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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부활 제7주간 금요일 내 어린양들을 돌보아라. 내 양들을 돌보아라.

레지오ㅣ성모신심

레지오의 영성: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요한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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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07-05 ㅣ No.461

[레지오 영성]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요한2,5)

 

 

아직 짧은 무염시태 서울 세나뚜스 전담신부 경험으로 감히 한번 우리 레지오 마리애를 생각해봅니다.

 

우선 레지오를 사랑하는 많은 분들이 한국 레지오 마리애(이하 레지오)가 위기에 처해있다고 우려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선 단원들이 줄고 있다고 걱정들을 하십니다. 각 평의회 종합보고에 레지오 단원들이 또는 쁘레시디움이 줄었다는 보고가 많아졌다고들 합니다.

 

실지로 최근 서울 세나뚜스의 인원은 10년 전부터 계속 감소 추세입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맞벌이부부, 생업 등으로 레지오 활동을 힘들어 하는 분들이 많아졌다는 것이고 또 새로운 신자의 증가세가 적어 그렇다고들 하십니다.

 

두 번째, 레지오 단원들이 활동을 제대로 안한다는 것입니다. 과거 레지오 단원들의 모습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많은 단원들이 과거 레지오 단원들이 하셨던 활동을 못하신다는 것입니다. 이는 나이든 단원들이 많아져서 그렇다는 분들과 세상이 바뀌어 선교환경이 달라져서 그렇다고 말들을 하십니다.

 

세 번째, 그래서 레지오가 활동이 아닌 친교의 공동체 모습을 갖는다는 것입니다. 많은 쁘레시디움 단장들이 기도와 활동으로 이끌어가기 보다 친교로 쁘레시디움을 운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분들만의 책임은 아니라 합니다. 레지오는 도제제도로 운영되어야 하는데 새 단장들은 그런 도제를 통해 교육받을 기회조차 없기에 친교를 도구로라도 쁘레시디움을 운영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어떤 면에서는 눈물겨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규칙에 어긋난 관리는 더 큰 어려움 만들어

 

그래서 서울 어떤 본당의 레지오는 쁘레시디움 단원이 줄지 않게 하기 위해 이사를 간 사람조차 보내지 못하고 계속 전 본당의 쁘레시디움에 나오게 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고 합니다.

 

이런 규칙에 어긋난 잘못된 관리는 더 큰 어려움을 만들게 됩니다. 바로 본당신부님이나 상급평의회에서 요구하는 활동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되기 때문입니다.

 

쁘레시디움 단원이 10명 있어도 나이 드신 분과 멀리 이사 간 단원들을 빼면 실제로 활동할 수 있는 단원은 3,4명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실제적으로 전 단원 10명에게 배당된 활동을 3,4명이 다 해내야 하니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이런 힘든 상황이 되풀이 되면 결국 레지오를 하시는 분들이 한 분, 두 분 떠나시게 됩니다.

 

이렇게 해서 그 쁘레시디움은 다시 첫 번째 상황으로 돌아가 레지오 단원들이 줄고, 이어 두 번째 문제, 레지오 단원들이 활동을 제대로 할 수 없고. 또 세 번째 단장은 쁘레시디움을 친교로 밖에 이끌 수 없는 악순환이 되풀이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런 반복되는 문제는 실지로 군대 조직을 모방한 레지오 시스템을 붕괴시키는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고 있습니다. 지시와 활동, 그리고 보고를 통해 이루어졌던 성모님의 군대인 레지오의 모습이 실상을 파악하지 못한 잘못된 지시와 거기에 따른 불만, 거짓 보고를 통해 이루어지는 기만이 우리의 영혼을 어둡게 만들어 버립니다.

 

그래서 정작 단원 자신의 성화를 통해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야 하는 레지오의 목적 자체를 잃어버리는 안타까운 상황이 되어버리고 맙니다.

 

이 얼마나 억울한 일입니까? 자신을 성화하고자 기도하고 활동한 것이 거꾸로 주님과 멀어지는 신심활동이 되어 버리니 말입니다. 물론 모든 본당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열심히 잘 하고 계시는 분들도 많이 계십니다. 그러나 다 그렇지 않다는 것은 한국 레지오의 위기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성모님의 겸손과 순명 따르는지 되돌아봐야

 

또한 제가 그동안 많이들은 이야기는 본당신부님이 레지오에 관심이 없다는 것입니다. 레지오 단원들이 볼 때 본당의 궂은일과 어려운 일은 다 레지오 단원들이 하는데 정작 신부님들이 몰라준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레지오 단원들은 신부님들의 관심을 원하고 또 훈화와 강복을 원합니다. 그러나 그것 이외에 신부님이 레지오를 통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습니까? 신부님들은 본당에서 레지오가 자기들만의 단체 같다고 말하십니다. 본당사목에 필요해서 이것저것을 시키면 교본에 없다든지, 상급평의회에 문의해야 한다고, 단원들의 상황이 안 된다며 피해가는 레지오를 보고 어느 신부님이 좋아하시겠습니까? 물론 모든 본당이 그렇다는 것은 아닙니다. 또 사실 레지오를 잘 몰라 힘든 요구를 하는 신부님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다고 그분이 그 본당의 사목자가 아닙니까?

 

우리 레지오는 분명히 해야 합니다. 교본에도 레지오 단원들은 성모님의 군대로서 본당사목의 협조자로 규정되어 있습니다. 모든 분들은 아니지만 가끔 본당의 사목을 평가하고 독자적으로 행동하시는 단장님들이 계시니 본당 신부님들과 부딪치지 않겠습니까? 그런 레지오의 모습을 보며 신부님들이 관심을 주겠습니까? 정말 본당사목에 적극적인 도움이 되는 레지오라면 어떤 신부님들이 사랑하지 않겠습니까?

 

심지어 어떤 본당의 경우는 본당 신부님과 대립하는 대표적인 사람들이 레지오 단원들이라는 말도 안 되는 일도 있다고 합니다.

 

레지오의 영성은 무엇입니까? 성모님의 겸손과 순명입니다. 과연 성모님의 군인인 우리는 성모님의 겸손과 순명을 따르고 있는지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혹시 주관적인 생각이나, 자기만의 경험에 따라 본당을 판단하고, 신부님을 판단하고 있는 레지오 단원은 아닌지, 많은 묵주기도와 희생과 활동, 그리고 매일미사를 한다고 영적교만에 빠져 신부님의 발목을 잡고 있지는 않는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이제 레지오는 한국에 레지오가 전파되었을 때로 돌아가야 합니다. 초심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한국 초기 레지오 단원들은 본당 신부님들의 양팔이며 양다리였습니다. 또 신부님들의 눈이며 입이었습니다. 본당사목에 레지오가 없으면 안 될 정도의 크나큰 활약이 있었습니다. 이제 다시 신부님의 마음을, 눈을, 입을 바라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하기 위해 우선 우리 각자부터 레지오 단원으로서 자신의 모습을 뒤돌아보아야 합니다. 레지오 본래의 뜻을 잃고 편한 레지오 활동에 안주하고 있지는 않는지, 분명 교본에서 제시하는 레지오 방법과 다르다는 것을 느끼기는 하지만 현재 상황과 타협하고 있지는 않는지, 내가 못한다고 다른 단원들까지 더 레지오 단원이 되고자 노력하는 모습을 방해하고 있지는 않는지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도 성모님께서는 사랑하는 우리 레지오 단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요한 2,5)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6년 7월호, 정영진 도미니꼬 신부(서울 Se. 전담신부, 월간 레지오 마리애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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