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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미술ㅣ교회건축

성당 건축 이야기1: 하느님의 집 원형은 야곱의 사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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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3-01-03 ㅣ No.905

[김광현 교수의 성당 건축 이야기] (1) ‘하느님의 집’ 원형은 야곱의 사다리


야곱의 사다리는 ‘하느님의 집’인 성당의 공간적 원형

 

 

- 영국의 바스대수도원 성당. 정면 좌우에는 천사들이 사다리를 타고 천국과 땅을 열심히 오르내리고 있다. 날개가 있는데도 기어서 오르내린다. 사진=Sat Nav and Cider.

 

 

성당 건축은 알아도 되고 몰라도 되는 것이 아니다. 모든 신자는 반드시, 그것도 잘 알아야 한다. 그러니 성당이라는 건물을 공부하자. 그러면 성당 건축 공부를 어디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옳을까? 흔히 로마네스크 양식과 고딕 양식의 성당을 자세히 둘러보는 것이 성당 건축 공부의 전부라고 여기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성당의 본질은 그런 건축 양식에 있는 게 아니다. 하느님께서는 아주 오래전에 성당 건축의 원형을 보여주셨다. 이것이 초기 그리스도교 성당이든 비잔틴 성당이든, 아니면 우리가 다니는 성당이나 새로 지어야 할 성당 등 모든 성당의 원형이 된다. 성당 건축 공부는 그 원형을 분명히 아는 것에서 시작한다.

 

 

야곱, 하느님의 집을 지은 최초의 건축가

 

영국의 바스대수도원 성당의 정면 좌우에는 천사들이 사다리를 타고 천국과 땅을 열심히 오르내리고 있다. 날개가 있는데도 기어서 오르내린다. 야코포 틴토레토가 그린 ‘야곱의 사다리’(1578)에는 사다리가 아니라 이 세상의 건축물에서 보는 돌계단이 한없이 이어져 있다. 그리고 저 끝에서 하느님께서 신비한 구름에 감싸인 채 아래에서 잠자는 야곱을 내려다보고 계신다.

 

‘하느님의 집’이라고 제일 먼저 말한 사람은 야곱이었다. 성당은 ‘하느님의 집’이니 하느님의 집을 지은 최초의 건축가는 야곱이었다고 해야 한다. 해가 지자 야곱은 어떤 곳에서 밤을 지내게 되었고, 그곳의 돌 하나를 가져다 머리에 베고 그곳에 누워 잤다. 그리고 꿈을 꾸었다. 그 자리에는 층계가 세워져 있고 그 꼭대기는 하늘에 닿아 있는데, 하느님의 천사들이 그 층계를 오르내리고 있었다. 이때 하느님께서 “그 위에 서서 말씀하셨다.” 그러나 그는 꿈만 꾸고 길을 떠나지 않았다. 그는 꿈에서 말씀하신 하느님과 그분의 약속을 기념하기 위해 머리에 베었던 바로 그 돌을 세웠다. 그리고 그 꼭대기에 기름을 부었다. (창세 28,10-22)

 

- 야코포 틴토레토 작, ‘야곱의 사다리’, 1578년. 출처=Wikimedia Common

 

 

여기에서 중요한 말은 해가 지자 거기에서 밤을 지내게 된 “어떤 곳”, 머리에 베고 그곳에 누워 자려고 돌 하나를 가져온 “그곳”이다. 바로 그 자리에 층계가 세워져 저 하늘에 닿아 있었고, 그 사이를 하느님의 천사들이 오르내리고 있었다. 그가 있는 그 장소, 그 자리는 하느님께서 계신 곳에 이어져 있었다. 그러면 야곱이 있었던 그 땅만 그러했는가? 아니다. 우리가 있는 성당에서도 바로 하느님의 천사들이 층계를 오르내리고 있다.

 

 

하느님의 천사가 오르내리며 땅과 하늘 연결

 

그러면 하느님께서는 왜 층계를 만들어 보여주셨을까? 그 답은 다음 절에 나와 있다. 우리말 성경은 “주님께서 그 위에 서서 말씀하셨다”로 되어 있다. 그러나 영어 성경은 “주님께서 그의 곁에 서 계셨다(there was the LORD standing beside him)”로 번역했다. 하느님께서는 저 높은 데서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야곱에게 내려오시어 그의 곁에 계셨다. 이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와 함께 있으면서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켜 주고, 너를 다시 이 땅으로 데려오겠다.” 야곱이 꿈에 본 층계는 땅과 하늘을 잇는 것, 하늘에 계신 하느님께서 이 땅 인간의 곁에 서 계시고, 그들과 함께 있음을 상징한다.

