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9일 (목)
(백) 부활 제6주간 목요일 너희가 근심하겠지만, 그러나 너희의 근심은 기쁨으로 바뀔 것이다.

성인ㅣ순교자ㅣ성지

[성지] 스페인 가톨릭 문화와 역사 탐방1: 톨레도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06-27 ㅣ No.1497

[스페인 가톨릭 문화와 역사 탐방] (1) 톨레도


16세기 분열의 풍파에도 오롯이 걸어온 톨레도 성체 행렬


 

스페인 카스티야 왕국의 수도였던 톨레도에서는 16세기 교회 분열 시기부터 매해 성체 성혈 대축일이면 톨레도 대성당 성체 현시대로 성체 행렬을 하며 성체성사에 대한 신앙을 공적으로 고백하고 있다. 평화신문 자료사진


주교회의 주최로 교회 쇄신과 영성의 땅 스페인 교회를 6월 6일부터 14일까지 8박 9일 일정으로 순례했다. 16세기 교회 분열 시기 교회의 쇄신을 주도한 맨발의 가르멜회가 시작하고 예수회의 설립자 로욜라의 이냐시오가 태어난 곳, 20세기 꾸르실료와 오푸스 데이가 탄생한 땅.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순례길이 있는 스페인 교회에 대해 4회에 걸쳐 연재한다.


엘 그레코의 그림

꼼짝할 수 없었다.

눈앞에 펼쳐진 한 폭 그림이 옴짝달싹 못 하게 얼어붙게 했다. 엘 그레코가 45살 되던 해인 1586년에 그린 ‘오르가스 백작의 매장’이라는 작품이다. 스페인 톨레도 산토 토메(성 토마스 사도) 성당 안 오르가스 백작 무덤 위에 걸린 이 그림을 마주하면서 제대로 뒤통수를 맞은 듯 눈이 번쩍 뜨였다.

그림은 당시 ‘의로운 사람’으로 평판이 자자했던 오르가스 백작의 매장 장면과 그의 영혼이 하느님 나라로 받아들여지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가장 가슴 뛰게 한 장면은 그림 한가운데 배치된 천사가 오르가스 백작의 ‘의로운 영혼’을 자궁처럼 묘사된 어머니의 태(胎)안으로 밀어 넣고 있는 모습이다. 그 태의 중심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그 좌우편에 성모 마리아와 요한 세례자가 자리하고 있다. 엘 그레코는 ‘교회’를 의로운 인간이 죽은 후 하느님 나라로 들어갈 수 있는 자궁으로 묘사한 것이다. 묵시적이고 영적인 기발하고 놀라운 표현이다.
 
- 
엘 그레코가 그린 ‘오르가스 백작의 매장’ 작품.


엘 그레코가 이 그림을 그리던 당시 16세기 유럽은 ‘교회 분열’이라는 대홍역을 치르고 있을 때다. 가톨릭 교회에서 떨어져 나간 프로테스탄트들은 눈에 보이는 교회 조직은 참된 교회가 아니며 오직 ‘성경’ ‘은총’ ‘믿음’만으로 구원받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이들은 하느님께서 오직 당신 은총으로 사람을 의롭게 하시기에 오르가스 백작처럼 구원받기 위해 굳이 선행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또 제도 교회를 부정하는 극단적 표현으로 성사, 특히 ‘성체성사’를 부인하면서 단지 상징적 의미로만 해석했다.

프로테스탄트의 거센 불길에 맞서 쇄신을 단행하기 위해 가톨릭 교회는 ‘트리엔트(트렌토) 공의회’를 열었다. 1545년 12월 13일부터 1563년 12월 4일까지 18년에 걸쳐 진행된 이 공의회는 지금의 제2차 바티칸 공의회와 견줄 만큼 혁신적인 교회 쇄신을 단행했다. 공의회는 로마 표준 라틴어 성경과 미사 경본, 시간 전례서, 교리서 등을 마련했고, 신학교와 수도원 정비, 가난한 이웃에 대한 선행 실천을 권고했다. 아울러 일곱 성사가 교회의 참된 성사임을 확인하면서 무엇보다 성체성사를 통해 그리스도께서 빵과 포도주 형상 안에 실재하신다고 재확인했다.


