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7일 (토)
(백) 부활 제4주간 토요일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

강론자료

2023-12-24.....성탄대축일 밤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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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23-12-25 ㅣ No.2418

 

성탄대축일(12/25) 밤미사(1224)

이사야 9,1-6      티토 2,11-14      루카 2,1-14

2023. 12. 24. (주일). 밤8시

주제 : 하느님의 뜻이 실현되면....

지금 시간은 성탄절로 정한 날짜의 하루 전이지만, 우리는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하는 축제를 거행합니다. 세상의 역사는 밤에 이루어진다고 소리도 있지만, 유대인의 날짜개념에 따라서, 오늘의 태양이 서산으로 넘고, 다음날로 계산하는 시간입니다.

 

이렇게 성탄이라고 정한 날에, 하느님께서 사람의 삶에 찾아오셨습니다. 오늘 하느님께서, 사람이 두려워할 심판자로서가 아니라, 이제 세상에서 삶을 시작한 아이의 모습으로 우리의 삶에 찾아오셨습니다. 화려한 왕궁이나 대통령궁에 살면서 높은 직책을 갖게 될 사람으로, 또한 뒷날에 다른 사람에게 호령하는 권력을 가질 사람으로서가 아니라 짐승들이 밤의 이슬을 피하는 장소인 외양간에 아기의 모습으로 찾아오신 분이라고 우리 신앙은 설명합니다.

 

하느님은 왜 이렇게 연약한 모습으로 나타나겠다고 선택하셨을까요? 여러 가지로 다양한 생각을 할 줄 아는 사람을 포함하여 세상의 만물을 말씀으로 창조하신 분이 하느님이신데, 그 하느님은 당신의 힘으로는 쉬운 일이기도 하고 영예가 있다고 할 삶의 방법을 선택하지 않고, 세상의 사람이 이해하기도 힘든 방법을 선택하셨을까요? 하느님이시니까, 세상의 사람을 한꺼번에 바꿀 쉬운 방법도 아셨을 테고, 한 말씀만으로 그렇게 하실 능력이 있으셨을 텐데도, 하느님은 세상의 힘든 일을 선택하셨는지, 세상에 사는 우리는 하느님의 뜻을 알지 못한다고 말하기가 쉽습니다.

 

하느님께서 어린이의 모습으로 세상에 당신을 드러내신 일은 세상에서 으뜸으로 산다고 말할 사람의 처지에서는 이해하기가 어려운 일입니다. 우리가 신앙인으로 산다면서 신앙에서 말하는 내용을 바르게 알아듣고 싶다면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뜻을 모른다고 말해서는 안 될 일이지만, 사람의 지혜로 하느님을 온전하게 이해하고 싶다는 생각을 우긴다면 우리는 하느님께서 세상에 실현하려던 의도를 알아듣지 못하고 이해하지도 못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태어나셨을 때, 세상은 인구조사를 명령한 황제가 통치하던 때였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처럼 주민등록이 되어 있는 곳에서 서류로 확인하면 끝나는 일이 아니라, 조상들의 계보를 따라 내가 어느 조상의 후손으로 삶을 시작했는지, 그 소속을 확인한 것이 예수님이 태어나던 당시의 인구조사였습니다. 권력자가 행하는 인구조사는 내가 행사할 군사력이 얼마나 되는지, 그리고 상대방과 싸우면 내가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 그 힘을 알아보는 방법으로 사용하던 방식으로, 오로지 사람의 힘에 의지하던 방식이었습니다.

 

세상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요셉과 마리아로 두게 된 예수님은 다윗 임금의 후손이라서 로마황제의 명령에 따라 베들레헴으로 신고하러 갔고, 유대민족에게는 다윗 임금의 후손이 많아서 베들레헴의 여관은 이미 '만원을 넘어 십만 원이 된 상황'이었다는 것입니다. 그 상황에서 정결례의 제물로 비둘기를 두 마리만 바칠 만큼의 경제력만 있던 요셉과 마리아의 가족은 어쩔 수 없이 잠을 잘 곳을 동물들이 머물던 공간으로 정합니다. 안타깝고도 또 안타까운 일이지만, 세상의 돈에 관한 문제는 다른 사람이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고 할 때 맞이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요셉과 마리아의 가족이 만난 문제는 잠을 잘 잘 곳을 선택하는 문제만이 아니라 그들의 가정에 새로운 가족이 태어날 상황이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하느님께서 정하신 놀라운 역사는 시작됩니다. 세상의 우리라면 이 상황을 어떻게 이해하겠습니까?

 

이사야 예언서로 들은 말씀은 하느님께서 사람의 세상에 찾아오실 때 사람들이 어떻게 바뀔지 전하는 말씀이지만, 우리가 사는 현실도 아직은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는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이러한 현실을 생각하면, 하느님께서 우리의 삶에 오실 때가 아직은 멀었다는 뜻일까요, 아니면 하느님께서 우리가 사는 세상에 오시는 일을 사람이 바라지 않는다는 뜻이겠는지 구별해야 합니다.

 

세상은 아직도 힘을 앞세워 자기의 존재를 드러내는 곳입니다. 상대방을 향하여 내가 가진 힘이 더 세다고 우기며, 상대방이 내 앞에 무릎을 꿇기까지 화해는 없다고 주장하면서 힘을 바탕으로 하는 세상의 딱한 모습을 우리는 어떻게 바꾸겠습니까? 싸울 때 져도 좋다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시대에 사는 우리는 오늘 예수님의 성탄을 말하면서 어떤 모습을 지녀야 옳다고 하겠는지 생각할 시간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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