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5일 (일)
(백) 부활 제6주일(생명 주일)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강론자료

전교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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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욱 [eliapark] 쪽지 캡슐

2000-10-24 ㅣ No.205

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미사(전교주일)

2000. 10. 22.(수색)

. 제1독서 : 이사야2,1-5./ .제2독서 : 로마서 10,9-18./ . 복음 : 마태오28,16-20.

 

"당신은 어떤 동기로 천주교에 입교할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까?"

 

이 질문은 예비자 교리를 처음 시작할 때, 예비자들이 써야하는 신상명세서에 있는 것입니다. 이 질문은, 예비자들이 어떻게 처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알게 되었고, 또 이렇게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결심했는지를 묻는 아주 중요한 질문입니다. 그렇게 아주 중요한 질문이긴 한데..., 많은 예비자들은 처음부터 이런 질문을 받게되니 많이 어려워들 하는 것 같습니다. 정말 천주교 신자가 되고 싶어서...,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그리스도인이 되고 싶어서, 성당에 오긴 했는데, 그게 어떤 이유 하나 때문도 아니고..., 또 이런 저런 이유를 다 쓰자니, 너무 길어질 것도 같고..., 그래서, 많은 본당에서 또 특히 우리 본당에서 쓰고 있는 방법은, 이 질문 아래에 여러 가지 있을 수 있는 답들을 다 제시하고, 그것들 중 자신들이 품었던 천주교에 입교하려는 동기가 있으면, 동그라미를 치게 하는 방법을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에 따라서는 제시한 답이 여러 개 있을 수 있으니까, 몇 개라도 더 동그라미를 칠 수 있게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면, 천주교 세례를 받고 입교하려는 예비자들은 열심히 생각하고 동그라미를 칩니다. 저는 항상 예비자들의 신상명세서를 볼 때마다, 바로 이 질문의 답을 유심히 보곤 합니다. '도대체 어떤 것이 세상 사람들에게 천주교 신자가, 그리스도인이 되고 싶은 생각을 갖게 했을까?'하는 궁금중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의 답들 중에서 어떤게 가장 많은 동그라미를 받았을까를 유심히 보는데..., 그 많은 답들 중에서 언제나 일등을 차지하는 것은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은 '전례 분위기가 좋아서', 또는 '잘 아는 사람의 소개로' 등입니다. 제시된 많은 답들 중에는 '교회의 사회적인 활동에 감동을 받아서', 그리고 '신자들의 모범적인 활동에 감동을 받아서' 같은 답들도 많은데, 이런 답들은 항상 맨 꼴찌를 차지하곤 합니다. 물론 통계적인 수치이니, 절대적으로 생각할 것은 아니지만..., 이런 통계결과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먼저 천주교 신자가 된, 먼저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복음을 받아들인, 신자들과 교회의 모범적인 행동에 감동하지는 못하고..., 그저 이 세상 살아가기가 힘드니까, 성당에 나와서라도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한 것이라는 예비자들의 답은, 바로 먼저 신자가 되어 교회를 이룬 우리 모두에 대한 평가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비자들이 얻고 싶어한다는 마음의 평화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교회에서 말하는 마음의 평화란, 하느님과 내가, 그리고 나와 다른 모든 사람이 사랑으로 일치되어 얻는 평화를 말하는 것인데..., 교회의 교리도 제대로 배우지 못한 맨처음 예비자의 상태에서 말하는 '마음의 평화'란, 세상의 어려움과 힘겨움에서 벗어나, 잠시나마 받고 싶어하는 마음의 위안일 확률이 높기 때문입니다. 천주교회가, 또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의 어려움과 힘겨움을 피하지 않고, 그 고통 속에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의 모범을 보여서 하느님과 일치되고, 세상 모든 이들과 진정한 평화를 이루어 나가는 모습으로 복음을 실천했어야 하는데..., 그래야 세상 사람들도 우리의 모습에 감동을 받아서, 우리에게로 다가오게 될텐데..., 우리의 모습은 전혀 그렇지 못한 것 같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을 실천해서 복음을 전하기는커녕, 오히려 예비자들보다, 더 나 개인의 안위와 마음의 평화만을 찾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공산주의의 창시자라고 불리는 마르크스는 "종교는 마약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무슨 뜻이겠습니까? 우리가 우리를 스스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르며, 교회에 모여오지만, 이러한 종교적 행동이 오직 교회 안에서만 머물고, 세상에 빛과 소금이 되지 못할 때, 우리의 신앙은 이 세상의 힘겨움과 어려움으로부터 도피하고, 값싼 위로나 주기 위한 것이 된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마르크스는 세상의 모든 종교의 모습 안에서 바로 이러한 마약적인 모습을 보았던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는 서로 좋은 말만하고, 사랑 가득한 모습으로 이러저러한 일들을 하지만, 실생활에서는 이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 세상을 올바르고 깨끗하게 만들려 하기는커녕, 자기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나 하나의 안전을 위해 세상과 타협하는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은, 마르크스의 말이 옳았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알게 해 줍니다. 그렇다면, 정말 교회는 마약일 뿐일까요? 어렵고 힘든 현실로부터 잠깐의 위로와 거짓희망만을 주는 마약일 뿐일까요? 그 해답은 역시 교회 공동체 안에 모여와 있는 그리스도인인 우리에게 달려 있는 것입니다.

 

"너희는 가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내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명한 모든 것을 지키도록 가르쳐라."

