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9일 (목)
(백) 부활 제6주간 목요일 너희가 근심하겠지만, 그러나 너희의 근심은 기쁨으로 바뀔 것이다.

성인ㅣ순교자ㅣ성지

[성인] 복자 프란치스코 마르토와 복녀 히야친타 마르토의 시성미사 교황 강론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5-26 ㅣ No.1625

복자 프란치스코 마르토와 복녀 히야친타 마르토의 시성미사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의 강론


파티마의 동정 마리아 대축일

성지 대성당

2017년 5월 13일, 토요일

 

 

요한 묵시록에서 파트모스 섬의 예언자는 다음과 같이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늘에 큰 표징이 나타났습니다 (...) 태양을 입고 (...) 머리에 열두 개 별로 된 관을 쓴 여인이 나타난 것입니다”(12,1). 또한 그 여인이 아기를 낳으려는 순간에 있다는 사실도 주목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에게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요한 19,26-27)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에게는 어머니 한 분이 계십니다. 그분은 바로 100년 전, 그 축복받은 날이었던 5월 13일, 파티마의 발현 목격자들이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서 자기들끼리 주고받으면서 설명했던 “매우 아름다운 부인”이십니다. 그리고 저녁이 되자, 히야친타는 그 비밀을 도무지 감추지 못하고 어머니에게 털어놓고 말았습니다. “오늘 성모님을 봤어요.” 그들은 하늘의 어머니를 보았던 것입니다. 그들의 눈길이 따라갔던 그 자취를 따라 수많은 사람들도 쳐다봤지만... 그 사람들은 아무 것도 보지 못했습니다. 동정 마리아께서는 우리가 그분을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이곳에 오셨던 것이 아닙니다. 이 때문에 우리는 영원을 얻을 수 있게 되었는데, 물론 우리가 하늘나라에 가게 된다면 당연히 그렇게 될 것입니다.

 

그렇지만 성모님은, 우리의 삶을 하느님 없는 삶 ? 종종 지옥이 제안하고 제시하는 삶 - 으로 이끌고 피조물들 안에서 하느님을 모욕하게 만드는 지옥의 위험을 경고하시고 예고하시면서, 우리 안에 사시며 우리를 감싸주시는 하느님의 빛을 상기시켜주시려고 오셨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제1독서에서 들었던 내용처럼, “그 여인의 아이가 하느님께로 들어 올려졌기”(묵시 12,5) 때문입니다. 그리고 루치아의 말에 따르면, 발현의 특혜를 입은 이 세 명은 성모님으로부터 발산되었던 하느님의 빛 안에 있었습니다. 성모님은 하느님께서 주셨던 빛의 망토로 그들을 감싸주셨습니다. 모든 사람이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수많은 순례자들의 믿음과 느낌에 따르면, 파티마는 무엇보다 우리를 덮어주는 빛의 망토입니다. 여기서는 지구의 다른 곳에서와 마찬가지로, ‘성모찬송’이 기도하도록 가르치는 것처럼, “우리 주 예수님을 뵙게 하소서”라고  성모님께 청하기 위해 우리가 동정 마리아의 보호 아래 피신할 때 우리를 빛의 망토로 감싸주십니다.

 

친애하는 순례자 여러분, 우리는 어머니 한 분을, 천상 어머니를 모시고 있습니다!  그분의 자녀들처럼 그분께 모여든 우리는, 예수님께 토대를 두고 있는 희망을 가지고 살게 됩니다. 왜냐하면 “은총과 의로움의 선물을 충만히 받은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을 통하여 생명을 누리며 지배할 것입니다”(로마 5,17)라고 제2독서에서 들었던 내용처럼 이뤄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늘로 올라가셨을 때, 그분은 동정 성모님의 태중에 받아들여진 인류를 ? 우리 인류를 ? 하늘에 계신 아버지 곁으로 데려가셨고, 결코 저버리지 않으실 것입니다. 마치 닻을 내리 듯, 우리의 희망을 하늘에서 성부 오른편에 자리잡고 있는 인류에게 고정시킵시다(에페 2,6 참조). 이 희망은 우리 모두의 삶의 지렛대가 되어야 합니다! 마지막 숨을 거둘 때까지, 희망은 항상 우리를 지탱해줍니다.

