본뜻이겠는가? 형기라는 것은 체질이니 생명과 더불어 같이 살고 생명이 죽은 뒤에는 썩는 것인데 서민만이 어떻게 그것을 버릴 수 있겠는가?25)

 

4) 靈明之體[心]와 好善惡惡하는 嗜好性

 

인간 영혼의 성격에 대한 설명은 《천주실의》 제3장, 인간에 대한 논의 중 ‘현세에서의 인간의 조건’을 다룬 곳에서 상세히 언급되고 있으며, 리치는 생혼, 각혼, 영혼의 구별을 통해 인간 영혼의 고유한 특성을 설명했다. 선행연구에 따르면 리치는 주자학에서 자주 언급된 虛靈不昧, 虛靈知覺, 明覺, 영명 등의 용어를 지성적 활동을 하는 인간의 정신에 부여하면서 육체를 떠나서도 소멸되지 않는 魂 개념과 결합하여 ‘靈魂’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었다. 그러나 혼 개념은 성격상 중국전통의 氣 개념과 연계되어 혼란을 빚을 우려가 있었고, 이 때문에 리치 이후 《영언여작》에서는 영혼 대신에 ‘아니마’ 원어를 주로 사용했으며, 《성학추술》에서는 靈魂, 靈性, 靈根, 영명지체 등 다른 표현들을 혼용하면서 영혼 개념의 애매성을 극복하기 위해 주로 영성이란 표현에 의존했다고 한다.26)

 

필자는 좀 다른 맥락에서 이 문제를 조명하고 싶다. 우선 다산의 시선에 대표적인 주자학적 심성 용어라고 할 수 있는 허령지각, 허령불매, 영명 등이 다시 중요한 논쟁거리로 등장한 것 자체가 바로 서학서의 직간접적인 영향을 통해서라고 볼 수 있다. 이 점에서는 선행연구의 평가가 어느 정도 타당해 보인다. 다산은 ‘神形妙合’으로 사람이 이루어져 있다고 보면서 이를 총칭하여 身이라거나 己라고 불러도 ‘허령지각’에 대해서는 단일하고 분명하게 가리킬 만한 용어가 없었다는 점을 새삼스럽게 문제제기한다.27) 心, 神, 魂, 靈, 大體, 法身 등의 여러 용어를 혼용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다산이 통상 마음[心]으로 불려진 대상에 대해 이렇게 의도적으로 문제를 제기한 데는 心의 존재에 대한 다른 각도의 접근이 분명 있었기 때문이고, 바로 이 대목에서 인간의 정신 작용을 영혼으로부터 영성, 靈知, 靈體, 영명 등으로 지칭하기 시작했던 예수회 선교사들의 지적 작업이 접목될 수 있는 지점이 마련되었다.28)

 

《說文》에 이르기를 “마음은 한 몸의 주재다”라고 했는데, 이것은 잘못이 없으나 동일한 心자에도 원래 3가지 등급이 있다. 첫째 영명한 지각의 전체를 심이라고 부른 것이니, 가령 “마음의 기능은 사유하는 것이다”, “먼저 그 마음을 바르게 한다”라는 따위가 이것이다. 둘째 감동과 사려가 발현되어 드러난 것을 심으로 삼았으니 惻隱之心이나 非?之心 같은 것이 이것이다. 셋째 五臟 가운에 血氣를 주관하는 것을 심이라고 했으니 이른바 “심에 일곱 구멍이 있다”라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29)

 

총괄하면 靈體[心] 안에는 세 가지 이치가 있다. 그 본성을 말하면 선을 즐거워하고 악을 부끄러워한다. 이는 맹자가 말한 성선이다. 그 권형을 말하면 선을 할 수도 악을 할 수도 있다. 이는 告子의 湍水 비유와 善惡이 섞여 있다는 양웅의 설이 지어진 원인이다. 그 行事를 말하면 선을 하기는 어렵고 악을 하기는 쉽다. 이는 순경의 성악설이 나온 원인이다. 순경과 양웅은 性이란 글자를 오해해서 그 설이 잘못되었지만, 우리 영체 안에 원래 이런 세 가지 이치가 없는 것은 아니다.30)

 

다산은 ‘靈明知覺之全體’를 ‘心’이라고 부르면서, 이것이 구체적으로 발동해서 드러난 道心[측은지심]과도 다르며 好善惡惡하는 본성[性], 可善可惡하는 權衡, 難善易惡하는 行事와도 모두 다르다는 점을 분명하게 명시한다. 영명지각의 전체를 줄여서 영명 혹은 영지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다산은 이 영명지체 안에 성, 권형, 행사의 세 원리가 함축되어 있고, 영명은 바로 이러한 마음 전체 혹은 마음의 신묘한 능력과 힘을 지칭하는 용어라고 보았다. 그리고 天[上帝]이 사람을 배태해서 낳을 때 天之靈明을 가진 靈明無形之體를 곧바로 사람에게 부여했고 이 영명지체를 통해 우리가 호선오악하는 영명성을 갖게 되었다고 말한다.31) 물론 본성을 처음 주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無形之體와 妙用之神으로 하늘의 영명성과 계속 상통할 수 있다고 보았고 그 매개는 인간의 도심, 즉 영명한 마음이 드러난 도심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말했다.32) 이 대목에서 다산이 하늘에 대한 계신공구와 신독을 말하는 한편 계속해서 도심을 통한 직통상감을 강조한 점도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는 天의 영명과 인간의 영명을 잇는 가교가 바로 우리 도심이라고 보았는데 과연 그렇다면 상제의 직접적인 강림과 감독이 과연 인간에게 얼마만큼 유효한 의미를 갖는다고 보았는지 의문이 남는다.

 

한편 다산은 영명의 전체[心]를 곧바로 性이라고 말할 수는 없고 오직 嗜好만을 성이라고 부른다는 점을 아래에서와 같이 상세히 논했다. 이 문제에 대해선 3장에서 후술하겠지만 영체가 성이 아니라고 반복 강조한 점은 분명 다산의 특별한 의도를 반영한 것이라고 본다.33) 다산은 인간 마음, 즉 영명지체가 결코 純善하지 않으며 오직 嗜好性만이 순선하다고 구별했는데, 이것은 영명지체로 표현되는 인간 마음의 실존적 조건이 본인의 말처럼 神과 形을 모두 필요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34) 性이란 사람의 嗜好인데 先儒가 그것을 靈體의 고유한 명칭으로 여겼으니 잘못이 없겠는가?35)

 

옛 경전에서는 虛靈한 본체의 측면으로 말하면 大體라고 불렀고, 그 대체가 발동한 측면에서 말하면 道心이라고 불렀으며, 대체가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으로써 말할 때는 性이라고 불렀다. 天命之性이라는 것은 하늘이 인간을 낳은 처음에 그 허령한 본체[마음] 안에 덕을 좋아하고 악을 부끄러워하는 性을 주었음을 말한 것이지, 성을 본체로 이름 붙일 수 있다고 한 것이 아니다. 성이란 선을 좋아하고 악을 싫어하는 것으로 이름을 세운 것이다.36)

 

후세 학자들은 性이란 글자를 너무 무겁게 보아서 性이란 글자를 오로지 靈知大體를 일컫는 것으로만 여겼다. … 이제 고착된 생각에서 벗어나 초연히 위로 옛 성현의 말을 살펴보면 성이란 글자는 본래 嗜好를 가리키는 것이다. 기호라는 것은 본래 마음에서 생기는 것이니 마음에서 생기는 것은 성이 아니겠는가? 〈召誥〉를 보나 《孟子》를 보나 〈王制〉를 보나 성이 기호라는 것은 분명하다. 만일 기호가 아니라면 어찌 ‘절제한다’고 했겠으며, 만일 기호가 아니라면 어찌 ‘참는다’고 했겠는가?37)

 

사람들은 바야흐로 靈明의 전체를 性이라고 여기는데, 반드시 嗜好를 性이라고 해야 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사람들은 항상 ‘나의 성은 회와 구운 고기를 좋아한다’라고 하고 혹은 ‘나의 성은 부패한 음식을 싫어한다’고 하고, ‘나의 성은 음악소리를 좋아한다’고 하고 ‘나의 성은 개구리 소리를 싫어한다’고 말하니, 사람들은 진실로 기호를 성이라고 생각했다. 맹자가 性善을 논하면서 기호로서 설명했고, 공자는 (《시경》에 나오는) ‘秉?好德’의 시를 인용해서 人性을 증명했으니, 기호를 버려둔 채 성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공맹의 옛 전통을 따르지 않는 것이다.38)

 

인용문에서 보이듯 영체와 성을 엄격히 구분하는 논법은 다산의 심성론을 서학서의 관점과 상이하게 고찰하도록 만드는 대목이다. 이에 대해서는 3장에서 후술한다.

 

한편 《천주실의》와 관련해서 다산 심성론을 논할 때 강조되는 또 다른 논점은 기호성에서 바로 이 ‘기호’라는 용어의 문제다. 이것은 《천주실의》에서 리치가 각각의 사물은 그 본성이 실현하길 원하는 것[其性所願欲]을 실현하려고 추구한다고 말했기 때문이다.39) 이는 사원인설 중 목적인의 측면에서 사물의 본성을 설명한 것인데, 이에 따르면 모든 사물은 항상 자신의 본성과 걸맞은 것을 좋아하고 싫어한다[好惡].40) 리치가 본성의 願欲이란 표현을 사용했기에 다음과 같이 다산이 “우리 영체 안에는 본래 바라고 욕구하는 일단이 있다. 만일 이런 욕구하는 마음이 없으면 곧 천하의 어떤 일도 이룰 수 없다”([吾人靈體之內, 本有願欲一端. 若無此欲心, ?天下萬事, 都無可做. 《心經密驗》 2:39]라고 강조한 대목이 상호 비교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다산 본인은 자신이 성기호를 말한 것은 육체의 기호, 즉 우리 몸이 직접적으로 어떤 매개를 거치지 않고 무엇인가를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을 빌어 와서 입증한 것이라고 했다.41) 다른 대목을 함께 살펴보면 채소가 거름을 좋아하고 식물이 물을 좋아하는 것, 조류가 산을 좋아하고 사슴이 들을 좋아하는 것 등 모두 육체적으로 저절로 욕구하는 어떤 선천적 경향성을 예로 들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42) 그만큼 선에 대한 인간의 애호와 악에 대한 인간의 거부를 본능적인 충동으로 설명했던 것을 알 수 있다.

 

5) 可善可惡하는 權衡, 自主之權의 선택

 

다산은 리치와 유사하게 선과 악, 덕과 부덕의 문제는 活動하여 一定하지 않은 인간에게만 발생하는 윤리적 문제이지 동식물과 같이 본성이 고정된 존재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점이라고 보았다. 이것은 이미 이기론에 대한 비판적 고찰을 통해 人物性의 존재 성격을 상이한 층위에서 이해하기 시작한 관점의 필연적 결과라고 할 수 있다.43) 리치는 인간의 본성이 선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천주가 인간에게 선을 행하고 악을 저지를 수 있는 윤리적 주체로서의 자격을 주기 위해 자신의 자유로운 선택을 통해 선을 따르고 악을 거부할 수 있는 능력을 주었다고 보고 이것을 바로 의지[자유의지]라고 불렀다.44) 다산도 리치의 표현과 유사하게 自主之權 혹은 유사한 함의의 권형 개념을 언급한다.

 

맹자가 말한 性善에 어찌 잘못이 있겠는가? 다만 어쩔 수 없이 선한 사람이라면 그에게 공로가 없게 될 것이다. 이에 선할 수도 있고 악할 수도 있는 權衡을 부여하고 자신의 주장에 따라 선을 향하려고 하면 그것을 따르게 하고 악을 향하려고 하면 그것을 따르게 하였으니, 이것이 바로 공로와 죄가 발생한 이유이다. …이로부터 선으로 향하는 것도 그대의 공로가 되며 악으로 치닫는 것도 그대의 죄가 되니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45)

 

하늘은 이미 性을 부여했기 때문에 시시각각 깨우쳐주고 열어줄 수 있다. 매번 악을 저지르는 일을 만나면 한쪽에선 욕구를 발동하고 한쪽에선 저지하니, 저지하는 것은 곧 성이 받은 天命임이 분명하다. ‘하늘이 명한 것을 성이라 한다’고 한 것은 이를 말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데도 (양웅이) ‘선과 악이 섞여 있다’고 말한 것은, 하늘이 성을 부여한 것이 위와 같다고 하면 사람이 선을 행하는 것은 물이 아래로 흐르고 불이 위로 올라가는 것과 같아 공능이 되기에 부족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늘은 사람에게 ‘자주의 권한’[自主之權]을 주어서 그가 선을 하고자 하면 선을 하고 악을 저지르고자 하면 악을 하게 하여 선악을 하려는 방향이 변하여 고정되지 않게 하였다.46)

 

 

3. 《천주실의》로 보이지 않는 다산 철학의 구조와 성격

 

본론 2장에서 몇 항목을 통해 다산 철학의 특성을 《천주실의》와의 관련성에서 살펴보았다. 이에 대한 각각의 반론도 가능하지만, 필자는 다산이 이미 자신의 지적 전통 하에서 요구되던 어떤 일정한 경향성에 따라 자신이 보고자 원한 것을 서학서 가운데서 찾아냈다고 보았고, 이 점에 착안해 다음 몇 가지 사안을 좀 다른 각도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사실 다산은 자신의 방식대로 《천주실의》를 특이하게 독해했으며, 여기에는 이해와 오해 사이 그 만큼의 불가피한 거리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본다. 아니 오히려 후자의 오해야말로 다산의 사유가 리치와도 다르고 조선 주자학의 기본 발상과도 달라지는 새로움의 가능성을 낳게 한 동력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다산은 무엇을 찾고자 했으며 이러한 다산의 목적론적인 해석에의 경향성은 결국 《천주실의》의 관점과 어떤 차이를 낳게 되었을까?

 

1) 욕망[欲]과 이익[利]에 대한 시대적 관심

 

앞서 언급했듯이 다산은 靈體[心] 안에 주어진 선천적인 願欲을 강조했고, 인간의 본성을 嗜好라고도 불렀다. 이미 다산 스스로 천명지성과 기질지성에 대해 道義之欲, 氣質之欲이라고 부르면서 욕망 혹은 욕구 개념으로 자신의 인성론을 전개하기도 했다.47) 앞서 원욕을 강조했듯이 만약 이러한 ‘욕구하는 마음[欲心]’이 없다면 세상에서 어떤 일도 할 수 없으며, 어떤 사람이 담백하여 아무런 욕심도 없을 경우 악도 저지를 수 없지만 마찬가지로 선도 행할 수 없다고 비판하면서 욕심이 없는 자는 이미 쓸모없이 버려진 자와 같다고도 말했다.48) 사람의 보통 마음인 人心에는 자신이 완전히 갖추지 못한 것을 밖으로부터 他物을 통해 채우려고 하는 선천적 경향이 있다고 말한 것도 같은 의미에서다.49) 다산은 《大學》 전 10장에 대한 주석에서 ‘用人理財說’을 풀이하며 백성에게는 원래 욕망[欲]이 있는데 하나는 富欲이며 다른 하나는 貴欲으로서 이 두 가지 선천적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대학》 마지막 장에서 用人理財에 대해 논한 것이라고 강조했다.50) 이처럼 다산의 심성론에는 이미 인간이 불가피하게 충족하고 실현해야 할 보편적 욕망에 대한 논의가 깊이 개입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의 ‘性嗜好說’이 인간의 본성을 형이상학적 실체가 아닌 느끼고 감지할 수 있는 보편적인 욕망 작용으로 해석하려고 한 것도 결국 다산이 살던 당시의 시대적 요구로부터 읽힐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다산이 서학서에서 願慾, 好惡, 嗜好, 嗜欲 등에 주목하기 전부터 이미 다산의 선배 유학자들 사이에 이 문제는 중요한 쟁점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는 말이다.

