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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오ㅣ성모신심

레지오 마리애 설립자 프랭크 더프의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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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3-05-04 ㅣ No.216

레지오 마리애 설립자 프랭크 더프의 생애


프랭크 더프(Frank Duff, 1889~1980, 사진)의 생애는 레지오 마리애의 역사와 떼어 놓을 수 없다.

더프가 레지오 마리애 설립에 영향을 준 것은 24세 때인 1913년 빈첸시오 아 바오로회에 가입한 일이다. 빈첸시오 아 바오로회는 빈민구제사업을 위해 프랑스 파리에서 설립된 평신도 사도직 단체다.

당시 더블린의 상황은 처참했다. 많은 이들이 실업자였고 굶주림에 허덕였다. 대규모 매춘이 성행했다. 종교적 냉담은 깊어갔다.

열렬한 빈첸시오회 회원이 된 더프는 성인전을 즐겨 읽었다. 그는 매일 성무일도를 바쳤다. 1914년부터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미사에 참례했다.

더프는 1916년 「우리도 성인이 될 수 있는가?」를 출간했다. 1917년 그는 자신의 생을 바꾼 몽포르의 성 루도비코 마리아가 쓴 책 「복되신 동정녀에 대한 참된 신심」이라는 책을 접하게 됐다. 4년 후, 그는 레지오 마리애를 설립했다. 첫 회합은 1921년 9월 7일 더블린의 빈첸시오 회관에서 열렸다. 그의 나이 32세였다.

1965년 교황 바오로 6세는 더프를 평신도 참관인으로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 초대했다. 그는 뛰어난 유머감각과 재치를 지녔으며 즐거운 농담을 즐기며 아이들을 사랑했다.

레지오 마리애의 성장과 발전을 자신의 공로로 돌린 적이 없었으며 사람들에게 '레지오 마리애 설립자'라고 불리는 것을 꺼렸다.

1980년 91세의 나이로 더블린 자택에서 선종한 더프는 자신이 임종한 날에도 두 대의 미사에 참례했다. 더프가 선종한 이튿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전보를 보내 고인을 추모했다.

"나는 단원들과 함께 그의 영혼의 영원한 안식을 위해 기도합니다. 그가 설립한 이 단체는 수없이 많은 평신도에게 복음화와 성화의 필수적 임무를 알게 했습니다." 

[평화신문, 2013년 5월 5일, 이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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