격랑의 시기, 가톨릭 신앙의 중심지

톨레도는 격랑의 이 시기 스페인 카스티야 왕국의 수도로 가톨릭 신앙을 수호하는 교두보이자 중심지였다. 당시 스페인 국왕은 펠리페 2세(1527~1598)였다. 오르가스 백작의 매장 그림에도 등장하는 펠리페 2세는 프로테스탄트와 맞서 가톨릭 신앙을 지키는 데 앞장섰다. 이베리아 반도 전역과 네덜란드, 시칠리아, 사르데냐, 밀라노, 나폴리, 튀니지, 필리핀, 아프리카 일부와 중남미 전역을 다스리던 그는 통치 이념을 가톨릭 신앙에 바탕을 두고 죽을 때까지 트리엔트 공의회 회기 결의 사안을 적극적으로 실천했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바로 ‘성체 거동’ 즉 성체 행렬이다. 성체성사를 거부하는 프로테스탄트에 저항해 펠리페 2세와 스페인 교회는 톨레도 대성당에서 출발해 도심 한 바퀴를 돌고 오는 ‘성체 행렬’ 예식을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때마다 시행하면서 성체에 대한 신앙 고백을 공적으로 드러냈다.

전례력으로 삼위일체 대축일 다음 목요일 성체 성혈 대축일(올해는 6월 4일)을 지내는데 때마침 톨레도를 방문한 7일 톨레도 대성당 제대에는 성체 행렬을 마친 성체 현시대(성광)가 놓여 있었다. 교회 분열의 파국을 막고 가톨릭 신앙과 성체성사의 신비를 고백하기 위해 톨레도 전역에 높이 들렸던 바로 그 성체 현시대였다. 1524년 제작된 이 현시대는 아메리카에서 가져온 순금 18㎏에 수많은 보석으로 장식돼 있는데 모두 신자들이 기도와 함께 자발적으로 봉헌한 것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오늘날 교회는 16세기 교회 분열 때처럼 자본주의와 물질주의, 반생명 문화의 거센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톨레도 대성당 제대 위의 성체 현시대는 과거에도 그랬듯이 현대 사회의 도전에 맞서 굳건히 신앙과 교회를 고수하고 쇄신해 나갈 것을 웅변하고 있었다. 이에 답하듯 톨레도 시민들은 지금도 매해 성체 성혈 대축일이면 이 성체 현시대를 앞세워 성체 행렬을 하고 있다.

이처럼 톨레도는 타호강을 둘러싼 난공불락의 성채 도시 모습 그대로 이베리아 반도에서 가톨릭 신앙을 지켜온 보루이자 심장으로 자리하고 있다.


톨레도는?

톨레도는 마드리드에서 남서쪽으로 67km 떨어진 카스티야 왕국의 옛 수도. 톨레도라는 이름은 로마제국 시대 이 지역을 톨레툼(Toletum)이라 불리던 것에서 유래됐다. 로마제국 이후 서고트 왕국의 수도로 번성하다 711년 무어왕 타릭에 의해 점령된 후 374년간 이슬람의 땅이 됐다. 이후 1085년 카스티야 왕국 알폰소 6세가 수복, 1561년 마드리드로 천도할 때까지 왕국의 수도로 정치, 종교, 문화, 산업의 중심지였다. 1561년 마드리드로 천도하면서 쇠락해갔으나 톨레도 대성당은 지금도 스페인 교회의 수석 성당으로 사랑받고 있다. 사진은 톨레도 전경.

 

[평화신문, 2015년 6월 28일, 글 사진 리길재 기자]



3,050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