 

星湖學派나 그 이전 시대 조선 유학자들 사이에서 일어난 인간의 원초적 욕망[欲]과 이해[利]에 대한 논의들은, 물론 조선사회 내적인 문제에 한정되지 않고, 명말청초 중국의 지성인들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星湖 李瀷보다 좀 더 앞선 세대인 황종희, 고염무의 저작에서도 이미 利와 欲 개념이 비중 있게 등장한 것을 엿볼 수 있고 더 거슬러 올라가면 이탁오를 통해서도 그런 단서들을 추적해볼 수 있다. 물론 이 시점을 서세동점 및 서학의 중국 상륙을 통해 해명하려는 보다 강력한 영향관계에 사로잡힐 수도 있지만, 어찌 보면 서학의 유입과 교류도 당시 중국 및 동아시아 사회의 물적 · 경제적 토대와 문화적 바탕 위에서 가능했던 일이다. 따라서 명말청초 지식인 사이에 있었던 모든 지적 모험들을 서학과의 관련성으로 환원해서 설명하는 무리수를 두기는 어렵다고 본다. 황종희의 《明夷待訪錄》 〈原君〉에서는 ‘自私 · 自利’ 및 ‘天下公利’ 등의 개념이 수시로 등장하며, 고염무의 《亭林詩文集》 〈郡縣論〉에도 ‘用天下之私, 以成一人之公’이라는 독특한 표현이 등장한다. 天下의 보편적 私[欲]를 바탕으로 한 개인의 공적 가치를 이룬다고 본 고염무의 발언은 결국 기존의 주자학 전통에서 강조된 ‘存天理, ?人欲’의 天理人欲 및 公私 개념의 대립구도를 넘어서려는 의지를 담은 것이다. 이들은 모두 天下人의 私欲과 자사 ? 자리의 경향성을 사회적 公을 구현하기 위한 정당한 토대로서 인정하기 시작했다. 황종희는 군주권을 강력하게 견제하면서 천하인의 사적인 욕망과 이익 추구가 정당하고 보편적인 것이며 이것을 실현함으로써 결과적으로 天下公/천하공리를 실현할 수 있다고 보았다.51) 고염무의 〈군현론〉에도 개인의 사유화 경향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시대적 변화가 잘 반영되어 있다. 그는 군주가 국가를 사유화함으로써 군현제의 폐단이 발생했다고 보았지만, 그럼에도 군주와 지방수령 등 위정자들의 사유화 욕망이나 경향성은 더 이상 되돌릴 수 없는 역사적 현실이라고 판단했다.52) 이러한 경향성은 오히려 인간의 常情이기 때문에 성인은 이와 같은 천하의 사적이지만 보편적인 욕망[天下之私]을 이용하여 그것으로써 개인의 공적 가치[一人之公]를 실현하고 세상을 통치할 수 있었다고 본 것이다.

 

다산의 시대는 이미 이러한 명말청초의 지적 경향이 조선시대 유학자들 사이에 충분히 감지된 이후라고 할 수 있다.53) 그가 사숙한 성호 이익 본인이 누구보다도 欲惡[好惡]와 七情, 飮食寒暖 같은 인간의 기본적인 사욕과 그것의 보편적 실현을 ‘天下同體之私[天下同其私]로 인정하면서 적극 옹호하는 모습을 보였다.54) 그는 인간이 타고난 보통마음인 인심도 결국 음식한난의 욕구를 충족하려는 것으로서 不善한 것이 전혀 아니라고도 말한다.55) 이익은 세 종류의 私 개념을 일시적으로 구분하면서 결국 이 세 층위가 마지막에 통일된다고 보았는데, 그 첫째가 바로 개인적 · 개별적 私이고 두 번째는 모든 사람을 하나로 여기는 천하대중의 私이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는 가장 공적이며 공공한 것으로 義理와 부합되는 그런 차원의 私라고 말했다.56) 끝에 의리 개념을 언급했지만 이것이 개인적이고 사적인 욕구를 바탕으로 시작된다고 본 것을 알 수 있고, 다만 혼자만의 욕구가 아니라 ‘天下同體之私’라는 성격을 전제한 보편적인 私 개념이 중요하다고 본 것을 알 수 있다. 退溪를 계승한 도학자로서 이익도 결국 ‘欲同仁而極利之’라고 하면서 ‘天下同利[利己而利人]’를 강조할 만큼 이미 당시 시대가 自私와 自利 및 公利 등을 중요한 철학적 문제로 숙고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있었다.57) 다산의 嗜好 및 願欲 개념도 그 용어 자체의 출처는 《천주실의》 혹은 《성학추술》 등에서 보다 쉽게 유사개념군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가 욕구 개념에 주목하게 된 것은 결국 自私 · 自利와 好惡 · 欲惡, 七情 등을 성찰하던 전대의 지적 관행으로부터 자연스럽게 파생된 결과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다산 다음 세대인 백운(白雲) 심대윤(沈大允)은 아예 ‘好善惡惡’하는 다산의 기호성 개념을 ‘好利惡害’하는 본성, 즉 ‘이익을 좋아하고 해로움을 싫어하는 선천적 본성’으로 변형시켜 利와 欲을 추구하는 것은 인간의 고유한 선천적 경향임을 강조했는데, 이 또한 조선후기 사회의 사상적 · 지적 배경과 분위기를 잘 보여준다.58) 심대윤은 다산과 유사하게 民에게는 태어날 때부터 욕망[欲]이 있는데 그것을 ‘天命之性’이라고 불렀다.59) 천명지성이라는 용어는 동일하나 다산이 그것을 선과 덕을 좋아하는 것이라고 해석한 반면, 심대윤은 이익[利]을 좋아하고 또 명성[名]을 좋아하는 것이라고 말했던 점에서 차이가 난다.60)

 

《복리전서》 서문에서 밝혔듯이 심대윤은 民에게 福과 이익[利]을 주고 殃禍를 피하도록 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했는데, 이것은 求福的 의미를 강하게 담은 서양 천주학의 충격에 대응하기 위해 유교 지식인이 내놓은 대안적 텍스트라고 볼 수 있다.61) 유교적 전통에 따라 윤리적으로 선하게 사는 것이 결국 복과 이익을 준다는 것을 설파하려고 했던 것이다. 이처럼 다산 전후의 선후배 지식인들 모두 기존에 형성된 자신들의 지적 배경 하에서 나름대로의 안목과 전제된 의도를 갖고 서학의 논리에 접근했을 것이라는 점을 짐작할 수 있다.

 

2) 靈明 개념의 실질적 함의 : ‘본능적인’ 好善惡惡의 도덕적 경향성

 

다산이 心을 가리키기 위해 반복적으로 사용한 영명, 영명지체, 영체, 영지 등의 개념과 이 영명성을 실제로 담보한 기호성의 함의를 다시 살펴보면 그가 서학서에 접근한 특정한 방식 혹은 시선을 이해할 수 있다. 동일한 용어에 주목하고 유사한 논리와 어법을 구사함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다산은 선교사들과 매우 중요한 지점에서 상이한 견해를 견지한 것을 엿볼 수 있다. 사실 이 문제 역시 ‘영명’이란 용어의 주된 출처가 바로 신유학 텍스트이며, 선교사들이 의도적으로 유학 관계 저작에 익숙한 중국 지식인들을 위해 이러한 용어를 선별적으로 변형하여 사용한 데서 기인한 문제라고도 볼 수 있다. 영명이란 단어는 주자학의 허령불매, 지각불매, 허령명각, 허령지각 등에 등장하는 개념으로서 ‘人心本自靈明’, ‘我靈明方寸’, ‘虛靈明德之本體’, ‘我性本靈明’ 등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조선시대 유학자들 역시 수시로 썼던 용어 가운데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영명이란 인간 마음과 본성의 신묘하고 밝은 능력 혹은 덕성을 묘사할 때 썼던 일상적인 심성 용어였던 셈이다. 따라서 다산이 ‘영명’ 개념을 강조했을 때 결과적으로 그것은 서학서와 관련된 모종의 지적 자극으로부터 논의된 것이면서도 또한 동시에 서학서를 통해서는 드러나기 어려운 유학적 심성론의 어떤 일면을 그대로 견지한 것이기도 했다. 가령 성호학파 선배였던 목재 이삼환도 인격적 하늘에 대한 삼감과 두려움의 자세를 매우 강조하였는데, 그는 《洋學辨》을 지어 서학을 비판하고 천주학의 세계관을 부정하면서도 하늘에 대한 공경과 인간의 선악에 감응하는 하늘의 영명성을 모순된 감정 없이 주장하였다.62) 이삼환은 “하늘이 부여한 영명함은 가려질 수 없다”63)거나 “하늘은 선한 자에게는 복을 내려주고 선하지 않은 자에게는 재앙을 내리니 하늘이 하늘다운 이유가 이러할 뿐이다”64)라고 주장하면서 ‘天之靈明’이란 표현을 거의 다산과 유사한 함의로 사용하고 있다. 서학과 관련해서 ‘천지영명’이란 표현에 이삼환과 다산 모두 비슷하게 주목했지만 전자는 서학을 비판하기 위한 논조로 이 문구를 사용했고, 다산의 경우는 유학적 의미를 가미한 자신만의 독법으로 서학의 논리를 함께 끌어들였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다산은 어떤 방식으로 영명성 문제를 이해했던 것일까? 우선 이 주제와 관련된 《천주실의》의 주장을 먼저 살펴보면서 논의를 시작하겠다. 리치는 생혼과 각혼, 영혼의 구분을 논하면서 인간 영혼의 고유한 특징으로 앞의 두 가지를 포함하되 “推論事物, 明辨理義”할 수 있는 것이 영혼의 중요한 기능이라고 설명했다.65) 《천주실의》에서는 ‘이치를 추론할 수 있음[能推論理者]’이 인간을 (자기) 본래의 부류로 만들어주고 (사람이라는) 개체를 다른 개체들과 구별시켜 주기에 바로 (이것을) ‘인간의 본성[人性]’이라고 말했다.66) 본성이 원하는 바를 실현하기를 추구한다고 한 것이 목적인의 관점에서 나온 것이라면, 위의 발언은 형상인과 관련된 설명으로서 리치는 오히려 이것이야말로 인성을 다른 부류의 것으로부터 구별해 주는 보다 근원적인 원인이라고 보았다.

 

무릇 사람이 짐승[禽獸]들과 구별되는 까닭 중에 ‘이성능력[靈才, intellect]’보다 더 큰 것은 없습니다. ‘이성능력’은 옳고 그름과 진짜와 가짜를 분별할 수 있어서, 이치가 없으면 이성을 속이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어리석은 금수도 감각[知覺]이 있고 몸을 움직일 수 있어서 인간과 거의 같지만, 선후와 내외라는 이치에는 분명하게 통달할 수 없습니다. …인간은 온갖 존재들보다 뛰어나니, 안으로는 정신적 영혼[神靈]을 받고 태어났으며 밖으로는 사물의 이치를 볼 수 있습니다. 일의 나타난 끝[末]을 관찰하여 그 근원[本]을 알 수 있으며, 이미 그렇게 된 결과를 보고서 그렇게 된 원인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현세의 고생과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고 정신을 오로지하여 도를 닦아서 사후의 영원한 안락을 도모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성능력’에 의해 드러난 것을 참이 아닌 것에 억지로 따르게 할 수 없습니다.67)

 

유형한 육신은 귀, 눈, 입, 코, 사지의 다섯 기관[五司]을 가지고서 사물들과 접촉하여 지각합니다. 무형한 정신은 세 가지 기능이 있어서 이것들을 받아들이고 소통시키니 곧 기억능력[司記含, memory], 이성능력[司明悟, intellect]과 의지력[司愛欲, will]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무릇 우리들이 보고 듣고 맛보고 느끼는 것, 즉 이들 (감각의) 자료들[images]은 신체의 오관을 통하여 정신에 도달해 가는 것입니다. 정신은 기억력으로써 이것들을 받아들여서 마치 창고에 저장하는 것처럼 잊어버리지 않게 합니다. 다음으로 우리들이 한 사물을 명백하게 인식하고자 하면, 곧바로 이성능력은 기억 속에 있는 그 사물의 자료를 취해서 그 사물의 실체와 이모저모로 절충하여 보고 그 사물의 본성과 실정이 참으로 이치에 합당한지 아닌지 합치시켜 봅니다. 그것이 좋으면 우리는 의지로써 그것을 사랑하고 원하게 됩니다. 그것이 나쁘면 우리는 의지로써 그것을 미워하고 원망하게 됩니다.68)

 

인간 본성의 고유한 성격을 이성의 추론능력으로 이해한 리치는, 정신의 능력 가운데 기억력, 이성능력, 의지력 세 가지의 층위를 구별하면서, 두 번째 인용문에서 이성능력이 기억 속에 있는 자료와 실제 사물을 비교하면서 합당하고 부당한지 혹은 좋은지 나쁜지를 판단하면 그 다음 우리의 의지력이 좋은 것을 愛欲하고 나쁜 것을 惡恨한다고 설명한다. 그런데 리치는 좋은 대상을 욕망하고 나쁜 대상을 싫어하는 호오의 선택작용인 의지력이 반드시 이성의 추론능력 다음 순서에 놓인다고 본 것을 알 수 있다. 善惡에 대한 호오를 말하고 있다고 해서 《천주실의》의 관점을 다산의 ‘호선오악’ 하는 기호성과 그대로 비교할 수 없는 것은 바로 이런 점 때문이다. 리치가 생각한 호오의 감정은 이성의 추론을 거친 뒤 의지력에 의해 선택 가능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다산은 다음 인용문에서 보듯이 선악에 대한 호오를 天命에 의해서 인간 모두에게 선천적으로 주어진 본능적 욕망이라고 보았다. 마치 가축고기가 우리 입을 저절로 기쁘게 하듯이 의리가 우리 마음을 저절로 기쁘게 한다고 비유한 맹자의 논법을 그대로 따라서, 선과 악에 대한 우리의 취향은 노력하거나 추론해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선천적으로 갖고 태어나는 도덕적 욕망이라고 본 것이다.

