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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 신 김대건 · 최양업 전37: 뱃길로 중국 상해 도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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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2-02-13 ㅣ No.2059

[신 김대건 · 최양업 전] (37) 뱃길로 중국 상해 도착


거친 폭풍우 만난 라파엘호, 죽음의 공포에서 성모님께 매달리다

 

 

제주시 한경면 용수성지에 있는 성 김대건 신부 제주 표착 기념관에 있는 라파엘호 모형. 거센 파도에 휩쓸리는 라파엘호를 실감나게 재현하고 있다. 가톨릭평화신문 DB.

 

 

무동력선 타고 중국으로

 

목선인 라파엘호는 동력선이 아니어서 자연 현상 곧 물흐름(해류와 조류)과 바람을 이용해 항해해야 했다. 동중국해에서 한반도와 일본 열도를 지나 태평양으로 빠져나가는 물길이 바로 ‘구로시오 해류’이다. 구로시오 해류는 대만에서 양 갈래로 나뉜다. 그중 중국 절강성 주산군도에서 동북향으로 흐르다가 제주도 서남단에서 다시 북동향으로 바뀌어 흑산도와 한반도 남단으로 흐르는 지류를 따라 운항하는 뱃길이 바로 ‘사단항로’(斜斷航路)이다. 그리고 이 지류의 한 줄기가 대한해협을 거쳐 동해로 빠지고, 다른 한 줄기는 ‘황해 난류’가 되어 서해로 북상한다. 황해 난류는 산동반도와 발해만에서 흐름을 바꿔 중국 연안을 따라 다시 주산군도로 남하한다.

 

김대건 부제는 이 해류의 흐름을 알았던 것 같다. 아마도 에리곤호를 타고 마카오에서 남경까지 항해하면서 동중국해 해수로를 탐사하던 지리학자들에게서 구로시오 해류의 방향을 배웠을 것이다. 함께 중국 강남까지 가기로 한 신자들에게 김대건이 “나는 항해술에 능통하다”고 설득한 것도 해류의 흐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김대건 부제와 현석문, 이재의, 최형 등 총 12명이 승선한 라파엘호는 1845년 4월 30일 한양에서 출항했다. 첫날 하루는 순조롭게 항해했다. 순풍을 따라 돛을 펴고 바다로 나아갔다. 하지만 이들은 다음날 거센 폭풍우를 만나고 만다. 항해에 있어 물길 만큼 중요한 바람을 간과한 것이다. 환절기인 5월의 서해는 바람 방향이 바뀌어 천둥 번개를 동반한 강한 비구름대가 자주 발생한다. 임성룡(임성실)과 노언익 등 라파엘호에 승선한 4명의 뱃사람은 이를 잘 알고 있었고, 김대건 부제에게도 이 사실을 알렸을 것이다. 그러나 김대건은 이들에게 일단 서해로 나가 중국 배를 만나면 선장에게 돈을 주고 강남까지 데려달라고 부탁할 것이니 염려 말라고 설득했다. 김대건 부제의 말대로 라파엘호는 돈을 주고 중국 배에 예인돼 오송까지 간다.

 

 

성모 기적 상본으로 역경 극복

 

폭풍우는 사흘 밤낮으로 계속됐다. 거센 바람은 돛을 찢고, 세찬 파도는 키를 부러뜨렸다. 라파엘호는 바다를 건너기엔 너무나 작은 배였다. ‘일엽편주’(一葉片舟)는 바람과 파도에 이리저리 내던져졌다. 배가 중심을 잡지 못한 채 요동을 치자 뱃사람 중 누군가가 높다란 두 돛대와 종선을 묶은 밧줄을 잘랐다. 또 물이 순식간에 들이닥쳐 배가 가라앉으려 하자 누구 할 것 없이 식량을 비롯해 무거운 모든 것을 바다로 내던졌다.

 

죽음의 공포가 엄습했다. 누군가 울면서 “이제 끝장이다. 살아날 수 없을 거야” 하며 탄식했다. 사흘간의 사투 끝에 다행히 비바람은 그쳤지만 먹을 것도, 마실 것도, 추위와 한기를 피할 곳도 없었다. 처참히 할퀴어진 배는 해류를 따라 속절없이 떠내려가고 있었다.

 

김대건은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자신이 선장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절망한 선원들에게 성모님의 기적 상본을 들어 보이면서 “겁내지 마십시오. 우리를 도우시는 성모님이 여기에 우리와 함께 계시지 않습니까!”라고 격려했다. 이 말에 동료들은 용기를 냈다. 남은 식량으로 음식을 해 먹고 기력을 회복한 그들은 부러진 나무들을 거둬 돛대와 키를 만들어 항해했다.

