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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참된 교회가 되고자: 가톨릭 공동체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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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9-04-19 ㅣ No.235

[경향 돋보기] 참된 교회가 되고자 - 가톨릭 공동체 운동

 

 

연일 가슴 아픈 뉴스들이 계속된다. 경제불황으로 거리로 쏟아져나오는 노숙인들, 하루아침에 살던 터전을 빼앗긴 이들, 그러다가 목숨마저 빼앗긴 이들…. 이렇게 아파하는 이들에게 실로 하느님이 계시니 희망을 가지라고 말을 건네기가 마음 아프다. 예수님을 닮은 모습으로 살아야 하는 우리 교회는 이처럼 아파 눈물 흘리는 이들에게 과연 희망의 등불이 되고 있는가.

 

교회는 교회(Ecclesia)라는 말 자체로 공동체를 의미하지만, 내가 속한 공동체가 ‘공동체’의 모습을 하고 있는지, 그 안에서 나는 스스로를 공동체 구성원으로 의식하는지, 더 나아가 우리 공동체는 과연 ‘그리스도교’ 공동체라 불릴 만한지 돌아보게 하는 요즘이다.

 

비록 제한된 예지만, 교회 안의 여러 공동체 가운데서 공동체운동을 표방하는 예수살이공동체, 한국 CLC, 한국 믿음과 빛의 공동체적 지향과 삶의 방식을 살펴보았다. 이들 공동체의 이야기가 우리 공동체의 모습을 돌아보게 하는 거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지상에서 천국처럼’, 예수살이공동체

 

예수살이공동체는 한국 가톨릭 교회 안에서 자생적으로 생겨난 공동체로 작년에 설립 10주년을 맞았다. 짧지 않은 역사를 지닌 이들 공동체의 지향과 생활방식은 여전히 우리에게 신선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먼저 예수살이공동체는 그 이름부터 남다르다. 모든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고백하며 그분의 가르침과 삶을 따라 사는 이들을 가리키지만, ‘예수살이’라는 말을 공동체 이름 앞에 붙인 데는 그만큼 더 예수님의 삶에 집중하려는 의지를 드러내려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처럼 예수살이공동체는 스승이신 예수님께 온전히 합일된 삶을 추구하며, 이러한 것이 쉬운 일이 아니기에 도반들, 곧 공동체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예수살이공동체가 구현하려고 하는 이상 ‘지상에서 천국처럼’은 하느님 나라의 종말론적 표상을 ‘지금 여기’에서 이루고자 하는 뜻이다(창립 선언문, 5항 참조). 이것이 자못 거창한 이상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실은 우리 교회의 궁극적 존재목적이자 모든 교회 공동체가 지향해야 할 바와 다르지 않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교회헌장에서 말하듯이 교회는 “하느님과 그리스도의 나라를 선포하고 모든 민족 가운데에 이 나라를 세울 사명을 받았으며, 지상에서 이 나라의 싹과 시작되었고, 조금씩 자라나는 동안 하느님 나라의 완성을 위하여 분투”(5항 참조) 해야 하기 때문이다.

 

예수살이공동체는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에 대한 깊은 통찰을 공동체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그렇다면 이들이 바라보는 ‘지상’의 모습은 어떠한가. 이들은 오늘날 한국 사회는 “산업화의 과잉생산과 소비주의 구조에 편재되어 있다. 이러한 과잉소비의 사회는 생태계와 인간정신의 황폐화를 가져오며 생명을 위협하는 죽음의 환경으로 돌진하고 있다.”(창립 선언문, 1항 참조)고 진단한다. 이러한 세상 안에서 세속적 가치에 매몰되지 않고 어떻게 하느님 나라를 구현하며 살지가 이들 공동체가 가장 깊게 고민하는 부분이다.

 

그리하여 이들은 경쟁, 소유욕, 세상이 강요하는 안락과 욕망, 개인과 가족 중심적 가치를 내려놓고 공동의 유익을 구하면서 ‘소유로부터의 자유, 가난한 이와 함께하는 기쁨, 세상의 평화를 위한 투신’을 추구한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삶이라고 고백하는 것이다. 이를 위한 구체적인 실천 가운데 하나로 ‘오프(OFF) 운동’, 곧 소비사회의 상징과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쇼핑, 텔레비전, 핸드폰, 신용카드, 자동차, 가공식품, 액세서리를 절제하고 줄이며 살자는 운동을 펼쳐오고 있다.

