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9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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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 교토(京都) 천주교 성지 (5) 겐나(元和)의 대순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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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05-16 ㅣ No.1481

교토(京都)에서 분 바람 - 교토 천주교성지 ⑤ 겐나(元和)의 대순교(大殉敎)


 

일본에서 키리시탄(천주교 신자)들이 크게 박해를 받은 사건이 세 번 있었다. 그 모든 박해가 겐나(元和: 일본의 연호, 1615년~1624년) 때 일어났기에 “겐나의 대순교”라고 불린다. 겐나의 대순교는 1619년 교토(京都) 대순교 때 52명이, 나가사키(長崎)대순교 때 55명이, 에도(江戶: 현재의 東京) 대순교 때 50명의 키리시탄들이 처형을 당한 사건이다.

토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사망한 뒤, 1603년 토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가 장군직을 이어서 하였는데 처음에는 키리시탄들의 선교를 허락하였다. 그러다 1612년에 접어들어 이에야스 또한 키리시탄들의 활동을 금하기 시작하면서 서서히 박해가 심해져 갔다. 비교적 키리시탄들에게 호의적이었던 교토쇼시다이(京都所司代: 교토의 치안을 유지하기 위한 기관)의 이타쿠라 카츠시게(板倉勝重) 또한 하는 수 없이 다이우스마을(천주교인들의 마을)에 살던 신자들을 대부분 잡아서 감옥에 가두게 되었다. 그런데 교토에 머물고 있던 이에야스의 아들 토쿠가와 이에타다(德川家忠)는 키리시탄들을 감옥에 잡아두는 것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하고 화형(火刑)으로 처형하라는 명을 내렸다.

때는 1619년 10월 6일, 교토 시내를 남북으로 흐르는 카모가와(鴨川) 강의 로쿠조가와라(六條河原)라는 곳에 27개의 십자가가 세워졌다. 토쿠가와 이에타다 장군의 분노와는 달리, 잡혀 있던 키리시탄들은 자신들의 모든 것을 하느님께 바칠 수 있다는 것이 신앙의 은총이라고 믿고 오히려 기쁨으로 받아 들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 키리시탄들은 감옥에서 끌려나와 교토 시내를 돌며 조리돌림을 당한 후 로 쿠조가와라까지 끌려 왔다. 키리시탄들에게 비교적 호의적이었던 이타쿠라 카츠시게는 키리시탄들에 대한 마지막 배려로 예수님께서 못박혀 돌아가신 십자가를 연상시키는 27개의 십자가를 준비해두고는 52명의 키리시탄들을 각 십자가마다 2~3명씩 끈으로 묶어 매달았다. 활활 타오르는 불꽃은 교토의 밤하늘을 밝히는데 십자가에 매달린 키리시탄들의 고통은 우리가 상상조차 못할 만큼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27개의 십자가들은 서로 겹쳐지듯 좁은 간격으로 붙어서 세워져 있었고 십자가 아래 쌓은 장작은 순교하는 키리시탄들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도록 높이 쌓아져 있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께 어떤 사람이 달려가서 해면을 신 포도주에 적신 다음, 갈대에 꽂아 예수님께 마시라고 갖다 대어 드렸듯이(마르 15,36 참조), 고통 속에서도 키리시탄들의 기도와 노래를 들으면서 그 고통의 시간이 짧아지도록 장작을 높이 쌓아 올렸을 포졸들의 마음을 생각하면 그 또한 가슴이 아파진다.

이처럼 교토의 대순교는 겐나의 3대 대순교 중 처음 이루어졌고 그 뒤를 이어 1622년에는 나가사키에서, 그리고 에도에서도 이루어졌다. 그런데 나가사키 대순교 때는 되도록 오랜 시간 고통을 주기 위해 화력을 약하게 해서 처형하였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그런데 교토의 대순교가 다른 두 곳의 대순교와 다른 점이 있다면 나가사키 대순교와 에도 대순교 때는 선교사들이 끝까지 함께하며 키리시탄들을 격려하였다고 전해져 있지만, 교토의 대순교 때는 한 명의 선교사조차 없었다는 점이다. 울어대는 어린 아이들을 품에 꼭 안으면서 순교한 것은 교토의 키리시탄들이었다. 교토 대순교 때 순교한 이들 중 열 살이 안 되는 어린 아이들이 여러 명, 그리고 11명은 15세 이하의 아이였다고 한다. 그리고 순교자 수도 52명이 아닌 53명이라고 되어 있는 기록도 있다. 그 이유는 순교자 중 한 여성의 뱃속 아이까지 포함시켜서 그리 된 것이다. 이렇게 해서 10월 6일 저녁 때 52명의 키리시탄들이 순교한 슬픈 사건이 바로 ‘겐나의 대순교’라고 불리는 사건이다.

교토 사람들이 키리시탄들을 조롱하는 목소리, 처형을 당한 키리시탄들을 불쌍히 여기는 이들의 눈물 속에서 하느님을 찬송하며 예수님 곁으로 떠났던 키리시탄들….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엄청난 고통 속에서도 하느님을 향한 굳센 믿음 하나로 기꺼이 기쁜 마음으로 하늘나라로 떠나자고 부모들은 끝까지 아이들을 격려하였다고 한다. 아마도 순교자들은 그들과 함께 하시는 예수님 모습을 분명 바라보고 있었을 것이다.

지금도 그 옛날과 같이 이 카모가와(鴨川)에는 유유히 강물이 흐르고 있다. 때때로 강물이 적을 때는 무수한 자갈들이 그 모양새를 드러내고 있다. 이 강가의 자갈 위에 바로 그 날의 십자가가 세워졌었다. 그리고 이 자갈들 중에는 그러한 슬픈 역사를 지켜본 돌들도 있을 것이다.(참고도서 : 스기노 사카에 저서 《교토의 키리스탄사적을 돌아보다》, 산가쿠출판)

* 이나오까 아끼 님은 현재 프리랜서로 통역 및 가이드로 활동 중이며, 비산성당에서 10년째 교리교사를 하고 있다고 해요.

 

[월간빛, 2015년 5월호, 이나오까 아끼, 쥴리아(비산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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