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9월 29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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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 별별 이야기: 변화의 힘은 어디서 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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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1-04-01 ㅣ No.1035

[박현민 신부의 별별 이야기] (66) 변화의 힘은 어디서 오는가 (상)

 

 

어머니의 간곡한 요청으로 하는 수 없이 상담실을 찾은 즈카르야는 다소 불만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지금까지 상담소를 전전하면서 여러 상담자를 만나보았지만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또 신부님을 만나보라니…. 즈카르야는 어머니의 잔소리에 화가 많이 난 모양이었다.

 

서른을 훌쩍 넘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즈카르야는 이렇다 할 직업도 없이 컴퓨터 게임에만 빠져있었다. 깊은 우울증과 대인기피증으로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지 못하고 있을 뿐 아니라 최근에는 자살소동까지 벌였다. 가족들은 더이상 즈카르야를 돌보아 줄 힘이 남아 있지 않은 듯 보였다. 가족들이 하나둘 마음의 문을 닫아걸기 시작하면서 즈카르야의 지지 기반은 점차 줄어들기 시작하였고, 그만큼 자신의 살아가야 할 이유도 희미해지기 시작하였다.

 

즈카르야는 중학교 시절까지만 하더라도 공부를 잘했고 친구들과의 관계도 원만했다. 하지만 고등학교에 올라와 왕따를 당한 후 삶은 완전히 뒤바뀌었다.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집안에 틀어박힌 지 20여 년이 지났지만 그는 아직까지 자신의 상처로부터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즈카르야는 자신이 누구를 만나 어떤 도움을 받아야 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또한 누구의 도움 이전에 자신이 먼저 상처를 딛고 일어나야 한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사람들은 스스로 툭툭 털고 일어나라고 말하지만 그럴 수 없는 자신이 너무도 답답했다. 수많은 심리학 서적과 자기계발서들을 통해 정보를 얻어보았다. 하지만 자존감 회복과 우울증 극복을 위한 수많은 조언을 읽고 있노라면 자신이 치유되는 느낌이 아니라 오히려 더 상처를 받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알면서도 실천하지 못하는 자신이 더 패배자처럼 느껴질 뿐이었다. 이처럼 과거의 상처로 인해 현재의 삶이 멈춰버린 사람들은 생각보다 훨씬 더 강력한 무기력을 체험하고 있다.

 

삶의 방향과 목표를 잃어버린 사람은 마치 자동차를 운전하면서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모르는 사람과 같다. 설사 자신을 도와주는 사람이 나타나 목적지를 알려준다더라도 문제는 쉽게 해결되지 않는다. 왜 내가 그곳에 가야 하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 운전을 해서 서울에 가야 한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도대체 왜 내가 서울에 가야 하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없는 상황처럼 말이다. 따라서 삶의 방향과 목표는 누가 제시해 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또 누가 제시해 준다더라도 별 의미가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즈카르야는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집에 틀어박혀 은둔생활을 선택하였다. 자신이 몰고 가던 자동차의 내비게이션이 고장이 나 잠시 멈춰 선 상태와 같다. 하지만 목표를 잃어버린 시간이 길어지자 즈카르야는 점차로 자신이 살아야 할 이유도 잃어버리고 있었다. 마치 방향을 잃어 잠시 멈춰 선 자동차가 시간이 흐르면서 연료도 떨어져 가는 상황처럼 말이다.

 

즈카르야는 삶의 목적의식과 의미를 잃어버리며 극심한 우울증과 무기력증에 빠져있었다. 수많은 시간 동안 심리상담을 받아 인생의 목적의식을 회복하려고 노력해 보았다. 상담의 효과는 내비게이션을 수리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삶의 목표와 목적을 다시 인지적으로 회복하는 듯싶었다. 하지만 복병이 나타났다.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를 알았지만 연료가 바닥이 나고 있었다.

