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6일 (목)
(백) 부활 제7주간 목요일 이들이 완전히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레지오ㅣ성모신심

레지오의 영성: 기쁨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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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12-08 ㅣ No.428

[레지오 영성] 기쁨의 힘


 

“성령께서 맺어주시는 열매는 사랑, 기쁨, 평화, 인내, 친절, 선행, 진실, 온유, 그리고 절제입니다. 이것을 금하는 법은 없습니다.”(갈라 5, 22~23, 공동번역) 라는 말씀에서 알 수 있듯이 기쁨은 성령의 순수한 열매입니다. 만약 우리가 주님과 개인적인 관계를 맺고 구원을 받는다면 주님의 성령께서 우리 안에 머무실 것입니다.(요한 14,16.17; 1고린 12,3 참조) 기쁨은 성령의 열매이므로, 만약 성령께서 우리 안에 계신다면, 기쁨은 우리 안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쁨을 밖에서 얻으려고 하거나 만들려고 애쓸 필요가 없습니다. 성령께서 거기에 계시기 때문에 성령의 다른 열매들과 사랑할 수 있는 능력처럼 기쁨이 우리 안에서 우울증을 해방시켜 줄 것입니다.

기쁨은 잔잔한 가운데 흘러넘치는 희열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내 사명을 완수하고 하느님의 은총의 복음을 전파하십시오. 주 예수께서 나에게 맡겨 주신 임무를 다할 수만 있다면 나는 조금도 목숨을 아끼지 않겠습니다.”(사도 20,24) 사도 바오로는 이 기쁨으로 복음을 전하라고 말합니다. 어원적으로 ‘기쁨’이라는 말은 그리스말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데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곧, 고요하고 즐거운’이라는 뜻을 지닙니다. 그리고 히브리어에서 기쁨은 ‘즐거워하는 것’ 또는 ‘합해지는 것’ 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히브리어에서 또 다른 의미로는 ‘뛰노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느헤미야 8장 10절을 보면 “야훼 앞에서 기뻐하면 너희를 지켜주시리라.”는 말씀이 있는데, 여기서 ‘기뻐하다’는 ‘하나가 되는 것’으로 표현될 수 있습니다. 힘이 되어 주시는 주님 앞에서 기뻐하기 위해서 하느님과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삶 안에서 주님과 하나가 되는 것이 바로 기쁨의 근원이 되기 때문입니다. “아침이면 기쁨이 오리라.”는 시편 30장 5절을 우리는 매일의 삶을 통해 체험할 수 있습니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기쁨에 젖어 일어나기 위해서는 처음에는 의지적으로 기쁨의 삶을 살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먼저 결심을 하면 그 다음에는 감성이 따라오기 때문에 계속해서 노력할 때 마침내 기쁨을 느낄 수 있게 됩니다.


성경에서 기쁨은 근원적인 곳에 도달할 때 오는 열매

국어 사전적 의미로 기쁨은 “욕구가 충족되었을 때의 즐거운 마음이나 느낌”을 말한다. 심리학 사전에서는 기쁨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자신이 원하는 일 혹은 목표가 성취될 때 경험하게 되는 즐거운 감정 혹은 정서 반응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일(목표)의 중요성, 이를 성취하는 과정에서의 노력 및 우연성의 정도 등에 의해 기쁨의 정도가 달라진다.” 성경에서는 기쁨에 대해 여러 곳에서 이야기 하는데 욕구 충족이나 목표 성취를 뛰어 넘어 근원적인 곳에 도달할 때 오는 열매로서 이야기한다.

우리는 우리 영혼의 내면에 우물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을 끌어올리는 펌프 손잡이는 웃음, 노래, 그리고 미소 등과 같은 육체적인 충만함입니다. 처음에는 이렇게 몸으로 표현하는 것이 효과가 있을까 하는 의심이 들기도 하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더 힘들게 느껴지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계속한다면, 우리는 곧 ‘쏟아져 나오는’ 기쁨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기쁨과 즐거움으로 충만된 삶 살도록 이르셔

성경을 통해, 하느님께서는 기쁨과 즐거움으로 충만된 삶을 살도록 그의 백성에게 이르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필립비서 4장 4절을 통해서 바오로 사도는 “주님과 함께 항상 기뻐하십시오. 거듭 말합니다. 기뻐하십시오.”라고 말합니다. 바오로 사도가 위의 구절에서 필립비인들에게 기쁨이라는 단어를 두 번 사용한 것처럼 주님께서는 무엇인가 중요한 것을 명령하실 때 두 번에 걸쳐 말씀하십니다.

이때 우리는 주님의 말씀에 특별히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바오로와 실라가 필립비 감옥에 있었을 때 일어난 일을 통해 우리는 사도 바오로가 기쁨의 힘을 알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때는 한밤중이었다. 바오로와 실라는 기도하면서 하느님을 찬미하고 있었고 다른 죄수들은 그것을 듣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큰 지진이 일어나 감옥을 기초부터 온통 뒤흔들어 놓는 바람에 문이 모두 열리고 죄수들을 묶어 두었던 쇠사슬이 다 풀리고 말았다.”(사도 16,25-26)

매를 맞은 다음 감옥에 끌려가 쇠사슬에 묶여 있던 바오로와 실라는 단순하게 미리 걱정하지 않고 하느님께 찬미의 노래를 부르면서 기쁨을 느꼈습니다. 강한 힘을 드러낼 수 있는 ‘기뻐한다는 것’은 그냥 놀면서 즐겁게 웃는 것처럼 쉽다는 사실을 우리는 깨닫지 못합니다. 그냥 단순히 그렇게 기뻐할 때 문제가 해결될 때도 자주 있습니다.

문들을 열게 하고 실라와 바오로 그리고 그들과 함께 감옥에 있었던 사람들의 쇠사슬을 푼 것과 같은 힘이 오늘날에도 우울증으로 묶여 있고 그곳에 갇혀서 신음하고 있는 우리들에게 실제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5년 12월호, 문종원 베드로 신부(서울대교구 낙성대동성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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