 

리치의 주지주의적 · 이성중심적 관점은 良善과 習善을 구별하는 대목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사실 리치가 인간이 타고나는 양선에 비해 습선의 가치를 강조한 것은 德을 실천해서 이루려는 윤리적 노력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이 점에서는 실천을 통한 덕의 완성을 주장한 다산의 德論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덕을 이루기 위한 과정에서 리치가 양선, 즉 사람마다 노력하지 않아도 갖고 태어나는 측은지심 같은 선천적 경향의 도덕욕구를 상대적으로 폄하하고 있다는 점이다.69) 뒤에서 보겠지만 어린아이가 부모를 사랑하는 孝弟의 정감은 다산이 자신의 이상적 王政論을 구현하기 위해 가장 중요하게 내걸었던 윤리적 가치인데, 리치는 오히려 이런 종류의 효제라는 선천적 도덕 감정은 짐승들도 가진 것으로서 인간 공로의 대상으로 인정받기 어렵다고 분명하게 비판했다. 마찬가지 방식으로 인간의 판단과 노력이 가미되지 않은 전형적인 측은지심의 사례, 즉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질 때 느끼는 측은한 마음도 리치는 어질든 어질지 않든 누구나 느끼는 평범한 감정에 불과하다고 보았다. 그러나 다산은 바로 이런 효제의 감정, 측은지심의 감정, 도심의 마음이 천명으로서 받은 우리의 본성[性]이 발동해서 나온 것이라 보고 이것을 확충하여 더 널리 실현할 것을 강조했다. 비록 仁義禮智의 덕은 외부에서 이루어진다고 보았지만 그 밑바탕은 측은 · 수오의 마음으로부터 시작되며, 이 경우 측은 · 수오 같은 도심의 마음은 ‘性之所發者’로서 바로 천명지성인 기호성이 그대로 드러난 것이라고 보았다.70) 노력하지 않아도 누구나 알 수 있는 善에 대한 본능적 욕구로서의 기호성과, 그것이 드러난 도심을 천명의 구체적 내용을 담은 것으로 간주한 것이다.71) 사실 그가 생각한 영명지체의 핵심, 즉 영명성이란 것은 바로 상제의 명령을 담고 있는 이 본성과 도심의 특성을 가리켜 말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하늘이 나에게 性을 부여할 때 선을 좋아하는 감정[好德之情]과 선을 잡을 수 있는 능력[擇善之能]을 거기에 담아 주었다. 이것은 비록 나에게 있지만 그 근본은 하늘의 명령인데도, 무릇 사람들은 이것을 자기에게서 말미암은 성이라고 여기기 때문에 업신여긴다. 한번 깊이 탐구하면 이 성이 본래 하늘이 부여한 것이며 이것이 밝은 天命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72)

 

만일 善을 즐거워하고 악을 부끄러워하는 性을 주어서 선을 좋아하고 義에서 살찌도록 하지 않았다면 평생토록 힘을 다해 조그만 선을 구하려고 해도 역시 행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이렇기에 성이란 사람에게 진정 최고의 보물이니 존중하고 받들어서 잠시라도 어겨서는 안 되는 것이다.73)

 

인간의 性이 善을 행하길 좋아함은 마치 물의 성질이 아래로 흘러가는 것을 좋아하는 것과 같고 불의 성질이 위로 올라가는 것을 좋아하는 것과 같다. 세상에 태어날 때 하늘이 이 성을 부여하였으니 비록 온갖 탐욕과 음란함, 학살을 행하더라도 이 성만은 그대로 변하지 않는다. 충신효자를 보면 선하다고 찬미하고 탐관오리를 보면 악하다고 미워하기를 온 나라 사람들이 똑같이 하니, 이것이 이른바 인간의 성이 선하다는 것이다[性善]. 이성으로 인해 탐욕과 음란함, 학살을 행하던 자가 하루아침에 義로 옮겨가는 이치가 있게 되었으니 성이 선하지 않고서야 그럴 수 있는 이치가 있겠는가?74)

 

오직 이 天命之性은 선을 좋아하고 악을 부끄러워하니, 매번 하나의 일을 만날 때마다 선악이 눈앞에 있어서 이 性이 향하고자 하는 바를 따르면 어긋나거나 그릇됨이 없게 될 것이다. …단지 이 한 조목이 우리가 악을 피하고 선을 이루는 재산이 된다. 만약 이 성이 없다면 비록 神明처럼 지혜롭다 하더라도 평생토록 조그만 善조차 이룰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중용》 공부는 오직 尊德性에 있다. 이 성이 우리가 덕을 닦는 준칙이니 하늘이 나에게 부여해주어 덕을 이루도록 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을 높이고 받들어 감히 떨어뜨리지 않아야 한다.75)

 

다산에게 性이란 ‘상제로부터 부여받은 것[天命]’이며 이 성이 발현된 것이 곧 道心이다. 따라서 도심의 명령을 따른다는 것은 성을 따르는 것이고 결국 상제의 명령을 따르는 것이다.76) 그래서 다산은 기호로서의 성을, 준엄한 상제의 명령이며 선을 행할 것을 즉각적으로 명령하는 내면의 도심의 목소리라고 규정했던 것이다. 이것은 리치가 《천주실의》에서 경험적으로 이치를 추론할 줄 아는 것으로서 규정한 인간의 본성[性] 개념과, 그 내용에 있어 이미 확연히 다른 것이다. 다산이 강조한 기호성은 선천적인, 다시 말해 본능적인 선에의 경향성이자 도덕적 욕구로서 이성능력의 차이에 따라 달라지는 그런 종류의 것이 결코 아니다. 누구라도 자기 내면의 양심을 통해 이러한 도덕적 욕구를 즉각 체험할 수 있다. 따라서 호선오악하는 성의 기호작용 · 욕망작용을 다산이 언급했다고 해서, 그의 성기호설이 리치의 性論과 유사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주자학의 본체론적 성론을 비판하기 위해 기호 개념을 적극 수용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산의 기호성 개념이 다시 리치가 말한 인간의 본질 혹은 본체로서의 이성적 본성을 의미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호선오악을 말했어도 양자 간의 논점이 상이했던 것을 알 수 있다.

 

한편 선행연구에서는 리치의 사례보다 알레니의 《성학추술》에 등장한 지각의 기욕과 영명의 기욕이란 구분이 다산의 기호성 개념에 보다 근접한 발상을 보여주고 있다고 평가했다.77) 그런데 알레니의 영명, 영성도 표현의 차이는 있지만 결국 사물에 접해 이치를 추론하고 시비를 판별하는 것을 영혼의 가장 중요한 능력으로 간주한 것을 알 수 있다.78) 따라서 알레니에게도 영성은 추론과 판단능력, 다시 말해 영지의 이성작용을 그 골자로 삼았던 것임을 알 수 있다. 또한 다산은 영명지체로서의 心과 호선오악하는 性을 여러 차례 구분하면서 영명지체는 성과 달리 純善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다산이 생각한 영명지체는 리치나 알레니가 생각했던 영혼, 영성, 영명처럼 순선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행사’[性/權衡/行事]와 ‘勢’[性/才/勢]의 측면을 필연적으로 수반한 것으로 불선의 가능성을 원리적으로 이미 내장한 것이었다. 다산이 비록 心을 氣라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자신의 영명지체를 形과 분리된 순수하고 순선한 영혼이나 영성처럼 이해하지도 않았던 것을 알 수 있다. 더구나 다산이 영명지체의 순선하지 않음을 강조한 것은 불교의 ‘본연지성’ 논의를 비판하면서 이들이 육체의 훈습 혹은 형기의 방해만 없으면 본연지성은 그 자체로 순선하고 티끌만한 악도 없이 맑고 깨끗하다고 본 형이상학적 관점을 비판하는 대목에서다.79) 이 경우 리치의 영혼과 알레니의 영성[영명]과 달라지는 다산의 영명지체 관점은 다산이 불교를 공박했던 상황과 유사한 성격을 갖는다고 볼 수 있다. 다산은 오히려 영명지체[靈知] 안에 도심과 인심의 두 계기가 존재론적으로 공존하고 있다고 봄으로써 인간이 기본적으로 윤리적 갈등 상황에 놓인 실존적 존재라는 점을 강조하려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

 

3) 다산 경세론에서 上帝의 위상에 대한 재고

 

다산 철학에서 知覺과 靈이 없고 威能이 없는 것으로 부정된 태극과 理 개념을 대신해서 등장했던 인격적 주재자 상제는 다산의 정치사회적 경세론에서는 어떤 역할을 맡고 있을까? 다산은 《경세유표》 및 《상서고훈》 등에서 〈洪範〉의 ‘五皇極’ 개념을 중심으로 모든 권한이 국왕에게 주어져 있다고 보는 강력한 왕토주의 ? 왕권주의적 발상을 드러낸 경우가 있다.80) 천하의 전지와 재물, 산림과 천택이 모두 왕의 소유라서 왕이 그것을 자신의 백성에게 베푸는 것인데 중간의 탐관오리와 교활한 장사치들이 그 권한과 이익을 가로채던 것이 당시 정치의 가장 큰 병폐라고 파악했던 것이다. 국왕의 정치권한을 정당화하는 철학적 근거로 제시된 ‘洪範九疇’는 다산에 따르면, 禹임금이 왕위에 올라 皇極의 자리에 서서 五福과 六極의 권한을 행사하면서 작위적 노력을 통해 수립한 정치의 大法을 가리킨다.81) 19세기 초반 조선사회의 정치적 辨等 질서가 무너지며 사회 신분질서가 와해되고 있다고 판단했던 다산은, 《周禮》 〈大宗伯〉에서 보이는 天神으로서의 君牧의 위상뿐만 아니라 《尙書》 〈홍범〉 ‘五皇極’에 해당되는 군왕의 권위를 강조하며 위로부터 設官分職하고 三公三孤를 포함 전 관원에 대한 考績制를 시행할 것을 주장했다.82) 개혁의지를 표방한 위와 같은 강력한 왕권의 이미지는 다산이 《경세유표》에서 천하의 부를 다스리면서 백성이 골고루 분배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로 ‘王者體天理物之權’이라고 주장한 대목에서도 잘 드러난다.83)

 

그러나 다산이 상제 혹은 天의 권위를 빌어 왕권을 상징적으로라도 강조한 것은 과도적으로 개혁의 추진세력인 왕과 신료의 역할을 강조하기 위한 순간뿐이었던 것을 다음을 통해 엿볼 수 있다. 가령 《경세유표》의 중앙정부 조직안을 살펴보면, 고위관료인 삼정승이 의정부를 통해 六曹로 분담된 중앙정부 및 관료조직을 모두 총괄하도록 해놓은 것을 알 수 있다. 《경세유표》에서 중앙관제편성 상 군주가 독자적으로 자신의 휘하에 둘 수 있는 기구는 하나도 설정되어 있지 않으며, 정치권력을 위로부터 일방향으로 행할 수 있는 어떤 가능성도 다산은 염두에 두지 않았던 것이다.84) 결과적으로 다산의 ‘신국가조직안’에서 군주가 수행할 수 있는 일은 관리에 대한 엄격한 고적제의 시행과 새로운 관리의 임용뿐이었던 것을 알 수 있다.85) 다산은 자신이 원하는 이상적 국가개혁안을 실현하기 위해 과도적으로 강력한 권한을 가진 군주론을 상정했다. 그러나 정치체제가 어느 정도 정비되면 《경세유표》에서 보이듯 더 이상 군왕을 비롯한 누구도 사적으로 권력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철저히 관료제 중심의 기능적인 통치체제를 마련하려고 고심했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경세유표》에서 청요직 폐지와 관련해 다산이 규장각 및 초계문신제 혁파 등을 주장한 것도, 초계문신제 및 경사강의 등을 통해 국왕 정조가 본인의 사상적 · 이념적 친위부대를 양성하려는 것을 반대했기 때문이다. 이 점은 왕이 사대부를 자신의 私人으로 만들어 통제하는 것을 분명하게 반대하면서 다산이 지식인관료 및 관료조직 자체에 대한 왕의 사적 개입을 철저히 배제하는 쪽으로 관제개편을 의도했던 정황을 보여준다. 또한 지방행정관과 유배기 경험을 바탕으로 마련한 판례집 형태의 《欽欽新書》에서도 다산이 英 · 正祖 시대의 일관성 없는 寬刑主義 정책 및 국왕의 자의적 恩典에 기반한 흠휼정책 등을 강력하게 비판한 사례를 자주 접할 수 있는데 이 또한 마찬가지 이유라고 볼 수 있다.

 

흔히 다산이 유위정치론을 뒷받침하기 위해 상제와 천의 권위를 빌어 현실군주의 강력한 작위적 정치론을 강조했다고 보기도 하지만 사실 이 또한 일면적인 논의에 불과하다. 다산은 秦나라 이후 삼대 선왕의 정치가 회복되지 못한 이유를 후대로 올수록 국왕 권력이 높아지고 관료의 정치적 역할이 축소된 점에 있다고 판단했다.86) 이런 이유로 다산은 국왕이 《상서》 〈皐陶謨〉의 ‘九德’으로 대표되는 ‘中和’의 덕을 갖추어 인재를 엄격하게 변별할 것, 또한 관리로 임용한 뒤에는 성과를 이룰 수 있도록 일정 기간 절대 간여하지 않고 위임할 것 등을 고대 선왕이 갖춘 관리운용의 대원칙이었다고 주장했다.87) 周公이 섭정할 당시 成王에게 관료를 임용한 후 간섭하지 말 것을 조언하는 ‘立政’을 예로 들어 ‘인물을 얻어 임용했으면 왕이 간섭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군주의 도리가 원래 그런 것이다’라고 강조한 것도 이 때문이다.88) 이로써 보면 상제와 군주 간의 동형적 이미지는 상당 부분 탈색된 것을 알 수 있다. 특정한 위기상황을 제외하면 상제의 절대적 권위를 앞세운 국왕의 존재라는 것은 오히려 권력 견제 차원에서 매우 경계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점은 天權을 대행하는 자로서 목민관 수령의 역할을 이야기하는 《흠흠신서》에서도 유사한 방식으로 드러난다.89) 다산은 司牧이 비록 천권을 대신 드러낸다고 보았지만 목민관이 가장 두려워할 존재는 결국 天과 民이라고 주장함으로써 天命이나 上帝의 명령의 구체적 귀결점이 어디에 있는지를 보여주었다.90) 그의 경세론에 있어 천명의 소재지는 여전히 民心이며 천명은 결국 여론의 향배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라고 보았다. 이 점에서 보면 다산의 상제관이 적어도 정치와 통치 영역에서는 오히려 전통적 방식대로 민심의 향방을 가늠하기 위한, 혹은 정당화하기 위한 형이상학적 근거로 작동한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삼대 선왕의 사적을 제대로 알 수 없기에 백성으로 하여금 성왕의 치적을 믿도록 하기가 어렵다고 하문한 정조의 물음에 다산이 《中庸講義補》에서, 자신에게 돌이켜 살펴보고 백성에게 직접 증험해 보면 天命의 道가 무엇인지 알 수 있다고 답변했던 것 역시 천명의 함의를 민에게서 찾으려고 했던 다산의 입장을 잘 드러내준다.91)

 

4) 孝弟의 사회적 확충을 통한 王政의 구현 : 다산 경세학의 목표

 

다산은 개인수양의 과제로서 효제의 의미를 강조했지만 위정자의 경세활동과 연관해서도 효제의 실현을 가장 중요한 사회적 목표의 하나로 간주했다. 王政의 실현은 바로 ‘井田’과 ‘孝弟’를 통해 완성된다고 본 《경세유표》의 여러 대목들이 이 점을 잘 보여준다.92) 王道란 토지의 경계를 바로잡는 일로부터 시작되며 효제[慈]의 五敎[父義 · 母慈 · 兄友 · 弟恭 · 子孝]를 펼침으로써 실현된다고 주장하거나 田地를 나누고 재산을 관리하여 부모를 봉양토록 하면 효제의 가르침이 그 가운데 행해져 정치[政]와 교화[敎]가 일치된다고 말한 것 등이 모두 이러한 의미를 담고 있다.93) 《목민심서》에서도 지방의 제후라고 할 만한 수령은 ‘七事’ 외에 효제와 ?睦을 높이는 司徒로서의 중요한 책무를 유념하고 鄕民에게 효제의 기풍을 진작시켜야 한다고 말했다.94) 다산이 이처럼 대표적인 경세학 저술에서 효제를 정치와 교화의 제일원리로 강조한 것은 고대 유학의 기본정신을 자기 방식대로 계승했기 때문이다. 《論語》에서 효제를 강조하고 그것을 仁의 근본으로 삼고, 맹자가 ‘仁之實事親, 義之實從兄’이라고 말한 이래로 孝弟, 親[親愛]과 尊[恭敬], 仁義의 문제는 유학적 인륜관계를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원리로 간주되었고 다산 역시 이런 입장에서는 예외가 아니었다.