 

전교주일인 오늘 기쁜소식으로 선포되는 예수님의 이 말씀은, 그리스도인인 우리의 신앙이 결코 현실로부터 도피하고 위로만 받기 위한 '마약'이여서는 안되며, 말과 행동으로 신앙을 증거하고 세상 모든 이에게 전파함으로써, 세상 모든 이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모습으로 살아나가게 해야 하는 것이여야함을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을 통한 하느님의 사랑 안으로 인도됨으로써, 이 세상전체가 하느님의 성전으로,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원래의 목적대로, 사랑스럽고 아름다우며, 정의와 평화가 강물처럼 넘쳐흐르는 곳이 되어야 하는 것이, 바로 예수님을 통한 하느님의 사랑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결코 나 자신의 안전과 이익을 위한 것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나 혼자 믿고, 나 혼자 구원을 얻기 위한 것이여서는 더더욱 안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신앙은 바로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교회 공동체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기념하는 성찬에 참여하며, 예수님의 몸과 피를 받아먹음으로써, 예수님과 그리고 서로 서로와 한 몸을 이루는 사랑을 체험합니다. 그러나, 이 사랑은 여기서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 안에서 얻어 누린 이 구원, 이 사랑의 체험을, 교회 밖의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말씀과 행동을 내가 살아나감으로써 세상 모든 이에게 전파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랑의 모습으로 살아나갈 때만이, 교회는 더 이상 마약이 아니고, 세상을 올바르게 만들어 나가고, 세상 모든 이에게 사람을 창조하신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 깨달아, 깨끗하고 올바른 삶을 살아나가게 하는 '생명'이 되는 것입니다.

 

사실 전교가 무엇인지를 물어보면, 많은 분들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그리스도교를 믿지 않는 사람들을 많이 세례시켜서 같은 교인이 되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닙니다만, 마구잡이로 무조건 예수님 믿으라고 소리쳐서 교인들 숫자만 늘이는 것을 말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전교는 바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사랑을 우리의 말과 삶을 통하여 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기쁜소식, 하느님 나라가 이미 와 있음을, 우리가 예수님과 같은, 목숨을 바치는 사랑을, 우리의 삶으로 선포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전교를 우리가 행할 때,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우리의 이 사랑에 감복하여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우리와 하나되는 사랑을 나누며, 진정한 하느님 나라를 이 땅에 이루어 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전교해야할, 하느님의 그 사랑을 나누어야 할 대상은 그렇게 멀지 않은 곳에 있습니다. 아프리카 오지나, 아직 예수님을 모르는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선교를 하는 것만이 전교는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리 주위에도 예수님의 사랑, 그 참되고 진실한 사랑을 우리의 삶으로 보여주어야할 대상이 많기 때문입니다. 소외받고 가난한 사람들..., 서로의 욕심과 이기심으로 얼룩진 이 세상과, 교회를 한낱 값싼 위로나, 현실을 도피하는 곳으로밖에 생각하지 않는 많은 사람들..., 겨울이 다가오지만 우리의 무관심속에 여전히 굶주림에 헐벗음에 허덕여야 하는 노숙자들... 이들이 바로 우리가 전교해야할 대상인 것입니다. 이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한 하느님의 사랑을 베풀어, 그들을 깨닫게하고, 그들과 함께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려야 하는 의무를 우리는 갖고 있는 것입니다.

 

"너희는 가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내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명한 모든 것을 지키도록 가르쳐라."

 

예수님은 우리에게 비켜갈 수도, 타협할 수도 없는 사랑의 의무를 다하도록 명령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 명령과 함께 우리에게 당신의 사랑의 약속을 하시고 계십니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겠다."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 인간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오셔서,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말씀으로 삶으로 보여주시다가, 마침내 십자가 위에서 죽으시고, 죽음까지도 인간을 위해 물리쳐 이겨내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오늘 우리를 향해 하신 이 사랑의 말씀은,/ 우리가 당신의 명령을 올바로 수행해낼 수 있도록, 당신의 사랑을 올바로 전할 수 있도록 힘과 용기와 희망이 되는 말씀인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매일 짓는 수많은 죄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사랑해 주시는 하느님의 사랑에 감사하면서, 그 사랑을 모든 사람에게 베풀겠다고 결심하고, 이렇게 교회에 모여 왔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누리는 진정한 평화와 정의와 사랑의 하느님 나라는, 오직 우리의 이 교회 안에만 머물러 있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을 우리가 실천함으로써, 다른 모든 사람이 우리에게 모여와 함께 하느님을 찬미하며, 다같이 사랑을 나누며 살아가는 하느님의 나라를 이루어 가야만, 오늘 복음의 예수님의 명령을 제대로 이행하는 올바른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명하신 모든 것을 말로만 가르치거나, 개인의 안락과 위로를 얻기 위한 것으로 왜곡시킴없이, 우리의 행동으로 가르쳐야 할 것입니다. 십자가의 사랑을 베풀 때, 부활의 영광을..., 진정한 평화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우리의 실천으로 보여줄 때, 우리는 이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빛이 될 것이고, 우리의 교회는 모든 사람들이 보고 모여오는 높은 산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바로 이런 사랑을 이웃에게 베풀 때, 그렇게도 싫어하고 미워하던 그 상대를 진정으로 이해하고 사랑하게 되었을 때, 우리의 그 실천이 비록 너무 작고 미약한 것이라 할지라도 온세상에 울려펴지게 되고, 우리의 교회가 울타리를 뛰어넘어 모든 이가 함께 하느님의 사랑을 나누며 사는 하느님의 나라를 이루게 될 것입니다.

 

"자. 올라가자, 주님의 산으로, 야곱의 하느님께서 계신 전으로! 사는 길을 그에게 배우고 그 길을 따라가자. 법은 시온에서 나오고, 주님의 말씀은 예루살렘에서 나오느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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