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6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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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오ㅣ성모신심

레지오의 영성: 선교를 위한 교회의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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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06-08 ㅣ No.456

[레지오 영성] 선교를 위한 교회의 변화

 

 

어느 본당에 장례미사를 드리기 위해 갔더니 그곳 본당신부가 화가 많이 나있었다. 이유를 들어보니 고인이 40년 넘게 레지오 단원으로 활동하다가 나이가 들고 병이 나서 퇴단한지 몇 년이 된 상황에서 돌아가셨는데, 고인이 레지오장을 원하였다. 본당신부는 그동안 레지오를 위해 헌신한 뜻을 존중하여 레지오장으로 치르도록 추진하였는데, 퇴단한 단원은 레지오장이 안 된다는 레지오의 규율을 이유로 들면서 꾸리아 단장이 적극 반대하였다는 것이다.

 

이 경우뿐만이 아니라 종종 레지오안에서는 규칙과 관련한 문제가 발생한다. 출석과 활동 등과 관련된 여러 문제들이 주회 때나 상급평의회에서 끊임없이 제기되고 논의된다. 이 모든 것은 출석률이나 활동 성과와 연관이 있는 것이고, 결국 레지오 마리애의 목적과 정신과는 상관없이 수치에 의존한 성과주의와 형식주의로 변질 될 위험이 있다. 레지오 마리애의 규율은 엄격하다. 그 엄격한 규율 덕분에 분명 한국의 레지오 마리애가 크게 성장하였고 복음 선포를 하는데 큰 기여를 하였지만, 그 규율에 너무 얽매인다면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이 핵심인 복음화를 실현하는데 걸림돌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레지오가 바리사이파여서는 안 된다

 

율법을 준수하는 신앙에는 타의 추종을 불허 할 정도로 열심 하였지만 복음의 핵심인 자비와 사랑을 실천하지 않았던 바리사이파 사람들을 예수님께서는 비판하셨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자신들의 법률 지식을 자부하여 전통과 율법을 핑계로 하느님의 계명을 등한시하였고, (마태 15,1-20) 정의를 내세워 약하고 소외된 이들을 경멸하였다. 그들은 죄인과 세리들을 서슴지 않게 단죄하였고 율법준수를 내세워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를 무시하였으며, ‘회칠한 무덤’처럼 의로움의 탈을 쓰고 사랑을 실천하지 않으면서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거나, 하느님의 회개에로의 부르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우리 레지오 단원들도 신앙의 열성은 대단하다. 매일 미사 참례와 열성적인 선교활동, 그리고 기도와 희생을 통하여 본당에 기여하는 공로는 그 누구와 비교하지 못할 정도로 크다. 그러나 이러한 열성이 바리사이파 사람들처럼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복음 선포가 되지 못하고 레지오의 규율에 얽매이는 율법주의로 흐른다면 비극이 아닐 수 없다.

 

 

교회의 모습을 새롭게 하시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가르침과 삶

 

여기서 우리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말씀과 삶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비 유럽권 출신으로 선출 당시부터 화제를 불러일으킨 교황께서는 청빈하고 겸손한 자세를 유지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담아 ‘프란치스코’로 이름을 지었다. 특히 가난하고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교회의 개혁을 추진하고, 단호한 태도로 불의에 맞서고, 누구나 차별 없이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며 전 세계에 희망과 사랑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특히 교황님께서는 몇 해 전에  발표한 권고 ‘복음의 기쁨’을 통하여 “가톨릭교회가 더 선교적이 되고, 좀 더 자비로우며, 변화하는데 담대해야 한다”고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그리고 말씀만이 아니라 행동에 있어서도 겸손하고도 개방적이며 파격적인 모습으로 기존의 교황님의 이미지를 깨뜨리고 초지일관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보여주셨다.

 

‘복음의 기쁨’에서 교황님께서는 “선교의 기쁨은 제자들의 공동체에 활력을 주는 복음의 기쁨(23항)이기에 교회는 교회를 유지하는데 급급할 것이 아니라 선교를 최우선적으로 여기고 모든 것을 바꿔야 한다.(27항) 복음화에 나설 때에는 “우리는 늘 그렇게 해 왔다”는 안일한 태도를 버리고 복음화의 목적과 체계와 방식과 방법을 과감하고 창의적으로 재고해야 한다.(33항)”고 말씀하셨다.