 

이 희망에 힘입어, 풍요로운 희망의 나라인 포르투갈에서 시작해 전 세계 곳곳으로 확산된 성모님의 빛의 망토 아래에서 지나온, 100년의 긴 세월 동안 하느님께서 베풀어주신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축복에 감사 드리기 위해 우리는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동정 마리아께서 하느님을 경배하도록 하느님의 무한한 빛의 바다로 이끌어주셨던 성 프란치스코 마르토와 성녀 히야친타를 신앙의 본보기로서 우리 눈 앞에 모시게 되었습니다. 그 빛으로부터 수많은 반대와 고통을 극복할 힘이 그들에게 주어졌습니다. 하느님의 현존이 그들의 삶 안에 지속되었고, 그분의 현존은 감실 안에 “감추어계신 예수님” 곁에 머물려는 영원한 염원과 죄인을 위한 끊임없는 기도 안에서 분명히 드러났습니다.

 

자신의 회고록(셋째 권, 6항)에서 루치아 수녀는 방금 환시에 사로잡혔던 히야친타에게 말했습니다. “길거리마다, 오솔길과 들판에 먹을 것이 전혀 없고 배고픔 때문에 울고 있는 사람들로 가득 차있는 것을 보지 못하느냐? 그리고 교황님이 어느 성당에서, 마리아의 원죄 없으신 성심 앞에서 기도 드리는 모습을 보고 있느냐? 수많은 사람들이 그분과 함께 기도하고 있는 광경을 보고 있느냐?” 형제자매 여러분, 저와 동행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동정 성모님을 경배하기 위해, 그리고 당신의 아들들과 딸들을 그분께 맡겨드리기 위해 이곳에 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분의 망토 아래에서는 길을 잃지 않습니다. 그분의 팔로부터 우리에게 필요한 희망과 평화가 주어질 것입니다. 저는 인류 안에서, 그리고 세례성사 안에서 하나가 된 저의 모든 형제들을 위해 기도하고, 특히 병자들과 장애자들, 억류된 이들과 실업자들, 가난한 자들과 버림받은 이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친애하는 형제 여러분, 사람들이 우리의 말을 듣도록 희망을 가지고 하느님께 기도 드립시다. 또한 하느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신다는 확신을 가지고 사람들을 향해 나아갑시다.

 

실로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다른 이들을 위한 희망, 각자의 삶의 신분에 따라 실제적이고 실현 가능한 희망이 되도록 창조하셨습니다. 우리 각자가 자기 신분의 의무를 완수하기를 “구하고” “요청할” 때(루치아 수녀의 편지, 1943년 2월 28일), 하늘은 여기서 우리의 마음을 얼어붙게 하고 우리의 근시안을 위중하게 만드는 무관심에 대항하는 참되고 고유한 행동을 취하게 합니다. 우리는 희망이 실패로 끝나는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삶은 또 다른 삶에 대해 관대할 때에만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요한 12,24)고 항상 우리를 앞서가시는 주님께서 말씀하셨고 이루셨습니다. 우리가 십자가를 거쳐 지나갈 때, 그분께서는 이미 먼저 지나가셨습니다. 그와 같이 우리가 예수님을 찾기 위해 십자가에 오르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찾기 위해, 그리고 우리 안에서 악의 어둠을 이기시고 우리를 빛을 향해 이끌어주시기 위해 당신 자신을 낮추시고 십자가에 이르기까지 내려가신 분은 바로 그분이십니다.

 

마리아의 보호 아래, 우리는 세상 안에서 부활절에 빛나시는 구세주 예수님의 참된 모습을 관상할 줄 알고, 교회의 젊고 아름다운 모습을 발견할 줄 아는 파수꾼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의 얼굴은 가난하고, 충실하며, 자유롭고, 받아들이는 자세와 선교사의 태도를 갖추고, 사랑으로 충만할 때 빛을 발합니다.

 

[출처 : 바티칸 방송국, 2017년 5월 15일]



2,882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