 

수많은 상담과 심리 서적을 통해 어떻게 하면 우울을 극복할 수 있는지를 알게 되었지만, 문제는 그것을 실천할 의욕이나 의지가 생기지 않는 것이었다. 변화를 위한 정보가 아니라 변화를 위한 에너지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가톨릭평화신문, 2021년 3월 28일, 박현민 신부(영성심리학자, 성필립보생태마을 부관장)]

 


[박현민 신부의 별별 이야기] (67) 변화의 힘은 어디서 오는가 (중)

 

 

우리는 흔히 이런 질문을 던진다. “어떻게 하면 정신적으로 건강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마음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대인관계가 좋아질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을까?” 삶의 고통에 직면하여 제기되는 이 질문은 아직 해답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답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서점에는 자기치유를 위한 심리학 서적은 물론이요, 대인관계를 좋게 하기 위한 처세술이나 화술을 다루는 자기계발 서적이 봇물처럼 터져 나오고 있다. 게다가 인간에 대한 생물학적 이해가 깊어질수록 인간의 정신건강은 더 나아질 수 있다는 과학기술적 희망도 생겨났다. 우울증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마음수련보다는 항우울제를 복용하면 된다는 ‘약물 편의주의’도 이런 배경에서 생겨났다.

 

하지만 정신적ㆍ대인 관계적 문제를 안고 있는 현대인들은 아직 삶의 질적 행복을 위한 충분한 해결책을 얻지 못하고 있음을 느끼고 있다. 인간의 내면을 다루는 심리학적 지식이 축적되고 뇌 신경 과학이 발달한 오늘날은 분명 과거보다 행복지수가 높아져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여러 연구와 통계로 본 현대인의 정신건강 지수는 과거보다 더 악화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정신과 내원율과 입원율은 물론이요 장기입원율과 재입원율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게다가 세계적으로도 항우울과 항불안제 처방률은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다.

 

우리는 인간과 자연에 대해 그 어떤 시기보다도 더 많이 알고 있으며 더 잘 통제하고 있다는 과학기술 시대에 살고 있다. 19세기까지만 해도 정신적 문제를 앓고 있는 사람들은 귀신이 들렸거나 광인(狂人)으로 매도되어 수용소에 격리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현재는 뇌의 신경전달물질의 균형을 위해 약물치료가 필요한 환자로 이해되거나 심리치료가 필요한 내담자로 이해된다. 인간에 대한 이해가 더 높아졌지만, 정신건강 지표가 악화되고 있다면 이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인간은 기계처럼 고장 난 부분을 수리하는 방식으로, 혹은 동물처럼 훈련시키는 방식으로 온전한 치유를 경험하는 존재가 아니다.

 

즈카르야는 극심한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 그동안 만나왔던 상담자들은 그 우울의 주된 원인이 자신에 대한 비관적 견해에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상담자는 즈카르야에게 자신에 대한 잘못된 신념을 수정하고 건강하고 실제적인 자기 이해를 가질 수 있도록 개입했다. 즈카르야는 어느 정도 자존감이 회복되는 듯 보였으나 이내 원점으로 돌아가는 퇴행을 반복했다. 상담자는 그때마다 즈카르야의 심리적 퇴행, 건강한 자의식을 형성해 나가다가도 어느 단계에 갑자기 자신을 포기해버리는 심리적 특성을 해석해 주었다. 즈카르야는 이 심리적 과정도 잘 이해하고 있었다. 성인이 되어야 하지만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에 성장을 포기해 버리는 피터팬 증후군이 있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하지만 거기까지가 심리치료의 종착역이었다. 더 이상의 상담은 즈카르야에게 의미가 없었다.

 

즈카르야는 수많은 상담과 심리 서적을 통해 자신의 잘못된 신념을 깨닫게 되었고 그것을 고쳐보려는 많은 노력을 기울여 보았다. 그러나 우울함에 대한 정보와 자신에 대한 이해,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울을 극복하기 위한 행동적 노력이 자신의 우울감을 개선해 주지 못했다는 사실에 절망했다. 이것은 심리학이나 과학에서 밝혀낸 인간에 대한 정보가 인간의 내면 치유에 도움을 줄 수 있지만, 직접적인 치유로 연결되지 않을 수도 있음을 확인시켜 준다. 즉 인간은 교육이나 계몽으로 치유되는 것이 아니라 그 어떤 다른 치료적 요인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다. 만일 즈카르야가 이 치료적 요인을 체험할 수 있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것이다. [가톨릭평화신문, 2021년 4월 4일, 박현민 신부(영성심리학자, 성필립보생태마을 부관장)]

 

 

[박현민 신부의 별별 이야기] (68) 변화의 힘은 어디서 오는가 (하)

 

 