 

예수살이공동체는 처음 청년 사목에서 시작된 만큼, 청년들이 공동체의 중심축을 이룬다. 해마다 두 차례 있는 배동교육을 받은 이들은 배동이(준회원)로, 수련생활을 거쳐 예수살이공동체의 정신을 따라 살겠다는 서원을 한 이들은 민들레(정회원)로서 공동체와 함께한다. 매주 금요일에는 ‘밀알의 집’에서 공동체의 금요미사가 거행되고, 다달이 주제를 정하고 강사를 초대하여 함께 공부하고 나누는 ‘강학회’도 열린다. 제3세계 학생들의 교육비를 지원하고자 ‘오천원계’를 조직하여 인도, 필리핀, 캄보디아 등지의 학생들을 돕는 활동도 한다. 이 밖에도 억압받고 소외된 이들이 아파하는 곳에 필요한 모습으로 함께하고자 애쓰고 있다.

 

중장년층 신자들은 3박4일의 ‘제자교육’에 참여할 수 있으며, 예수살이공동체의 정신에 동참하는 신부들은 ‘길벗 사제단’으로 공동체와 함께한다. 기본적으로 예수살이공동체는 소그룹 모임인 ‘두레모임’을 중심으로 최근 청년 두레 모임의 침체를 극복하고자 마음을 다잡고 있다. 예수살이공동체에는 생활공동체를 두고 있기도 하다. 청년들이 함께 공동생활을 하는 서울 합정동의 ‘밀알의 집’과 충북 단양에 있는 ‘산위의 마을’ 두 곳이다. 특히 산위의 마을은 가족단위로 마을을 이루어 함께 기도하고, 일하며, 가진 것을 나누는 수도 공동체 생활을 해나가고 있다. 이들은 공동체적 세계관과 예수살이공동체 운동의 실재성을 보여주는 것을 이상으로 살아가고 있다.

 

예수살이공동체는 10주년을 맞아 5개년 계획을 내놓았다. 첫째, 오프 운동을 대중운동으로 확산하는 것, 둘째, 농촌에서뿐 아니라 도시의 공동체를 만드는 것, 셋째, 변화된 안팎의 상황에 맞게 체계를 정비하는 것 등이다. 이들 공동체가 앞으로 보여줄 모습에도 큰 기대와 희망을 품어본다.

 

* 예수살이공동체 전화 02) 3144-2144.  누리집 www.jsari.com

 

 

‘세상 속으로 흩뿌려지는 공동체’, 한국 CLC

 

CLC(Christian Life Community)는 교황청 평신도평의회에서 승인한 국제 가톨릭 평신도 단체로, 전 세계 60개국에 회원 공동체를 두고 있다. 그 역사는 1584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1967년에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정신에 따라 ‘통칙’을 새롭게 제정하면서 쇄신의 기회를 가졌다. 한국 CLC는 1986년 세계총회에 참석하면서 시작되었으며, 현재 서울, 수원, 인천, 성남, 대구에 지역 공동체가 뿌리내리고 있고, 서약회원으로 200여 명이 있다.

 

이들은 오늘날 세계가 직면한 도전들 앞에 새로운 전망과 희망을 제시하는 ‘세상 속으로 흩뿌려지는 공동체’가 되고자 하며, 특별히 가난한 이들에 대한 우선적 선택, 내적 자유, 단순한 삶의 방식, 선의의 사람과의 연대를 이루고자 한다. 이를 위해 ‘영적, 공동체적, 사도적’ 삶의 방식이 통합적으로 조화를 이루도록 하는 것을 공동체 생활방식의 핵심으로 삼는다.

 

특별히 이들 공동체가 다른 공동체와 구별되는 점은 공동체의 영적 수련을 매우 중시하며, 이에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는 점이다. 예수회와 파트너십 관계를 맺고 있는 CLC는 이냐시오 영성을 이들 영성의 원천이자 도구로 삼는데, 회원들은 날마다 1시간 이상 이냐시오 영성수련의 방법으로 성경묵상 기도와 성찰 기도를 한다. 기도를 통해 매일의 구체적인 삶 안에서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바대로 자신을 개방하고 따르며, 모든 것 안에서 하느님을 찾고 발견하고자 노력한다. 무엇보다 복음서의 사건을 묵상함으로써 “예수님을 더 잘 알고, 더 많이 사랑하며, 더 많이 닮은” 진정한 사도가 되고자 한다.

 

이러한 개인적 기도와 성찰과 식별은 일주일에 한 번 갖는 공동체 모임에서 공동체적으로 나누어지며, 이러한 공동체적 식별이 공동체의 사도직 활동으로 연결되기도 한다. 한 예로, 한국 CLC에서 운영하는 용인의 ‘이주노동자 인권센터’는 2001년 중국인 25명이 국내로 밀입국하려다 배 밑 창고에서 질식사한 뉴스를 접한 공동체 회원들이 그들과 함께 마음 아파하며 이를 위한 기도를 하면서 공동체가 이주민들과 함께하려는 식별의 과정에서 탄생하였다고 한다.