 

김대건 부제 일행은 5일간 표류하다 기적처럼 산동 배 한 척을 발견한다. 일행은 그 배의 선원들이 자신들을 볼 수 있도록 기를 흔들고 북을 치며 소리를 질렀다. 다행히 산동 배가 다가왔다. 급히 배에 오른 김대건은 선장에게 상해까지 자신의 배를 끌고 가 달라고 청했다. 하지만 선장은 함께 산동으로 가서 관례에 따라 북경으로 해서 조선으로 귀국하라고 권유했다. 이에 김대건은 귀국하고 싶지 않고 배를 고치기 위해 상해로 반드시 가야 한다고 고집을 부렸다. 그러면서 김대건은 자신의 일행을 상해까지 데려다 주면 거금 1000원을 주겠다고 제안했다. 선장은 이 제안을 받아들여 라파엘호를 견인해 5월 28일 상해 앞바다 오송 항구에 도착했다. 한양에서 오송까지 꼬박 28일간 항해를 했다.

 

오송에 도착하자 항구를 지키던 청나라 군인들과 영국 주둔군 장교 몇몇이 라파엘호로 왔다. 김대건 부제는 영국 장교들에게 프랑스 말로 “선교사를 모시러 조선에서 왔다”면서 “중국인들로부터 우리를 보호해 주고, 상해 영사관에도 이 사실을 알려 달라”고 부탁했다. 김대건은 또 청 관리를 찾아가 배를 수리하러 상해로 갈 것이니 이곳에 머무는 동안 신변을 보호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면서 김대건은 청 관리에게 “중국인들이 협조를 거절하면 여기 있는 유럽인들이 나를 도와줄 것이다”고 협박했다. 청나라 관리들은 김대건이 조선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영국인들과 친구처럼 친하게 지내는 것을 보고 놀라 그의 청을 들어주었다.

 

김대건 부제는 상해 도착 후 영국 영사의 도움을 받으며 페레올 주교가 상해에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사진은 19세기 개항 후 상해 모습. 구글 캡쳐.

 

 

김대건 부제의 의아한 행동

 

김대건 일행은 오송에서 한 주간을 지내고 6월 4일 상해로 들어갔다. 영국인 둘이 동행을 원해 김대건은 그들의 배로 상해로 갔고, 조선 신자들은 중국 배에 예인된 라파엘호를 타고 뒤따라 갔다. 김대건 부제는 상해에서 영국 영사로부터 환대를 받았다. 청나라 관리들은 영국 영사의 보호를 받는 김대건에게 선물을 보내기도 했다. 김대건은 가마를 타고 영국 영사가 마련해준 중국인 교우 집에 우대를 받으며 머물렀다.

 

하지만 동행한 조선 신자들은 상해 항에 정박해 있는 라파엘호에서 불안에 떨고 있었다. 수천 명의 군중이 몰려왔기 때문이다. 삽시간에 상해에 괴소문이 퍼졌다. 조선인들이 영국인들의 억압으로부터 중국을 해방시키기 위해 왔으며, 그들이 오송에 도착하자 그들을 향해 대포 20발을 쏘았으나 그들은 꿈쩍도 하지 않고 서 있었고, 머리털 하나 움직이지 않았다는 소문이었다. 또 다른 소문은 그들이 조선을 점령하기 위해 프랑스 두목들을 데리러 왔다는 것이었다.

 

소요를 바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이 소문을 들은 예수회 고틀랑 신부는 급히 김대건을 찾아갔다. 고틀랑 신부는 우선 상해까지 라파엘호를 예인해온 산동 배 선장과 타협해 400원을 주고 돌려보냈다. 김대건에게 집주인 가족이 청나라 관헌들에게 화를 입을까 겁을 먹고 있으니 그 집으로 다시 가지 말고 조선 신자들과 함께 생활하라고 타일렀다. 그리고 조선 신자들에게 가장 급한 생필품을 사는 필요한 돈을 김대건 부제에게 주었다.

 

김대건 부제의 오송과 상해에서의 태도를 보면 참으로 의아하다. 그는 힘 있는 유럽인들과 살갑게 지내지만, 생사고락을 함께한 조선 신자들을 부두에 내버려두었다. 그리고 중국인 관리들에게 유럽인들과의 친분을 내세워 자신을 대우해 달라고 요구했다. 고틀랑 신부는 “중국인들에게는 청해서는 안 되고 명령해야 한다”면서 김대건 부제의 태도를 두둔했다. 요즘 같으면 인종차별적 행동이라고 지탄받았을 것이다. 우리 민족과 중국인에 대한 김대건과 최양업 신부의 인식과 태도에 대해선 좀 더 후에 다루겠다.

 

김대건 부제는 상해에서 마카오에 있는 페레올 주교에게 편지를 보내 자신이 무사히 도착했음을 알린다. 이 편지를 받은 페레올 주교는 조선 선교사로 임명된 다블뤼 신부와 함께 1845년 7월 17일 홍콩으로 간다. 페레올 주교와 다블뤼 신부는 홍콩에서 7월 27일 배를 타고 출발해 8월 8일 상해에 도착해 김대건 부제와 상봉한다.

 

[가톨릭평화신문, 2022년 2월 13일, 리길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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