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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ㅣ 봉헌생활

수도 영성: 성가소비녀회 - 강생, 그 사랑의 강을 막을 수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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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9-05-22 ㅣ No.136

[수도 영성] 성가소비녀회 - 강생, 그 사랑의 강을 막을 수 없네

 

 

사랑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이 세상에 강생하셨습니다. 하느님이 사람이 되시어 이스라엘 작은 고을에 강생하신 그 사랑은 2천 년의 세월을 건너, 온 세계에 전운이 감도는 자기 시대의 슬픔을 바라보던 한 사제의 마음에 강생하셨습니다. 그리고 그의 권고에 따라 1943년 12월 25일 천주 강생의 날에 서울의 백동(혜화동) 성모 동고상 앞에서 순명과 공동생활을 약속한 동정녀들의 마음에 강생하셨습니다. 그날 성가소비녀회가 시작되었습니다.

 

 

강생하신 하느님의 사랑

 

성가소비녀회의 영성은 강생입니다. 강생은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신 신비입니다. 하느님께서 무한히 낮은 상태에 있은 인간의지위에까지 내려오신 그 완전한 자기 비움(Kenosis)의 모습은 인간을 향한 하느님의 사랑을 극명하게 드러냅니다.

 

그러므로 강생의 본질과 핵심은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인간을 향한 하느님의 사랑은 소극적으로 인간이 도구화하는 것을 막는 것일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인간이 지니고 있는 고유한 존엄성과 신적인 품위를 회복시켜 주시고 마침내 당신의 품위로까지 올려주시는 사랑입니다.

 

하느님께서 아래로 내려오시는 만큼 인간은 들어 올리게 되는 참으로 역동적인 사랑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랑이 인간 상호간에도 이루어지기를 바라십니다.

 

성가소비녀회 설립자 성재덕 신부(P. Singer, 1910-1992년, 파리외방전교회 소속)는 바로 이러한 하느님의 사랑에서 수도회 설립의 영감을 받습니다. 계속되는 전쟁으로 인해 인간의 처지는 더할 나위 없이 비참해졌습니다. 그는 그 시대를 슬픈 시대라고 표현했습니다.

 

그 시대의 고통받는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것은 오직 강생하신 하느님의 사랑이며, 바로 성교회가 하느님의 인자하신 얼굴을 그들에게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공적인 자리에 있는 자신들은 늘 감시의 대상으로 활동의 제한을 받고 있었기에, 드러나지 않는 겸손함으로, 가난한 이들과 같은 가난한 이가 되어 그들과 함께 살며 하느님의 사랑을 보여줄 일꾼이 필요했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이 그렇게 이 세상에 강생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 그의 눈에 띈 것은 수도자가 되고자 서울로 올라왔지만 교육 부족으로, 또는 수녀원에 자리가 없어서 입회하지 못하고 기다리는 처녀들이었습니다. 인간적으로 가난하고 부족했던 그들이었지만 하늘나라의 지혜를 알아듣고 그 뜻을 기다릴 줄 아는 슬기롭고 용감한 이들이었습니다.

 

성재덕 신부는 자신은 그들에게 수도회 설립을 권고하였을 뿐, 그것은 하느님의 계획이었고 실제로 실천한 것은 그 갸륵한 처녀들이었다고 했습니다.

 

그들과 함께 수도회를 설립한 성 신부는 말합니다. “성가소비녀회의 본정신은 무엇입니까? 성가소비녀회는 성탄 날 시작했습니다. 성탄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내려오신 날입니다. 성가소비녀들도 예수님처럼 가난한 사람으로, 자신을 낮추어 더욱 낮은 자리로 내려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처럼 가난한 사람이 되어 가난한 형제들을 위하여 노력하고 봉사해야 합니다.”

 

이 말은 예수님이 우리 가운데 내려오셔서 우리 안에 있는 생명력과 가능성, 우리의 본바탕인 하느님의 모상을 회복시켜 주셨듯이, 성가소비녀들도 가장 가난한 이들에게로 내려가서 그들이 참으로 소중하고 가치 있는 존재이며, 하느님의 품위를 지닌 아름답고 사랑스런 존재임을 회복시켜 주고, 성장하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강생을 사는 소비녀, 종의 정신

 

강생의 삶을 이 세상 안에서 계속 살아가도록 부르심 받은 성가소비녀들의 정신과 자세는 종의 정신과 종의 자세입니다. 하느님이시면서 종의 신분을 취하신 예수 그리스도처럼 소비녀(小婢女-작은 여종)는 하느님께 온전히 봉헌되어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며, 가난과 겸손, 순명과 노동을 통해 이 종의 정신을 실현합니다. 설립자는 성모님의 겸손을 따라 진심으로 ‘나는 소비녀, 가난한 이의 하녀’라 생각하고 서로 소비녀라 부르라고 했습니다.