 

다산은 후기의 여러 증언에서도 공자의 도는 오로지 효제인데 효제로서 德을 이룬 것이 인이며 인을 구하는 방법은 恕라는 점, 孝를 확장해 임금을 섬기고 弟를 확장해 어른을 섬기는 것이 곧 平天下의 요체라는 점을 다시 강조한다.95) 효제는 모든 공부의 바탕이기 때문에 中和와 孝友[孝悌]의 실천으로 타고난 본성[性]을 닦는 것이 급선무며, 그 뒤에 사서육경, 제자서, 예악형정, 전장법도에 관한 지식을 연마하라고도 말했다.96) 이것은 모든 인간이 공통적으로 타고난 기본적인 인성적 바탕, 즉 양지양능이라는 효제에의 선천적 경향성을 기반으로 교육하고 훈도해서 도덕적 교화에 바탕을 둔 왕정을 구현하려는 다산 경세학의 전체 목적을 밝힌 것이다. 이처럼 다산이 효제를 강조한 것은 그것이 배우지 않은 보통 사람도 쉽게 실천할 수 있는 것이며,97) 마치 고기가 우리 입을 즐겁게 하듯이 어렵지 않게 우리 마음을 기쁘게 하는 가장 평이한 도덕 원리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 개인을 중심으로 一家의 효제자를 확충하여 君道와 師道, 尊長과 尊賢의 사회적 원리로 확충하고 夫婦와 朋友 나아가 牧民 관계에도 마찬가지로 효제자의 원리를 확대 적용할 수 있다고 본 점에서 효제는 다산 경세학의 가장 중요한 이념이었다고 볼 수 있다.98) 그가 강조한 효제자의 덕목 역시 지속적 실천을 통해 덕으로써 완성되는 것이었지만 그 기본바탕은 이성적 추론이나 시비판단에 앞서 부모형제자매 사이에 자연스럽게 느끼는 親親의 정감이었고, 다산은 바로 이것이야말로 유교적 인륜질서의 근간을 형성하는 제일의 도덕적 토대라고 이해했다. 친속간의 선천적 정감을 도덕의 근원으로 삼았던 것은 다산이 천명으로서의 기호성과 도심이 지향하고 욕망하는 대상이 무엇이라고 생각했는지 짐작하게 해준다. 다산 경세학의 기본 이념인 효제와 친친의 맥락에서 보면 서학서의 윤리론은 유교 지식인으로서 다산의 관점과는 상당히 이질적인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4. 다산 철학과 서학의 영향 문제를 보는 시각

 

정약용은 초년부터 서울 · 경기 지역에 유포된 서양 학문의 영향을 심각하게 받았다. 서양과학은 물론이려니와 서양 종교인 천주학의 교리 및 세계관에 깊이 경도된 젊은 시절 경험은 그의 원숙기 사유에도 그대로 중요한 흔적을 남긴다. 하지만 그의 철학체계 전반을 살펴보면 잘 알려져 있듯이 중국 성리학과 陽明學, 조선 朱子學, 청대 考證學, 일본 古學 등의 학풍이 유기적 양상으로 혼재된 것을 알 수 있다. 다산 사유의 형성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음에도 서학 관련 논의를 단순히 서양 학문과 종교에 의한 압도적 영향과 수용의 문제로 다루기 어려운 것은 바로 위와 같은 요인들 때문이다. 서학서를 탐독하고 다양한 개념과 논리, 어법을 자신의 것으로 활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천주실의》에 대한 다산의 독해는 오히려 자신의 관점을 투사해 만들어낸 의도적인 오역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렇듯 《천주실의》와 리치에 대한 다산의 공감은 우선 자기문제와의 뜻하지 않은 사상적 공명이 얻어낸 결과였다고 생각한다.99) 관심 개념과 논리의 유사성에서 오는 일차적 반응으로서의 공감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양자 사이의 유사한 개념들은 상이한 사상적 문맥에서 서로 다른 함의와 역할을 갖는 것으로 드러나는데, 이것은 다산의 《천주실의》 독해가 이미 자신이 찾고자 하는 것을 이 한역 텍스트로부터 찾아낸 결과였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다산으로 하여금 서학서의 특정 주제와 개념에 집중하도록 만든 동아시아 혹은 조선 내적인 시대적 상황의 변화가 있었고, 또한 경학과 경세학의 통일 속에서 자기 철학의 구성인자들을 특별한 목적의식을 갖고 탐색했던 다산 본인의 지적 의도도 놓여있었다.

 

다산의 철학을 총평하면 그의 방대한 사유체계는 18~19세기 조선에 유입된 다양한 사상 조류들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내적인 자기분열, 즉 유교 지식인으로서 겪을 수밖에 없던 전통 사상과 외래 사유간의 지적 분열의 과정을 거쳐 형성된 중요한 사상자원이라고 볼 수 있다. 18세기 세계사의 급격한 변화를 염두에 둘 때, 다산의 철학은 동아시아 변방의 한 지식인이 보여준 시대에 대한 사상적 대응의 주요한 선례라는 점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해석하고 재평가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이미 16세기 말 17세기 초부터 위협적인 속도로 서세동점의 분위기가 조성된 것을 염두에 두면 다산을 위시한 조선후기 지식인들의 지적 반응이 역사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는지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무력과 자본, 종교 등을 앞세운 시대의 위협적인 변화 앞에서 조선후기의 지식인들은 다양한 방식의 사상적 대응을 모색했고 이들의 시대적 고민이 결국 유학의 자기극복 혹은 자기변화의 역사를 가능하게 했다고 볼 수 있다.

 

20세기 들어 압도적인 서양 학문의 우세 속에서 과거의 사상적 · 문화적 유산이 상당 부분 폐기처분된 과정을 상기하면, 한국에서 주체적으로 사유하고 철학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실감하게 된다. 가장 주체적이고 자기 혁신적이어야 할 철학이 서양사상의 신조류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그에 따른 신사상의 수입과 소개에만 얼마나 열을 올렸는지 비판적으로 반성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점은 동양철학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연구하는 주된 텍스트는 분명 동양과 한국의 고전 자료이지만 연구자의 분석틀과 논리, 개념들은 결국 일본을 통해 이중삼중으로 重譯되어 수입된 서양철학의 학문적 도구였던 점을 자성할 필요가 있다. 올해 다산 탄생 250주년에 즈음해서 과거를 돌아보건대 다산의 철학 역시 시대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여러 사유의 한계를 보여준다. 그러나 다산의 철학은 당대 현실의 벽을 따라 그 한계를 넘어서는 새로운 사유실험도 감행했다. 그리하여 상이한 사유체계가 충돌하고 부딪히며 만들어낸 이념의 혼종적 성격이 그의 전체 철학세계를 관통하고 있다. 18세기 동아시아의 다양한 지적 상황을 배경으로, 이질적 사유와의 부단한 교섭을 추진하고 이러한 사유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끝까지 자기의 철학을 모색했던 점, 오늘날 우리가 다시 한 번 다산의 철학을 되짚어 보는 의의도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닐까.

 

 

참고문헌

 

정약용, 《與猶堂全書》, 아름출판사,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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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경, 〈18세기 조선 유학자들의 《천주실의》 비판 - 星湖 李瀷, 河濱愼後聃, 順菴 安鼎福을 중심으로〉, 《철학연구》 69, 철학연구회,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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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마테오 리치의 저작이 조선후기 지식인들에게 미친 사상적 영향과 이에 대한 유학자들의 긍정적 혹은 비판적 반응에 대해서는 다음 논문들 참조. 최석우, 《천주실의》에 대한 한국유학자의 견해, 《동아연구》 3, 서강대동아연구소, 1983 ; 안영상, 천주교의 수용 과정에 나타난 사상적 變容에 관한 연구 : 상제 귀신설을 중심으로, 《동양철학연구》 28, 2002 ; 한자경, 〈18세기 조선 유학자들의 《천주실의》 비판 - 星湖 李瀷, 河濱 愼後聃, 順菴 安鼎福을 중심으로〉, 《철학연구》 69, 철학연구회, 2005 ; 김철범, 서학의 중세철학과 근기실학계의 수용, 《한문학보》 18, 우리한문학회, 2008 ; 구만옥, 〈리마두에 대한 조선후기 지식인들의 이해와 태도〉, 《한국사상사학》 36, 2010. 한편 중국 명말청초에 활동한 예수회 선교사들과 마테오 리치의 중국 내 상황에 대해서는 김상근, 〈명말 예수회 선교사 마테오 리치에 대한 새로운 평가〉, 《선교신학》 12, 2006 ; 김혜경, 〈16~17세기 동아시아 예수회의 선교정책 - 적응주의의 배경을 중심으로〉, 《신학과 철학》 17, 2010의 논문을 참조할 수 있다.

 

2) 마테오 리치 저, 송영배 외 공역, 《천주실의》, 서울대 출판부, 1999 참조. 《천주실의》와 다산 철학 사이에 보이는 철학적 패러다임의 유사성을 면밀히 분석한 다음 선행 논문 참조. 송영배, 〈다산철학과 천주실의의 패러다임 비교연구〉, 《다산사상 속의 서학적 지평》, 서강대인문과학연구원, 2004 ; 송영배, 〈다산 철학과 성리학적 이기관의 해체-《천주실의》와의 영향 관계를 중심으로〉, 《철학사상》 13, 서울대 철학사상연구소, 2001 등.

 

3) 정인재, 〈서학과 정다산의 성기호설〉, 《다산학》 7호, 2005 ; 김선희, 〈영명으로서의 인간 - 《성학추술》을 통해 본 정약용의 인간론〉, 《동양철학연구》 60, 2009 참조.

4) 김선희, 앞의 논문, 2009. 김선희는 이 논문에서 영명지체인 마음과 기호성의 욕구 문제를 상세히 분석했다. 

 

5) 백민정, 〈정약용 철학의 형성과 체계에 관한 연구 : 주자학과 서학에 대한 비판적 수용과정을 중심으로〉, 연세대학교 박사학위 논문, 2007.

 

6) 번역문은 《천주실의》(서울대출판부, 1999) 참조. 天主之稱, 謂物之原. 如謂有所由生, 則非天主也. 物之有始有終者, 鳥獸草木是也. 有始無終者, 天地鬼神及人之靈魂是也. 天主則無始無終, 而爲萬物始焉, 爲萬物根?焉. 無天主則無物矣. 物由天主生, 天主無所由生也(《천주실의》 3장, 〈하느님의 자존과 영원성〉 1:5) ; 天主生物, 乃始化生物類之諸宗. 旣有諸宗, 諸宗自生. 今以物生物, 如以人生人. 其用人由[用]天, 則生人者, 豈非天主?(《천주실의》 4장 〈하느님의 창조방식〉 1:6)

 

7) 古今大病, 全在乎認天爲帝, 而堯舜周孔, 不如是錯認. 故以今眼釋古經, 一往多誤, 凡以是也. 上帝者何? 是於天地神人之外, 造化天地 · 神人 · 萬物之類, 而宰制 · 安養之者也. 謂帝爲天, 猶謂王爲國, 非以彼蒼蒼有形之天指之爲上帝也(《春秋考徵》 4:21).

 

8) 彼蒼蒼有形之天···是有靈之物乎? 抑無知之物乎? 將空空蕩蕩, 不可思議乎? 凡天下無靈之物, 不能爲主宰. 故一家之長, 昏愚不慧, 則家中萬事不理. 一縣之長, 昏愚不慧, 則縣中萬事不理. 況以空蕩 蕩之太虛一理, 爲天地萬物主宰, 根本天地間事, 其有濟乎?(《孟子要義》 2:14).

 

9) 然上蒼下黃, 都是無情之物. 與日月山川, 均爲氣質之所成, 了無靈識之自用. 聖人明理, 豈有父事母事之理? 惟其皇皇上帝, 無形無質, 日監在玆, 統御天地, 爲萬物之祖, 爲百神之宗, 赫赫明明, 臨之在上. 故聖人於此, 小心昭事, 此郊祭之所由起也(《春秋考徵》 1:15).

 

10) 今以造化之跡, 謂之鬼神可乎? 天地者, 鬼神之功用, 造化者, 鬼神之留跡. 今直以跡與功用, 謂之鬼神可乎? 二氣者, 陰陽也, 日影爲陰, 日光爲陽. 雖此二物往來隱映, 以爲晝夜, 以爲寒暑, 而其爲物至冥至頑, 無知無覺, 不及禽獸??之族遠矣. 安有良能主張造化, 使天下之人, 齊明盛服, 以承祭祀乎? 古人實心事天, 實心事神, 一動一靜, 一念之萌, 或誠或僞, 或善或惡, 戒之曰日監在?. 故其戒愼恐懼愼獨之功, 眞切篤實, 以達天德. 今人以天爲理, 以鬼神爲功用, 爲造化之跡, 爲二氣之良能, 心之知之杳杳冥冥, 一似無知覺者然. 暗室欺心, 肆無忌憚, 終身學道, 而不可與入堯舜之域, 皆於鬼神之說, 有所不明故也(《中庸講義補》 1:20).

 

11) 太極者, 天地未分之先, 混孰有形之始, 陰陽之胚胎, 萬物之太初也(《易學緖言》 3:3) ;. 無聲無臭之同於無極者, 臣以爲, 無聲無臭, 是形容上天之不言不動之功化也. 無極太極, 不過以一團元氣, 從無物中凝成之謂也(〈中庸策〉 8:30, 《茶山詩文集》).

 

12) 天之主宰爲上帝. 其謂之天者, 猶國君之稱國, 不敢斥言之意也. 彼蒼蒼有形之天, 在吾人不過爲屋宇??, 其品級不過與土地水火, 平爲一等, 豈吾人性道之本乎? 大極圖上一圓圈, 不見六經, 是有靈之物乎? 抑無知之物乎? 將空空蕩蕩, 不可思議乎? 凡天下無靈之物, 不能爲主宰. 故一家之長, 昏愚不慧, 則家中萬事不理, 一縣之長, 昏愚不慧, 則縣中萬事不理. 況以空蕩蕩之太虛一理, 爲天地萬物主宰根本, 天地間事, 其有濟乎?(《孟子要義》 2:38).

 

13) 民之生也, 不能無慾, 循其慾而充之, 放?邪侈, 無不爲已. 然民不敢顯然犯之者, 以戒愼也, 以恐懼也. 孰戒愼也? 上有官執法也. 孰恐懼也? 上有君能誅?之也. 苟知其上無君長, 其誰不爲放?邪侈者乎?···君子處暗室之中, 戰戰栗栗, 不敢爲惡, 知其有上帝臨女也. 今以命性道敎, 悉歸之於一理, 則理本無知, 亦無威能, 何所戒而愼之, 何所恐而懼之乎?···民之生也, 不能無慾, 循其慾而充之, 放?邪侈, 無不爲已. 然民不敢顯然犯之者, 以戒愼也, 以恐懼也. 孰戒愼也? 上有官執法也. 孰恐懼也? 上有君能誅?之也. 苟知其上無君長, 其誰不爲放?邪侈者乎?···君子處暗室之中, 戰戰栗栗, 不敢爲惡, 知其有上帝臨女也. 今以命性道敎, 悉歸之於一理, 則理本無知, 亦無威能, 何所戒而愼之, 何所恐而懼之乎?(《中庸自箴》 1:4).

