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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 수호성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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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6-07-20 ㅣ No.461

[노성두의 성미술 이야기] 수호성인 이야기


다윗은 음유시인의 아버지

 

 

- ‘성 세바스티아노’, 안드레아 만테냐가 그림, 1480~1485년, 275×142㎝, 루브르 박물관, 파리. 디오클레티아노 황제의 근위대장이었던 성 세바스티아노는 황제 숭배를 거부하고 그리스도교를 믿었다는 이유로 죽음을 당한다. 빈들에서 화살을 쏘아서 처형하게 했다는 기록과 다르게 화가 만테냐는 고대의 폐허 풍경을 그려놓았다. 성자의 담대한 자세와 태연한 표정은 육체의 고통을 초월해 있다. 성 세바스티아노는 몸에 생긴 화살 상처 때문에 1350년 경부터 페스트 성자로 기림을 받았다고 한다.

 

- ‘수금을 타는 다윗’, 에그베르트의 잠언서 20쪽 앞면, 980년, 국립고고학박물관, 치비달레. 구약성서 사무엘서에는 다윗이 사울 왕의 궁정에서 악사로 일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수금을 든 다윗 왕은 로마네스크와 고딕 교회의 입구석주 장식에서 가장 흔하게 등장하는 소재이다. 수금을 뜯는 다윗의 모습은 골리앗을 돌팔매로 제압했던 소년 영웅의 이미지와 별로 어울리지 않는다. 그러나 다윗의 연주는 분노를 달래고 영혼의 평온을 주는 힘이 있었다고 한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프리기아의 오르페오도 다윗처럼 경이로운 연주 솜씨를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다윗이 중세 음유시인들의 수호성자가 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스도교에서는 많은 성인들을 모시고 또 기린다. 하나 같이 신앙의 사표로서 모자람이 없지만, 중세시대에는 도시마다 수호성인을 따로 두었고, 가문 또는 개개인들도 수호성인을 한 분씩 모셨다. 또 도시국가의 통치자나 지배 가문의 핏줄이 바뀔 때마다 도시나 가문의 수호성인을 바꾸는 일도 다반사였다. 가령 피렌체의 수호성인은 세례자 요한 한 분뿐이지만, 나폴리처럼 정치적 부침을 호되게 겪은 도시는 열 분이 넘는다. 한편, 직업과 직능 그리고 직인 조합들도 나름대로의 성격에 맞추어 성인들을 모셨다. 그런 사례는 지금껏 남아 있어서 음악교육기관은 흔히 성 체칠리아, 미술 학원은 성 루가 아카데미의 이름을 달고 있게 마련이다.

 

성인들 가운데는 병 고침과 치유의 은사를 베푸는 능력이 남달랐던 경우가 드물지 않았다. 가령, 나병에는 성 제노베파가 으뜸이고, 설사에는 옥세르의 성 게르마노, 기침이 나면 성 퀸티오가 용하다고 했다. 피부질환에는 성 안토니오, 치통은 성 아폴로니아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밖에도 염증, 부종, 황달, 오십견에 이르기까지 시시콜콜한 병후에 따라 맞춤형 처방전을 대신할 수백 분의 성인 이름을 외우는 것이 교회 성직자들의 골치 아픈 과제였다.

 

돌림병 가운데는 페스트가 가장 무서웠다. 그래서 그런지 페스트 성인의 수는 마흔을 웃돈다. 그 가운데 성 세바스티아노, 성 크리스토포르, 그리고 성 다미아노와 성 로쿠스가 항상 인기순위의 상위를 맴돌았다고 한다. 성 세바스티아노는 로마 시대 디오클레티아노 황제의 악명 높은 그리스도교 박해 때 들판의 기둥에 홀로 묶인 채 제 부하들이 쏜 화살을 맞고 고슴도치처럼 서 있는 모습이 교회 제단화에 자주 그려졌는데, 화살에 찢긴 무수한 상처들이 마치 페스트 환자에게 피는 열꽃 증상과 흡사하다고 해서 페스트 성인으로 기림을 받은 인물이다. 

