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9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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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 스페인 가톨릭 문화와 역사 탐방3: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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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07-13 ㅣ No.1500

[스페인 가톨릭 문화와 역사 탐방] (3)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걸음마다 ‘삶의 신비’라는 발자국 남기에



- 덴마크 출신 마크 부부가 순례길을 걷고 있다.


걷는다는 것은 가장 능동적 행위이다. 목적지를 정해 놓든 무작정 걷든 걷고자 하는 의지가 우선하기 때문이다. 걷는다는 것은 또한 가장 수동적 행위이다. 걷다 보면 어느새 주체인 자아를 잊어버리고 하느님과 같은 초월적 존재를 찾아 삶을 돌아보고 인생을 논하고 존재를 인식하며 자연과 몰아 일체가 된다. 그러므로 걷는다는 것은 그 자체로 바로 ‘순례’이다.

 

지난 6월 9일 하루 30km씩 34일을 걸어 스페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주교좌성당에 도착한 마산 회원동본당의 최철순(체칠리아, 60)ㆍ황영순(가타리나, 60)씨는 “삶이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각자 살아내야 할 신비”라는 묵상 글을 받았다. 이들처럼 길 위의 순례자들은 걸음마다 매 순간 새로운 삶의 신비를 체험하며 길을 걷는다.


야고보 사도의 유해가 있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주교좌성당. 카미노 데 산티아고 여정의 종착지인 이곳에서 순례자들은 순례 인증서를 받아간다.

 

 

땅끝, 야고보 사도의 무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는 대서양에 인접한 스페인 북서부 갈리시아 지방에 자리하고 있다. 이곳은 예수님 시대 당시 로마제국 사람들에겐 ‘땅끝’이었다. 예수님의 친척이며 주님으로부터 ‘보아네르게스’(천둥의 아들)라는 별명을 얻은 야고보 사도는 이 땅끝까지 와서 복음을 선포했다. 그리고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모교회의 수장으로 초대 교회를 이끌다 사도들 가운데 가장 먼저 순교했다(사도 12,2).

 

전승에 따르면, 야고보 사도의 제자들이 그의 유해를 수습해 사도가 활동했던 스페인 갈리시아 지방 들판에 안장했다. 그러던 중 6세기 사라센의 침략으로 사도의 유해를 잃어버렸다가 813년이 되어서야 이 지방 양치기들이 별의 인도를 받아 그의 무덤을 찾았다 한다. 그래서 이곳 지명도 우리말로 ‘별의 들판의 성 야고보’라는 뜻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라고 불렀다.

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주교좌 성당 지하 경당에 안치돼 있는 야고보 사도 무덤.

 

 

야고보 사도의 무덤에선 수많은 기적이 일어나 유럽 전역에서 순례자의 행렬이 끊이지 않았다. 이에 레오 3세 교황(재위 795~816년)은 이곳에 대성당을 짓게 하고 예루살렘과 로마와 함께 가톨릭 교회의 3대 순례지로 선포했다.

 

 

프랑스 남부에서 스페인 관통하는 순례길

예나 지금이나 순례는 삶의 전환점이다. 산티아고 테 콤포스텔라 주교좌 성당 주임 세군도 페레스 신부는 “시대와 문화, 국적은 달라도 순례길을 걷는 모든 이들은 공통으로 스스로 ‘나는 누구인가?’ 질문하고 자신을 발견하는 기회로 삼는다”고 말했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를 종착지로 하는 ‘카미노 데 산티아고’(스페인 말로 성 야고보 순례길)는 이탈리아, 포르투갈, 독일, 영국, 스웨덴, 폴란드 등 유럽 전역에 뻗어 있다. 그중 순례자들이 가장 많이 걷는 길은 프랑스 남부 국경 마을인 생 장 피드 포르(Saint-Jean-Pied-de-Port)에서 시작해 피레네 산맥을 넘어 바스크, 나바라, 라리오하, 카스티야, 레온을 지나 야고보 사도의 무덤에 당도하는 800km 여정이다.

연간 20여만 명의 순례자가 이 길을 걸으며 고독과 침묵, 만남과 우애 속에서 하느님과의 일치를 체험한다. 이 가운데 한국인이 1만 2000여 명으로 아시아인으로는 가장 많이 찾고 있다.

왜 이토록 많은 이들이 해마다 이 길을 걸을까? 페레스 신부는 “땅끝까지 복음을 선포하기 위한 야고보 사도의 열정과 하느님을 위한 희생 정신이 현대 사회의 물질주의에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야고보 사도와 순례자를 상징하는 조가비 이정표가 안내하고 있다.


수백년 다져진 길, ‘부엔 카미노’

카미노 데 산티아고를 경험하기 위해 점심 후 조가비 모양의 이정표를 따라 길 위에 섰다. 출발하려고 신발 끈을 동여매는데 돌벽에 순례자의 무덤이 있다. 그리고 이 길을 걷는 많은 순례자가 그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돌탑을 쌓고 짧은 화살기도를 바친다.

수백 년 사람들의 발걸음에 다져진 길은 최적의 길이다. 비록 흙길이지만 매끄러운 길바닥이 발에 착 감긴다. 거름 냄새나는 밀밭과 유칼립투스 향이 그윽한 숲을 지나면 몇 채 되지 않는 시골 마을 어귀가 나온다. 아무리 작은 마을이라도 중심에는 성당과 광장이 있다. 이곳이 순례자들의 쉼터가 되어준다. 하지만 요즘 들어선 사제가 부족하여 정해진 미사 시간 외 문을 닫는 성당이 급속히 늘고 있다고 한다.

길 위에서 만난 이탈리아 밀라노 출신 엔지니어 파슈씨는 “프랑스 루르드에서 13일 동안 자전거로 950km를 달려왔다”면서 “순례는 가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돌아오는 것이기에 고향으로 돌아가 진짜 카미노를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이 3번째 순례”라는 그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를 향해 힘차게 페달을 밟으며 외쳤다. “부엔 카미노!”(Buen Camino- 좋은 순례길).

[평화신문, 2015년 7월 12일, 리
길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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