 

14) 又問 : 理者靈覺否? 明義者否? 如靈覺明義, 則屬鬼神之類, 曷謂之太極, 謂之理也? 如否則上帝鬼神夫人之靈覺, 由誰得之乎? 彼理者以己之所無, 不得施之于物, 以爲之有也. 理無靈無覺, 則不能生靈生覺. 請子察乾坤之內! 惟是靈者生靈, 覺者生覺耳. 自靈覺而出不靈覺者, 則有之矣. 未聞有自不靈覺而生有靈覺者也. 又云: 理也者則大異焉. 是乃依賴之類, 自不能立, 何能包含靈覺, 爲自立之類乎? 理卑於人. 理爲物, 而非物爲理也.···如爾曰: 理含萬物之靈, 化生萬物, 此乃天主也. 何獨謂之理, 謂之太極哉?(《천주실의》 2:6).

 

15) 夫物之宗品有二. 有自立者有依賴者. 物之不恃別體以爲物, 而自能成立, 如天地鬼神人鳥獸草木金石四行等是也. 斯屬自立之品者. 物之不能立, 而託他體以爲其物, 如五常, 五色, 五音, 五味, 七情等是也. 斯屬依賴之品者. 且以白馬觀之, 曰白, 曰馬. 馬乃自立者, 白乃依賴者. 雖無其白, 猶有其馬. 如無其馬, 必無其白, 故以爲依賴也. 比斯兩品, 凡自立者先也貴也, 依賴者後也賤也(《천주실의》 2:8).

 

16) 盖氣是自有之物, 理是依附之品, 而依附者, 必依於自有者. 故?有氣發, 便有是理. 然則謂之氣發而理乘之可, 謂之理發而氣隨之不可. 何者? 理非自植者, 故無先發之道也. 未發之前, 雖先有理, 方其發也, 氣必先之(《중용강의보》 1:65).

 

17) 太極兩儀四象, 皆?蓍之名. 太極者, 太一之形. 兩儀者, 兩合之儀, 四象者, 四時之像. 虞氏直天地爲兩儀, 四時爲四象, 非矣. 儀者, 依倣也. 象者, 摸狀也. 豈實體之謂乎(《易學緖言》 1:11) ; 又遠取太極一圓之圈?先天二五之妙, 曰心曰性, 使學者, 恍兮忽兮, 莫知其入頭下手之處, 豈非枉勞苦乎?(《茶山詩文集》, 〈答李汝弘〉 19:42).

 

18) 理字之義, 因可講也. 理者本是玉石之脈理, 治玉者, 察其脈理. 故遂復假借, 以冶爲理.···治理者, 莫如獄, 故獄官謂之理.···曷嘗以無形者爲理, 有質者爲氣, 天命之性爲理, 七情之發爲氣乎?···靜究字義, 皆脈理治理法理之假借爲文者, 直以性爲理, 有古據乎?(《孟子要義》 2:26).

 

19) 夫理者何物? 理無愛僧, 理無喜怒, 空空漠漠, 無名無體, 而謂吾人稟於此而受性, 亦難乎其爲道矣(《맹자요의》 2:38) ;恐懼戒愼, 昭事上帝, 則可以爲仁, 虛尊太極, 以理爲天, 則不可以爲仁. 歸事天而已(《茶山詩文集》, 〈自撰墓誌銘〉 16:17).

 

20) 송영배는 《천주실의》 독해를 통해 다산이 주자학의 도덕형이상학으로부터 확실히 결별하고, 자연과 인간의 문제를 확연히 구분했던 점을 근대사유의 등장이란 맥락에서 가장 중요한 지점이라고 강조했다(송영배, 〈다산에 보이는 《천주실의》의 철학적 영향〉, 2012 참조).

 

21) 性有三品. 草木之性, 有生而無覺, 禽獸之性, 旣生而又覺, 吾人之性, 旣生旣覺, 又靈又善. 上中下三級, 截然不同. 故其所以盡之之方, 亦復懸殊. 草木不過使遂其生性, 則其性斯盡矣. 禽獸不過使遂其胎卵飛走之性, 則其性斯盡矣.···烏能使馬牛羊豕, 愛親敬長, 各做人底事乎?(《중용강의보》 1:47).

 

22) 嗟呼. 仰觀乎天則日月星辰, 森然在彼, 俯察乎地則草木禽獸, 秩然在此, 無非所以照人煖人養人事人者. 主此世者, 非人而誰. 天以世爲家, 令人行善, 而日月星辰草木鳥獸, 爲是家之供奉. 今欲與草木鳥獸, 遞作主人, 豈中於理乎. 左右商度, 人物之同此性, 不敢聞命(《論語古今註》 9:13).

 

23) 況草木禽獸, 天於化生之初, 賦以生生之理, 以種傳種, 各全性命而已. 人則不然. 天下萬民, 各於胚胎之初, 賦此靈明, 超越萬類, 享用萬物. 今乃云健順五常之德, 人物同得, 孰主孰奴? 都無等級, 豈上天生物之理, 本自如此乎?(《중용강의보》 1:2). 

 

24) 凡天下有生有死之物, 止有三等. 草木有生而無知, 禽獸有知而無靈. 人之大體, 旣生旣知, 復有靈明神妙之用, 故含萬物而不漏, 推萬理而盡悟, 好德恥惡, 出於良知, 此其?別於禽獸者也(《論語古今註》 9:11).

 

25) 性理家每以性爲理. 故集注謂人物之生, 同得天地之理爲性, 此所謂本然之性也. 本然之性, 無有大小尊卑之差等, 特因所稟形質有淸有濁有偏有正. 故理寓於氣, 不得不隨而不同. 集注曰人於其間, 獨得形氣之正爲小異, 亦此說也. 審如是也, 人之所以異於?獸者, 在於形氣, 不在於性靈. 庶民去形氣, 君子存形氣, 豈孟子之本旨乎? 形氣者?質也, 與生俱生, 死而後腐焉, 庶民獨安得去之乎?(《맹자요의》 1:51).

 

26) 김선희, 앞의 논문, 85~90쪽.

 

27) 神形妙合, 乃成爲人. 故其在古經, 總名曰身, 亦名曰己, 而其所謂虛靈知覺者, 未有一字之專稱. 後世欲分而言之者, 或假借他字, 或連屬數字. 曰心, 曰神, 曰靈, 曰魂, 皆假借之言也. 孟子以無形者爲大體, 有形者爲小體. 佛氏以無形者爲法身, 有形者爲色身, 皆連屬之言也(《心經密驗》, 〈心性總意〉).

 

28) 금장태, 〈다산의 心 개념과 마테오 릿치의 영혼론〉, 《종교와 문화》 8, 서울대종교문제연구소, 2002.

 

29) 說文曰心者一身之主宰, 則庶幾無誤, 而同一心字, 原有三等. 其一, 以靈知之全體爲心, 若所謂心之官思及先正其心之類, 是也. 其二, 以感動思慮之所發爲心, 若所謂惻隱之心·非?之心, 是也. 其三, 以五臟之中, 主血與氣者爲心, 若所謂心有七竅, 是也(《梅氏書平》, 〈閻氏古文疏證抄〉 4:22).

 

30) 總之靈體之內, 厥有三理. 言乎其性則樂善而恥惡, 此孟子所謂性善也. 言乎其權衡則可善而可惡, 此告子湍水之?. 揚雄善惡渾之說所由作也. 言乎其行事則難善而易惡, 此荀卿性惡之說所由作也. 荀與?也, 認性字本誤, 其說以差, 非吾人靈體之內, 本無此三理也(《심경밀험》 2:28).

 

31) 天之靈明, 直通人心, 無隱不察, 無微不燭. 照臨此室, 日監在?. 人苟知此, 雖有大膽者, 不能不戒愼恐懼矣(《中庸自箴》 1:5) ; 蓋人之胚胎旣成, 天則賦之以靈明無形之體. 而其爲物也, 樂善而惡惡, 好德而恥汚, 斯之謂性也, 斯之謂性善也(《중용자잠》 1:2).

 

32) 天命不但於賦生之初, ?以此性. 原來無形之體妙用之神, 以類相入, 與之相感也. 故天之儆告, 亦不由有形之耳目, 而每從無形妙用之道心, 誘之誨之. 此所謂天誘其衷也(《중용자잠》 1:5).

 

33) 다산과 달리 알레니의 《성학추술》에서는 靈體를 人性 혹은 靈性과 같은 함의를 가진 것으로 표현했다(김선희, 앞의 논문, 2009, 87~89쪽).

 

34) 정인재는 무형의 神과 유형의 심장이 오묘하게 결합되어 있는 그 연결고리를 마음[心]이라 부르고 죽으면 정신과 육체가 분리되어 정신의 측면을 魂이라고 부르는데 이 혼이 어떻게 된다는 것인지에 대한 다산의 분명한 발언이 없지만, 靈明인 魂은 아마도 불멸할 것이라는 쪽으로 보지 않았겠는가라고 추측했다(정인재, 앞의 논문, 2009, 108~109쪽). 이것은 다음 대목을 풀이한 것인데 필자도 ‘신형묘합’은 그냥 단순히 인간을 이루는 것이라고 설명하기 위해 나온 것이 아니라, 이곳에서 다산이 허령지각, 영명지각으로서의 마음[心]을 풀이하기 위해 神과 形을 함께 언급했다고 본다 :《神形妙合, 乃成爲人. 神則無形, 亦尙無名. 以其無形, 故借名曰神. 心爲血府, 爲妙合之樞紐, 故借名曰心. 死而離形, 乃名曰魂. 孟子謂之大體, 佛家謂之法身, 其在文字, 無專名也. 先儒言性, 亦太渾融, 今人又或差誤. 生則曰性, 死則曰魂, 其實性與魂異, 性非吾人大體之全名也(《맹자요의》 1:32).

 

35) 性者, 吾人之嗜好也, 先儒乃以爲靈體之專稱, 其無差殊乎? (《심경밀험》 2:26).

 

36) 其在古經, 以虛靈之本體而言之, 則謂之大體, 以大體之所發而言之, 則謂之道心, 以大體之所好惡而言之, 則謂之性. 天命之謂性者, 謂天於生人之初, 賦之以好德恥惡之性於虛靈本體之中, 非謂性可以名本體也. 性也者, 以嗜好厭惡而立名(《논어고금주》 9:11).

 

37) 後世學者, 看性字太重, 乃以性字爲靈知大體之專稱.···今若脫身於膠漆盆中, 超然上觀乎先古聖賢之言, 則性之爲字, 本指嗜好之欲. 嗜好者, 生於心者也, 生於心非性乎? 觀於召誥, 觀於孟子, 觀於王制, 性之爲嗜好, 昭昭然矣. 若非嗜好, 曷云節之? 若非嗜好, 曷云忍之? (《매씨서평》, 〈염씨고문소증초〉 4:23).

 

38) 人方以靈明之全體爲性, 其必以嗜好爲性者, 何也? 人有恒言曰我性嗜膾炙, 曰我性惡?敗, 曰我性好絲竹, 曰我性惡蛙聲, 人固以嗜好爲性也. 故孟子論性善之理, 輒以嗜好明之, 孔子引秉?好德之詩, 以證人性, 舍嗜好而言性者, 非洗泗之舊也(《중용자잠》 1:3).

 

39) 無徒物, 無空則. 且歷擧各[名]品之情, 皆求遂其性所願欲, 而不外求其勢之所難獲(《천주실의》 3:6).

 

40) 物類之所好惡, 恒與其性相稱焉. 故着形之性, 惟着形之事爲好惡. 而超形之性, 以無形之事爲愛惡. 吾察萬生之情, 凡禽獸所貪娛, 惟味色四肢安逸耳已.···若人之所喜惡, 雖亦有形之事, 然德善罪惡之事爲甚, 皆無形者也(《천주실의》 3:5).

 

41) 吾所謂嗜好者, 借形軀之嗜好, 以證吾心之所好耳(《茶山詩文集》, 〈答李汝弘〉 19:41).

 

42) 性者, 人心之嗜好也, 如蔬菜之嗜糞, 如芙?之嗜水. 人性嗜善, 行善集義則茁壯, 行惡負心則沮?. 先儒言性, 皆非孟子之本旨也(《大學講義》 2:4) ; 嗜好有兩端. 一以目下之耽樂爲嗜好, 如云雉性好山, 鹿性好野, 猩猩之性好酒醴, 此一嗜也. 一以畢竟之生成爲嗜好, 如云稻性好水, 黍性好燥, 蔥蒜之性好?糞, 此一嗜也. 今論人性, 人莫不樂善而恥惡(《心經密驗》 2:26).

 

43) 過不及之差, 在於人不在於物. 誠以人之所能皆活動, 禽獸之所能皆一定. 旣然一定, 夫安有過不及之差乎? ?之晨鳴, 犬之夜吠, 虎之搏?, 牛之?觸, 蜂之護君, 蟻之聚衆, 千年同俗萬里同風, 夫豈有過不及之差乎? 況草木之春榮秋?, 先花後實, 各有定性, 毫髮不差, 安得以吾人之病通, 擬之於群物乎? (《중용강의보》 1:4).

 

44) 苟世人者生而不能不爲善, 從何處可稱‘成善’乎? 天下無無‘意’于爲善而可以爲善也. 吾能無强我爲善, 而自往爲之, 方可謂爲善之君子. 天主賦人此性, 能行二者, 所以厚人類也. 其能取捨此善, 非但增爲善之功, 尤?其功爲我功焉(《천주실의》 7:2~7:3).

 

45) 孟子之謂性善, 豈有差乎. 但不得不善人則無功. 於是又賦之以可善可惡之權, 聽其自主, 欲向善則聽, 欲趨惡則聽, 此功罪之所以起也.···自此以往, 其向善汝功也, 其趨惡汝罪也, 不可畏乎(《논어고금주》 9:11).

 

46) 天旣賦之以此性, 故又能時時刻刻提醒?啓. 每遇作惡, 一邊發慾, 一邊沮止, 明沮止者, 卽本性所受之天命也. 天命之謂性, 非是之謂乎? 若所謂善惡渾者. 天之賦性旣如此, 則人之行善, 如水之就下, 火之就上, 不足爲功能. 故天之於人, 予之以自主之權, 使其欲善則爲善, 欲惡則爲惡, 游移不定(《맹자요의》 1:34).

 

47) 今論人性, 人恒有二志, 相反而竝發者, 有?而將非義也則欲受而兼欲不受焉, 有患而將成仁也則欲避而兼欲不避焉. 夫欲受與欲避者, 是氣質之欲也, 其欲不受而不避者, 是道義之欲也. 犬與牛也, 投之以食, 欲食焉而已, ?之以刃, 欲避焉而已, 可見其單有氣質之性也. 且人之於善惡, 皆能自作, 以其能自主張也, 禽獸之於善惡, 不能自作, 以其爲不得不然也. 人遇盜, 或聲而逐之, 或計而擒之, 犬遇盜, 能吠而聲之, 不能不吠而計之, 可見其能皆定能也, 夫人性之於禽獸性(《맹자요의》 2:19).

