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4일 (토)
(백) 부활 제5주간 토요일 너희는 세상에 속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뽑았다.

성미술ㅣ교회건축

건축칼럼: 장미창, 영원한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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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2-11-12 ㅣ No.893

[건축칼럼] 장미창, 영원한 현재

 

 

고딕 대성당에는 정면인 서쪽, 교차부의 남쪽과 북쪽 등 세 개의 포털 위에 원형의 창이 크게 뚫려 있습니다. 이를 장미창(rose window)이라고 합니다. 밖에서 보면 돌로 섬세하게 세공한 패턴만 보이지만, 약간 어두운 성당 안에 들어서면 하늘을 향하는 높은 공간을 멈추게 하려는 듯, 자기 완결적인 원의 형태를 통하여 신비한 빛이 강렬하게 나타납니다.

 

그런데 우리는 장미창을 잘못 알고 있습니다. 로사리오 기도의 장미가 지혜의 꽃이며 거룩하신 성모님의 상징이므로, 이 둥근 창을 장미창이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장미라는 말에서 성모님을 연상하여 이 창이 성모님을 상징한다고 여겼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장미창은 성모님을 상징하는 창이 아닙니다. 장미창은 ‘차륜창(車輪窓, wheel window)’이라고도 부릅니다. 이 두 이름은 모두 꽃잎 또는 바큇살처럼 중심에서 방사되는 일련의 작은 창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해서 붙여졌습니다. 그러나 이것도 충분한 설명이 못 됩니다.

 

고딕 대성당의 장미창은 구약성경의 예언자 에제키엘이 본 구세주의 비전과 일치하여 만들어진 것입니다. “내가 그 생물들을 바라보니, 생물들 옆 땅바닥에는 네 얼굴에 따라 바퀴가 하나씩 있었다. 그 바퀴들의 모습과 생김새는 빛나는 녹주석 같은데, 넷의 형상이 모두 같았으며, 그 모습과 생김새는 바퀴 안에 또 바퀴가 들어 있는 것 같았다.”(에제 1,15-16) “바퀴 안에 또 바퀴”는 ‘차륜창’에서 빛나는 중심이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온 우주를 향한 모든 빛의 근원이심을 미리 보여준 것입니다. 따라서 장미창은 에제키엘의 환시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는 세상의 빛이다.”(요한 8,12)라고 한 말씀을 형상화한 것입니다.

 

샤르트르대성당에는 세 개의 포털 위에 각각 세 개의 장미창이 있습니다. 북쪽 장미창은 그리스도인 아기 예수를, 남쪽 장미창은 부활하신 예수를, 서쪽 장미창은 심판자 예수를 나타냅니다. 이렇듯 북쪽 횡랑의 장미창(1235년 제작)은 구약을 형상화했습니다. 중심의 오쿨루스(oculus)는 성모와 어린 예수를 나타내며, 열두 개의 꽃잎 모양의 창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남쪽 횡랑(1225~1230년 제작) 장미창의 중심에서는 새로운 태양이신 그리스도께서 오른손을 들어 강복하시고 찬미하는 천사들에게 둘러싸여 계십니다. 한편 정면 입구 위에 있는 장미창(1215년 제작)의 중심은 요한묵시록에 기록된 심판자 그리스도를 나타냅니다.

 

이 세 개의 장미창은 영원하신 진리이자 로고스이신 그리스도를 표현합니다. 이 세 개의 장미창은 영광송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처럼, 과거(‘처음과 같이’, 구약)와 현재(‘이제와’, 신약)와 미래(‘항상 영원히’, 장차 오실 심판)라는 세 가지 시간을 나타냅니다. 이렇게 하여 성당은 세 개의 시간 속에 놓이게 됩니다. 그러니까 성당 안에 있는 우리는 세 개의 시간이 합쳐진 영원한 현재에 있는 것입니다.

 

[2022년 11월 13일(다해) 연중 제33주일(세계 가난한 이의 날) 서울주보 7면, 김광현 안드레아(서울대 건축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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