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7일 (토)
(백) 부활 제4주간 토요일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

레지오ㅣ성모신심

레지오의 영성: 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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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2-04-13 ㅣ No.801

[레지오 영성] 

 

 

그동안 월간 레지오 마리애의 ‘레지오 영성’ 코너를 읽을 적마다 ‘언젠가는 내 차례가 올 텐데…’라며 걱정을 했습니다. 여러 신부님들의 글에서처럼 무언가 잘 이끌어 가거나, 새로운 바를 알려드리거나, 잊고 있던 소중한 바를 일깨우는 글을 쓸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결국 원고 요청을 받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지금 쓰는 이 글은 간절한 마음으로 성모님의 도우심을 청하며 쓰는 글입니다. 성모님처럼 넉넉한 마음으로 읽어주셨으면 합니다.

 

어떤 글을 쓸지를 두고 한참을 고민했습니다. 그리고 그 고민 끝에 제가 선택한 것은 제가 갖고 있는 신심의 한 토막을 나누는 것입니다. 일종의 ‘간증’이랄 수 있겠네요.

 

꼬꼬마 시절부터 갖고 있던 사제직의 꿈을 위해 이어온 노력이 결실을 맺어, 드디어 신학교에 입학을 했습니다. 입학 당시 가졌던 생각은 ‘나는 이제 하느님께 더 가까이 갔다! 하느님 나라를 닮은 곳에서 천사들과 함께 살게 되었다!’였습니다. 본당에서 존경할만한 신부님들과 학사님들을 만나왔기에 그런 생각을 했던 것이지요. 너무나 행복한 하루하루를 알차게 보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생각과 행복감이 계속 이어지지는 못했습니다. 가까이에서 본 신부님들과 선배 신학생들의 인간적인 모습들에 실망할 때도 있었고, 함께 사제직을 희망하며 신학교에서 살아가는 동기들과의 사이에서 상처를 받을 때도 있었지요.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당연한 것인데, 당시에는 ‘신학교는 곧 천국’이라는 생각과 기대가 너무 커서 그만큼 실망과 상처가 크게 느껴졌던 것이지요. 아무튼 그래서 서서히 마음속에 고민이 자리 잡기 시작했습니다. ‘과연 나는 이 길을 가도 되는 걸까?’라는 고민이었지요.

 

한편으로는 어렸을 적부터 가졌던 희망을 계속 이어가고 싶기도 했습니다. 꿈에 그리던 사제가 되어 많은 이들을 사랑하며 함께 구원의 문을 향해 나아가는 삶을 살고 싶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다른 한편으로는 그곳에서 계속 살아갈 자신이 없었습니다. 이런 실망과 상처를 계속 지고 나아갈 자신이 없었고, 신학교에서 머물고 있는 그때의 그 시간 자체도 참 어려웠습니다.

 

고민은 기도로 이어졌고, 기도가 길어지고 더 잦아질수록 더 깊은 고민의 골짜기로 빠져들어 갔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고민하고 또 아무리 기도해도 좀처럼 결심이 서지 않았습니다. 무언가 속을 확 뚫리게 할 만한 것을 느끼지도 못했습니다. 그렇다보니 조금씩 생각이 기울기 시작했습니다. ‘신학교를 떠나자.’ 그래서 주위 신학생들에게 슬쩍 말을 흘리기도 했습니다. “나는 갈 테니 열심히 해서 꼭 좋은 신부님이 되라.”고 말이지요.

 

 

주님과 성모님의 그 다함없는 사랑을 원하고 청하십시오

 

그러던 어느 날, 겨울방학을 앞두고 몹시 쌀쌀해진 오후였습니다. 묵주를 들고 운동장으로 나갔습니다. 그 당시에, 운동장을 둘러싼 관목들 사이로 조금 휑한 자리가 있었습니다. 마침 오후의 볕이 잘 들고 있기에 그 자리에 앉아 묵주기도를 바치기 시작했습니다. 기도의 지향은 ‘제가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였습니다. 고민은 깊지만 용기가 부족했기에 그런 지향을 갖고 의지하려 했던 것이었지요. 눈을 꼭 감고, 찬바람에 시린 두 손을 모아 묵주를 감싸 쥔 채로 성모님께 도우심을 청하며 기도를 이어갔습니다.

 

그렇게 얼마쯤 기도를 이어가다가 갑자기 소스라치게 놀라 눈을 떴습니다. 묵주기도에 집중하고 있었는데 누가 갑작스럽게 뒤에서 저를 확하고 끌어안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눈을 뜨고 누가 왔나하고 두리번거렸는데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더 놀라워하는 제 등과 어깨에는 그때까지도 꼬옥하고 감싸 안는 느낌이 가시질 않았습니다.

 

저는 주님께 늘 ‘답’을 구했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답’을 얻을 수 없었습니다. 성모님께서는 제가 무엇을 구해야 하는지를 일깨워주셨습니다. 무엇이 더 소중한 것이고, 무엇이 제가 살아가는 데에 가장 필요한 것인지를 알려 주셨습니다. 당신의 사랑으로, 그 ‘답’의 힌트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그때의 체험은 저를 뒤흔들어 놓았습니다. 제가 어떤 선택을 하든, 저를 향한 주님과 성모님의 사랑이 달라지지 않을 것임을 알았지요.

 

제 삶은 제 것이고, 주님께서는 이런 저를 사랑으로 지켜봐 주시며 함께 하신다는 것을 경험한 것은 정말로 큰 은총이었습니다. 그래서 결심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한정 없이 사랑해주시는 분이시라면, 이렇게 한 결 같이 함께 해주시는 분이시라면 나도 이분만 바라보며 살 수 있겠구나.’라며 용기를 낼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레지오 마리애 교우 여러분, 주님과 성모님의 그 다함없는 사랑을 원하고 청하십시오. 그리고 그 사랑에 맛 들여, 이 어려운 때에도 그 사랑으로 살아갑시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2년 4월호, 조영수 마태오 신부(춘천교구 사목국장, 춘천 Re. 담당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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