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9월 21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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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사목] 영화 칼럼: 희생 - 천국보다 낯선 영화 세계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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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0-12-27 ㅣ No.1250

[영화 칼럼] 희생(1986년, 감독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희생>, 천국보다 낯선 영화 세계로의 초대

 

 

다양한 영화들이 있기에 감상하는 방법도 다양함이 마땅할 것입니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서 비롯된 고전주의적 가치들에 무의식적으로 사로잡혀 우리는 편협하고 고정된 영화 감상의 기준과 틀을 가지고 있습니다. 할리우드 영화들은 그것들을 더 강화시켜 놓았습니다. 개연성과 인과관계에 입각한 빠른 이야기 전개, 관객이 현실을 잊고 화면 위의 환상에 몰두하여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만드는 서사 전략은 할리우드가 그 시학으로부터 계승한 것입니다.

 

영화 매체는 새로운 영화 형식을 꾸준히 모색해왔습니다. 우연의 요소와 비논리적 전개 방식의 고의적인 채택, 인간의 심리와 감정의 미묘한 움직임 그 자체에 대한 탐구, 꿈과 환상과 현실을 뒤섞으며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는 이야기 전개, 관객이 환상에 몰두하지 못하도록 비평적인 거리감을 유지하게 하려는 장치들의 활용 등 새로운 미학적 실험을 통해 새로운 영화들이 탄생하여 왔습니다. 새롭고 다양한 영화들을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의 기준과 틀을 보다 유연하게 확장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만약, 신고전주의 회화의 걸작인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을 감상하는 기준으로 피카소의 <게르니카>를 감상한다면 과연 제대로 감상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보다 유연한 감상의 틀을 가지고 감상한다면 <희생>은 경이로운 미학적 체험을 안겨줄 것입니다. 감독은 시간과 공간을 조각하여 움직이는 이미지들의 거대한 조각상을 완성하고 있습니다. 각 장면들은 단지 이야기 전개를 위한 수단에 그치지 않고 그 자체로 존재 이유를 갖고 그 조각상 속의 독립된 조각상이 됩니다. 그렇기에 이 영화를 감상하는 가장 바람직한 방법은 조각 작품을 감상하는 것과 같은 방법일 수 있습니다. 로댕의 거대한 조각 작품 <지옥의 문>을 감상할 때 우리는 우선 멀리서 직관적으로 감상합니다. 그 후 가까이 다가서서 그 안에 자체의 존재 이유를 갖고 존재하는 부분적인 조각상들, 즉, <생각하는 사람>이나 <웅크린 여인>이나 <아담>이나 <이브>의 존재 이유를 해석합니다. 그리고 직관적이고 전체적인 인상과 부분적인 해석들을 종합하면서 우리는 이 작품에 대한 예술적 체험을 완성합니다.

 

<희생>에서, 아버지 알렉산더와 함께 바닷가에 이미 죽은 나무 한 그루를 심었던 어린 아들 고센. 3년 동안 매일같이 물을 주어 죽은 나무에서 꽃이 피어나게 했다는 한 수도사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던 아버지를 생각하며 그 나무 아래에서 고센은 질문을 던집니다.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는데, 아빠, 그게 무슨 뜻이죠?” 영화 안에서 제시되었던 문제들을 마지막 장면에서 완벽하게 해결하려는 대부분의 할리우드의 영화들과 달리 이 영화는 이렇게 질문으로 끝납니다. 관객들을 수동적인 수용자가 아니라 적극적인 참여자로 만들려는 것이 이 영화가 추구하는 미학이기 때문입니다.

 

[2020년 12월 27일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가정 성화 주간) 서울주보 5면, 이광모 프란치스코(영화사 백두대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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