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8일 (토)
(백) 부활 제7주간 토요일 이 제자가 이 일들을 기록한 사람이다. 그의 증언은 참되다.

영성ㅣ기도ㅣ신앙

[영성] 가르멜 성인들의 생애와 영성47: 성녀 소화 데레사의 생애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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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04-26 ㅣ No.793

[가르멜 성인들의 생애와 영성] (47) 성녀 소화 데레사의 생애 ⑦


엄격했지만 배려심 깊었던 아버지 성 마르탱

 

 

- 성녀 소화 데레사의 인격 성숙에 깊은 영향을 미친 아버지 성 루이 마르탱.

 

 

자비로운 아버지

 

소화 데레사의 아버지는 일찍 떠난 자신의 아내를 대신해 엄마의 사랑까지 실어 막내딸을 사랑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소화 데레사에게 있어서 루이 마르탱씨는 단순히 아버지 이상으로 엄마이자 아빠였습니다. 유년 시절의 소화 데레사가 아버지로부터 체험한 지극한 부성애와 모성애는 「자서전」 곳곳에서 표현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여덟 살이 되면서 소화 데레사는 어느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초등학교에 다니기 시작했는데, 영민했던 소화 데레사는 늘 일등을 독차지하며 모든 수녀님의 사랑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학창시절 내내 일등을 했던 소화 데레사를 보던 동료 학생들의 질투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똑똑했던 데레사는 월반까지 했고 그런 데레사를 모든 선생 수녀님들이 좋아했기 때문입니다. 특히 13살이 되던 무렵에 소화 데레사는 주위의 시기와 질투로 인해 심리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집으로 돌아와 자기 무릎에 앉아 학교에서 받은 점수를 알려주곤 했던 막내딸을 자애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며 볼에 입을 맞춰 주곤 했고 그러면 이내 데레사는 모든 고통을 잊어버렸다고 합니다. 

 

이런 아버지의 자애 가득한 사랑은 특히 소화 데레사가 가르멜 수도 성소를 느끼고 고민하던 가장 힘든 시절에 빛을 발했습니다. 가족 중에 가장 사랑했던 막내딸이 15살이 되면서 봉쇄 가르멜 수녀원에 들어가겠다고 조심스레 고백하자, 소화 데레사의 아버지는 그 딸아이의 진정한 행복을 위해 눈물을 머금고 진심으로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 주었습니다. 그래서 마르탱씨는 자기 딸의 이른 수도 성소를 걱정하며 반대했던 리지외 본당의 주임 신부인 들라트로에트 신부를 직접 찾아가 설득했는가 하면, 주임 신부님과 주교님으로부터 입회 허락을 얻지 못해 안타까워하던 막내딸을 위로하고 돕기 위해 스위스를 거쳐 로마를 순례하는 순례 여행에 동반했습니다.

 

 

섬세하고 배려심이 깊었던 아버지

 

그런데 소화 데레사의 아버지는 막내딸에게 단순히 자비롭기만 하지는 않았습니다. 딸이 올곧게 자랄 수 있도록 섬세하면서도 사려 깊게 사랑할 줄 알았습니다. 

 

예를 들어, 1878년 여름, 데레사가 여섯 살 무렵, 마르탱씨는 소화 데레사를 투루빌 바닷가로 데려간 적이 있었습니다. 해변을 산책하는 동안, 어느 부부가 아버지 곁에서 즐겁게 뛰놀고 있는 데레사를 바라보면서, 그에게 따님인가 하고 물으며, 정말이지 예쁜 아이라고 말하면서 다가왔다고 합니다. 그러자 마르탱씨는 그렇다고 대답하면서, 하지만 그 딸에게 칭찬하는 말을 하지 말도록 눈짓을 했다고 합니다. 훗날 데레사는 그때를 회상하면서 자신이 예쁘다는 말을 처음 들었다고 합니다. 두 언니를 비롯해 특히 마르탱씨는 사랑스러운 막내딸의 마음에 혹시나 허영심이 들어가지 않도록 조심하며 키웠던 겁니다. 

 

이렇듯 마르탱씨는 막내딸이 자칫 과도한 사랑으로 인해 엇나가지 않을까 조심하며 그 아이의 자잘한 면까지 섬세하게 보살펴 주었습니다. 이는 마르탱씨가 오랫동안 시계 수리공으로 살아오는 가운데 다져진 철저하고 정확하며 올바른 성격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때는 이런 아버지의 성격으로 인해 막내딸을 향한 ‘자비’의 마음이 ‘정의’라고 하는 가면을 쓰고 나왔지만, 그 이면에는 언제나 섬세하고 애틋한 마음이 가득했습니다.

 

 

거룩한 왕으로서의 아버지

 

소화 데레사가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는 이 막내딸을 ‘나의 여왕’이라 부르며 특별한 사랑을 표현하곤 했다고 합니다. 또한 소화 데레사 역시 아버지를 그에 걸맞게 ‘나의 왕’이라 부르며 따랐습니다. 이는 단순히 별명만이 아니라 아버지의 모든 면에 소화 데레사에게 감탄을 자아냈기 때문입니다. 막내딸의 눈에 아버지는 더할 나위 없이 고귀한 왕의 품위를 간직한 분이었습니다. 이 ‘왕’의 이미지는 소화 데레사와 아버지 사이의 관계를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그와 예수님 사이의 관계를 짚어볼 수 있는 중요한 이미지입니다.

 

우선, 소화 데레사는 아버지에게서 ‘거룩한 왕’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예컨대, 1883년 부활절에 소화 데레사는 신경증적인 떨림과 환각 증세로 고생했습니다. 당시 아버지는 병중에 있던 막내딸을 걱정하며 맏딸인 마리아에게 파리에 있는 승리의 성모 성당에 막내의 쾌유를 위해 미사를 청하라고 하면서 미사예물을 건네준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본 소화 데레사는 자신을 위한 아버지의 믿음과 사랑에 감격했다고 합니다. 매일의 삶에서는 물론, 특히 기도할 때 아버지가 보여 준 거룩한 모습은 딸들에게 각별한 공경심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그래서 소화 데레사는 아버지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성인들이 어떻게 기도하는지 쉽게 추측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성당에서 보게 되는 아버지의 거룩한 얼굴은 신부님의 강론보다 더 많은 것을 소화 데레사에게 전해 주었습니다. 마르탱씨의 눈은 때때로 거룩한 눈물로 가득했으며 종종 이 세상을 이탈해서 영원한 진리에 잠기곤 했다고 합니다. 

 

사실, 소화 데레사의 아버지는 시계공이었기 때문에 지극히 정확하고 엄격한 사람인 데다, 젊어서는 상당히 괄괄한 성격의 소유자였다고 합니다. 그런 아버지가 깊은 신앙생활 속에서 자비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변화되어 가는 것을 곁에서 지켜본 소화 데레사에게 아버지는 더할 나위 없이 ‘거룩한 나의 왕’으로 각인되었으며 이러한 이미지는 훗날 그가 예수님과 관계를 맺는 데에 중요한 변수로 작용했습니다.

 

[평화신문, 2016년 4월 24일, 윤주현 신부(대구가르멜수도원장, 대전가톨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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