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2일 (일)
(백) 주님 승천 대축일(홍보 주일)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시어 하느님 오른쪽에 앉으셨다.

강론자료

1월 20일(화)-연중 2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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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04-01-20 ㅣ No.573

연중 2 주간 화요일 - 짝수 해

 

        1사무 16,1-13        마르코 2,23-28

    2004. 1. 20.

주제 : 하느님의 선택기준

 

우리는 세상에서 나름대로 열심히 산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렇게 말할 때 그 판단은 다른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있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지금 놀고 있는 사람도 열심히 산다고 말할 것은 분명한 일입니다.  그리고 그 반대로 하루 24시간이 부족해서 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기는 별로 하는 일이 없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모든 것은 상대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상대적인 이야기라는 것은 인간이 자기 현실을 크게 바라보고 하는 이야기이지, 하느님 앞에서는 상대적인 것이란 없고 오로지 절대적인 것만 있는 법입니다.  하느님은 자기에게 필요한 것에 따라 같은 일도 달리 판단하는 분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오늘 읽은 독서는 사무엘서입니다.  사무엘은 이스라엘의 마지막 판관으로서 다윗왕국이 서기까지 활동했던 분입니다.  사무엘서 가운데 하느님의 뜻에 맞는 사람, 다윗을 선택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선택을 보고 불만을 가질 때가 있습니다.  현실에서 열심히 일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보상은 적은 듯 하고, 놀고먹는 사람은 권력을 마음대로 행사한다고 바라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음모로 적당하게 포장하면 세상에서 성공과 출세의 길을 거침없이 달리고,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돌보거나 올바른 길로 가려는 사람 앞에는 늘 힘든 일이 도사리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정말로 그럴 수 있습니다.  어제 <대장금>이라는 연속극을 보면서 더 크게 느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겉모습만 바라보는 인간의 입장에서만 그런 것입니다.  

 

다윗을 선택하기 전, 판관 사무엘의 섣부른 판단에 대하여 하느님이 말씀하시는 경고도 그것을 담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겉모양을 보지만 나 야훼는 속마음을 본다”는 선언은 참으로 무서운 소리입니다.  하느님 앞에서 자신감 있게 자기 모습을 드러낼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되겠습니까?  나는 하느님의 자비를 얻기에 충분한 삶을 살았노라고 말할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되겠습니까?  

 

사람들은 흔히 자기 앞에 하느님은 없다고 생각하고 싶어 합니다.  사람이란 소심하게 살아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혹시라도 우리가 그런 마음을 갖고 살아간다면 올바른 길에서 얼마나 멀리 떨어진 삶을 지내고 있는지 돌이켜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람이 할 수 있는 일과 해서는 안 될 일이 따로 정해져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그런 규정들이 하느님의 뜻을 실현하는 가운데 나오는 일들인지 아니면 철저하게 인간의 편의주의인지를 구별해야만 우리가 올바른 길을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삶을 판단하는 것은 하느님에 앞서서 바로 내가 만들어낸 삶의 결과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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