 

또 성 크리스토포르는 애당초 사람들을 못살게 굴던 거구의 괴물이었다가 어느 날 아기 그리스도를 등에 올리고 강물을 건네주는 선행을 베푼 일을 계기로 해서 하루아침에 벼락 성인로 변신했다. 그후 강물을 건넨 그의 행위가 세상의 거센 풍파와 모진 환난으로부터 생명을 지키고 보호한다는 의미로 해석되면서 악성 질병인 페스트에 그만이라는 입 소문을 탔다. 중세 시대에는 돌림병이 돌면 덮어놓고 페스트인줄 알았으니 이런 성인들의 주가가 상승세를 탄 것은 당연했다. 중세 질병사 연구에서는 중세시대의 돌림병 가운데 진짜 페스트는 30% 남짓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직업군을 성인들의 순교 사건이나 특징적인 일화와 연결시키는 연상법도 다양했다. 가령 바오로는 장검으로 목을 쳐서 순교를 당했기 때문에 흔히 종교미술에서는 성서와 장검을 든 모습으로 등장하는데, 바로 이 때문에 병장기 제작공방이나 대장장이 직인 조합의 수호성인이 되었다. 

 

노아는 방주에서 내려와 포도나무를 심었다고 해서 포도원과 포도주 상인들의 수호성인으로, 아담은 에덴 동산에서 추방당한 뒤에 제 힘으로 땀을 흘려서 땅에서 소출을 얻었기 때문에 농사꾼들의 수호성인이 되었다. 어부들이 성 베드로를 섬기고, 건축장인들이 성 토마스 앞에서 머리를 조아린 것도 모두 같은 이치이다. 양모 조합에서는 아브라함을 기렸는데, 그것은 그가 첫 아들 이사악을 희생하려던 순간 때마침 나타난 천사가 덤불 속에 앉아 있는 수양을 가리켜 보였기 때문이었다. 근대 이후 등장한 은행이나 환전과 관련된 업무에 종사하는 장사치들이 성 마태오를 수호성인으로 삼았던 것도 그의 과거 직업이 세리였던 사실과 깊은 연관이 있다. 

 

교황들의 수호성인이 첫 교황좌에 오른 성 베드로라는 사실이나, 건축장인들이 돌탑에 갇혀서 순교한 성 바르바라를, 또 오르간 제작기술자가 성 체칠리아를 섬긴 것은 자연스럽게 보인다. 아울러 궁정을 유랑하던 직업 시인들이 노래 솜씨가 남달랐던 다윗 왕을 각별히 모시거나, 작업장을 강변에 차렸던 염색업자가 요한 세례자를 애지중지하는 것도 그런 대로 납득이 간다. 

 

그러나 도축업자나 가공된 가죽을 사용하는 제책 기술자가 굳이 살 껍질을 벗기는 순교를 당한 성 바르톨로메오를 수호성인로 삼거나, 인두질로 먹고사는 세탁업자가 불에 달군 석쇠 위에서 굽혀 죽는 순교를 당한 성 라우렌시오를 들추어낸 것은 좀 심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밖에 산파들은 카타니아의 성 아가타, 약사는 큰 야고보, 의사는 성 블라시오, 양봉업자는 성 발렌티노, 화훼업자는 성 도로테아 등을 모셨는데, 직업마다 수호성인이 겹치기도 하고 나누어지기도 했다.

 

교회 색 유리창이나 제단화들을 살펴보면 그림 한 귀퉁이에 직인들의 모습이 봉헌자의 자리를 대신하는 장면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수도자는 기도하는 모습으로, 주교나 기사는 군장차림을 갖추고, 환전상은 장부나 문장을 받쳐들고 등장한다. 심지어 도축업자가 암소를 끌고 나타나거나 조각 장인이 기둥머리를 끌로 쪼는 모습도 낯선 풍경이 아니다. 성서의 신비와 역사의 기록이 절묘하게 어울린 이런 그림은 그리스도교인들의 순박한 신앙고백으로 읽힌다. 이처럼 중세 시대의 사람들은 성인들의 삶과 순교에 얽힌 이야기들을 기억하고 그 가운데 한 토막을 건져서 하느님으로부터 주어진 자신의 천직의 의미를 되새기는 수단으로 삼았던 것이다.

 

[가톨릭신문, 2003년 11월 9일, 노성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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