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9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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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 이스라엘9: 갈릴래아 호수 산책 - 오병이어와 생명의 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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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2-09-17 ㅣ No.1056

[이스라엘 성지 길라잡이] 갈릴래아 호수 산책 - 오병이어와 생명의 양식



요르단 강 세례를 통해 공생애의 시작을 선포하신 예수님은 대부분 갈릴래아 호숫가에서 활동하시면서 많은 말씀과 기적을 남기셨다. 성경을 보고 상상을 하든, 실제로 순례를 하든, 우리 가슴에 가장 아름답게 다가오는 곳도 갈릴래아 호숫가인 것 같다. 많은 군중을 치유하시고 먹이시고, 참행복을 추구하면서도 물질에 치우치지 않도록 영생의 빵 말씀을 전해주신 곳.


◆ 갈릴래아 호수에는 참 다양한 사람들이 살았다. 호수 서쪽 티베리아스는 2,000년 전 무덤을 깎아서 만들었기 때문에 예수님 시대에는 이방인들이 살았고, 루카 복음 8장 돼지 떼의 기적이 있었던 호수 동쪽 게라사에도 정결하지 않은 짐승들이 사육되고 있었던 만큼 대표적인 이방인 도시였다.

종교적 정결을 중시 여긴 유다인들은 이방인들과 섞이지 않으려고 갈릴래아 호수 북쪽 코라진, 카파르나움, 그리고 벳사이다에 따로 살았고, 예수님이 활동하신 3대 마을이기도 했다. 그러나 많은 말씀과 기적을 베푸셨음에도 믿음이 없음을 느끼시면서 한탄하신 고을이기도 하다(마태 11,20-24).

이와 같이 갈릴래아 호숫가에는 유다인, 이방인, 부유한 사람, 가난한 사람, 회당장, 세리, 백인대장, 창녀 등 각양각색의 다양한 계층이 함께 모여 살았고, 예수님이 왜 이곳을 공생애의 센터로 선택하셨는지 이해가 된다.

갈릴래아 호수는 티베리아 바다, 겐네사렛 호수 등 다양한 이름을 가지고 있는데, 민물임에도 “바다”라고 한다. 요르단 강처럼 조그마한 물줄기들만 보다가 갑자기 둘레가 50km나 되는 거대한 호수를 접하면 그야말로 대단한 바다처럼 느껴졌을 것 같다. 게다가 겨울에는 갈매기가 날아다니고 바람이 불면 파도까지 쳐서 “갈릴래아 바다”라는 이름값을 제대로 한다.

예전부터 어족이 풍성했던 갈릴래아 호수에는 어업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들이 많았고, 예수님의 비유 말씀에도 생선이 많이 등장했다(마태 7,10). 그리고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 이상 되는 군중들을 먹이신 곳도 갈릴래아 바닷가였다(마태 14,13-21; 요한 6,1-14).


◆ 2,000년 전에는 교통이 불편하여 사람들이 대부분 걸어다녔고, 장거리 여행을 위해 빵이나 정어리 종류의 생선을 염장하거나 구워서 비상식량으로 가지고 다녔다. 아마 예수님이 사용하신 오병이어도 원래는 비슷한 용도였을 것이다.

지금까지 남겨진 가장 오래된 성지순례기 중에 4세기 후반 에제리아(Egeria) 수녀님이 기록하신 내용을 보면, 빵의 기적 장소가 이렇게 묘사되어 있다. “갈릴래아 호수를 바라보는 곳으로 카파르나움에서 그다지 멀지 않다. 이곳은 물이 풍부하여 푸른 풀밭이 있고 수많은 나무, 대추야자가 자란다. 이 풍성한 장소에서 예수님께서는 다섯 개의 빵과 두 마리의 물고기로 오천 명 이상을 먹이셨다.”


◆ 1,600년 전 에제리아 수녀님이 방문하셨을 때에는 아마 비잔틴 로마시대 성전이 봉헌되어 있었을 것이다. 수녀님이 거닐었을 갈릴래아 호수를 함께 산책하면서 빵의 기적 기념 성당으로 들어가면, 제단 아래 거무스름한 반석(아래 사진 참조)이 보인다.

이곳에서 예수님이 손에 빵을 들고 축복하셨다고 한다. 에제리아 수녀님이 오병이어 지역을 “푸르고 물이 많은 장소”라 묘사하신 것처럼 이곳은 그리스어로 헵타페곤(Heptapegon), “7개의 샘”이라 불렀고, 지금은 발음이 아랍어로 약간 와전되어 타브가(Tabgha)가 되었다.

현재는 4세기 고대 유적을 보존하면서 재건한 베네딕토 수도원 성당이 있고, 검은 반석 앞쪽으로 물고기 두 마리와 빵 네 개가 담긴 바구니 문양이 조그맣게 보인다. 흥미롭게도 이 모자이크에는 빵이 네 개만 새겨져 있는데, “생명의 빵”이신 예수님을 따로 상징하면서 오병이어를 장식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 성당 바닥에는 1,600년 전의 오병이어 문양뿐 아니라 나일강 동식물들의 모자이크들이 함께 새겨져 있다. 예수님 시대 문화의 중심지가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였기 때문에 갈릴래아 호수가 나일강처럼 풍요로워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나일강 모티브들을 바닥에 장식했다고 한다(왼쪽 사진 참조).

 

세월의 무상함 속에 나일강 모티브들은 여전히 남아있지만, 한때 고대 근동을 주름잡았던 이집트 패권은 모두 사라지고 나일강은 이전의 풍성함을 잃어 안타까움을 더한다. 성당 안에 앉아서 잠시 묵상하노라면, 내가 지금 무언가를 가졌다고 해서 영원히 지속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조용히 일깨워주는 것 같다.


◆ 그러나 적게 가졌다고 해서 서로 나눌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많이 가졌다고 늘 베풀고 사는 것도 아닌 것처럼.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린 것이다. 예수님은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밖에 없었지만, 나눔의 기적 속에 오천 명 이상을 먹이실 수 있었다.

 

오병이어 이후 예수님이 당신께서 주로 활동하신 카파르나움 회당(위 사진 참조)에 오셨을 때 빵의 기적을 보고 흥분했던 사람들도 함께 모였을 것 같다(요한 6,22-26). 또 다른 빵의 기적을 기대하면서.

에제리아 수녀님이 기록하신 것처럼 빵의 기적 장소와 카파르나움은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 있어서 걸으면 40분, 버스로는 5분 거리다.

카파르나움에 모여 또 다른 표징을 바라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먹고 나면 배고파지는 육체적인 빵이 아니라 하늘의 만나를 찾으라고 가르쳐주셨다(요한 6,33-35). 빈곤에 빠져 배고픈 사람도 있고 가진 것이 너무 많아 넘치게 부유한 사람도 있지만, 하늘의 만나는 누구나 똑같이 누릴 수 있는 복이라는 것을.

기쁨도 나누면 두 배가 된다는 속담이 있는 것처럼 오병이어는 늘 우리 안에서 반복될 수 있는 나눔의 기적일 것이다. 그리고 2,000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봉헌하는 성체성사 속에서 오늘도 내 영혼을 채워줄 “생명의 양식”을 기다려본다.

* 김명숙 소피아 - 한님성서연구소 연구원. 이스라엘에서 성지순례 안내자로 일하며 예루살렘 히브리대학교에서 구약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경향잡지, 2012년 9월호, 글 · 사진 김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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