 

48) 案吾人靈體之內, 本有願欲一端. 若無此欲心, 卽天下萬事, 都無可做. 唯其喩於利者, 欲心從利祿上穿去, 其喩於義者, 欲心從道義上穿去. 欲之至極, 二者皆能殺身而無悔. 所謂貪夫殉財, 烈士殉名也. 余嘗見一種人, 其心泊然無欲, 不能爲善, 不能爲惡, 不能爲文詞, 不能爲産業, 直一天地間棄物, 人可以無慾哉. 孟子所指, 蓋利祿之慾耳(《心經密驗》, 〈心性總義〉).

 

49) 欲之爲字, 從谷從欠, 谷者虛也, 欠者?也. 凡物之虛?者, 常欲取他物以盈之, 人心之有願欲, 其象如此. 故會意制字, 由是觀之. 欲之爲字, 雖不加心, 與私慾之慾, 無差殊也(《중용강의보》 1:64.).

 

50) 賢賢親親, 非官人之德乎? 樂樂利利, 非惠民之德乎? 治天下之大經大法, 唯斯二者, 故大學以此而結局也. 治平之術, 九經八統, 其目甚廣, 奚必斯二者之爲大乎? 原夫生民有欲, 其大欲有二, 一曰富, 二曰貴. 凡君子之族, 仕於王朝者, 其所欲在貴. 小人之族, 耕於王野者, 所欲在富. 官人失其宜, 則怨詛興於貴族, 惠民有不周, 則怨詛興於小民, 二者皆足以失國(《尙書古訓》, 〈皐陶謨〉 2:32~33).

 

51) 有生之初, 人各自私也, 人各自利也. 天下有公利而莫或興之, 有公害而莫或除之. 有人者出, 不以一己之利爲利, 而使天下受其利, 不以一己之害爲害, 而使天下釋其害. 此其人之勤勞, 必千萬於天下之人···後之爲人君者不然. 以爲天下利害之權皆出於我, 我以天下之利盡歸於己, 以天下之害盡歸於人, 亦無不可. 使天下之人不敢自私, 不敢自利, 以我之大私爲天下之大公···古資以天下爲主, 君爲客, 凡君之所畢世而經營者, 爲天下也. 今也以君爲主, 天下爲客, 凡天下之無地而得安寧者, 爲君也···然則爲天下之大害者, 君而已矣. 向使無君, 人各得自私也. 人各得自利也. 嗚呼, 豈設君之道固如是乎···雖然使後之爲君者, 果能保此産業, 傳之無窮, 亦無怪乎其私之也. 旣以産業視之, 人之欲得産業, 誰不如我?(《明夷待訪錄》, 〈原君〉).

 

52) 天下之人各懷其家, 各私其子, 其常情也. 爲天子爲百姓之心, 必不如其自爲, 此在三代以上已然矣. 聖人者因而用之, 用天下之私, 以成一人之公而天下治. 夫使縣令得私其百里之地, 則縣之人民皆其子姓, 縣之土地皆其田疇, 縣之城郭皆其藩垣, 縣之倉?皆其??. 爲子姓, 則必愛之而勿傷, 爲田疇, 則必治之而勿棄, 爲藩垣??, 則必繕之而勿損. 自令言之, 私也, 自天子言之, 所求乎治天下者, 如是焉止矣. 一旦有不虞之變, 必不如劉?石勒?王仙?黃巢之輩, 橫行千里, 如入無人之境也. 於是有效死勿去之守, 於是有合從締交之拒, 非爲天子也, 爲其私也. 爲其私, 所以爲天子也. 故天下之私, 天子之公也. 公則說, 信則人任焉. 此三代之治可以庶幾, 而況乎漢唐之盛, 不難致也(《亭林詩文集》 권1, 〈郡縣論〉 5).

 

53) 필자는 아래에서 성호 이익의 公利에 대한 강조를 언급했는데, 그 이전인 17세기 초엽 權得己로부터 이미 公利와 私利에 대한 구분 및 公利를 義로 간주하는 학설이 제기된 바 있다고 한다. 義와 利를 대척적으로 이해하던 전통논리의 최초의 수정이 그로부터 일어났다고 평가받고 있다(임형택, 〈19세기 서학에 대한 경학의 대응〉, 《실사구시의 한국학》, 2002, 218쪽 참조).

 

54) ‘聖賢之七情’. 若向所謂孟子之喜, 舜之怒之類, 亦是聖賢同仁之私也. 傳曰, ‘好色則與百姓同之, 好貨則與百姓同之’者, 方是自吾身欲惡之私, 而推向共去也···豈非物欲淨盡, 天理流行, 與天下同其私者乎?(《星湖全書》 권7, 〈四七新編〉 4),

 

55) “사람이란 태어나면서부터 욕심이 있게 마련이고 땅에 떨어지자 곧 배고프게 된다. 이 배고픈 것은 人心에 저절로 있는 것이라 道心의 절제를 받지 않는 것인데 어찌 선하지 않음이 있겠는가? 사람들이 허물을 惡에다 돌리는 것은 다만 인심에서 악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인심이란 것도 최초의 근원은 선하지 않음이 없으니 이 선하지 않은 것은 음탕한 人欲에 따라 생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선하지 못한 싹은 배고프고 추운 데서 시작된다. 그러나 배고프고 추운 마음이 있을 뿐이고 무슨 계교가 있어서 배고픔과 추위를 면하려는 것이 아니다. 또 무슨 계교가 있어 무리한 짓으로 배부르게 먹고 따뜻하게 입으려는 것도 아니다”(《星湖僿說》 제19권, 〈經史門〉, 〈性善〉).

 

56) 有發於一己之私者, 有發於同體之私者, 有發於義理者, 必須分三段說, 究極於毫忽之際, 方可以語此矣(《星湖全書》 권1, 〈答尹幼章〉[壬辰]).

 

57) 利者, 義之和也. 天地間, 元有此理. 利若無人己之別, 則何所往而不可. 聖人者, 以四海爲家, 固欲同仁而極利之. 則愈利愈善, 惟恐其一毫之不利也. 若主一國, 則利吾國, 而未必利他國···主一身, 則利吾身, 而未必利他身. 此利己而不利人, 私也, 非公也, 利所以不可行也. 若利吾身吾家, 而達之天下, 亦無害者, 亦不害爲公利(《星湖全書》 권4 ; 《論語疾書》, 〈理仁〉 12조).

 

58) 柳君名字說. 天地之心, 主利而去害, 人物之性, 好利而惡害, 聖人之道, 非?賊其性而爲仁義也. 仁義, 乃所以利之也···誠不足者, 以其不見道德仁義之利也. 苟不心服其利, 意何由誠乎? 夫仁義公正, 與物同利者, 天之美利也. 貪鄙陰私, 損人益己者, 人之慾利也.···人之生也, 不能自利, 必須人以後利. 須人以利, 而欲專有之, 其所爲利者易窮, 而害從以隨之矣(《白雲文抄》 권3, 39조).

 

59) 書云, 天生民有欲, 欲者, 天命之性. 人物之所同得, 而不可移易增滅者也...是故欲爲性心情之主也, 人而無欲, 則無以異於木石也. 言動視聽思慮食色, 以有欲故作也. 人而無欲, 何以爲人哉(《福利全書》, 〈先後傷〉).

 

60) 天地之理, 虛實相配而行, 人稟天地之氣而爲性曰欲, 欲有二焉, 好利也, 好名也(《福利全書》, 〈先後傷〉).

 

61) 임형택은 19세기 중반 西勢의 위협이 갈수록 가공하게 느껴질 때 체제는 위에서 경직되고 민심은 아래서 흐트러진 위기 상황에 대처하기 위한 ‘사상적 대응’이 심대윤의 독특한 관점과 발상을 낳았다고 보았다(임형택, 〈19세기 서학에 대한 경학의 대응〉, 213쪽).

 

62) 渾淪廣大無遠不覆, 高明顯赫, 無微不燭, 故君子一動一手一轉念之頃, 毫忽有差, 便違於天, 敢不敬乎. 天之靈明, 亦不應喜其私媚受其欺? (《少眉山房藏》, 〈洋學辨〉 卷上)

 

63) 天賦之靈明, 有不可? (《少眉山房藏》, 〈洋學辨〉 卷上)

 

64) 其善者降之福祥, 其不善者降之禍殃, 天地所以爲天, 如是而已 (《少眉山房藏》, 〈洋學辨〉 卷上)

 

65) 彼世界之魂, 有三品. 下品名曰: 生魂, 卽草木之魂是也. 此魂扶草木以生長, 草木枯萎, 魂亦消滅. 中品名曰: 覺魂, 則禽獸之魂也. 此能附禽獸長育, 而又使之以耳目視聽, 以口鼻啖嗅, 以肢體覺物情. 但不能推論道理. 至死而魂亦滅焉. 上品名曰: 靈魂, 卽人魂也. 此兼生魂覺魂. 能扶人長養, 及使人知覺物情, 而又使之能推論事物, 明辨理義(《천주실의》 3:3).

 

66) 西儒說人云, 是乃生, 覺者, 能推論理也. 曰: 生, 以別于金石. 曰:覺, 以異于草木. 曰: 能推論理, 以殊乎鳥獸. 曰: 推論, 不直曰: 明達, 又以分之乎鬼神. 鬼神者, 徹盡物理, 如照如視, 不待推論.··· 故曰: 能推論理者, 立人於本類, 而別其體於他物, 乃所謂人性也(《천주실의》 7:1).

 

67) 凡人之所以異於禽獸, 無大乎靈才也. 靈才者能辯是非別眞僞, 而難欺之以理之所無. 禽獸之愚, 雖有知覺運動, 差同于人, 而不能明達先後內外之理.···人則超拔萬類, 內?神靈, 外覩物理. 察其末而知其本, 視其固然而知其所以然. 故能不辭今世之苦勞, 以專精修道, 圖身後萬世之安樂也. 靈才所顯, 不能强之以殉夫不眞者(《천주실의》 1:1하~1:3상).

 

68) 有形之身, 得耳目口鼻四肢五司, 以交覺于物. 無形之神, 有三司以接通之. 曰: 司記含, 司明悟, 司愛欲焉. 凡吾視聞啖覺, 卽其像由身之五門竅, 以進達于神. 而神以司記者受之, 如藏之倉庫, 不令忘矣. 後吾欲明通一物, 卽以司明者, 取其物之在司記者像, 而委曲折衷其體, ?其性情之眞于理當否. 其善也, 吾以司愛者愛之欲之. 其惡也, 吾以司愛者惡之恨之(《천주실의》 7:6).

 

69) 性之善爲良善, 德之善爲習善. 夫良善者, 天主原化性命之德, 而我無功焉. 我所謂功, 止在自習積德之善也. 孩提之童愛親, 鳥獸亦愛之. 常人不論仁與不仁. 乍見孺子將入於井, 卽皆??. 此皆良善耳.···見義而卽行之, 乃爲德耳. 彼或有所未能, 或有所未暇視義, 無以成德也. 故謂人心者始生, 如素簡無所書也(《천주실의》 7:3).

 

70) 性之所發, 謂之道心. 道心常欲爲善, 又能擇善. 一聽道心之所欲爲, ?之謂率性. 率性者, 循天命也(《중용자잠》 1:3).

 

71) 天之喉舌, 寄在道心, 道心之所儆告, 皇天之所命戒也. 人所不聞而巳. 己獨諦聽, 莫詳莫嚴, 如詔如誨. 奚但諄諄已乎?···詩云天之?民, 如塤如?, 非是之謂乎? 對越上帝之只在方寸, 正亦以是. 求天命於圖?者, 異端荒誕之術也. 求天命於本心者, 聖人昭事之學也(《중용자잠》 1:3) ; 道心與天命, 不可分作兩段看. 天之儆告我者, 不以雷不以風, 密密從自己心上丁寧告戒.···丁寧諦聽, 無所熹微. 須知此言, 乃是赫赫之天命. 循而順之則爲善爲祥, 慢而違之則爲惡爲殃. 君子之戒愼恐懼, 亶在此也(《중용자잠》 1:5).

 

72) 天賦我性, 授之以好德之情, ?之以. 此雖在我, 其本天命也, 凡人認作自己本性, 所以慢之. 一番推究, 認得此性本係天賦, ?乃赫赫天命(《중용자잠》 1:4).

 

73) 若于是不予之以樂善恥惡之性, 使之嗜於善而肥於義, 則畢世盡力, 求爲些微之小善, 亦難乎其果行. 斯則性之於人, 誠爲無上至寶, 可尊可奉, 不可須臾而相違者也(《심경밀험》 2:40).

 

74) 人性之必好爲善, 如水性之必好就下, 火性之必好就上. 賦生之初, 天命之以此性, 雖貪淫虐殺, 無所不爲, 而此性仍然不變. 見忠臣孝子, 則美之爲善也與國人同, 見貪官汚吏, 則疾之爲惡也與國人同, 此所謂性善也. 因此性而感之, 貪淫虐殺者, 有一朝遷義之理, 不善而能然乎?(《맹자요의》 1:32).

 

75) 唯是天命之性, 樂善而恥惡, 每遇一事, 其善惡在前, 一循此性之所欲向, 則可無差誤...只此一條, 爲吾人免惡成善之資斧. 若無此性, 卽雖智如神明, 畢世而不能作絲髮之善矣. 故中庸之工, 唯在乎尊德性. 謂此性卽吾修德之繩墨也, 而天之所以賜我而成德者也. 故尊之奉之, 不敢失墜然也(《매씨서평》, 〈염씨고문소증초〉 4:25).

 

76) 率性之謂道. 故性之所發, 謂之道心. 道心常欲爲善, 又能擇善. 一聽道心之所欲爲, ?之謂率性. 率性者, 循天命也(《중용자잠》 1:4).

 

77) 정인재, 앞의 논문 참조 ; 김선희, 앞의 논문 참조.

 

78) 今見人能應事推理, 辨別是非, 則知其必有靈根在身, 是名靈性, 亦名靈魂(《性學?述》 卷1).

 

79) 佛氏謂如來藏性, 淸淨本然, 謂本然之性, 純善無惡, 無纖毫塵滓, 瀅澈光明. 特以血氣新薰之故, 陷於罪惡. 有宋諸先生皆從此說. 然吾人靈體, 若論其嗜好, 則樂善而恥惡, 若論其權衡, 則可善可惡, 危而不安, 惡得云純善而無惡乎? 佛氏崇?本然, 深咎新薰. 其心以爲若無新薰, 都無犯惡之理. 然人之罪惡, ?由於食色安逸之慾, 斯固形氣之所使, 亦或有大惡巨慝, 起於自心, 而與食色安逸, 絶不相涉者. 若是者, 將焉咎之?···且凡驕傲之病, 不出於形氣. 余於刑曹, 閱諸道殺獄檢案, 諸凡殺獄, 悉由於財酒色氣四者. 其由氣殺人者, 或於食色安逸, 皆無所當. 若言語爾汝之類, 倉卒發怒, 當下殺人者甚多. 若是者却與形軀無涉, 安得每以形軀爲咎哉?(《심경밀험》 2:27).