 

소비녀는 인간의 권리나 존엄을 지켜나갈 수 없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우선적으로 파견됩니다. 소비녀는 가난한 이들 안에 현존하시는 그리스도를 사랑하고자 가난한 사람이 되어 세상 사람들이 싫어하는 일을 자발적으로 선택합니다. 이러한 강생의 사명을 실현하고자 소비녀는 특별한 내적 자세를 지니게 됩니다.

 

“기뻐하라, 소비녀! 만일 너를 몰라주고 잊어버려도 기뻐하라, 네 정신과 육신이 못생겨도 기뻐하라, 다른 사람들이 네 뜻을 반대해도 기뻐하라, 네게 천한 일을 시켜도 기뻐하라, 너를 쓰지 않아도 기뻐하라, 네 뜻을 청하지 않아도 기뻐하라, 너를 믿어주지 않아도 기뻐하라, 너를 말째로 두어도 기뻐하라, 너를 한 번도 찬양하지 않아도 기뻐하라, 너를 모든 사람보다 더 중히 여기지 아니하여도 기뻐하라!”

 

설립자가 소비녀들에게 준 이 열 가지 가르침은 자기중심의 인간적인 욕구를 초월하여 예수님처럼 완전한 자기 비움으로 하느님 중심의 가치를 바라볼 줄 아는 슬기로운 이들의 자유로운 기쁨과 응답을 요청합니다. 그러므로 이 노래는 어느 시대, 어느 장소, 어느 상황에서든 가장 낮은 곳으로 가장 가난하고 소외된 곳으로 내려가는 소비녀들의 강생의 노래이며, 가장 깊이 내려감으로써 하느님 안에서 가장 높이 뛰어오르는 그 역동적인 사랑의 신비를 체득한 이들의 헌신과 열정의 노래입니다.

 

 

강생이 실현된 성가정, 합심의 공동체

 

성가소비녀회 수도공동체는 주보이신 예수 마리아 요셉께서 이루신 나자렛 성가정을 본받습니다.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이 요구하는 한계를 넘어 초월적이고 신비적 의미를 갖는 영적 가족인 이 성가정은 예수님의 강생이 구체적으로 실현된 자리이며, 강생의 영성을 사는 소비녀의 삶의 자리입니다.

 

특히 설립자는 나자렛 성가정의 공동생활을 강조하며 ‘합심’을 성가소비녀회의 문장으로 주었습니다. 설립자가 말한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합심’은 하느님과 일치하여 화목한 공동생활의 친교를 이루는 것으로 봉헌생활의 표징이 되며 사도직을 수행하는 힘의 원천이 됩니다. 이로써 성가소비녀는 오늘날 민족, 인종, 성, 빈부, 이념 등 다양한 양상으로 갈라진 이 시대에 ‘일치’의 예언적 증거자가 됩니다. 또한 성가소비녀는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선의를 가진 모든 사람과 연대하며 특히 이 시대의 가난하고 고통 받는 사람들과 더불어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신비체 가족을 이룹니다.

 

 

우리 안에 계속되는 강생

 

하느님 사랑의 강생은 계속되는 강생입니다. 모든 이를 통하여 모든 이들 안에서 그분의 강생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성가소비녀회 설립자 성재덕 신부는 말합니다.

 

“사랑은 성삼의 생명입니다. 사랑은 성부에게서 성자를 통하여 우리 마음 안에 오시고, 또 우리를 통하여 다른 이 마음속에 들어가려고 하시니… 그 사랑의 강을 막으면 우리에게 앙화로다….”

 

하느님의 사랑은 오늘, 지금 여기, 우리 모두의 열망 안에 그리고 우리 모두의 삶 안에 강생하십니다. 아무도 그 사랑의 강을 막을 수 없습니다.

 

[경향잡지, 2008년 1월호, 글 · 사진 성가소비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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