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8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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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가르멜 성인들의 생애와 영성66: 삼위일체의 복녀 엘리사벳의 생애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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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09-24 ㅣ No.838

[가르멜 성인들의 생애와 영성] (66) 삼위일체의 복녀 엘리사벳의 생애 ⑥


주님 사랑으로 세상 품기를 꿈꾸다

 

 

- 삼위일체의 복녀 엘리사벳.

 

 

상존 은총에 대한 깨달음

 

1903년 1월 11일 공현 대축일에 엘리사벳은 서원을 발했습니다. 이때부터 복녀는 그간의 시련을 뒤로 하고 더욱더 깊이 예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로 들어서게 됩니다. 복녀는 「서간」 154번을 통해 당시의 심경을 이렇게 전합니다. “아, 이모님,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제가 얼마나 행복한지 모른답니다!” 

 

서원을 기점으로 엘리사벳의 영적 여정은 새로운 전환점을 맞게 됩니다. 특히 복녀는 사도 바오로의 가르침이 담고 있는 ‘관상적인 측면’을 새롭게 발견했습니다. 동시에 이때부터 십자가의 성 요한의 작품들을 읽으면서 새로운 사실을 깨달아 갔습니다. 우리 영혼 안에 거하시는 삼위일체 하느님께서 우리를 당신 안에서 은총을 통해 신적으로 변모시켜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느님과의 관계가 깊어갈수록 인간은 점점 하느님처럼 변해 가는데, 그것을 ‘신화’(神化) 또는 ‘성화’(聖化)라고 부릅니다. 통상, 신학에서는 은총을 ‘조력(助力) 은총’과 ‘상존(常存) 은총’으로 구분하며 이 중에서도 상존 은총은 신앙생활에서 안내자가 되어 우리를 인도해 주는 주된 은총입니다. 이 상존 은총을 ‘신화 은총’ 또는 ‘성화 은총’이라고도 부릅니다. 하느님께서 이 은총을 통해 인간을 당신처럼 거룩하게 변화시켜 주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엘리사벳이 십자가의 성 요한을 통해 알아들은 은총은 다름 아닌 이 상존 은총입니다. 이 은총에 대해 좀 더 부연 설명을 하자면 이렇습니다.

 

상존 은총은 다시 ‘내주(內住) 은총’과 ‘변모(變貌) 은총’으로 나뉩니다. ‘내주 은총’은 삼위일체 하느님께서 우리 영혼 안에 항시 거하시는 은총을 말합니다. 이 은총은 우리가 삼위일체 하느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음으로써 받게 되며, 세 위격과 우리 사이의 인격적인 관계를 맺어 주고 성장시켜 줍니다. 이 관계가 성장함에 따라 인간은 점차 하느님을 닮아 가게 됩니다.  이렇게 하느님께서 당신과 사랑의 관계를 나누는 우리를 점차 당신처럼 변화시켜 주시는 은총을 ‘변모 은총’이라 부릅니다. 그러므로 삼위일체 하느님과의 인격적 관계를 의미하는 ‘내주 은총’이 먼저 주어지고 그 다음에 이를 통해 인간이 하느님처럼 변화되는 ‘변모 은총’이 주어집니다.

 

 

‘오, 흠숭하올 삼위일체, 나의 하느님’

 

엘리사벳은 1904년부터 영적 여정에서 자신을 인도해 줄 새로운 성녀를 만나게 되는데, 시에나의 성녀 가타리나가 그분이었습니다. 특히 성녀 가타리나가 쓴 「대화」라는 작품에 수록된 ‘삼위일체 하느님께 바치는 기도’는 엘리사벳이 가장 좋아하는 기도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하느님을 향한 자신의 모든 원의를 담아낼 수 없었던 엘리사벳은, 마침내 1904년 11월 21일, 자신의 영성에 있어서 핵심적인 주제라고 할 수 있는 삼위일체 하느님께 자신을 봉헌하는 기도문을 작성하게 됩니다. 

 

‘오, 흠숭하올 삼위일체, 나의 하느님’이라 불리는 이 기도문에는 삼위일체 하느님을 향한 엘리사벳의 열렬한 사랑, 그리고 무엇보다 그분의 내주(內住) 안에 깊이 잠겨 이승에서부터 이미 천국을 살고자 하는 간절한 소망, 더 나아가 이승에서부터 삼위일체 하느님을 흠숭하며 그분께 ‘영광의 찬미’를 드리며 또 다른 그리스도가 되어 이 세상에서 자신의 소명을 살겠다는 엘리사벳의 굳은 결심이 담겨 있습니다. 한 마디로, 이 기도문은 엘리사벳의 영성을 드러내는 대표적인 작품 중 하나입니다.

 

 

세상 구원을 향한 사도적 열망

 

이렇듯 영적으로 진보할수록 엘리사벳은 자신의 구원이나 성화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들에 대한 성화와 영혼 구원에 보다 더 자신을 열어젖혔습니다. 

 

외견상 봉쇄 수녀원으로 들어가 평생을 산다는 것은 외부 세계와의 절대적 단절을 의미하지만, 영적인 세계에서 본다면 그것은 오히려 더욱 깊이 하느님께 자신을 투신함으로써 그 안에서 세상을 끌어안고 세상의 구원과 성화를 위해 자신을 봉헌하는 예언자적인 행위입니다. 엘리사벳 역시 이 점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서원을 한 다음부터는 종종 면회실에서 가족들을 비롯해 지인들을 만나며 또는 서신 교환을 통해 그들과 자신의 영적 체험을 비롯해 이를 통해 얻은 은총을 나누곤 했습니다.

 

특히 엘리사벳은 맏딸과의 이별로 힘들어하는 어머니와 언니를 잃은 아픔을 겪어야 했던 여동생에게 영적인 엄마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하며 그들이 인간적인 애착을 넘어서 그들 안에 현존하시는 삼위일체 하느님을 사랑하며 이미 이승에서부터 천국을 살도록, 그리고 자신처럼 하느님의 영광을 찬미하며 감사의 삶을 사는 영혼이 되도록 끊임없이 격려하고 이끌어 주었습니다. 이는 후에 여동생 기트를 위해 ‘믿음 안에서 천국’이라는 주옥같은 작품을 쓰게 된 배경이기도 합니다. 

 

동시에 엘리사벳의 마음 안에서는 인류를 위해 수난하고 돌아가신 예수님을 위로해 드리고자 하는 열망이 더욱 커갔습니다. 이는 이미 수녀원 입회 전부터 가졌던 열망으로, 입회 후에는 그분을 위로해 드리기 위해 엄격한 수도 생활을 통해 자신의 기도와 희생으로 많은 영혼들, 특히 죄인들을 그분께 데려가겠다는 사도적인 삶으로 그를 이끌었습니다. 

 

한 마디로, 봉쇄 가르멜 수녀로서의 그의 수도 생활의 이상에는 사도가 되어 주님의 사랑으로 세상을 깊이 끌어안겠다는 꿈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합니다. “사도와 가르멜 수녀, 그건 결국 같은 말입니다”(「서간」 124).

 

[평화신문, 2016년 9월 25일, 윤주현 신부(대구가르멜수도원장, 대전가톨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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