 

또한 CLC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을 적극 반영한다. ‘세상에 속해 있으나 세상과 같지 않은’ 교회의 모습을 자각하며, 그 가운데도 평신도 역할의 중요성에 주목한다. 세상의 변화는 세상의 현장에서 가장 치열하게 살고 있는 평신도들의 변화가 없이는 어렵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변화는 개인적 노력으로는 실현 불가능하기에 공동체가 필요하다고 믿는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불러모아 공동체를 이루셨듯이, CLC는 작은 공동체를 이루고, 이러한 제자 공동체의 확산을 통해 일상과 삶을 통한 복음화에 앞장서고자 한다.

 

한국 CLC는 한국 교회 내에서 평신도의 영적 쇄신과 양성을 위한 소명을 식별하고, 평신도 교육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1989년 시작된 목요신학강좌는 한국 교회 내 탄탄한 평신도 교육 과정으로 자리 잡았으며, ‘세상 속의 영성수련’, 천주교시민운동학교, 문화와 영성 프로그램 등도 개최했다. 또한 한국교회 내 청년 양성의 소명을 자각하고, 젊은이 영성수련, 젊은이 국제양성프로젝트 등을 해나가고 있다.

 

CLC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한 축인 사도직 활동의 면에서는, 용인의 이주노동자 인권센터를 비롯하여 서울 독산동의 지역 아동센터, 분당 서현동의 ‘펴진손 호스피스’,  최근 부산에 문을 연 다문화아동센터 등이 CLC의 공동체적 식별과 계속적인 연대와 헌신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들 공동체는 영적 수련을 중시하면서도 결코 기도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방법으로 세상 안에 억압받고 고통받는 이들과 함께하고자 애쓴다.

 

CLC 회원들은 CLC 회원으로 살아가는 것을 하나의 성소로 받아들이며, 준비기, 지원기, 수련기, 유기서약기, 종신서약기의 단계로 서약을 한다. 이들과 함께하려면, 이들이 주최하는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하거나 후원회원인 ‘길벗’ 회원이 될 수 있다.

 

* 한국 CLC 전화 02)705-8163.  누리집 www.kclc.or.kr

 

 

믿음과 빛(Faith and Life)

 

‘믿음과 빛’(경향잡지 2007년 11월호 참조)은 정신지체 장애인과 그들의 부모, 또 친구들이 함께하는 공동체 운동이다. 라르슈 공동체의 창설자로 잘 알려진 장 바니에를 중심으로 창설되었으며, 라르슈 공동체처럼 함께 생활하는 공동체는 아니지만 정기적인 모임을 통해함께 성장해 나간다. 한국 믿음과 빛은 1987년 청주에서 처음 시작되었으며, 현재 서울, 광주, 부산, 목포, 청주에 8개의 공동체가 구성되어 있다. ‘믿음과 빛’ 공동체에는 “공동체와 성장”의 저자이기도 한 장 바니에의 공동체에 대한 통찰이 그대로 녹아있다. 곧 공동체 안에서 각자의 상처와 약함은 공동체를 참된 사랑의 빛으로 이끄는 선물로 받아들인다. 서로 부축을 받고 부축해 주면서 스스로의 약함을 인정하고 자기중심적 사고에서 빠져나오게 될 때, 주님의 파스카, 부활의 축제를 체험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리하여 정신지체장애인들이 지닌 빛, 곧 환대하는 마음, 사랑하는 능력, 단순 소박함, 고정관념을 거부하는 자유로움 등이 공동체와 세상을 복음화하는 선물임을 믿는다. 경쟁과 효율, 물질적 부와 쾌락 등의 원리로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사랑과 온정, 단순함과 충실함, 믿음이 충만한 세상이 존재함을 드러내 보여주는 것이다. 공동체 안에서 자신의 약함과 단점을 감추는 게 아니라 드러내며, 서로를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들일 때 그것이 나와 공동체의 성장으로 이어진다는 것도 자연스럽게 체득한다.

 

‘믿음과 빛’ 공동체는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위한’ 활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 하나가 되는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

 

* 한국 믿음과 빛 누리집 http://cafe.daum.net/fNl

 

 

이들 공동체가 추구하는 바가 새롭거나 특수한 것은 전혀 아니다. 어쩌면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인 모든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모습이 되어야 하는지 모른다. 독일의 신학자 게르하르트 로핑크는 “그리스도인이 사회에 이바지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하고 가장 대치될 수 없는 봉사는 아주 간단하다. 교회가 참으로 교회가 되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교회가 참으로 하느님 나라의 공동체가 되는 것이다. 바로 그럴 때에만 교회는 세상의 소금과 빛, 하느님 나라의 누룩이 될 수 있다.”고 하였다. 슬픔과 절망으로 어둠 속에서 아파하는 이들에게 희망을 전한다는 것이 막막하게 느껴지는 이때, 하느님께서 우리를 더욱 참된 교회가 되도록 초대하고 계시는지 모르겠다.

 

[경향잡지, 2009년 3월호, 이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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