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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미술ㅣ교회건축

한국의 주교좌 성당: 수원교구 주교좌 성당의 리셋 - 고등동, 조원동 그리고 정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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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2-11-29 ㅣ No.897

한국의 주교좌 성당 (10) 수원교구 주교좌 성당의 ‘리셋’


고등동, 조원동 그리고 정자동

 

 

수원교구 주교좌 성당의 변천사는 수도권의 발전과 궤를 같이한다. 내년이면 60주년을 맞는 교구로서는 이례적으로 현 주교좌 정자동 성당(1997년 지정), 공동 주교좌 조원동 성당(1977년 지정), 초대 주교좌 고등동 성당(1963년 지정)이란 이력을 쓰고 있는 것은 역동적인 경기 남부 지역의 발전과 그에 따른 교세 확장을 보여주는 지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는 어떤 성장을 주도하면서 주교좌 성당 또한 리셋(reset)해 나갈지 기대하게 하는 대목이다.

 

수원교구 초대 주교좌 고등동(高等洞) 성당(주보 : 노동자의 모범이신 성 요셉)은 1945년 해방 당시 수원 제2 본당으로 건립이 추진되었으나 한국전쟁으로 무산되었다가 1954년 재개되었다. 1959년 10월 부지를 매입하고 11월 25일 설립된 고등동 성당은 1960년 3월 착공해 같은 해 11월 완공하였다.1) 1963년 10월 7일 서울대교구로부터 수원교구가 분리 · 독립하면서2) 초대 교구장으로 임명된 윤공희(尹恭熙, 빅토리노) 주교가 고등동을 주교좌로 지정하였다. 그러나 전후 가난 속에 원래 계획보다 1/3가량의 규모로 지어져 500여 명 정도밖에 수용할 수 없었다.3)

 

교구가 성장하면서 주교좌 성당을 신축해야 한다는 의견이 대두됨에 따라 1976년 11월 19일 설립된 조원동(棗園洞) 성당(주보 : 평화의 모후)은 1974년 제2대 교구장 김남수(金南洙, 안젤로) 주교가 착좌식을 치르면서 그 필요성을 더욱 공감하며 빠르게 추진되었다. 하지만 부지 선정에서 혼란이 있었다. 처음에는 북수동(北水洞) 본당 신자 차성화(수산나, 1900~1980)가 교구에 기증한 조원동 부지에 건립이 결정되었으나, 1975년 10원 16일 북수동 성당으로 변경되면서 혼선이 야기되었다. 결국 1976년 4월 2일 교구 사제 모임에서 과반의 찬성으로 다시 조원동 부지가 확정되었다. 1976년 6월 28일 기공식을 하고 1977년 5월 18일에 준공식과 봉헌식이 거행되었다. 한편 고등동 성당은 1977년 9월 7일 자 인류복음화성 포고문에 따라 ‘준주교좌 성당’으로 존속하게 되었다.4)

 

1990년대 들어 성남 분당과 용인 수지에 대규모 신도시가 건설됨에 따라 수원교구는 장래의 발전을 예상하고 1991년 10월 장안구 정자동에 새 성당 부지와 교구청 신청사 예정 부지를 매입하였다. 이렇게 1997년 2월 14일 설립된 정자동(亭子洞) 성당(주보 : 한국 순교 성인)은 1997년 7월 29일 교황청으로부터 주교좌 성당으로 인준을 받고(이때 조원동 성당은 공동 주교좌가 됨), 8월 20일 제3대 교구장 최덕기(崔悳基, 바오로) 주교 주례로 봉헌식이 거행되었다.5) 앞서 1997년 2월 새 교구청이 이곳으로 이전함으로써 명실상부 수원교구 사목 행정의 중심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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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59년 11월 25일 수원(현 북수동) 본당에서 분리 · 설립된 고등동 성당은 공사비 1,600여 만 환을 들여 총건평 121평의 성당을 완공했다(『고등동 본당 50년史 : 1959-2009』, 2010, 68쪽).

 

2) 해방 이후 급속한 교세 팽창으로 서울 대목구는 충북지역(1958년)과 인천지역(1961년)을 분리했지만 매년 증가하는 신자 수와 분당 증설로 그 효과는 얼마 가지 않았다. 충북과 인천 지역의 분리가 서울 대목구 장상인 노기남 대주교의 주도 아래 이루어진 것이라면, 한강 이남 경기지역의 분리는 일선 사제들의 논의에서 시작되었다. 1962년 3월 한국 천주교회에 정식 교계제도가 수립된 것을 계기로 한강 이남 본당 주임 신부들이 교구 분리를 청원하는 진정서를 공동 작성하여 제출하였다. 시내(서울)에 비해 사목 환경이 불안정한 농촌 지역의 안정적인 교세 확장을 위해서였다(『수원교구 50년사 I, 교구사』, 2017, 399-401쪽).

 

3) 『가톨릭신문』 2016년 3월 3일 자, 3면.

 

4) 『수원교구 50년사 I, 교구사』, 2017, 496쪽; 『조원동 주교좌 성당 25주년사』, 2000, 51 · 73쪽.

 

5) 1993년 5월에 착공해 4년여 간의 공사 기간을 거쳐 지하 1층, 지상 5층, 연면적 6,611㎡에 높이 50m 규모로 완공되었다. 15층 아파트 높이로 대성당과 소성당을 합해 약 2,5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다. 총공사비 123억 원이 투입됐으며 진흥종합건축설계사무소(소장 손영)가 설계하고 한울종합건설이 시공을 맡았다(『가톨릭신문』 1997년 8월 24일 자, 18면; 2017년 8월 20일 자, 4면).

 

6) 『수원교구 50년사 I, 교구사』, 2017, 575 · 581 · 615쪽.

 

[교회와 역사, 2022년 10월호, 이오주은 미카엘라(한국교회사연구소 미디어콘텐츠사업부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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