 

야곱의 사다리는 성당의 공간적 원형이다. 이런 야곱의 사다리가 우리가 매일, 매주 다니는 성당 안에 있다. 미사에서 사제는 “이는 내 몸이다” 하며 축성한 빵을 받들어 올린다. 그리고 손을 올리면서 “마음을 드높이”라고 하고, 회중은 “주님께 올립니다”라고 답한다. “주님께 올립니다”는 “주님께 우리의 마음을 드높입니다”라는 뜻이다. 그래서 예부터 성당의 제대 위 공간을 애써 넓고 높게 지었다. 땅에 세워진 층계의 꼭대기가 하늘에 닿아 하느님의 천사들이 오르내리는 곳이기 때문이다.

 

야곱은 잠에서 깨어나자 자기가 발을 딛고 있는 곳이 하느님께서 계신 거룩한 장소임을 자각했다. 그리고 “진정 주님께서 이곳에 계시는데도 나는 그것을 모르고 있었구나” 하면서 두려움에 싸여 말하였다. “이 얼마나 두려운 곳인가! 이곳은 다름 아닌 하느님의 집이다. 여기가 바로 하늘의 문이로구나.” 우리가 미사를 드리는 성당이 바로 오늘의 거룩한 땅이요 야곱의 말대로 몹시도 두려운 곳이다. 하느님께서는 모세를 부르시며 “네가 서 있는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어라”라고 말씀하셨으니, 이 말씀대로라면 우리는 신을 벗고 성당에 들어가야 한다.

 

유다인들은 히브리어로 ‘네가 서 있는 그곳’을 ‘마콤(mqm)’이라 불렀다. ‘마콤’의 첫 번째 의미는 창세기의 야곱의 장소나 탈출기의 불타는 떨기와 같이 하느님께서 모세 앞에 나타나시는 선택된 장소다. 그 장소는 하느님께서 계신 자리이니 하느님께서 당신의 이름을 나타내시는 거룩한 장소, 따라서 두려운 장소다. 평범하고 흔한 장소가 결코 아니다. 그런데도 놀랍게도 하느님께서 나타나시는 이런 거룩한 장소가 우리가 사는 동네에 성당이라는 건물 모습으로 가까이 서 있다.

 

- 해롤드 카핑 작, ‘야곱의 서원’.

 

 

하느님이 우리 곁에 계심을 드러내는 ‘성사’

 

야곱은 잠에서 깨어 일어나 다른 곳으로 가지 않았고, 이 두려운 장소를 “하느님의 집(Domus Dei, the House of God)”, “하늘의 문(Porta Coeli, the Gate of Heaven)”이라고 불렀다. 야곱은 하느님께서 계신 곳이니 “하느님의 ‘집”이라 불렀고, 거룩함이 시작하는 곳이니 “하늘의 ‘문”이라 불렀다. 야곱은 하느님의 거룩한 영역을 감히 사람이 사는 ‘집’과 ‘문’으로 형상화했다. 

 

그러나 야곱은 들판에서 하느님의 현시에 감격하고만 있지 않았다. 그는 바로 자기가 베고 잤던 돌을 가져다가 기둥을 세우고 그 꼭대기에 기름을 부음으로써 그곳을 하느님의 ‘집’으로 이 땅에 구축했다. 야곱은 하느님을 만난 그 땅에 돌을 세움으로써 그곳을 거룩한 자리로 구별했다. 그가 한 것은 수직으로 기둥을 세운 것뿐이다. 그러나 수직으로 세운 기둥 하나는 ‘세운 것’ 전체를 나타내는 건축 행위였다. 이것은 인류 최초의 성당이다.

 

그러나 돌을 세웠기 때문에 하느님의 집이 된 것이 아니다. 그 자리가 거룩한 땅임을 알았더라면 그곳에 누웠을 리 없고, 꿈에서 천사가 오르내리는 층계를 보지 못했더라면 야곱은 돌을 세웠을 리 없다. 돌을 세우기 전에 이미 그곳에 ‘하느님의 집’은 있었다. 그는 이를 알고 돌을 세움으로써 ‘하느님의 집’을 이 땅에 지었다.

 

하느님께서는 성당이 세워지기 전 이미 그 자리에 야곱의 사다리로 성당의 원형을 보여주셨다. 그러니 성당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하느님께서 우리 곁에 함께 계심을 눈에 보이게 하려고 지은 성사적 건축물이다. 우리가 성당을 설계하고 시공자를 불러 세웠다고 우리가 하느님의 집을 짓는 것이 아니다. 단지 우리는 하느님의 집을 눈에 보이게 해 주는 성당이라는 집을 돌과 콘크리트로 세울 뿐이다.

 

[가톨릭평화신문, 2023년 1월 1일, 김광현(안드레아) 서울대 건축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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