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6일 (목)
(백) 부활 제7주간 목요일 이들이 완전히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가톨릭 교리

신앙교리: 하느님께 대한 믿음과 인간의 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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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05-05 ㅣ No.1605

[공부합시다! 신앙교리] 하느님께 대한 믿음과 인간의 이성

 

 

신앙을 위한 계시의 외적인 증거들

 

하느님께서는 당신 계시의 증거들(그리스도와 성인들의 기적, 예언, 교회의 확산과 교회의 거룩함, 교회의 풍요함과 확고함 등)로써 우리의 신앙을 키워 주십니다.

 

즉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기적을 베푸시고, 예언의 말씀을 주시고, 세상에 교회를 확장해 나가시고, 성사들로 교회를 성스럽게 하시며, 구원의 가르침으로 교회를 풍요롭게 하시고, 진리의 말씀들로 교회를 확고하게 하시는 모든 일이 다 우리의 신앙을 자라게 하시기 위한 배려인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느님께서는 우리 인간이 당신을 맹목적으로 믿기를 바라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우리가 우리의 자유로운 인격적인 동의로 당신을 신앙하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하느님께 대한 이러한 신앙은 우리 인간 자신의 인식보다 더 확실한 것입니다. 그것은 인간의 인식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지만, 신앙은 하느님의 은총으로 말미암은 것이고, 하느님의 말씀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에 인간의 인식보다 더 확실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신앙의 힘은 우리 인간의 모든 의심을 배제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한 것이지요!

 

 

신앙과 과학

 

“신앙이 이성보다 우위에 있기는 하지만, 신앙과 이성 사이에 진정한 불일치는 있을 수 없습니다. 신비를 계시하고 신앙을 주시는 바로 그 하느님께서 인간의 정신에 이성의 빛을 비춰 주시기 때문이며, 하느님께서 당신 자신을 부정하시거나 진리가 진리를 부정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가톨릭교회교리서 159항)

 

과학의 발달로 하느님을 믿기가 더 힘들어진 세상이지만, 과학자들 중에는 결국 하느님을 창조주로 승복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이성의 빛과 신앙을 주시므로 신앙과 이성이 전적으로 다른 것일 수가 없기 때문이지요! 아무리 과학이라도, 그것이 진리를 탐구하는 것이라면, 그 과학마저 하느님의 진리에 부합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교회는 가톨릭교회 교리서를 통해 이렇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모든 분야의 방법론적 탐구가 참으로 과학적 방법으로 도덕규범에 따라 이루어진다면 결코 신앙과 참으로 대립할 수 없을 것이다. 세속 사물이나 신앙의 실재는 다 똑같은 하느님에게서 그 기원을 이끌어내기 때문이다!”(159항) 그러므로 어떤 과학자라도, 그가 겸허하고 항구한 마음으로 사물을 탐구한다면, 그도 넓게는 하느님의 손길 안에서 진리의 길로 인도되고 있는 사람인 것입니다.

 

 

신앙과 교회

 

신앙은 우선적으로 하느님의 은총에 의해 생겨납니다. 자신을 먼저 계시하시는 하느님께 대한 인간의 자유로운 응답이 신앙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 신앙은 인간 혼자서만 하는 응답이 아니라 공동체적인 성격의 것입니다.

 

이는 순전히 하느님에 의해서만 주어지고 자라나는 것이 신앙일 수가 없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내가 가진 신앙을 거슬러 올라가 보십시오. 나의 신앙은 결국 앞서 그 신앙을 살던 사람들에게서 전해져 온 것 아닙니까? 그 누구도 자신의 힘으로 믿음을 가질 수는 없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먼저 신앙을 가지고 살았고, 그것을 전해준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신앙을 가르치는 사람도 있고, 또 신앙을 보여주는 사람도 있는 것입니다.

 

이런 뜻에서 가톨릭교회 교리서는 “각 신앙인은 마치 신앙인들이 이루는 커다란 사슬의 고리 하나하나와 같다. 나는 다른 사람의 신앙에 의지하지 않고서는 믿을 수 없으며, 또한 나의 신앙을 통하여 다른 사람들의 신앙을 지탱하는 데 이바지한다.”(166항)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대로 다른 사람의 신앙을 위해서 나 자신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나는 남들에게 신앙적으로 본보기가 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특히 나는 하느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보여줄 사람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결국 우리의 신앙은 그 신앙을 사는 사람들의 모임인 교회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교회가 먼저 믿고, 그 다음 나에게 전해주고, 나를 키워주고, 지탱해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우리 신앙의 어머니며 스승인 것입니다! 이에 치프리아노 성인은 “교회를 어머니로 삼지 않는 사람은 누구도 하느님을 아버지로 삼을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야훼라는 ‘하느님의 이름’의 유래와 의미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것이며 하느님께 대한 것이 신앙인데, 이는 자신의 이름을 ‘야훼’라고 알려주신 분께 대한 것입니다. 탈출기 3,14-15의 말씀입니다.

 

“모세가 하느님께 아뢰었다. ‘제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가서, <너희 조상들의 하느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고 말하면, 그들이 저에게 <그분 이름이 무엇이오?> 하고 물을 터인데, 제가 그들에게 무엇이라고 대답해야 하겠습니까?’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나는 있는 나다.’ 하고 대답하시고, 이어서 말씀하셨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있는 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여라.’ 하느님께서 다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너희 조상들의 하느님, 곧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신 야훼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여라. 이것이 영원히 불릴 나의 이름이며, 이것이 대대로 기릴 나의 칭호이다.’”

 

성경 말씀대로 ‘있는 나다’, ‘나는 있다’, ‘나는 있는 자다’ 등의 뜻으로 풀이될 수 있는 야훼라는 이름은 스스로 계시는 분, 모든 것들을 있게 하시는 분, 어제도 오늘도 변함없으신 분, 그러면서도 모든 것을 변화시키시는 분, 모든 것을 지니신 분, 모든 것에게 모든 것을 주시는 분이 하느님이심을 뜻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야훼라는 하느님의 이름은 하느님만이 있는 분, 하느님만이 완전한 존재라는 것을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는 또한 하느님께서는 다른 모든 존재의 원천, 존재 자체이신 분, 완전하신 분이신 반면에, 다른 모든 피조물은 존재 자체이신 하느님께 자신의 존재와 소유를 받고 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레지오 단원 여러분! 비록 새로 번역된 성경이 - 하느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않기 위해서 - ‘야훼' 대신 ‘주님’이라는 표현을 많이 쓰고 있다고 하더라도, 야훼 하느님께서는 무엇보다 우리와 함께 계시는 분이심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가톨릭교회 교리서는 말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이름을 알려주심으로써, 과거에도 그랬고(“나는 네 아버지의 하느님이다.” 탈출 3,6) 미래에도 그러할(“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 탈출 3,12), 변함없고 영원한 당신의 성실함도 동시에 알려 주신다. 당신의 이름을 ‘나다.’라고 알려 주시는 하느님께서는 당신 백성의 구원을 위하여 그들 곁에 늘 계시는 하느님이심을 알려 주신다.”(207항)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6년 5월호, 글 조현권 스테파노 신부(대구대교구 계산동성당 주임, CBCK 교리교육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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