즈카르야의 깊은 우울감에 대한 근본적 치유는 쉽지 않지만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우울과 무기력 그리고 그 안에 본질적으로 숨어있는 불안과 같은 심리적 문제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해결이 가능할 수 있다는 말이다. 표면적으로 경미한 정서적 문제는 심리치료를 통해 어느 정도 극복이 가능하고 심각한 임상적 상태는 약물치료의 도움을 통해 안정을 찾을 수는 있다. 하지만 안정을 찾을 수 있다는 말이 치유와 치료의 개념과 동일시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심리정서적 문제는 재발하는 특성이 있어 당뇨와 고혈압처럼 지속적으로 관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앤드류 솔로몬은 「한낮의 우울」에서 우울증을 신이 내린 저주와 같은 고통으로 표현했다. 소설가이자 저널리스트였던 솔로몬은 어머니의 죽음 이후 찾아온 극심한 우울증을 극복하기 위해 자신을 실험대상으로 삼았다. 항우울제의 약리적 기전을 자신의 감정으로 민감하게 추적했으며, 심리치료를 통해 반추적인 부정적 사고의 핵심을 수정하는 실험을 수행했다.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우울증의 끊임없는 고통은 결국 솔로몬으로 하여금 우울을 실존적 차원으로 바라보도록 만들었다. “우울은 사랑이 지닌 결함이다. 사랑하기 위해서는 절망할 줄 아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말은 우울을 포함한 정신적 문제가 사랑과 깊은 상관성을 지니고 있음을 확인해 준다.

 

그렇다. 인간의 모든 정신적이며 심리정서적 문제는 ‘사랑’과 본질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단순한 호르몬의 불균형이나 신경전달물질의 재흡수 과정에서 드러나는 물리적 질환이 아니다. 즈카르야는 어린 시절 부모의 충분한 사랑에 대한 결핍을 무의식적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하지만 즈카르야의 부모는 아이를 잘못 키웠다, 혹은 사랑을 주지 않았다 등의 평가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어떤 부모에게 양육을 받았는지와 상관없이 아이의 심리적 특성은 부모로부터 사랑의 결핍을 체험할 수 있도록 만들 수 있다.

 

물론 영유아 시절에 부모가 아닌 타인에게 키워졌거나 학대를 받은 아동이 부모 사랑에 대한 결핍을 느끼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아이 스스로 사랑의 결핍을 느낄 수 있는 기질적 영향력도 무시할 수 없다. 따라서 부모는 아이가 어떤 성향과 기질을 가졌는지를 확인하고 부모의 입장이 아니라 아이의 입장에서 사랑의 표현을 전해야 한다. 좀 억울한 면도 없지 않지만 어떤 부모도 자신의 양육 태도를 자신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따라서 누구나 사랑의 결핍을 체험하고 있으며 그로 인한 내적인 문제를 어느 정도는 다 지니고 있다.

 

결국 즈카르야의 근원적 치료는 제2의 양육자(상담자 혹은 치료자)로부터 무조건적인 사랑의 체험을 지속적으로 그리고 안정적으로 받음으로써 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즉 모든 심리정서적 문제의 핵심적 치료요인은 ‘사랑의 체험’인 것이다. 이 말은 약물치료나 심리치료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환자나 내담자는 따뜻한 인간적 사랑을 지속해서 안정적으로 받아야만 그 치료적 도움의 예후가 긍정적일 수 있음을 의미한다.

 

변화의 힘은 바로 사랑에서 온다. 즈카르야에게는 의사이든 상담자이든 자신의 얼어붙은 심장을 훈훈한 사랑의 온도로 녹여 줄 사람이 필요했다. 사랑의 온도가 얼어붙은 손과 발에 온기를 전해주어 움직일 수 있을 때 생각과 감정 그리고 행동에서 변화가 시작될 환경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약물과 심리치료는 사실 이러한 배경이 먼저 확립되어야만 충분히 기능할 수 있는 인간적 도움인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내면의 변화를 촉진할 수 있는 살아있는 치료사다. 우리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따뜻한 사랑의 온기를 가지게 된다면 우리를 만나는 그 누구도 그 사랑 안에 치유의 은총을 받게 될 것이다. 우리는 사랑으로 인간과 세상을 변화시키는 살아있는 하느님의 성전이기 때문이다. [가톨릭평화신문, 2021년 4월 11일, 박현민 신부(영성심리학자, 성필립보생태마을 부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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