 

80) 地官修制, 賦貢制五, 鹽鐵考下. 然天地定理, 人主宜富, 下民宜均. 故古之聖王, 立經陳紀, 凡天下富貴之權, 總攬在上, 降德于兆民. 洪範曰, 皇建其有, 斂時五福, 用敷錫厥庶民, 此之謂也. 故天下之田, 皆王田也, 天下之財, 皆王財也, 天下之山林川澤, 皆王之山林川澤也. 夫然後王以其田, 敷錫厥庶民, 王以其財, 敷錫厥庶民, 王以其山林川澤之所出, 敷錫厥庶民, 古之義也. 王與民之間, 有物梗之竊, 其斂時之權, 阻其敷錫之恩, 則皇不能建極, 民不能均受, 若貪官汚吏之橫斂, 豪商猾賈之?利者, 是也(《경세유표》 卷11) ; 民之嚮會于皇極, 如三十輻, 共向于一?, 如百川萬淙, 共向于大海. 私相嚮會者, 皇則惡之. 淫朋相聚, 或推一人以爲長, 比德相讚, 或戴一人以爲賢. 黨同伐異, 負私滅公, 則其國必亂. 豈所謂建極乎? 大抵皇之所以爲皇, 以五福之權在皇也. 此權下移, 皇極乃亡(《尙書古訓》 卷四, 〈洪範〉)

 

81) 洪範九疇者, 五皇極爲主. 不?云者, 不?此皇極之位權也. 乃錫云者, 乃錫此皇極之位權也.···?當建皇極而領九疇, 顧不能焉, 是帝乃震怒, 不?以洪範九疇也. 禹能嗣興, 遂得天下, 建皇極而領九疇, 是天乃錫禹洪範九疇也. 豈有書自天降來乎? 特禹受天之命, 宅此皇極之位, 運智設法, 創立九疇洪範, 以爲王者建極出治之大法, 斯亦天啓其衷, 可云天錫之也. 豈有書自天降乎?(《尙書古訓》 卷四, 〈洪範〉).

 

82) 《경세유표》 卷1, 〈天官吏曹?考績之法〉 참조.

 

83) 古之聖王, 立經陳紀, 凡天下富貴之權, 總攬在上, 降德于兆民. 洪範曰: 皇建其有極, 斂時五福, 用敷錫厥庶民, 此之謂也. 故天下之田, 皆王田也, 天下之財, 皆王財也, 天下之山林川澤, 皆王之山林川澤也. 夫然後王以其田, 敷錫厥庶民, 王以其財, 敷錫厥庶民. 王以其山林川澤之所出, 敷錫厥庶民, 古之義也. 王與民之間, 有物梗之竊, 其斂時之權, 阻其敷錫之恩, 則皇不能建極, 民不能均受. 若貪官汚吏之橫斂, 豪商猾賈之?利者, 是也.···上處其富, 下受其均, 卽王者體天理物之權也(《경세유표》, 〈地官修制 ? 賦貢制五〉).

 

84) 강석화는 《경세유표》의 관료제 구성의 위와 같은 성격을 상세히 분석했다. 고적제를 통해 관리를 임면하는 것 외에 국왕의 어떤 자의적 통치행위도 가능하지 못하도록 다산이 철저히 기능적으로 중앙관제를 정비하려고 했던 것을 엿볼 수 있다(강석화, 〈丁若鏞의 官制개혁안 연구〉, 《한국사론》 21,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1989).

 

85) 이봉규는 국왕과 신료의 역할이 《경세유표》에서 실질적으로 어떻게 규정되고 있는지 분석했고, 이 논의에 따르면 우리가 알고 있는 다산의 강력한 왕권주의적 입장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다산은 국왕과 사대부 어느 쪽도 권력 전횡을 일삼지 못하도록 관료제 메커니즘을 엄격하게 강화하려고 한 것으로 보인다(이봉규, 〈경학적 맥락에서 본 다산의 정치론〉, 《다산 정약용 연구》, 실시학사 실학연구총서, 2012). 

 

86) 帝拜之拜字, 是後世之所不見也. 太甲之於伊尹, 成王之於周公, 猶之可也. 舜於?陶, 非有師保之名顧託之重, 而拜受嘉言, 不有九五之尊, 聖帝之謙恭求益, 有如是矣. 自秦以來, 全以尊主卑臣, 爲馭世之長策, 則君道日亢, 士趨日卑, 而二帝三王之治, 不可復見矣(《상서고훈》 卷2, 〈皐陶謨〉)

 

87) 中和九德, 非祗畏則不能成德, 中和九德, 非祗畏則不能庸久, 故取人任人, 必簡之以九德. 旣簡旣選, 又驗之以庸久, 中而又庸, 則其有祗畏之工, 愼獨之誠可知. 於是乎委任責功, 垂拱仰成, 而一話一言, 罔或侵越以間之. 嗚呼, 此虞夏殷周敎人之法, 亦虞夏殷周用人之法. 嗚呼, 此法之外, 更有第二法乎?···立政一篇, 是三代簡選之遺範, 骨髓精英之攸現, 雖字句古奧, 其旨意則昭著也(《상서고훈》 卷6, 〈立政〉).

 

88) 得人而任之, 王勿間之者, 君道本然. 抑周公持國秉政, 創業垂統, 數十年列于庶位者, 皆灼知?恂之人, 中和戒愼之賢, 成王委任責功, 垂拱仰成, 則庶績以凝. 若以幼沖之見, 牽?交亂於其間, 則三事之臣, 將無以展布四體. 周公此戒, 抑亦時措之宜也(《상서고훈》 卷6, 〈立政〉).

 

89) 惟天生人而又死之, 人命繫乎天, ?司牧又以其間, 安其善良而生之, 執有?者而死之, 是顯見天權耳(《欽欽新書》, 〈序文〉).

 

90) 牧民者有四畏, 下畏民上畏臺省, 又上而畏朝廷, 又上而畏天. 然牧之所畏, 恒在乎臺省朝廷, 而民與天, 有時乎勿畏. 然臺省朝廷, 或邇或遠, 遠者千里, 其彌遠者數千里, 其耳目所察, 或不能周詳. 惟民與天, 瞻之在庭, 臨之在心, 領之在?腋, 與之在呼吸, 其密邇而不能須臾離莫此若. 凡知道者, 曷不畏矣?(《다산시문집》, 〈送富寧都護李鍾英赴任序〉) ; 天下之至賤無告者, 小民也, 天下之隆重如山者, 亦小民也. 自堯舜以來, 聖聖相戒, 要保小民, 載在方冊, 塗人耳目. 故上司雖尊, 戴民以爭, 鮮不屈焉. 鄭宅慶, 海?之武人也, 爲彦陽縣監, 戴民以爭, 監司屈焉, 安鳴鶴, 義州之土民也, 爲康津縣監, 戴民以爭. 監司屈焉(《牧民心書》, 〈文報奉公〉 第四條).

 

91) 御問曰, 夏?商之事, 雖善無徵, 孔?孟之言, 雖善不尊, 均之爲人不信而民不從. 則所以可徵可尊之方, 當於何求得耶? 臣對曰, 無徵者已矣, 不尊者豈善之罪哉? 君子之學, 所以學此善也. 以善爲準, 則有徵之孔?孟, 可信可從矣. 御問曰, 上段旣言無徵?不信之故, 此又以不悖?無疑爲言, 何也? 臣對曰, 行道之本在民從, 民從之本在民信, 不悖?無疑, 明斯民之於斯道, 所宜信從也. 李德操云, 聖人貴徵者, 以其信於民也. 苟信於民, 無徵何傷乎? 故本諸身, 徵諸民, 爲天命之道, 則考三王?建天地而順矣. 然則無徵而揆自一矣, 何必切切於徵哉! 不然, 彼三王者, 從何出道耶? 亦不過本諸身? 徵諸民而已. 故此道爲天命之道, 而質鬼神?俟聖人而如一已矣(《중용강의보》 1:58).

 

92) 地官修制, 田制九, 井田議一. 經界者, 王政之本也. 堯典命官, 惟先命稷, 乃命司徒, 始敷五敎. 孔子論王道, 先富而後敎. 孟子論王道, 先言百畝, 乃說孝悌. 夫以五敎之急, 而後於田政, 則王政莫大於經界也(《경세유표》 卷7) ; 地官修制, 田制十二. 臣謹案, 旣富而敎, 古之道也. 井地旣成, 申之以孝悌之義, 王者之政也(《경세유표》 卷7).

 

93) 伯夷?紂, 居北海之濱’章. 王政莫大乎制民田産. 敎之樹畜, 導其妻子, 使各奉養. 若欲選其耆老, 人人而惠養之, 則不惟力不足, 抑亦惠而不知爲政也. 是知分田制産, 本使之養其父母, 孝弟之敎, 自然行乎其中, 孰謂政敎有二致乎(《맹자요의》, 〈離婁〉 제4) ; 孟子之平生拳拳, 卽百里興王之道, 而其事則不過曰五畝之宅, 樹以桑, ?豚之畜無失時, 謹庠序之敎, 申孝弟之義, 數句語而已. 以今觀之, 何其至平易至淺近, 而當時諸侯, 聽我??, 卒不能擺脫於堅甲利兵之功(《다산시문집》 卷8, 〈對策〉, 〈孟子策〉).

 

94) 《牧民心書》卷7 禮典六曹祭祀, 賓客, 敎民, 興學, 辨等, 課藝 중 敎民과 興學 조목 참조 ; 玉堂進考課條例箚子. 嗟乎, 守令之職, 奚但七事已哉. 守令者, 古之諸侯也. 養老慈幼, 恤窮撫獨, 救災賑乏, 敦孝弟崇?睦, 一應司徒之職, 無往而非其責也(《牧民心書》 卷9, 〈疏〉).

 

95) 有一等沮善者曰, 孝於親友於兄弟, 這便是學, 何必標榜立幟而後, 方爲君子. 此言似極雍容中理, 其實未然. 此人心中, 無樂善向前之志, 安得爲孝友. 名正而後事成耳.···孔子之道, 孝弟而已. 以此成德, 斯謂之仁. 忖以求仁, 斯謂之恕. 孔子之道, 如斯而已. 資於孝, 可以事君, 推於孝, 可以慈幼, 資於弟, 可以事長. 孔子之道, 使天下之人一一皆孝弟, 故曰人人親其親長其長而天下平(《다산시문집》 卷17, 〈爲盤山丁修七贈言〉)

 

96) 余曰噫?子坐, 吾語子. 夫文章何物. 學識之積於中, 而文章之發於外也. 猶膏梁之飽於腸, 而光澤發於膚革也, 猶酒?之灌於?, 而紅潮發於?面也, 惡可以襲而取之乎. 養心以和中之德, 繕性以孝友之行, 敬以持之, 誠以貫之, 庸而不變, 勉勉望道, 以四書居吾之身, 以六經廣吾之識, 以諸史達古今之變, 禮樂刑政之具, 典章法度之故, 森羅胸次之中. 而與物相遇, 與事相値, 與是非相觸, 與利害相形, 卽吾之所蓄積壹鬱於中者, 洋溢動?, 思欲一出於世, 爲天下萬世之觀, 而其勢有弗能以?之, 則我不得不一吐其所欲出. 而人之見之者相謂曰, 文章斯之謂文章(《다산시문집》 卷17, 〈爲李仁榮贈言〉).

 

97) 今閭巷卑微之民, 椎鹵如牛, 而能成孝子之行者, 不可勝數. 婦人淸歌妙舞, 辯慧機警者, 鮮不爲淫, 而黃首黑面, ?務陋劣者, 多辦烈女之節. 善惡之不係乎淸濁也如此(《맹자요의》 2:23).

 

98) 愛養父母謂之孝, 友於兄弟謂之弟, 敎育其子謂之慈, 此之謂五敎也. 資於事父, 以尊尊而君道立焉, 資於事父, 以賢賢而師道立焉, ?所謂生三而事一也. 資於事兄以長長, 資於養子以使衆. 夫婦者, 所與共修此德, 而治其內者也, 朋友者, 所與共講此道, 而助其外者也. 然唯慈者, 不勉而能之, 故聖人之立敎也, 唯孝弟是訓(《다산시문집》 卷10, 〈原敎〉) ; 有子曰其爲人也孝弟. 道者, 人所由行也. 仁者, 二人相與也. 事親孝爲仁, 父與子二人也. 事兄悌爲仁, 兄與弟二人也. 事君忠爲仁, 君與臣二人也. 牧民慈爲仁, 牧與民二人也. 以至夫婦朋友, 凡二人之間, 盡其道者, 皆仁也. 然孝弟爲之根(《論語古今註》 卷1, 〈學而〉) ; ‘君子有?矩之道也.’ 議曰, 人生斯世, 其萬善萬惡, 皆起於人與人之相接. 人與人之相接而盡其本分, 斯謂之仁. 仁者二人也, 事父孝曰仁, 子與父二人也. 事兄悌曰仁, 弟與兄二人也. 育子慈曰仁, 父與子二人也. 君臣二人也, 夫婦二人也, 長幼二人也, 民牧二人也. 仁親仁民, 莫非仁也. 乃聖人之言曰, ?恕而行, 求仁莫近焉. 恕者, 仁之道也(《大學公議》 卷1, 〈舊本大學〉).

 

 

토론문 1 - 송영배(서울대학교 명예교수)

 

백민정 교수의 마테오 리치와 다산 정약용 철학의 거리를 자세히 읽었다. 나는 세 가지 발언으로 논평문을 대치하고자 한다.

 

1) 리치에게는 이성능력의 선택이 도덕행위를 성립시키는 필요한 첫째 조건이 된다는 주장은 옳지만 동아시아, 특히 성리학적 도덕체계가 수백 년 동안 만연하였던 18, 19세기 조선사회에서는 인간이란 누구나 도덕적 선을 추구하는 존재라는 기본 명제가 지배했기에, 다산도 역시 이성능력의 선택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인간은 바로 도덕적 선을 추구하는 존재라고 확신했다는 백민정 교수의 발언은 매우 중요하다고 본다.

 

2) 하지만 송명리학 또는 당시 조선을 지배한 성리학이란 근본적으로 인간과 자연세계, 즉 天道와 人道를 지배하는 것이 仁이라는 도덕형이상학이었다면, 이 기본 틀을 깨고, ① 인간세계와 자연세계를 구분하며, ② 도덕이란 자연계가 아니라, 인간세계에만 적용되며, ③ 따라서 오직 이성적 능력을 갖춘 인간, 즉 인간의 의지의 선택에서 도덕이 비롯된다는 주장은 철학적 세계관의 근본적 전환이다. 필자는, 백민정 교수와 마찬가지로, 다산이 조선과 청조의 여러 학풍, 일본 유학, 서학 등등의 다양한 학문적 영향을 받은 것을 부인할 수 없다고 본다. 그러나 성리학이라는 도덕형이상학을 타파하고, 인간의 사회윤리론으로서의 유학(儒學)을 공자의 洙泗學에서 찾고 있다는 근본적 철학적 관심의 전환이 정다산 철학의 핵심이라고 본다.

 

3) 우리가 보통 서양의 중세적 목적론적 세계관으로부터 근세 인간중심의 세계관의 전환을 서양 근세의 시작이라고 본다면, 동양적 전통의 성리학의 도덕형이상학체계를 통렬히 비판하고 사회적 윤리론으로서의 유학을 다시 들고 나온 다산 철학은 조선에서 근세(近世, modernity)로 향한 첫걸음이었다고 생각한다. 다산의 이 중요한 철학적 전환에 마테오 리치의 《천주실의》가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고 본다.

