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2일 (일)
(백) 주님 승천 대축일(홍보 주일)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시어 하느님 오른쪽에 앉으셨다.

강론자료

1월 18일(주일)-연중 2 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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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04-01-17 ㅣ No.572

연중 제 2 주일 (다해)

 

        이사야 62.1-5    1고린토 12.4-11    요한 2,1-11

    2004. 1. 18.

 

주제 : 인간사에 하느님이 들어오심

 

안녕하십니까?  어제부터 제법 눈이 왔습니다.

우리 성당은 산 아래에 있기 때문에 눈이 오면 차가 올라오기도 힘들고, 사람들이 걷기에도 편하지는 않습니다.  그것이 현재의 현실이기는 합니다만, 현실을 그렇게 말한다고 해서 금방 달라질 일은 없을 것입니다.

 

사람은 서로 돕고 사는 존재들입니다. 혹시라도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 가운데, 나는 늘 도움을 받아야 되는 사람이지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시는 분은 없으실 것입니다. 생각이라도 그러하다면 좀 더 마음을 넓혀 그 마음을 바꾸고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될 일은 무엇이 있는지 찾을 수 있다면 더 좋을 것입니다.  조금 과장된 표현이기는 하겠습니다만,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생활이라고 자신의 삶을 돌이켜본다면 자신에게도 도움이 되는 생활은 아닐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꿔 이야기한다면, 나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 무엇인지 찾을 줄 아는 사람이라면, 다른 사람에게도 충분히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을 찾는 사람이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 신앙인들은 하느님의 뜻이 이 세상에 이루어지기를 바란다고 기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마 잠시 후에 하게 될 보편지향기도에서도 그런 내용에 우리 마음을 담아 기도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느님의 뜻이 세상에 이루어지는 것은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렇게 말할 때 갖는 생각하는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알 때라야만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도 올바로 모습이 될 수 있도록 우리가 힘을 모을 수 있을 것입니다.

 

혹시 내 눈이 휘둥그레 놀라는 일을 볼 때라야만 하느님의 뜻이 이 세상에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지구에서 볼 때, 달이 태양을 가리는 것을 가리켜 일식(日蝕, 日食)이라고 과학용어에서는 부릅니다.  그러나 오래전 옛날에는 그 현상을 과학으로 설명하지도 못하고 우리가 받아들이기 전에는 그 현상을 재앙의 징조로 해석했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그때에는 하던 전쟁을 멈추기도 하고, 재산을 싸들고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곳으로 피신했던 적도 있다고 했습니다.  지금 사람들은 과학 현상의 하나로 보고 별로 놀라지도 않지만, 옛날에는 사람을 놀라게 하는 기적의 하나였던 것입니다.

 

오늘은 연중 2주일입니다.  오늘 연중 2주일 복음은 인간의 삶에 개입하시는 하느님의 모습을 전해줍니다.  이 개입은 물을 포도주로 변하게 했던 사건으로 우리에게 전해집니다.  물이 포도주로 ‘본질변화’된 것은 예수님의 힘으로 가능하게 된 기적사건이었고, 지난 주간에 기억했던 예수님의 세례에 이은 또 한 가지 공현사건입니다.  물이 맛좋은 포도주로 변한 것은 하느님께서 인간의 역사에 들어오셔서 당신의 뜻을 이루신 것입니다.  오늘 복음의 내용은 가나의 혼인잔치 집에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이 사건은 인간의 요구가 없었더라면 일어나지 않았을 사건이었습니다.  같은 잔치집에 와 있던 성모님이 아드님인 예수님에게 무조건적인 신뢰로서 부탁한 일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라고 말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성모님의 부탁을 들으신 예수님은 거부의 뜻을 분명히 하셨지만, 같은 일에 대한 부탁을 두 번 거절하지는 않습니다.  이런 과정을 살펴보면서 우리는 하느님의 도움을 필요로 할 때 어떤 마음 자세로 하는지를 돌아보게 됩니다.  혹시라도 내가 정한 일방적인 기준에 따라 하느님은 그저 내 말을 무조건 들어줘야 한다고 우기는 것은 아닌지 살펴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모님의 이러한 협력을 무시하거나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사람들은 마치도 성모님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듣지 말아야 할 것을 들은 사람들인 것처럼 강하게 부정’합니다.  때로는 성모님의 위치와 역할을 무시하기도 하고, 입에 올리지 말아야 할 이름을 말한 것처럼 호들갑을 떱니다.  세상에 저절로 이루어지는 일은 아무 것도 없는데, 예수님이 그저 심심해서 혹은 당신의 영광을 찾으려고 한 이유 때문에 기적을 베푼 것으로 생각하려고 합니다.

 

성서에 나오는 기적은 사람들로 하여금 하느님의 가르침과 뜻을 받아들이게 하려는 데에 목적이 있는 것이지 그저 홀로 일어나는 경우는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 복음의 끝에 ‘제자들은 이 일로써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고 복음사가 요한은 기록합니다.  그것이 기적의 의도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세상에 살면서 우리 눈이 놀라는 기적을 원한다면 하느님의 뜻을 내 뜻대로 강요하거나 바꿔보려고 하는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 삶에 찾아오시는 일은 당신이 정하신 때가 되었기 때문이지, 사람들이 무슨 특별한 일을 하여 그 보상을 얻을 수 있는 때가 되었기 때문은 아닙니다.  그렇게 하느님께서 행동하시는 방법을 알아듣는 사람들이라면, 고린토 서간에 나온 것처럼 우리들 각자에게 담아주신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여 교회도 발전시키고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어야 할 일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힘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싹이 나는 것은 아닙니다.  하느님이 심어주신 능력을 우리가 올바른 마음으로 사용할 때라만 하느님의 힘은 더 널리 펼쳐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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