 

또한 “우리 성당의 문은 언제나 열려 있어야 한다. 하느님을 찾는 이들이 차갑게 닫힌 문 앞에서 발길을 돌리지 않아야 한다. 성사의 문 역시 어떠한 이유에서도 닫혀 있어서는 안 된다. 특히 성찬례는 완벽한 이들에게 주어지는 보상이 아니라 나약한 이들을 위한 영약이며 양식이다.”(47항)라고 교회의 개방성과 포용성을 강조하시면서 “미혼모 자녀들에게 세례를 주지 않는 신부들이 있다. 아이를 유산시키지 않고 용기 있게 출산한 불쌍한 엄마가 아이에게 세례를 받게 하려고 이 성당 저 성당으로 헤매게 해서는 안 된다.”는 인터뷰의 내용을 확인시켜 주셨다.

 

이어서 “자신의 안위만을 신경 쓰는 폐쇄적인 교회보다는 거리로 나와 다치고 상처받고 더럽혀진 교회를 더 좋아 하신다”고 말씀하신다. 이 대목에서 교황님 한국 방문 때 어느 일간지에서 지적했던 기사가 마음에 걸린다. 그 기사는 “교황은 유족한테서 받은 ‘세월호 노란 리본’을 방한기간 내내 가슴에 달아 진심을 보여줬다. 하지만 교황과 함께한 한국 주교들의 가슴에는 노란리본을 찾을 수 없었다.”라고 하면서 교회의 안일을 위해 아픔을 겪고 있는 세월호 유가족들을 드러내서 위로해주지도 못하는 한국 교회의 모습을 지적하고 있다.

 

교황님께서는 “교회가 선교의 과업을 수행하려면, 모든 사람에게 다가가야 하는데, 누구에게 먼저 다가가야 하는가? 가난하고 병든 자, 무시와 멸시를 당하는 자, ‘갚지 못할 자’(루카 14,14)들에게 먼저 다가가야 한다.”(48항)라고 하시며 “가난한 자들은 복음의 최대 수혜자들이다.”고 강조 하신다. 그리고는 방한 때에 세월호 유가족,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경남 밀양 송전탑 건설 반대 주민, 해군기지 반대 제주 강정 주민, 용산 참사 유가족, 쌍용차 해고노동자, 새터민, 납북자 가족, 다문화 가정, 장애인 대표 등을 초대하여, 우리 사회가 그동안 끌어안지 못했던 이들을 모두 품어 주심으로써 당신의 말씀을 실천하셨다.

 

 

한국 교회를 향한 교황님의 당부

 

이제 우리는 교황님의 가르침과 삶을 통하여, 우리 교회의 모습을, 레지오 단원으로서, 신앙인으로서의 삶을 바라보아야 한다. 보도에 의하면 교황님께서는 한국 주교님들을 만난 자리에서 평신도에 의해 복음이 전파된 지 불과 200여년 만에 눈부신 성장과 함께 국민들의 호감을 가장 많이 받는 교회로서, 그리고 신자들의 신앙의 열기가 세계 최고라 할 만한 그 역동성을 칭찬하기 보다는, “한국교회가 너무 잘 나갈 때 가난한 사람들을 잃어버릴 위험이 있다.”고 경고하시면서, “한국교회가 번영했으나 세속화되고 물질주의적인 사회의 한가운데 살고 있어  기업적인 능률만을 중시하며 세속적 기준의 사고방식을 우선하려는 유혹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당부하셨다. 한국교회의 실상을 잘 파악하고 있는 듯한 지적이 아닐 수가 없다.

 

이것을 인정하는 것이 아프지만 우리의 모습이므로 겸손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레지오 단원이며 신앙인인 우리는, 복음화가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는 우리 레지오 단원들과 신앙인들의 사명임을 다시 한 번 자각하고, 그 사명을 이루기 위해 그동안의 아집에서 벗어나 열려있고 깨어있는 자세로 복음의 핵심인 사랑과 자비를 실천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6년 6월호, 김석순 마태오 신부(제주교구 동문성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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