 

 

토론문 2 - 김선희(이화여자대학교 연구교수)

 

1. 다산 탄생 250주년이었던 올해는 그 어느 해 보다도 다산에 대한 다양한 접근과 평가가 이루어졌던 다산 연구의 중요한 기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도 관련 연구자의 한사람으로서 여러 학회를 경험하면서 많은 연구들로부터 의미 있는 지적 자극과 계발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저에게 일종의 과제이자 도전처럼 여겨졌던 문제는 여전히 과거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다산이 천주교 신자였는가 아닌가, 다산이 서학의 영향을 받았는가 아닌가 같은 문제들입니다. 먼저 다산이 만난 천주교를 지금의 종교체계 안에서의 가톨릭이라는 제도 종교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그는 ‘개종’을 요구하는 현대적 관점에서의 제도 종교가 아니라 하나의 ‘사상’, 그것도 외국어나 음차한 외래어가 아니라 자기 학술 언어와 전통적 개념을 통해 서학-천주교를 접했습니다. 다산이 서학을 통해 유학의 전통 안에 존재하는 종교성을 확인했다고 할 수는 있지만 적어도 학문 안에서는 근대적 관점의 ‘종교’(religion)와의 직접적이고 전면적인 대면이 이루어졌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따라서 그에게 서학은 서학과 유학 중 반드시 하나만 택해야 하는 교조적이고 배타적인 관계가 아니라 - 배타적 관계가 성립할 수 있지만 이는 종교의 개종 문제가 아니라 정통과 이단의 구도 - 얼마든지 원용하고 취사선택 가능한 담론 중 하나였을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서학이 다산 내부의 한 기둥이라는 논문의 주장에 공감합니다.

 

이렇게 본다면 다산의 사상이 서학과 유사한 점도 있지만 ‘다르다’는 평가는 큰 의미가 없습니다. 유학에 대해 서학은 전면적 교체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다르다’는 평가 자체는 중요한 논점이 될 수 없을 것입니다. 그에게 서학은 유학과 대등한 관계가 아니기에 당연히 서학이 그의 일부에 도입될 뿐입니다. 바로 이 점에서 모종의 불일치가 나타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불일치는 그의 갈등이나 신앙의 은폐 또는 배교의 흔적이라기보다는 특정 맥락에 서학을 차용한 결과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서학의 영향 문제에서도 의견이 갈리는 양상을 보이는데 이 점은 불필요하고 소모적인 논쟁으로 보입니다. 비슷한 부분도 있지만 본래 유학에 있던 내용이라는 주장은 왜 본래 유학에 있던 것들이 오직 (성호나) 다산에게만 다시 주목되는지를 설명하지 못합니다. 중요한 것은 영향을 ‘받았는가 아닌가’가 아니라 ‘어떤 의도에서 어떤 방식으로 무엇을 도입하고 어떻게 유학의 이론들과 종합하였는가’지 서학과의 관계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학술적으로도 타당하지 않다고 봅니다. 영향의 정도나 강도는 연구자마다 입장이 다를 수 있지만 적어도 용어 몇 개를 들여왔을 뿐이라는 제한적 평가는 다산 철학의 가능성을 도리어 좁힐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다산 철학의 특이점들에 대해 해석의 다양성이 아니라 정오판정으로 보고자 한다면 문제가 있을 것 같습니다. 어떤 철학자가 위대하다면 그것은 그만큼 풍부하고 다면적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일 것이고, 그 이름을 건 하나의 학문이 성립할 수 있다면 그만큼 다양한 사상적 분위기가 존재하고 또 그만큼 해석이 열려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백민정 박사의 이 논문 역시 서학과 다산 철학의 관계를 다양한 맥락과 논점에서 일별해주는, 유의미한 다양한 해석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이 논문은 ‘다산이 《천주실의》를 통해 보고 싶었던 것’들 다시 말해 서학과의 연관성 속에서 설명할 수 있는 다산의 특징적인 전략과 주제를 다섯 가지 논점으로 정리하는 한편 ‘《천주실의》로 보이지 않는 다산 철학의 구조와 성격’ 즉 ‘이해와 오해 사이의 불가피한 거리’로 찾아가 그 속에서 마테오 리치는 물론 조선 주자학과도 멀어지는 다산 사상의 새로움의 동력을 찾고자 합니다.

 

‘다산 본인이 찾기를 원했던 것만을 《천주실의》라는 외부의 필터를 통해 건져 올렸다’는 논문의 주장에 근본적으로 동의합니다. 서구사상에 대해 아무런 부채의식이 없었던 다산은 이를 전면적으로 수용해야 할 이유도, 일종의 논리적 연관 관계에 따라 일관적으로 도입해야 할 이유도 없었습니다. 원하는 맥락에서 선택을 하고 자기 논리를 강화하기 위해 필요한 것만 도입했을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학문 전체를 유학의 영역 안에 걸고 그 속에서 다양한 문제들을 자기 철학의 중심 과제로 들여옵니다. 그와 다른 학자의 차이라면 그가 기존의 개념들과 논의 구도를 그대로 다 계승하지 않고 여러 담론 사이로 유영하며 적절한 거리두기와 비판, 계승과 수용, 변용과 접합을 시도했다는 점일 것입니다. 다산이 유학의 개별적인 학적 맥락에 대해서는 - 예를 들어 주자학, 양명학 혹은 고증학이나 일본 유학 등 - 자유롭거나 비판적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을지라도 유학의 이념과 지향을 벗어나지는 않았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천주실의》로 보이지 않는 다산 철학의 구조와 성격’은 다산 철학을 파악하는 중요한 관점이면서 동시에 그만큼 주의가 필요한 부분이기도 할 것 같습니다. 이 지점에 대해 몇 가지 질문을 드리고자 합니다.

 

2. 이 논문은 ‘私欲과 自私 · 自利의 경향성’ 즉 ‘개별적 욕망의 보편적 실현’을 천하공으로 이해했던 황종희, 고염무 등의 명말 청초의 중국 지식인들의 지적 경향이 이미 조선 유학자들에게 감지되었고, 성호 이익 역시 사욕과 그의 실현을 천하동체지사로 인정했음을 통해, 다산이 ‘욕구 개념에 주목하게 된 것은 결국 自私 · 自利와 好惡 · 欲惡 등을 성찰하던 전대의 지적 관행으로부터 자연스럽게 파생된 결과’라는 평가에 도달합니다. 이 주장은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다른 측면에서 보는 것도 가능할 것입니다. 망국과 이민족 지배를 경험하게 된 명말청초의 비판적 지식인들이 시대의 문제를 진단하는 과정에서 공의 문제를 새롭게 제기했다는 점은 익히 알려져 있습니다. 황종희와 고염무는 당대 私로서의 개인의 위상과 公으로서의 국가 권력의 관계를 중요한 철학적 문제로 끌어옵니다. 성호학파 역시 欲이나 利에 주목하면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논문에서 말하는 바와 같이 욕이나 리의 강조는 시대의 보편적 문제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과연 그 점이 다산의 원욕, 기호 이론을 서학에 대해 독립적으로 파악하게 해 줄 근거가 될 수 있을까요?

 

먼저 황종희, 고염무가 말하는 사욕은 공과 대비되거나 공으로 전화되어야 할 사로서, 이는 심성의 차원과 관계가 없습니다. 욕에 대한 성호학파의 주목 역시 맥락과 논점이 다산과 다릅니다. 정산 이병휴는 소남 윤동규에게 보내는 편지(上尹丈父書)에서 성호의 편지 중 각주56)의 문장을 거론하며 성호가 신후담의 의견을 반영해 ‘순의 노여움, 맹자의 기쁨’ 같은 공희로를 리가 발한 것으로 수정했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이 논쟁의 핵심 중 하나는 공희로를 리에 귀속시킬 것인가 기에 귀속시킬 것인가의 문제입니다만 성호, 신후담, 윤동규, 이병휴, 안정복 등이 얽혀 있는 이 논쟁의 전체 구도는 사칠론, 즉 사단과 칠정의 이기 분속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성호학파에서 논의되던 사, 사욕의 문제는 황종희, 고염무와도 다르며 사실 다산의 착목점과도 상당히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시대적 경향에 사에 대한 주목이 있었다 하더라도 이들은 다산과 같이 심성의 차원에서 사변적으로 전개하지 않았기 때문에 다산이 시대적 조류에 동참했을지라도 그 논의들이 기호 문제의 직접적 연원은 아닐 것입니다. 이들의 논의 틀과는 달리 다산은 공사문제, 사단칠정이나 이기론의 차원이 아니라 성을 재해석하고 그 층위를 세분화해서 나누는 맥락에서 욕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사나 사욕의 강조보다 사욕이 어떤 논의 구도 안에서, 맥락 안에서 주목되었는지가 다산 철학의 연원을 파악하는 데 더 중요한 논점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명말 청초 지식인의 지적 경향이나 성호학파의 논의로부터 다산의 욕강조를 끌어오기에는 조금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다산이 의도한 바는 아니겠지만 차라리 합리적인 충동(욕구)로서의 의지(마테오 리치의 표현으로라면 司愛欲)를 이성과 함께 영혼의 본질적인 능력으로 규정했던 스콜라 철학의 인간 이해와 더 친연성이 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산이 시대의 지적 경향 안에서 욕과 리에 주목했을 것이라는 점은 충분히 수긍할 수 있지만 이를 유학의 맥락이나 시대의 보편적 지적 경향으로만 설명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3. 靈明은 논문에서 밝히고 있듯 주자학의 파생어이기도 하지만 사실 양명학의 핵심 용어이기도 합니다. 예수회원들이 당대 중국 지식인들의 지적 배경에 호소하고자 했기 때문에 이 표현을 영혼론의 핵심개념으로 활용했던 것입니다. 다산 역시 영명에 주목했을 때 이는 당연히 번역어가 아니라 조금 다르게 해석된 전통적 표현이라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논문에서 예로 들고 있는 이삼환의 경우도 이 표현을 철저히 자기 전통 하에서 이해했기 때문에 다산과 동일한 표현을 쓰고도 반대 방향으로 향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다산이 주자학이나 양명학적 전통과 달리 영명을 마음이 아니라 ‘천’에 직접 부여하고 있다는 점입니다(논문에 일반적인 주자학의 용례로 소개된 경우도 모두 하늘이 아니라 마음 등 인격과 관련된 표현들입니다). 이삼환의 경우 논문에서 예로 든 문장으로 본다면 역시 하늘이 인간에게 ‘부여한’ 영명으로서 하늘 자체가 영명하다는 말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다산은 곧바로 하늘이 영명하다고 표현함으로써 주자학이나 양명학의 영명 개념을 벗어나 버립니다. 영명이 천의 속성이라면 이는 결국 인격적 상제에 대한 수사적 표현일수도 있을 것입니다. 어떤 면에서 스콜라 철학의 이성 - 신의 구도와 유사한 영명 - 상제의 구도가 만들어진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논문은 이 대목에서 논점을 전환해 의지력에 있어서의 다산과 서학의 차이를 이성 능력의 작동 과정에서 찾고 있습니다. 《천주실의》에서 호오의 선택 작용으로서의 의지력이 이성의 추론 능력 다음에 오는 것인 반면 다산에게는 천명에 의한 본능적 욕망으로 규정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마테오 리치가 도덕성을 선천적 욕구로 보는 유학의 전통을 부정적으로 파악하는 데 반해 다산은 인의예지를 실천의 결과로 보면서도 궁극적으로는 그 실천의 근원적 동기를 천명으로서의 성의 발현으로 파악하는 점이 중요한 차이로 주목됩니다. 아마도 이 차이는 마테오 리치가 인간의 이성 능력과 의지의 배후에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 유일한 근원으로서의 ‘신’의 자리를 확보하고자 했던 반면 다산은 상제 외에 ‘천명’이나 ‘도심’ 같은 규제적 개념 장치를 활용할 수 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스콜라 철학에서는 도덕적 실천이 영혼에 내재된 욕구로부터 비롯될 때 이 이 욕구로부터 도덕적 결과까지의 과정을 검열하고 인도하는 것은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이성입니다. 하지만 다산에게는 그런 이성의 스크린이 필요 없었습니다. 양심에 직접 호소하는 도덕적 명령으로서의 ‘천명’을 성에 연결하기만 하면 매번 이성의 검열을 받을 필요 없이 순선한 동기를 이끌어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때 다산의 성은 사실 결정되지 않은 것을 기호할 수 있는 자율적인 능력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이미 도덕적 명령을 내장한 실천 기제라고 볼 수 있습니다. 또 명령을 듣지 못할까 두려워하며 늘 자신을 긴장 상태에 두어야 한다는 점에서 자유롭다고도 볼 수 없을지 모릅니다. 의도적으로 과하게 해석한다면 천명으로서의 성은 사실 외부 대상을 기호할 수 있는 자주적인 것이 아니라 이미 선으로 향하도록 정해진, 결정적 조건이자 끝없는 긴장을 요구하는 타율적인 규제력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다산이 강조한 기호나 자주지권의 의미나 의의가 단순히 수사적 차원에 그치게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저는 성의 의미를 전환하되 천명과 도심을 버리지 않은 점이 자주지권, 성기호, 영명지체 등으로 기존 유학을 초과했던 다산 철학이 서학이라는 모종의 우회를 거쳐 유학의 본령 안으로 회귀하도록 하는 가장 유학적인 장치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바로 그 점 때문에 새로운 인간 이해의 가능성이 다시 제한되는 것은 아닌가하는 고민을 해왔습니다. 제 숙제를 같이 고민해주시고 풀어갈 실마리를 찾아주시면 좋겠습니다.

 

4. 한편 같은 대목에서 ‘다산이 영명지체로서의 심과 호선오악하는 성을 차례로 구분하면서 영명지체는 성과 달리 순선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고, ‘다산이 생각한 영명지체는 리치나 알레니가 생각했던 영혼, 영성, 영명처럼 순선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行事’[性/權衡/行事(심경밀험)]와 ‘勢’[性/才/勢(염씨고문소증초)]의 측면을 필연적으로 수반한 것으로 不善의 가능성을 원리적으로 이미 내장한 것’이라고 되어 있는데 이 점은 다르게 볼 수 있습니다. 일단 리치나 알레니가 말하는 영혼, 영성, 영명은 스콜라 철학의 ‘영혼’의 번역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에 순선하다기보다는 언제나 악의 계기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이에 비해 차라리 다산의 영명지체가 보다 순선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주21) 주23)의 문장도 그렇지만 ‘이 영명한 무형의 본체라는 것은 선을 좋아하고 악을 미워하며 덕을 좋아하고 악을 수치스러워하니 이것을 일러 성이라 하고 또 성이 선하다고 하는 것’1)이라는 대목에서 볼 수 있듯 영명은 덕을 좋아하고 악을 부끄러워[好德恥惡]하는 이른바 호선오악하는 경향성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영체’ 내에 세 가지 이치가 있고 여기에 선을 좋아하고 악을 부끄러워하는 성뿐만 아니라 선을 할 수도 악을 할 수도 있는 측면이 포함되어 있다는 주30)의 경우는 좀 더 자세히 검토할 필요가 있을 것인데 일단 이 하나에 영명에 관한 다른 설명들을 모두 환원해 넣을 수는 없다고 봅니다. 다산은 ‘영명’을 변주하여 성과 심 모두에서 활용하는데, 여기에는 층위가 다른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본격적인 연구가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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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蓋人之胚胎旣成, 天則賦之以靈明無形之體. 而其爲物也, 樂善而惡惡, 好德而恥惡, 斯之謂性也, 斯之謂性善也. 《여유당전서》 2집, 〈中庸自箴〉 권1:2b.

 

[교회사 연구 제39집, 2012년 12월(한국교회사연구소 발행)]

 

※ 본문 중에 ? 표시가 된 곳은 현 편집기에서 지원하지 않는 한자 등이 있는 자리입니다. 정확한 내용은 첨부 파일에서 확인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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